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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고] 05
씬1. 배경화면+자막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를 아십니까? 사랑을 위해, 조국을 배반한 아름답고 슬픈 사랑.
그러나 그 안에는 국가의 생,사를 건 고구려와 낙랑국의 처절한 정치현실이 숨어 있습니다.
드러난 현상과 숨겨진 이면을 동시에 바라볼 때, 역사는 흘러간 과거사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 됩니다.
‘자명고’
씬2. 고구려, 국내성 오선전 송매설수 침소 (밤)
대무신왕, 다탁 위에 던져 놓은 검집을 들어 검을 빼든다.
송매설수 : 마마!!
송매설수,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부복한다.
대무신왕 : 고개 들고, 내 물음에 한치 거짓없이 대답하라!!
송매설수 : (고개 들고, 떨리는) 하문 하소소..
대무신왕 : 그날 수양전 뜰에서 호동을 죽이려 했는가?
송매설수 : ..
송매설수, 대무신왕을 곁눈질로 살며시 본다. 자신을 정말 죽이려는 것인지, 위협인지. 진의를 살피려 빠르게 머리를 굴려본다.
대무신왕 : 송매설수!! 대답하라!! 너는 하나 밖에 없는 내 아들 호동을 죽이려 했는가!!
송매설수 : 결코 아닙니다.
대무신왕 : (일순간 눈썹이 꿈틀한다)
송매설수 : (다급하다) 신첩, 대왕에 아내로 궁에 왔을 때, 호동이 강보에 쌓여 제 품에 안겨졌습니다!
어느 어미가 아들을 죽이겠어요!!
대무신왕, 전광석화의 속도로 검을 휘두른다.
송매설수, “아악!!!”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는다.
대무신왕의 검이 내려지는 것과 동시에, 무언가 허공에 떠올랐다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
느슨하게 머리를 내려묶었던, 송매설수의 잘린 머리채다.
송매설수 : !! (자신의 목을 만져본다)
대무신왕 : 내가 누군가? 대무신 무휼이다!
송매설수 :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잘린 머리채를 본다) !
대무신왕 : 다섯살에 첫칼을 잡아, 말등서 자고, 말등서 멧돼지 포를 씹으며, 이 나일 전쟁터서 보냈다.
내 칼에 떨어진 목이 몇 수레인지 아느냐?
송매설수 : .. (이미 분노로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대무신왕이 이야기 하는 동안 송매설수, 손을 뻗어 끊어진 자신의 머리채를 들고 본다. 송매설수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대무신왕 : 네가 칼을 쥔 손만 봐도 안다. 호동을 죽이려는 건지, 한 수 가르치려는 건지.
송매설수 : .. (일어서서, 끊어진 머리채를 다탁 위에 놓는다)
대무신왕 : 송매설수!! 내 이미 물었다!! 내 아들을 죽이려 했느냐!!
송매설수, 돌아서서 대무신왕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송매설수 : (차다) 나는, 비류나부 수장 송옥구에 딸로 태어나, 당신과 혼인했습니다.
대무신왕 : 이미 고구려가 내 손에 있거늘, 비류나부가 어쨌단 말이냐? 송옥구? (코웃음 친다) 흐흥.. 토사구팽이라 했다.
그는, 내 발밑에 엎드린 늙은 개 한 마리에 불과하다.
송매설수 : 내 아비가 늙은 개면 어떻고, 토끼면 어떻단 거죠?
대무신왕 : (어이가 없어 칼을 다탁에 내려놓는다)
송매설수 : 신첩 더 이상 송옥구의 딸만이 아닙니다. 고구려 왕빕니다. 당신에 정비! 무휼왕의 아내!!
대무신왕 : (냉소) 그리 목청껏 부르짖지 않아도, 네가 왕비라는건 세상이 다 안다.
송매설수 : (머리채를 집어 보이며) 이게 왕비 대접입니까?
대무신왕 : 왕에게 여자란 둘 중 하나지. 아들을 낳아, 장차 모후가 될 여인. 아님 사내의 욕망을 풀어 줄 계집.
넌 그 둘 중 하나도 될 수 없다.
송매설수 : !! (씹어뱉듯) 그날 호동일 죽이지 못한게 억울하군요.
대무신왕 : 뭐라?
송매설수 : 사람 마음이 한가진가요! 물길처럼, 백갈래,천갈래 갈라 흩어지는게 마음입니다!
밉다,곱다,가엾다, 내게 적어도 호동인 그랬습니다!! 첨부터 밉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대무신왕 : 뭐라 해도, 그댄 욕심 많고, 독한 여자다.
송매설수 : (OL) 사랑 받고픈게 욕심이라면. 내 자식 낳고픈게 욕심이라면. 네, 그래요. 욕심 많은 여잡니다!
허나, 날 이리 독하게 만든건 당신이에요!! 호동일 죽이고 싶게 만든건 당신이라구요!
대무신왕 : .. (본다)
송매설수, 끊어진 머리채를 다탁에 손바닥으로 아프게 쳐서 놓고. 대무신왕의 검을 집어 든다.
송매설수 : 차라리 날 죽여요!!
씬3. 동, 침소 앞 복도 (밤)
내시장과 시녀장, 아미,술이, 꿇어 앉아 있다. 뒤로 멀리 호위무사 두 명 있다.
아미,술이 안절부절 하고.
(송매설수의 소리) : 어서 내 목을 치라니까요!!
시녀장, 자리에서 일어난다. 들어가려 문에 손을 대면.
내시장, 시녀장의 치맛자락을 잡는다.
시녀장 : (돌아보며) 대태감 어른!
내시장 : 우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네. 두 분 마마 허락 없이, 어찌 감히 귀를 열어 두는가!
시녀장 : .. (안타깝게 문쪽을 보다 다시 꿇어앉는다)
씬4. 고구려, 국내성 오선전 송매설수 침소 (밤)
송매설수, 대무신왕에게 칼을 내밀고 있다.
대무신왕, 비웃는 듯 송매설수를 본다.
송매설수 : 어서요! 절 죽이라니까요!
대무신왕 : (피식-웃고) 귀찮다. 이제 그만 하자.
송매설수 : 왜요? 자기 아낼 죽인 왕이란 소린 듣고 싶지 않나요? 당신이 못하겠음 내 손으로 하죠! 알아 죽어드리죠!
송매설수, 검을 들어 자신의 목을 겨눈다.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 검날을 받쳐 자신의 목줄기에 댄다.
대무신왕, 냉정한 시선으로 그런 송매설수를 바라본다.
송매설수, 대무신왕을 똑바로 보면서 손잡이를 잡은 오른손에 힘을 준다. 목에서 피가 배어져 나온다.
대무신왕, 허리끈을 들어 채찍처럼 휘둘러 송매설수의 오른손 손등을 치고, 검을 말아 올려 떨어트린다.
송매설수 : 대체 어쩌란 거죠, 나더러!! 내 맘대로 죽지도,살지도 못한단 건가요!!
대무신왕 : (허리끈으로 송매설수의 목에 살짝 베인 피를 닦아주며) 제법 기백이 있군. 송옥구가 괜찮은 딸을 뒀어.
송매설수 : (손길을 밀쳐내며) 더 이상 신첩을 모욕치 마세요!
대무신왕 : (허리끈을 바닥에 던지고) 칭찬이다. (깊게 숨을 쉰다) 하아.. 호동이 그대 몸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송매설수 : .. (본다)
대무신왕, 검을 집어 검집에 꽂아 좌대에 놓는다.
대무신왕 : 첫닭 울려면 아직 멀었다. 자자, 그만.
대무신왕, 침상에 걸터앉는다.
송매설수, 석고상처럼 서있다.
대무신왕 : (그런 송매설수를 바라보다) 처녀인 채 늙어 죽게 하진 않겠네.
송매설수 : (눈이 빛난다)
대무신왕 : 그대 더 나이 들어, 월경이 멈추고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는 날.
그때도 내가 살아 있고, 내 여전히 남자라면. 왕비로서 안아주지.
