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지죽도 주상절리 및 활개바위
탄성이 절로 나오는 비경(秘景) 중 비경
와우, 여기 우리나라 맞나요?
지난 5월 3일-4일, 필자가 몸담고 있는 산악회 회원들과 무박으로 서울에서 고흥까지 5시간 여를 달려 지죽도라는 섬에 다녀왔다. 고흥반도 가는 길은 참으로 멀고도 멀다. 28인승 버스로 전날 밤 12시에 서울을 출발, 다음날 아침 5시 20분경에 지죽도 지호마을에 도착했다.
지죽도는 섬이지만 지금은 고흥반도와 다리로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 최남단 해남 갈두항 지역을 '땅끝마을'이라 부르지만, 고흥반도 역시 한반도 땅끝이다. 지죽도 마을 지번도 '땅끝로 ****번지'로 표시되어 있다.
지죽도에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지로 지정된 '금강죽봉(金剛竹峰)'이라는 어마어마한 주상절리 절벽이 있다. 지죽도는 고흥군 도화면 남단에 있는 섬이다. 금강죽봉은 지죽도 태산(또는 남금산)에 있는 주상절리 해벽인데, 예부터 바다쪽에서 보면 마치 바위가 왕 대나무처럼 솟아 있어 그 일대를 ‘금강죽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금강죽봉은 수직절벽 높이가 무려 100m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흰색의 응회암이 발달한 주상절리로 지질학적 특성이 두드러진 곳이다. 무등산 주상절리대, 제주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 등 국내의 대부분의 주상절리 지형이 현무암에서 발달하여 검정색을 띄는 것이 일반적이나 고흥 지죽도 금강죽봉의 경우 응회암에서 발달하여 전체적으로 흰색빛을 띈다. 문화재청이 2021년 제5차 천연기념물분과위원회 회의를 거쳐 2021년 6월 9일 ‘고흥 지죽도 금강죽봉’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지로 지정 확정 고시했다.
바다와 맞닿은 부분에 해식동굴, 바위경사지인 해식애와 기암괴석들, 산 능선부의 억새군락지,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곰솔) 등 식생경관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양한 다도해 경관이 함께 연출돼 경관적 가치도 뛰어나다. 주변에 소록도와 나로도, 거금도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동서쪽에는 대염도, 죽도 등이 있고, 남서쪽으로 약 7km 해상에 시산도(矢山島)가 있다. 형태는 누워 있는 소의 모습을 닮았으며 중앙부가 만입(灣入)되었다. 암석해안이 대부분이고 남쪽해안에는 10m 가량의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하였고, 북쪽해안에 지죽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기지인 발포진과 이순신장군 사당인 충무사도 위치하고 있는 권역이다.
그런데 이곳은 워낙 위험해서 일반인 출입금지지역으로 되어 있다. 마을에 들어서자 마자 여기저기 ‘금강죽봉·태산·활개바위 출입금지’ 경고문이 붙어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지인데 출입금지라니 이해가 안된다. 코스를 좀더 정비하고 안전장치를 해서 누구나 보고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명승인데 정말 아쉬웠다. 암튼 전문가의 안내를 받아 다녀왔다.
섬 안에 있는 호숫가에 지초(支草)라는 풀이 무성하여 지초의 ‘지(支)’자와 호수 ‘호(湖)’자를 따서 ‘지호도(支湖島)’라고 부르다가 북서쪽에 있는 ‘죽도(竹島)’의 머리글짜를 따서 ‘지죽도’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지죽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태산이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실제로는 해발 203m정도의 그리 높지않은 산이다. 금강죽봉 및 주변 섬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태산을 오르는 길은 두 코스가 있다. 지죽마을 중앙로를 지나 마을을 조금 벗어나면 두갈래로 길이 나뉜다. 좌측은 주등산로, 우측길은 ‘석굴’로 넘어가는 길이다. 석굴 가는 완만한 고갯길을 넘으면 바로 좌측 묘지길로 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묘지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숲길이 희미하지만 이 길로도 태산 정상을 오를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좌측 주등산로로 태산 정상 및 금강죽봉 전망바위에 오른 후 석굴 방향으로 내려왔다.
태산 오르는 등산로는 별로 어렵지는 않다. 마을 중앙의 ‘지호정’이라는 정자에서 약 7분 정도 완만한 비탈길을 오르면 등산로 입구 계단, 5분 정도 더 오르면 삼거리갈림길을 만난다. 우측 숲길로 방향을 잡고 20분 정도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가면 조망이 확 트인 마당바위에 이른다.
조금 일찍 올랐다면 이곳에서 멋진 일출을 맞을 수 있었을 텐데 오늘은 시간이 약간 지나 해는 이미 수평선을 넘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보여준 여명은 참 아름다웠다.
이곳이 주 조망터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다. 다시 ‘태산길’이라고 부르는 숲길을 10여 분 더 가야 금강죽봉 및 주변섬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터에 이른다. 와, 환상이다.
바다를 향해 깎아지른 암벽 바로 앞에는 ‘촛대바위’ 또는 ‘죽순바위’라고 불리워지는 기암봉이 우뚝 서 있고, 아슬아슬한 바위절벽 난간 곳곳에 서면 어마어마한 ‘금강죽봉’의 위용에 말을 잃는다. 수직절벽의 높이가 무려 100m 라 하니 아래를 내려다보기가 어지러울 정도다.
함께 한 산우들은 이곳저곳에서 인증샷 남기기에 바쁘다. 송곳바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금강죽봉 절벽 난간에서도 조심스럽게 카메라 한 컷을 기다린다. 또, 조금만 몸의 균형을 잃으면 까마득한 바다 속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마당바위 절벽에 걸터앉아 인증샷을 찍는다. 이곳에는 아무런 추락방지시설이나 보호펜스 등이 없다. 조그만 실수나 방심도 용납되지않는다. 그런데도 젊은 산우들은 과감히 수천길 바위절벽을 나비처럼 즐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필자가 오히려 오금이 저릴 정도다. 역시 젊음은 겁이 없다.