송매설수 : !! (모욕적이다)
대무신왕, 돌아누워 눈을 감는다.
송매설수,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대무신왕의 돌아누운 등을 바라보는 송매설수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인다. (Dis)
씬5. 고구려, 국내성 우나루의 집 후원 (밤)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여랑, 우나루에게 매서운 일격을 가한다.
우나루, 여유만만하게 나뭇가지로 쳐낸다.
여랑 : 죽일테야!! 어디 막을테면, 막아봐!!
여랑, 칼을 두 손으로 쥔 채 우나루의 가슴팍을 향해 온몸을 던진다. 동귀어진의 자세다.
우나루 : !
우나루, 놀라서 들고 있던 나뭇가지로 여랑의 팔목을 세게 친다.
여랑, 그 바람에 “아야!!”하며 칼을 떨어트린다.
우나루, 화가 나서 여랑의 뺨을 아프게 친다.
우나루 : (화난) 동귀어진이라도 하잔 거요! (나뭇가지를 흔들며) 이게 아니구, 진짜 칼이었음 어쩔뻔 했어!!
손목이 땡강 나갔던가!! 너랑 나랑 둘이 같이 쳐죽었던가!!
여랑 : 오라버니한테 말해, 당신이랑 헤어질테야.
우나루 : (정신이 번쩍 드는) 공주!!
여랑 : 일국에 공주가 맞구 살 순 없어. 매 맞는 마누라론 절대 못산다구요!! 흥!!! (몸 돌려 안쪽으로)
우나루 : (따라가며) 공주, 공주!! 내 잘못했소!! 한번만 봐주구려!!
우나루, 여랑의 옷자락을 잡는다.
여랑 : (휙- 돌아본다) 뭘 잘못했는데요?
우나루 : 뭐긴 뭐겠소~ 공주마마 손에 죽어주지 않은 죄지~ 당신을 과부루 만들 수 없어서 그 칼에 찔려주지 못했소.
여랑 : 뭐예요!!
우나루 : 어차피 한번 왔다, 한 번 가는 인생. 전쟁터서 털 부숭부숭한 놈 손에 찔려 죽는 거 보다야
(여랑의 손을 잡으며) 이 손에 찔려 죽는게 낫지. 생각 안해 본건 아니지만..
여랑 : 근데 왜 안죽었어요?
우나루 : 그게 말이오. 공주가 나 죽었다구 재가 안할 여잔 아니잖소? 언 놈 좋으라구 내가 죽어~ (히쭉- 웃는다)
여랑 : ! (손을 휙- 뿌리치고) 짐 꾸릴 테니까 따라 오지 마요!! (돌아보지도 않고) 따라오기만 해!
우나루 : 공주!! 공주마마!! (따라가며 외친다)
씬6. 고구려, 국내성 오선전 송매설수 침소 (밤)
송매설수, 무생물처럼 미동 없이 앉아 잠든 대무신왕의 등을 본다. 한순간 표정이 차가워지면서 벌떡 일어난다.
송매설수, 다탁 위에 얹힌 자신의 잘린 머리채를 집어 든다.
씬7. 동, 침소 앞 복도 (밤)
아미와 술이, 꾸벅꾸벅 졸고 있고.
문 열리고, 가벼운 사냥복 차림으로 갈아입은 송매설수 나온다.
내시장과 시녀장, 일어나 송매설수에게 읍한다.
내시장, 송매설수의 잘린 머리를 보고 놀란다.
내시장 : ! (놀라지만 내색 않고) ..
시녀장 : (내시장의 시선을 따라 송매설수의 머리를 보고 흠칫 놀라는) !!
아미,술이, 인기척에 졸다 깨서 입가에 침 흘렸나 손등으로 닦으며 일어선다. 두 사람, 역시 송매설수의 머리를 보고 놀란다.
아미 : 마마!!
술이 : (송매설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머리가 쑥대밭이에요!
시녀장 : (아미,술이에게, 엄하게) 이런 무엄한 년들! 손가락을 짤라 주리?
아미와 술이, “잘못했습니다, 마마/용서해주세요..” 바닥에 바로 부복하고.
송매설수 : (시선 두지 않고, 복도쪽으로 몸 돌리려는데)
시녀장 : (의아한) 임시 지났는데 어딜..가시옵니까?
송매설수 : 따라오지 마라.
내시장 : (살짝 앞을 막아선다) 아직 대왕마마, 침전에 계시는데.. 어찌 자리를 뜨시옵니까?
송매설수 : 비켜라!!
내시장 : 대왕마마 곁으로 드십시오..
송매설수 : 하덕!! 이젠 너까지 날 무시하느냐, 못된 것!
송매설수, 내시장을 밀어젖히고 걸어간다.
씬8. 고구려, 국내성 수양전 마당 (밤)
송매설수, 쌓인 눈을 밟으며 걸어온다.
씬9. 동, 수양전 호동의 침소 (밤)
호동, 칠지등의 불빛 아래 잠들어 있다.
방안에는 벽난로가 따뜻하게 지펴져 있고, 비단이불 속에 얇은 잠옷 차림의 호동, 쌕쌕- 고른 숨을 내쉰다.
그 얼굴 위로, 비단벽지를 바른 벽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송매설수, 침상 옆에 서서 호동을 복잡한 심경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호동, 즐거운 꿈을 꾸는지 자면서 키득키득- 웃는다.
송매설수 : ! ...웃어? 너 지금.. 웃고 있느냐?
호동, 씨익- 웃는다.
송매설수 : ! (분노하는) 날 이리, 갈래·갈래 누덕·누덕 걸레같이 찢어놓고. 너, 감히!!
일순 그녀의 눈에 살기가 어린다.
송매설수, 침상 위로 몸을 숙이고 호동의 목을 양손으로 조르기 시작한다.
호동, 숨이 막힌다. 잠에서 깨진 않았지만 갑갑한듯 다리를 버둥거린다.
송매설수, 아예 침상에 걸터앉아 힘주어 호동의 목을 누른다.
호동의 팔이 이불을 쳐내고 허공을 움켜쥐기 시작한다.
시녀장 : 마마!!!
시녀장, 몰래 뒤따라와 문 열고 들어오다가, 송매설수의 행동을 봤다.
시녀장, 침상으로 뛰어가 송매설수의 팔을 잡고.
시녀장 : 마마!!! 안됩니다, 마마!!!
송매설수 : 놓아라!! 놓으라니까!!
호동 : (컥컥- 거린다)
시녀장 : 이러시면 마마가 죽습니다!
송매설수 : 이 놈을 죽이고, 나도 죽을테다!! 목을 자르라지!!
내 목이 땅바닥에 떨어져 굴러도, 두 눈 똑바로 뜨고, 무휼의 얼굴을 쳐다봐 줄테니!!
송매설수, 힘주어 시녀장을 밀치고 호동의 목을 더 누른다.
호동, 침상에 오줌을 지리기 시작한다.
시녀장, 넘어졌다가 황급히 일어나 송매설수를 뜯어말리는.
시녀장 : 마마만 죽는게 아닙니다!! 친정아버님도 살아남지 못하십니다!!
송매설수 : 어차피 늙은 개 취급이나 받는 노인네. 더 살아 뭐하리! 놓아!! 놓으라니!!
호동의 바지와 침상이 소변으로 젖어간다.
호동의 숨이 컥컥, 넘어간다.
시녀장 : 마마도 고추가(古鄒加) 어르신도 그렇다 쳐요! 친정어머니,동생들,친족들, 모두 죽이시렵니까!!
송매설수 : ! (흠칫한다) .. (호동의 목을 쥔 손에 힘이 조금 빠진다)
시녀장 : 아예 마마 손으루 비류나부 씨를 말리시렵니까!!
송매설수 : .. (손에 힘이 빠진다)
시녀장 : ..
송매설수 : (시녀장을 본다, 처참한) ... 내 이러고 살아야 하느냐?
시녀장 : 칠년도 참으셨습니다.
송매설수 : 너무 길었다.
시녀장 : 마음은 누르면 참아집니다. 사랑도,화도,미움도.. 마음에서 나오는 것. 더 눌러 보십시오.
불붙은 장작을 끄면, 넘치던 팥죽솥도 가라앉습니다.
송매설수 : ... (침상에서 일어나 비척이며 문쪽으로)
시녀장, 호동의 몸에 이불을 덮어준다.
시녀장, 호동의 가슴을 아기에게 하듯 토닥토닥..두드리며.
시녀장 : (나지막이) 나쁜 꿈이옵니다, 마마.. 깨지 말고 이대로 주무소소...
씬10. 국내성, 수양전 후원 (밤)
군데군데 등이 밝혀져 있다.
송매설수, 시녀장의 부축을 받고 걸어와 눈 쌓인 정원석에 주저앉는다.
시녀장, 그런 송매설수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한다.
씬11. 국내성, 수양전 호동의 침소 (밤)
호동, 자리에서 일어난다.
호동, 소변으로 얼룩진 자신의 바지와 침상을 본다.
(플래시)
호동의 감은 눈꺼풀이 조금 열리면, 무시무시한 힘으로 자신의 목을 누르고 있는 송매설수의 아귀 같은 얼굴.
호동, 닫힌 문을 보다 손으로 자신의 목을 만져본다.
호동 :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아냐...아냐.. (부정하고 싶은) 어머니가 그럴리 없어..
호동,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씬12. 국내성, 수양전 후원 송매설수 있는 곳/호동 있는 곳 (밤)
송매설수의 머리와 어깨에 눈이 쌓여 있다.
미동 없이 서있는 시녀장의 두 어깨와 머리에도 눈.
호동, 전각 기둥 뒤에 숨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급히 따라 나와 얇은 겉옷을 잠옷 위에 걸쳤을 뿐이다.
호동 : ..
시녀장, 소매춤에서 새의 깃털로 만든 작은 털이개를 꺼내 송매설수의 몸을 조심스레 털어준다.
송매설수 : .. 날 이해하겠느냐?
시녀장 : 이 년은 머리가 없습니다. 머리가 없으니, 이해할 것이 없습니다.
송매설수 : .. (본다)
시녀장 : 저는 그저 마마의 손이고·발이고. 마마의 또 다른 눈이고,귀일 뿐.
마마께서 왕후의 능에 들어가시는 날, 모시고 따르기 위해 있는 목숨이옵니다.
송매설수 : ..
시녀장 : (송매설수를 가만히 보다) 젊은 남자에 사랑은 눈에서 온다지요. 여인에 몸,여인에 얼굴, 그 생긴 꼴을 사랑하지만.
나이든 남자에 사랑은 눈을 떠난답니다.
송매설수 : (허탈하게 피식-웃고) 눈을 떠나면, 그 너머에 뭐가 있길래?
시녀장 : 모릅니다, 이년은. 그 너머에 마음이 있는지, 신뢰가 있는지. 마마께서 폐하가 원하시는 걸 알아채셔야 합니다.
송매설수 : 그가 원하는 건 호동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그림자뿐인 왕비. 내가 원하는 건..
호동 : ..
송매설수 : (일어난다. 결기 있게) 따라 오너라.
송매설수, 성큼성큼 걸어간다.
송매설수와 시녀장이 후원 문 너머로 사라지면 전각 뒤에서 호동 나온다. 잠시 생각하다 송매설수의 뒤를 따라 가는 호동.
씬13. 국내성, 오선전 송매설수 침소 앞 복도 (새벽)
(소리) 칭칭- (갑시를 알리는 소리)
내시장과 아미,술이, 꿇어 앉아 있고. 호위무사 두 명 멀찍이 서있다.
시각을 알리는 타경관(打更官)1,2 작은 제금(提金, 악기 자바라의 일종)을 치며 걸어온다.
타경관이 친 제금 소리가 은은하게 복도를 울린다.
타경관2, “갑시요- 갑시옵니다-” 작게 외치며 지나간다.
씬14. 동, 오선전 송매설수 침소 (새벽)
(소리) 칭칭-
타경관의 소리에 눈을 뜨는 대무신왕. 일어나 앉아 옆자리를 보면 비어있다.
대무신왕, 송매설수의 자리에 손바닥을 대본다. 차다.
대무신왕 : .. (생각하는)
씬15. 국내성, 주몽의 사당 앞 (새벽)
겨울이라 아직 캄캄한 한밤중 같은 어둠이다.
호동, 한쪽에 숨어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대낮처럼 불을 밝힌 사당 안이 보인다.
씬16. 국내성, 주몽의 사당 안 (새벽)
커다란 향로에 송매설수, 자신의 끊어진 머리채를 집어넣는다. 불길이 화르륵- 피어오른다.
향로 위로 보면, 벽에 동명성왕의 초상화가 붙어 있다. 시녀장, 한 쪽 구석에 시립해 있다.
송매설수 : 할아버지 주몽이시여!! 손주며느리 매설수, 청하옵니다!! 제게 아들을 주옵소서!!
씬17. 국내성, 주몽의 사당 안/밖 (새벽)
호동, 다가가 열린 문 벽에 붙어 안을 들여다본다. 송매설수, 알지 못하고 진혼을 하고 있다.
송매설수 : 호동이 누구오니까!! 바로 할아버지 동명성왕을 그리도 핍박했던, 부여의 첩년이 낳은 자식이옵니다!!
어찌 그런 놈을 태자로 세우겠습니까!
호동 : ! (놀란다)
송매설수 : 호동이 태자가 되고, 왕이 된다는 건 고구려를 통째로 부여에 바치는 꼴이옵니다!!
호동 : !!
송매설수 : 그리 되길 원하십니까? 정녕 이대로 두고 보시렵니까! 이 몸은 그럴 수 없사오니다!!
그이 손에 제가 죽든, 제 손에 호동이 죽든 그 꼴을 볼 순 없사오니다!
송매설수, 원통함에 피가 맺히도록 부르짖는다.
호동, 자신의 목을 만지며 생각에 잠긴다.
(인서트) 4부 씬40
송매설수의 눈빛이 한 순간 살기를 띠며 검을 고쳐 잡고 호동의 가슴을 진짜로 찌르려 한다.
여랑 : 언니!!!
여랑, 급한 김에 탁자 위에 마시려 둔 청동차주전자를 들어 집어 던진다.
차주전자가 날아가 칼에 부딪치고, 송매설수 그 힘에 칼을 놓친다.
여랑 : (계단을 한달음에 달려 내려와) 미쳤수!! 앨 죽일 셈이요!!
호동, 사당 안의 송매설수를 바라본다.
송매설수 : 제게 아들을 주소소..
송매설수, 자리에 주르륵- 무너진다.
송매설수 : (눈에 눈물이 맺힌다) 제게 아들을 주세요.. 그것만이 고구려를 지키구.. 비류나부를 지키구..
손주며느리 매설수를 살리는 길이옵니다... 할아버지..할아버지... (눈물 흘린다)
호동, 그런 송매설수를 바라본다.
(플래시) 5부 씬21
대무신왕 : 꼭, 여인에 칼을 배우고 싶다면 어머니께 더 배우든.
호동 : ... (생각한다)
(플래시) 5부 씬21
대무신왕 : 여랑에 검은 화려하고 유연하나, 네 어머니는 못이긴다.
호동 : .. (생각한다)
(플래시) 5부 씬21
대무신왕 : 독기 깃든 칼이니, 네 어머닐 이긴다면 혈육이라도 벨 수 있을게다.
호동, 울고 싶은 심정으로 송매설수를 바라본다.
송매설수 : 할아버지, 이 매설수에게 고구려에 정통성을 잇는 왕잘 주소소. 부여 첩년 아란에 자식 호동을 죽여주소소....
호동 : !!
송매설수, 바닥을 두 손으로 짚고 반쯤 부복한 자세로 등을 떨며 울기 시작한다.
호동,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친다. 한순간 호동, 몸 돌려 마구 뛰어간다.
씬18. 호동의 몽타주 (새벽)
언덕에서 커다란 눈덩이 하나가 떼굴떼굴 굴러 내려온다. 온몸에 눈이 묻어 눈사람처럼 된 호동이다.
호동, 언덕 아래 나무둥치에 몸이 턱, 걸려 멈춘다. 호동, 일어나 다시 언덕 위로 엉금엉금 올라간다.
언덕에 선 호동, 다시 몸을 굴린다. 떼굴떼굴 구르는 호동, 언덕 아래 내동댕이쳐진다.
호동, 가슴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으으으으!!” 하며 자신의 옷을 찢는다. 그리고는 바닥에서 자반뒤집기 한다.
그래도 속이 시원하지 않다. 다시 자반뒤집기 해 몸을 하늘로 향한다.
호동 : 엄마... (목이 멘다) 엄만...왜..부여 사람이야... (눈물이 난다) 엄만..왜.. 일찍..죽었어...
호동, 눈물을 흘리다 어느 순간 외친다.
호동 : 엄마!!! 엄마!! 엄마아!!!
호동의 절규가 동터오는 국내성 위로 메아리친다. (Dis)
씬19. 낙랑군, 단군신당 앞 (새벽)
(자막) 낙랑군 낙랑성 외곽, 단군 신당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새벽이내가 서린다.
류지와 도찰, 문신작업을 끝냈다. 이마에 송글송글 진땀이 배인 채, 각각 피가 떨어지는 비수를 수하 부하들에게 준다.
돗자리 위에 꼿꼿이 앉아 있는 최리와 왕굉의 등에서 피가 떨어진다.
도찰 : 다 끝났습니다, 장군.
두 사람, 감고 있던 눈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선족 병사들 앞으로 걸어가는 최리와 왕굉. 벗은 맨 등을 보여준다.
도찰과 류지, 수건으로 두 사람의 등에 묻은 피를 닦아낸다. ‘樂浪’이라고 판 두 글자가 붉게 부풀어 올라있다. (색은 들이지 않은)
조선족 병사들, “와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흔든다. 왕굉, 최리를 본다.
최리 : (단상을 눈으로 가리키며) 오르시지요.
씬20. 동, 단상 앞 (새벽)
왕굉, 군사들의 함성 속에 세 계단 정도 돋워둔 나무 단상 위에 오른다.
군사들, 왕굉이 단상 위에 서면 조용해진다.
왕굉 : 나 욍광의 등에 새겨진 낙!랑! 이 두 글자는 유헌에 낙랑군도 아니요, 한 무제가 세운 낙랑도 아니다!! 보라!!
(잠시 자신의 등을 보여준다)
최리 : .. (엷은 미소를 지으며 본다)
왕굉 : (군사들에게로 돌아서서) 이 낙!랑!은 단군왕검께서 세운 옛 조선의 땅 낙랑이요!! 우리들에 나라 낙랑국의 낙랑이다!!!
병사들, “와아아아아!!!” 큰 함성을 지른다.
왕굉 : 유헌에 기를 태우라!! 백이십년을 우리 조선 낙랑에 잘못 걸려진 그 망할 깃발을 불에 처넣어라!!!
왕굉의 손짓하면, 부달이 낙랑군의 대기(大旗)를 가져온다. 붉은 바탕에, 국화와 ‘樂浪郡’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부달, 단상 아래에 지펴진 모닥불에 깃발을 던진다. 유헌의 깃발이 불 붙어 타오르기 시작한다.
왕굉 : 영호장원의 장군기를 가져오라!!
도찰, 폭 일장에 길이 오척인 장군기를 가져온다.
(인서트) 왕굉의 장군기.
가문의 상징인 궁홀산(구월산의 옛이름) 매가 수놓여 있다. 날카로운 눈빛. 심장을 쪼아버릴 것 같은 억센 발톱.
부리를 드러내고 사납게 비상하는 매의 모습이 황금색으로 수놓인 대기.
씬21. 동, 최리 있는 곳 (새벽)
하호개, 도찰이 들고 가는 펄럭이는 욍굉 가의 기를 보며.
하호개 : (흥분해서) 아니·아니. 우리 장군기도 같이 내걸던지. 자기네 영호장원 기만 떡허니. 저게 뭔 수작질입니까?
가만, 우리 기도 올려야지. (가려는)
최리 : 가만 있거라.
최리, 도찰이 기를 들고 가는 모습을 본다.
하호개 : (씩씩-거리는) 피는 같이 흘리구, 떡은 나중에 지들끼리 처먹겠단 수작질 이네, 시방. 유헌이 죽이구 왕 해먹겠다?
최리 : 내가 왕이 되겠다 했는가?
하호개 : 왕 되는게 싫으십니까?
최리 : 생각 안해 봤다.
류지 : (이성적인 성격) 그럼 지금부터 생각해 보십시오.
최리 : (류지를 본다)
류지 : (웃는) 장군이 왕위에 오르시고, 이 몸이 재상이 된다면 좋지요.
최리 : 류지!
류지 : (표정 바뀐다) 왕장군은 야심이 큰 사람입니다.
류지, 눈을 가늘게 뜨고, 사람을 내려보는듯한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기를 든 도찰이 단상에 올라 왕굉에게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본다.
류지 : 왕장군은 지금 (최리를 보며) 장군께 선전포골 하고 있군요.. 내 왕이 될 터이니, 최리 너는 언감생심 알아 기어라.
최리 : 전쟁은 시작두 않았다. 벌써 니 편, 내 편. 편 가를 생각마라. 구역질난다.
류지 : (최리를 보고) 토사구팽을 잊지 마세요, 장군.
최리 : 조선독립을 이루지도 못하고, 유헌에게 죽느니. 낙랑국을 세우고, 형님 솥에 삶겨 죽는게 낫다.
최리, 시선을 왕굉에게 돌린다.
씬22. 동, 최리 있는 곳/왕굉 있는 곳 (새벽)
도찰, 영호장원의 대기를 흔든다. 힘차게 펄럭이는 대기.
왕굉의 군사들, “영호장원 만세!!!/낙랑국 만세!!!/왕굉 장군님 만세!!”를 외친다.
왕굉, 최리를 의식하고 굳은 표정으로 본다.
최리 : .. (미소 짓는다)
씬23. 낙랑군, 낙랑성 영성단 (새벽)
자묵, 홀로 영성단에 올라 하늘을 살피고 있다. 유헌, 걸어온다. 뒤따르는 호위무사와 시녀.
유헌 : 태사령! 뭐하는가?
자묵 : (보고, 읍한다) 폐하.. (고개 들고) 별을 보고 있사옵니다.
유헌 : 벌써 동이 다 텄는데? (영성단에 오른다)
유헌, 우스꽝스럽게 고개를 빼고 하늘을 보지만 별이 안보인다.
유헌 : 어딨다구? 해가 떠올랐는데.
자묵 : (손으로 가리키며) 저기, 폐하의 머리 위에 장경성(長庚星)이. (역시 손으로) 저 동편에 천녀성(天女星)이
빛을 다투는 모습이 안보이십니까?
유헌 : 자네 노망났나? 최리 집에 갔다 오고부터 사람이 영 이상해졌어. (눈을 빛내며) 왕자실이 그리 요염턴가?
왕자실/(소리) : 날 안고 싶지 않나요?
자묵 : .. (생각하는)
(플래시) 4부 씬9
왕자실, 자묵을 안고 키스하며 술을 흘려 넣는다.
자묵 : .. (얼굴이 붉어진다)
유헌 : 노망이 아니구, 가로늦게 상사병이구만. 낯짝까지 시뻘개져선. 그러니 이 시각에 별 보인다 헷소릴 지껄이지~
유헌, 낄낄- 거리며 영성단을 내려간다. 자묵, 배웅하려 따라 내려간다.
유헌 : 요동군 태수가 축하 선물로 칠백년 된 비자나무 바둑판을 보냈길래, 태사령이랑 위기(圍碁)나 할까 했더니.. (몸 돌리는)
자묵 : (보다) 폐하!!
유헌 : (돌아본다) 위기나 두어판 둬보려나? 지루하고, 심심한데.
자묵 : 운명을 비켜갈 자, 두 발 달린 생명 중에 아무도 없사옵니다.
유헌 : .. (왠지 섬뜩한)
자묵 : 운명을 받아들이시면, 얻고,잃음에 집착치 않게 됩니다.
유헌 : 상사병 아니구, 노망 맞구나!! 왜 자꾸 섬뜩한 소릴 늘어놓는 게야! 에잇!!
유헌, 성큼성큼 간다.
자묵 : 하아.. (유헌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한숨 쉰다)
씬24. 낙랑군, 단군신당 앞 (새벽)
왕굉과 최리, 갑옷에 경갑으로 무장을 했다. 조선족 군사들, 출전 채비를 끝냈다.
왕굉, 단상 위에. 최리는 단상 아래 서있다.
왕굉 : 자, 이제 유헌에 목을 따는 일만이 남았다! 설령 독배(毒杯)를 마시게 된다 해도 더는 물러 설 수 없음이다!
(칼을 빼들고) 나 왕굉을 따르라!! 출전이다!!
군사들, “와아아!!” 함성을 지르는데 그 중, 눈빛 형형한 장수 하나가 앞으로 나온다. (이하 장수를 마조라 칭한다)
마조 : (큰 소리로) 우중랑장 왕굉!!
군사들 함성을 멈추고. 왕굉과 최리, 두 사람의 가신들 마조를 본다.
마조 : (손가락으로 가리켜 가며) 우중랑장 왕굉!! 좌중랑장 최리!! 나 마조는 두 사람을 믿지 못하오!!
왕굉 : 뭘 믿지 못한단 거냐!
마조 : 그대들에 할아비가 한족에 빌붙어 한족첩지를 받았으니, 두 사람은 이미 조선족이 아니오!
부달 : 이 싹바가지 없는 놈!! 아구리 닥치지 못할까!!
마조 : 우리 조선족이 유헌에게 다 죽어 갈 때, 두 사람은 좌중랑장,우중랑장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았소!!
군사들 : (술렁인다)
마조 : 등짝 아니라 온 몸을 칼로 파면 뭐하는가!! 왕굉!! 최리!! 유헌에 발바닥이나 핥던 자들을 믿지 못한다!!
(군사들을 보며) 너희들은 믿을 수 있는가?
군사들, 눈에 띄게 동요한다. “마조 장수 말이 맞소!!/우리만 죽어나는 거 아냐..” 이런 말들이 터진다.
최리 : .. (군사들을 본다)
왕굉 : (부달에게) 저 놈을 잡아 꿇리라!! 대업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거늘, 감히 장군을 비방하고. 군사들을 동요시킨 죄!!
내, 저 놈의 목을 치리라!!
부달과 그 수하들 달려들어 마조를 붙든다. (Dis)
씬25. 낙랑군, 단군신당 앞 (시간경과/새벽)
마조의 갑옷이 벗겨지고, 맨몸에, 맨발, 홑겹 바지차림으로 결박된다.
부달, 마조의 정강이를 차면, 마조의 무릎이 꺾이며 바닥에 꿇려진다.
목 베이는 모습을 군사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마조의 정면이 군사들 쪽으로 앉혀진다.
하호개 : 저런 놈은 땡강 한칼에 짜르기두 아깝지. 잘근잘근 저며 포를 떠야되는데.
뜸 들어 가는 밥솥에, 한 웅큼 재를 퍼붓구 지랄이네.
최리 : .. (마조를 본다)
왕굉, 칼을 들고 단을 내려와 마조 앞에 선다.
마조 : 베시오!! 죽는게 겁났으면 입도 떼지 않았소!!
왕굉 : 사내 흉낸 제법 낸다만.. (비웃고)
왕굉, 검집에서 검을 빼 들고 마조의 목을 베려 한다. 최리, 그 모습을 보다
최리 : (앞으로 나가며) 잠시 멈추십시오.
왕굉 : 왜 그러는가!
최리 : 마조에게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왕굉 : 입을 열면 열수록, 군사들 마음만 시끄러워질 텐데..
왕굉, 못마땅한 표정으로 검을 내리고 잠시 옆으로 비켜선다. 군사들, 최리와 마조를 바라본다.
최리 : 나와 왕장군을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가 그게 다인가?
마조 : 마른 섶을 지고, 활활- 타는 불 속에 뛰어든다 해도. 신뢰가 없으면 거짓이오!!
최리 : ..
부달 : 최리 장군은 저, 저 싹바가지 주둥일 콱 발로 문대지 않구!!
최리, 군사들을 돌아본다. 군사들의 눈빛에 마조를 동조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최리, 마조를 한 번 보고, 단상으로 걸어간다.
도찰 : (왕굉에게 다가와, 조용히) 단위에 오르게 하면 안됩니다! 저 단은, 훗날 신생국가 낙랑의 왕좌입니다.
왕굉 : (듣고) 최장군!! 시각이 급하네!
최리 : 한 번 생긴 의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체되는 일각 보다 군사들 마음을 모으는게 우선입니다.
씬26. 단군신당, 단상 위 최리 있는 곳/단상 아래 왕굉 있는 곳 (새벽)
최리, 단상에 올라 군사들을 보고 있다.
최리 : 나, 최리. 여러분들에게. 삼십만 조선족에게 진심으로 참회한다.
최리의 말에 모두들 주목하고 있다.
최리 : 어려서는 조선족이라는게 싫어, 입신양명코자 (마조를 보며) 마조 장수의 말대로 유헌의 발바닥을 핥았네.
왕굉 : 저 따위 말을! (분노)
최리 : 아버님,할아버님께 물려받은 재산으로 호의호식하고. 유헌에게 야합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마조 : (결박지어진 몸으로 힘들게 일어난다) 그래서 지금은 바뀌었다고 말하는거요!!
사람이 변하오? 사람이란 짐승은 원래 변하지 않소!!
최리 : 사람은 원래 변하지 않지.. 그러나 때로 변하기도 하네.
마조 : 못 믿소!!
최리 :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를 바꿀 수 없네. 오직 미래만 바꿀 수 있을 뿐.
부달 : 뭔..말이 저리 어려운가. 대가리 뽀개지겠네..
왕굉 : ..
최리 : 그러나, 유헌에게 들러붙었던 수치스런 내 지난날을 가리지도 않겠다!
단군왕검에 뜻을 이은 조선의 나라, 낙랑국을 세우는 날. 그대들이 나를 단죄한다면 그 벌을 기꺼이 받겠네.
군사들, 최리를 본다.
마조 : 어떻게 벌을 받겠다는 겁니까?
최리, 단상 위를 걸어 내려와 마조 앞에서 검을 빼- 휘두른다.
군사들, 마조의 목을 친줄 알고 놀라서 본다.
최리, 한칼에 마조의 결박을 끊고, 검집에 칼을 넣어 마조에게 내민다.
마조 : 무슨.. 뜻입니까..?
최리 : 낙랑이 독립을 이루는 날. 이 칼로 내 목을 치게.
마조 : .. (최리의 눈을 본다)
최리 : .. (칼을 내밀고 있다)
마조, 마음이 움직인듯 손 내밀어 최리의 칼을 받는다.
마조 : .. 사람이 변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십시오.
최리 : 그러지.
마조, 군사들에게 번쩍 칼을 들어 보인다.
군사들 “와아아아아!!! 최리 장군 만세!!!/마조 장수 만세!!”를 외친다.
씬27. 낙랑군, 은포관문 앞 (낮)
멀리 낙랑국과 고구려의 군사경계선인 은포관문이 보인다. (자막) 낙랑군, 은포관문
파오가 쳐져 있고, 파오 꼭대기에 고구려 삼족오 기가 바람에 휘날린다.
오른쪽으로는 고구려 호위병사들이 서있다. 왼쪽으로는 한나라 복색을 갖춘 호위무사들이 낙랑군 유헌의 작은 기를 들고 서있다.
파오에서, 호곡이 성난 얼굴로 나온다. 그 뒤를 따라 나오는 오부귀.
호곡 : (두리번) 이런, 제길. 폐하 봉위 삼십주년 축하 하루 왔다길래, 일껏 국경까지나 마중 왔더니.
코빼기도 안보이구 뭐하잔 게야? 무휼이 똘마니 놈들은.
오부귀 : 태부! (고구려 호위무사에게) 너희 고구려 좌보, 을두지. 남부사자 추발소. 두 사신은 어디 갔는가?
씬28. 동, 은포관문 일각
파오 뒤쪽 멀리, 을두지와 추발소가 하늘을 보고 있다. 매 한 마리가 까마득한 중천을 한 점으로 날아가고 있다.
을두지와 추발소, 시선 돌려 을두지의 손에 들린 천을 본다. 매의 발목에 묶여 있던 것으로, 숯으로 글자가 쓰여 있다.
(인서트) 王宏崔理兩人起兵
(자막) 王宏崔理兩人起兵 (왕굉, 최리 두 사람이 군사를 일으키다)
을두지 : 왕굉, 최리가 기어이...
추발소 : 이미 예견된 일 아닙니까. 여기서 돌아가야질 않겠습니까?
을두지 : 돌아가면 누가 우리 고구려에 춘궁기 넘길 식량을 주겠는가? 요동? 현도? 부여? (코웃음을 친다) 흐흥.
추발소 : 유헌 밖에 없겠습니까?
을두지 : (고개를 끄덕인다)
추발소 : 지금부터 낙랑군 쌀은 군량미입니다. 왕굉·최리와 전쟁을 해야하는데,
군사들 먹일 쌀을 내놓겠습니까? .. 유헌이 바보는 아닙니다.
을두지 : 탐욕이·오만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걸세. 유헌은 오만하고 탐욕한 왕. 추발소 자네가 그에게 식량을 받아오게.
추발소 : 좌보께서는..?
을두지 : (멀리 관문 쪽을 보며) 바로 폐하께 돌아가야지.
씬29. 낙랑군 은포관문, 파오 안
고구려 삼족오 휘장(徽章,패넌트 형태)이 중앙 허공에 걸려 있고.
흙바닥에, 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화로에 불 피운 숯불 담겨져 있고.
호위무사1, 마지막으로 추발소의 자기잔(250cc정도)에 포량주를 따른다.
을두지와 추발소, 호곡과 오부귀 의자에서 일어난다.
네 사람, 잔을 들어 단숨에 마시고 바닥에 힘껏 내동댕이쳐 잔을 요란하게 깨고, 의자에 앉는다.
호곡 : 커어~좋다! (입가에 묻은 술을 닦고) 빈속에 독한 거 한잔 들어가니 목구녕이 찌릿찌릿한 게, 뱃속에서 번개를 치네.
추발소 : (미소) 낙랑군 대왕마마 봉위 삼십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오부귀 : 인사는 직접 대전에서 폐할 배알하고 드리시오.
을두지 : .. (인상을 찌푸린다)
호곡 : 고구려 좌보는 왜 그러오? 아까부터 인상이나 퍽퍽 쓰고.
을두지 : 물을 갈아 먹었더니.. 행자설리(行者泄痢)가 났군요.
오부귀 : 저런, 괴롭겠소. 백출을 달여 먹어야 하오. 서둘러 궁으로 갑시다.
을두지 : 으음.. (인상을 찌푸린다) 아무래도 국내성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말 안되는 결례인줄 압니다만..이대로는..으음.. (배를 움켜잡는다)
호곡 : (오부귀에게) 폐하 앞에서 구린 변 냄새 풍기는 거 보다야..
(을두지에게) 거, 고구려 좌보. 시두·때두 못가리는 똥구멍이오~ 흐흐~~
씬30. 낙랑군, 은포관문 앞 들판
을두지,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다. 그 뒤로, 호위무사 두 명만이 말 타고 따른다.
씬31. 낙랑성, 외곽 들녘
왕굉과 최리, 말에 군사들을 지휘하며 앞서고 있다.
왕굉의 옆에는 도찰,부달을 비롯한 그의 가신들이, 최리의 곁에는 류지,하호개와 마조가 말 위에 올라 있다.
도찰, 저쪽 떨어져 있는 최리를 보며.
도찰 : (왕굉에게) 지금은 장군이 최리에게 한 발 뒤졌습니다.
왕굉 : 당장은 유헌부터 생각하자. 토끼몰이가 끝나면.. 최리는 그때.. 흠.. 어쨌든 내 동생 자실이 남편이니.. 골 아프군.
씬32. 청해헌, 왕자실의 처소
왕자실, “제발 한 입이라두 물어라.. 응?” 하면서 라희를 안고 젖을 물리고 있다.
문 열리고, 유모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둥둥 걷어붙인 채 들어온다.
왕자실 : (옷 추스르며, 마음이 급한) 짐은 다 쌌느냐?
유모 : 워낙 많아.. 소가 열 마리라도 부족합니다.
왕자실 : 누가 집을 통째 들고 가자더냐!! 말 세 마리, 수레 하나다! 거기 실을 만큼만 꾸리라니!
유모 : 왜 갑자기 월해청원으루 가시는지, 다들 궁금해 합니다.
왕자실 : 네 년들이 그걸 알아 뭐하느냐! 당장 나가 짐이나 꾸리거라. (흘긴다)
유모, 절하고 나간다. 라희, 칭얼거린다.
왕자실 : (라희를 보며) 라희야·라희야. 이러지 마라. 네 아버지, 군사 몰고 오는 걸 유헌이 알기 전에 국경 넘어야 한다.
한시가 급한데 젖도 안물고 이러면 어쩌느냐.
라희 : .. (칭얼거리는)
왕자실 : 후우.. (한숨) 국경 넘을 가짜 패는 또 어찌 구한다.. (미간 찌푸리는)
씬33. 청해헌, 모하소의 침소
모하소, 잠들어 있다. 한쪽 불 피운 화로에 약탕관이 얹혀 있고, 동고비 쪼그리고 앉아 약을 달이고 있다.
모하소, 꿈을 꾼다.
(플래시) 자명이 일품과 함께 삿갓배에 실려 떠내려가는.
모하소 : 아가!! 자명아!! (벌떡 일어나 앉는다)
동고비, 모하소의 침상으로 다가온다.
동고비 : 또.. 애기씨 꿈을..? (의자에 앉는)
모하소 : 평생 그러겠지.
동고비 : 대부인 마님.. (손을 잡아준다)
모하소 : 자명이 꿈을 꾸어 힘든 것이, 꿈에 조차 볼 수 없는 것 보다 낳아. 그래, 열수강 머구리들에게는 알아 봤니?
동고비 : 애기씨두·삿갓배두 보지 못했답니다. 강바닥까지 샅샅이 훑었는데..
모하소 : 그래. 그것도 찾았다는 것 보다 낫다.. 아직 살아 있다 희망 둘 수 있으니.. (아프게 미소 짓는)
씬34. 낙랑군, 시장거리 국수집
치소, 저놈이(猪놈)와 마주앉았다. 저놈이 국수 한 그릇을 놓고 아구아구 먹고 있는.
저놈 : 성안서 맨날 이러구 맛있는 것만 먹어, 얼굴이 뽀샤시 한가?
치소 :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일이 어찌 됐는지나 말해요.
저놈 : 삿갓배 뒤집어엎었고. 애들 숨통 확실히 끊었고. 둘 다, 내 손으로 강물에 던져 넣었네.
치소 : .. 천둥번개 요란했는데.. (못미더운 시선)
저놈 : 열수강이 내 손바닥 안에 있는데. 그깐 천둥번개가 뭐라구.
치소 : .. (보다) 수고 했어요. (일어난다)
저놈 : (치소의 손을 잡는다) 벌써 가오?
치소 : (다른 손으로 저놈을 겨드랑이를 꼬집어 비틀며) 먹던 거나 얼른 처먹고 강바닥으루 가시지!
치소, 식탁 위에 오수전 하나를 던져주고 입구 쪽으로.
씬35. 청해헌, 모하소의 침소
모하소, 동고비가 건네준 약사발을 들고 마신다.
동고비, 모하소의 입에 대추를 하나 넣어주고 빈 사발 받다가.
동고비 : 아!! (생각난)
모하소 : 왜?
동고비 : 주인 나으리께서, 저물기 전에 드리라고 서찰을 남기셨어요.
모하소 : 그래?
동고비, 화장대를 열고 비단봉투를 꺼내 모하소에게 건넨다.
모하소, 비단봉투를 꺼내면 흰비단에 쓰인 최리의 편지가 있다. 모하소 펼쳐 본다.
(인서트) 최리의 편지
최리/(소리) : 모하소야 이 글을 보는 즉시 청해헌을 떠나거라.
너와 식솔들을 미리 옮겨주지 못하는 것은, 유헌이 눈치 채면 거사를 성사시키기 어려워서다.
씬36. 낙랑성, 외곽 들녘
최리와 왕굉, 탁자를 놓고 작전을 짜고 있다. 군사들 좀 떨어져서 도열해 있고.
탁자 위에는 양피지에 낙랑외성과 낙랑내성, 궁궐이 그려져 있다.
왕굉, 단도로 짚어가며 최리와 함께 이야기 나눈다.
“유헌이부터 들이쳐야 해(왕굉)/ 넓게 그물을 쳐야 합니다. 우리가 이리 궁으로(궁궐을 짚으며) 들어가면,
유헌은 북으로 빠져 요동군으로 피합니다. 왕조의 군사가 합류하기까지 전면전은 안됩니다(최리)”
최리, 잠시 군사들을 돌아본다.
최리/(소리) : 무슨 일이 있어도 월해청원으로 가라. 거사 일어난 것을 알면, 너희를 잡고자 유헌이 국경관문을 닫을 테니
지금 지니고 있는 패를 쓰면 안된다.
씬37. 청해헌, 모하소의 침소
모하소, 편지를 읽고 있다.
모하소 : 살고 죽음은 하늘에 뜻이나.. 살기 위해 마음을 다해야 한다.
최리/(소리) : 모하소야, 내, 살아 다시 너를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모하소 : 라희를 부탁한다..
모하소, 편지를 접어 무릎에 놓는데 손길이 허탈하다.
씬38. 낙랑군, 청해헌 앞
자묵, 말을 달려온다. 말에서 내려 청해헌 현판을 바라보는 자묵.
(인서트) 淸海軒
(자막) 낙랑성 청해헌, 최리의 저택
자묵 : ..
치소/(소리) : 태사령 어른 아니시옵니까?
자묵, 돌아보면 외출했다 돌아오는 치소다.
씬39. 청해헌, 마당
왕자실, 짐 꾸리는 일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치소, 다가온다.
치소 : 중부인 마님.
왕자실 : (본다) 왜 이리 늦느냐!
씬40. 청해헌, 후원 일각
왕자실과 치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치소 : 일품이구, 자명애기씨구 확실히 끝을 봤답니다.
왕자실 : .. 들어가 라희 옷이나 챙겨라. (돌아서는)
치소 : 마님.
왕자실 : 또 왜?
치소 : 밖에 태사령 어르신이.. 마님을 뵙고 싶답니다.
왕자실 : (놀라) 자묵이!!
씬41. 청해헌, 최리의 서재
왕자실, 도도한 표정으로 서있다. 자묵, 그런 왕자실을 바라본다.
왕자실 : 이곳을 다시 찾을 일은 없다 생각했는데..
자묵 : 앉아도 되겠습니까? 말을 탔더니 다리가.. (앉으려)
왕자실 : 여긴 내 남편, 최리장군 서재에요. 내실에 들일 수 없어 이리 불렀지만, 앉으라 허락진 않겠어요.
자묵 : 후.. (웃고) 부귀와 영화를 같이 나누자더니요..
왕자실 : 재물에 관심없다 하지 않았던가요..?
자묵 : (고개 끄덕이고) 그대를 한 번 안아봐도 되겠소..
왕자실 : !!
자묵 : 그저 당신을 한 번 더.. 품에 안아 보고 싶어 왔소.
왕자실 : 호호~~ (자지러지게 웃고, 자리에 앉는다) 오십이면 반 넘어 흙에 묻혀 썩어가는 나이라더니 망하나 못다스렸군.
(놀리는) 태사령이란 직함이 부끄러워 어쩔꼬?
자묵 : 칠십종심소욕 불유구라 했지요. 공자가 칠십에 비로소 이룬 것을.. 나 같은 범인이 어찌 오십에 욕망을 다스리겠소. (웃는)
왕자실 : 오십이든, 칠십이든!! 나, 왕자실이 한낱 별이나 보고, 점이나 치는 태사령 따위에게 희롱 당할 여자로 보이는가!!
자묵 : ..
왕자실 : 그만 돌아가시게.
자묵 : 아랫것들이 짐을 꾸리더군요. 월해청원으로 가십니까?
왕자실 : !!
자묵 : 그리 놀라지 말아요. 아직 유헌대왕은 모르시니.. 한낱 별이지만. 올려다보니 거기에 부인이 보이더군요.
왕자실 : 지금 날 협박하나요?
자묵 : 협박이라면, 한 번 더 이 몸을 안아 주겠소?
왕자실 : 운명을 비켜갈 자 아무도 없댔지요? 내 운명은 일국에 왕비요!! 라희가 왕위에 오르는 날, 모후가 되는 것!
감히, 추한 소리로 날 욕보이는가!
자묵 : .. (씁쓸히 웃는다)
왕자실 : 썩 나가지 못할까!!
자묵, 소매춤에서 옥으로 만든 패를 꺼내 탁자 위에 놓는다.
왕자실, 놀라서 들고 본다. 옥패에 황금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자묵 : 어느 국경관문이든 넘을 수 있는 태사령 패요.. 부인께 드리지요.
왕자실, 얼굴에 화색을 띄고 옥패를 보다 탁자에 내려놓고 일어난다.
왕자실 : 고맙습니다, 태사령 어른. 빚은 졌으나, 갚진 않겠습니다. (양소매를 맞잡고 이마까지 높여 깊이 읍한다)
자묵 : .. (답례로 양소매를 잡고 가볍게 읍한다)
왕자실 : 살펴가세요.
자묵, 문가로 가다 왕자실을 돌아본다. 그의 시선에 아픔 반·동경 반의 쓸쓸함이 묻어있다.
왕자실 : (냉랭한) 살펴가라 했습니다.
자묵 : 운명은 혼자 만에 것이 아닙니다.
왕자실 : (본다)
자묵 : 옷감을 짜듯, 그대와 얽힌 사람들 저마다의 욕망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얽히고설켜 만들어 내는 것.
그대 마음대로, 운명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라오.
왕자실 : 내게.. 왕후의 운명 말고 또 다른 것이 있나요?
자묵 : .. (미소 짓는다)
자묵, 문 열고 나간다.
씬42. 청해헌, 마당 일각
모하소, 동고비와 함께 시비1, 2를 비롯한 하인들이 짐 싸는 것을 보고 있다. 그 옆에 치소.
동고비 : 중부인 마님이 시키셨다?
치소 : 예.
동고비 : (모하소에게) 어떻게 마님 허락두 없이 이럴 수가 있나요?
모하소 : 중부인은 원래 영민한 사람이라..
동고비 : 마님!
모하소 : 일이 덜어져 한결 수월치 않느냐. 가자.
모하소, 동고비를 데리고 돌아서는데 자묵이 걸어온다.
자묵, 모하소를 잠시 보다 읍한다.
모하소는 누군지도 모르고 따라 읍한다.
자묵 : .. (돌아선다)
모하소 : (치소에게) 누구시냐?
치소 : 궁에서 나온 중부인 마님 손님이십니다.
모하소 : 누구시길래?
동고비 : (자묵의 걸음걸이를 보다) 아! 태사령입니다. 태사령 자묵.. 별보고 헛소리해서 자명 애기씰 그렇게 만든 인간요..
모하소 : ..
모하소, 자묵의 뒷모습을 착잡한 시선으로 다시 한번 본다.
(인서트) 4부 씬33
달개비 : 마님! 중부인 마님이요! 태사령한테 몸을 던지며(하는데)
왕자실 : 네 이년! 감히 천한 주둥이루 뭐라 날 모략하는 거냐!!
왕자실, 달개비의 등에 비수를 꽂는다.
모하소 : (동고비에게) 별이 떨어졌다는 데가 어디냐?
씬43. 청해헌, 최리의 서재
왕자실, 치소의 보고를 받았다.
왕자실 : (벌떡 일어나며) 모하소가 별 떨어진 곳을 찾아가!!
치소 : 예, 마님!!
씬44. 청해헌, 뒷산 언덕 일각
왕자실, “형님!!! 형님!!!”하면서 달려온다.
모하소, 동고비와 자리에 앉아 불 탄 연의 잔해를 만지고 있다.
모하소 : .. (왕자실을 본다)
왕자실 : !!
모하소 : (일어나, 타다 만 연의 잔해와 재를 집어 들고, 왕자실에게 내보이며) 이게.. 별이던가?
내 딸 자명일.. 강에 던지게 만든 그 별인가..
왕자실 : 형님..
모하소 : (서러운 눈에 눈물이 흐른다) 자실이.. 말해보게. 이게 자네 산호뒤꽂이에 가슴을 찔린.. 내 딸 자명이에 별인가..?
왕자실 : ..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어지러운 눈빛이다)
씬45. 청해헌, 왕자실의 침소 앞
모하소, 라희를 안고 나온다. 왕자실, “라희야!!” 하며 따라 나온다.
씬46. 청해헌, 후원 연못
모하소, 라희를 안고 연못 앞에 선다. 왕자실, 따라 왔다.
왕자실 : 라희야!!
모하소 : 여기가 열수였음 좋을 텐데.. 그 강물이 얼마나 뼈 시리게 차던지..
왕자실 : (무릎을 꿇는다) 용서하세요..
모하소 : (왕자실을 슬프게 본다) 내가 어떻게 아우님을 용서하겠는가..자실이, 자넨 물론이고, 라희도 용서할수 없지. 안그렇겠나?
왕자실 : 형님.
모하소 : 절대 용서치 않아!!
모하소, 자지러지게 우는 라희를 번쩍 들어 연못에 던지려 한다.
왕자실, 벌떡 일어나 “라희야!!” 소리친다.
씬47. 산둥반도, 목지둔(目支屯) 바닷가 일각 (저녁)
(자막) 중국 산둥반도, 목지둔(目支屯) 바닷가
차차숭과 미추, 아이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모래밭에 통나무를 박아 놓고 그 위에 아이들을 하나하나 세웠다.
외발로 균형잡기, 두 손으로 물구나무 서 다리찢기, 몸을 휘어 두 손과 두 발 위에 촛대 올리기 등을 시킨다.
미추 : (어린 소소의 다리를 찢으며) 소소 야 이 기집애야! 니 다리가 오리다리냐? 사람 다리냐? 그걸 찢는다구 찢니? 확 찢어!!
미추, 힘주어 소소의 다리를 찢는다. 소소, “아야!!” 소리치며 통나무에서 떨어진다.
미추 : 아우, 요즘 어린것들은 왜 이렇게 몸이 뻣뻣해, 뻣뻣하길.
나 때만 해두, 다리 찢는 거 정돈 오징어포 찢듯이 쫘악쫙! 찢었는데.
차차숭 : 너무 잘 멕여 그런 거 아냐? (미추 허벅지 안쪽을 더듬으며) 여기 살이 붙어서?
미추 : (손 털어내며 싫지 않은) 더듬긴~ 어디서 더듬어~
차차숭 : 이봐, 미추. 당신두 이제 살쪄서 다리찢기 힘들겠는데?
미추 : 차차숭!! 야, 이 인간아! 입만 열믄 어째 상처 주는 소리 밖에 안해!!
차차숭 : 애들, 그만 멕여. 하두 처먹어서 몸이 굳는 게야. 이래가지구 공연이나 하겠어?
(애 하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받쳐보며) 에잇! 생기다 말어가지구..
미추 : 그러게. 몸이 안되믄 얼굴이 되든가. 얼굴이 안됨 몸이라두 되든가..
차차숭 : 애들 싹- 물갈이해야 되지 않겄어?
미추 : 돈 있어?
차차숭 : (고개 젖는다) 없지.
미추 : ..헤휴.. (한숨)
차차숭 : ..후우.. (한숨)
씬48. 목지둔 바닷가, 다른곳 (저녁)
물결에 삿갓배가 떠밀려 온다. 배 여기저기가 부서졌다.
그 안에 자명과 일품, 숨이 끊어진듯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다.
씬49. 청해헌, 후원 연못가
모하소, 라희를 안고 연못 쪽으로 빠르게 걸어온다. 새파랗게 질린 왕자실, 쫓아온다.
왕자실 : 라희야!! 라희야!!
모하소 : (연못 앞에 선다)
왕자실 : 아일 이리 주세요.. (손을 내민다) 형님!
모하소 : (연못을 바라본다, 혼잣말처럼) 여기가 열수였음 좋을 텐데.. 그 강물이 얼마나 뼈 시리게 차던지..
(천천히 고개 돌려 왕자실을 본다) 칼에만 베이는 것이 아니구나.. 강물에 베일 수도 있구나.
왕자실 : ..
모하소 : 물살에 발목을 베이고, 허리를 베이고.. 이상키도 하지. 베인 자린 멀쩡한데 왜..가슴에서 피가 흐르나 몰라.
왕자실 : (무릎을 꿇는다) 용서하세요...
모하소 : 자네가 나라면, 날 용서할 수 있을까?
왕자실 : 자명일 죽인 건 내가 아니에요! (독해지는) 대체 형님은 뭐하셨나요?
모하소 : 뭐라구?
왕자실 : 형님이 한 일이라곤, 고작 그이 다리에 매달려, 울구·불구 자명일 살려달라 졸라댄 거 밖에 더 있나요?
난 적어도 라희를 살리기 위해. (차마 자기 입으로 말을 못잇는)
모하소 : 왜? 자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차마 말 못하겠나?
왕자실 : .. (노려본다)
모하소 : 주인 있는 몸으루 다른 사내에게 몸을 던져 자식을 구한 장한 에미라고 말하지 그러나?
왕자실 : (벌떡 일어난다) 그게 어때서요! 형님이라믄 할 수 있었겠어요!!
내가 설마, 오십줄에 들어선 늙은 사내가 좋아서, 자묵에게 몸을 던졌겠어요!
모하소 : (본다)
왕자실 : 형님은 왜 못했죠? 착해서? 머리가 안돌아가서?
자명일 살리려면 태사령 자묵에게 몸을 던지면 된다, 알려주면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모하소 : 아니, 난 못하겠지.
왕자실 : 그래요, 형님은 그만한 용기가 없어요!! 좌중랑장 최리에 고상한 아내 모하소는 딸을 살릴 수 있다 해도,
결코 다른 남잘 안을 순 없죠. 그러니 날 원망 말아요!
모하소 : (라희를 본다) 예쁘구나. 네 어머닐 꼭 빼닮았어. 너도 크면, 네 에미처럼 독하고 모진 계집이 되겠지.
왕자실 : (한걸음 다가간다. 두려운) 지금.. 뭐하는 거예요?
모하소 : (싸늘한) 자넨 물론이고, 이 아이도 결코 용서 할 수 없어!!
모하소, 포대에서 라희를 빼든다. 포대가 바닥으로 흘러 떨어진다.
왕자실, “형님!!” 부르는 것과 동시에 모하소, 라희를 연못에 던진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라희 연못에 떨어지며 물이 사방으로 튄다.
왕자실 : 라희야!!
왕자실, 허둥지둥 연못 안으로 들어간다. 왕자실, 라희에게로 한걸음 다가가 아이를 건지려.
모하소 : 라희 어미로 살던가! 그이 아내로 살던가 하나만 택하게!
왕자실 : (흠칫, 손을 멈추고 모하소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