금강죽봉 및 촛대바위 조망을 즐기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금강죽봉 등산은 산행시간이 의미가 없다. 조망터에서 얼마나 오래 경관을 즐기느냐에 달려 있다. 이곳에서 거의 1시간 이상 보낸 것 같다. 이제 하산이다.
우리들 일행을 이끌고 있는 대장이 숲길을 연다. 울창한 원시림을 헤치고 나가니 희미하게 길이 보인다. 올라왔던 루트가 아닌데 어디로 내려가는 것일까? ‘석굴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아, 이곳으로 내려가는 거구나. 40분 남짓 아기자기한 숲길을 내려가니 ‘석굴’이 있다는 바위해안에 이른다.
이 석굴은 만조시에는 바닷물 속에 잠겨 있다가 간조가 되면 동굴이 열리고 그곳에서 약수가 펄펄 나오는 곳이다. 동굴이 그리 좁지도 않다. 두 사람이 들어가 있어도 여유가 있다. EBS 한국기행(20,8.14) 및 KBS생생정보(21.5.18) 등에서 본 적이 있다. 바닷 속에 잠겨 있던 동굴인데도 그 동굴에서 흘러내리는 약수는 염분이 전혀 없는 민물이라고 한다.
*EBS한국기행 영상에서 캡처
동네사람들은 바닷물이 빠지면 오토바이나 미니차에 큰 물통을 여러개 가져 와 약수를 담아갈 정도로 수량(水量)도 많다. “옛날 겨울에 마을사람들이 물이 없어서 밥을 못해 먹었어요. 그때 이 물을 가져다 밥해 먹고 마시고 그랬지요” 마을 아주머니의 말이다.
지죽도에서 가까운 곳에는 소위 '활개바위'라는 절경도 있다. 접근하는 루트가 만만하지않다. 위험한 바위해안을 지나 깎아지른 수직비탈을 로프를 타고 오르내려야 하는 코스다. 암릉(릿지)등반에 익숙하지않은 사람들은 이 방법을 택하지않고 낚싯배를 빌려 바다에서 직접 '활개바위'에 접근할 수도 있다. 정말 비경(祕景) 중 비경이다. 석굴 옆에서 아침 겸 점심식사 후 다시 마을로 돌아와 다음 일정인 활개바위 해안으로 향했다.
활개바위는 지죽도에서 나와 도화면 내촌마을이라는 곳에서 들어갈 수 있다. 지죽마을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갔을까? ‘내촌마을’이라고 쓰여진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부터 20분 정도 완만한 숲길을 넘어가면 바위해안에 이른다. 수백미터 바위해안을 돌아가야 활개바위를 만날 수 있다.
바위가 날카롭고 거칠어 조심스럽다. 주민 한 사람을 만났다. 바닷물이 빠지면 바위해안길을 돌면 활개바위 입구에 접근할 수 있지만 약간 위험하니 중간에 산길을 타기를 권한다. 우리 일행을 안내하고 있는 대장도 숲길 쪽을 택한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비탈을 로프를 잡고 내려가면 활개바위 입구 협곡이다. 협곡 자체도 비경이다.
웅장한 바위절벽에는 두세개의 크고작은 석문을 만난다.
석문을 배경으로 몇컷 담아본다.
활개바위에 갈려면 반드시 물 때 확인이 필수다. 간조시간에 바닷물이 완전히 빠져야 활개바위에 접근할 수 있다. 협곡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장면을 확인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산우들은 협곡 바위절벽능선을 곡예하듯 오르내린다. 보기에 아슬아슬하지만 당사자들은 그리 위험하지않다고 여기는 듯 하다. 바위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들어올리기도 하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드디어 바닷물이 거의 빠진 듯, 산우들이 활개바위 쪽으로 이동한다.
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석문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다. 정말 신비스럽다. 조물주가 만들어낸 위대한 예술작품이다. 활개바위 높이는 약 15m로, 마치 석문처럼 바위 가운데가 뻥 뚫려있는 상태로 바닷물이 드나드는 석문의 폭은 3m 정도라고 한다. 작은 땅 한반도에도 이런 절경이 있다니 놀라지않을 수 없다. 필자의 사진을 본 지인들은 “와우, 여기 우리나라 맞나요?‘라고 의아해 한다. 틀림없는 한반도 최남단 해안절경이다. 활개바위 정상 바위능선을 타는 산우도 보인다. 그냥 활개바위 자체 만 카메라에 담는 것 보다는 누군가 사람이 있어야 금상첨화다. 특히 활개바위 바위능선을 타는 암벽등반가가 있다면 최고다. 우리 일행 중에는 암벽등반 경험이 많은 산우들도 있어 그런 장면도 담을 수 있었다.
활개바위 정면에서 한참동안 아름다운 경관을 즐긴 후 다시 처음 진입했던 수직로프를 타고 좌측산길로 이동한다. 활개바위 뒷쪽해안으로 가기 위해서다. 뒷쪽해안으로 가는 루트는 더 험하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거의 70-80m 길이는 됨직한 로프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우리들을 이끌고 있는 대장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혹시 단 한 사람이라도 실수로 사고라도 날까봐 조마조마하다. 거의 암벽등반 수준이다. 다행히 아무런 사고도 없이 무사히 활개바위 후면해안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부터는 배로 이동할 예정이다. 10톤 규모의 배가 들어온다.
활개바위 주변을 한바퀴 돈 후 풍남항 쪽으로 간다. 도중에 거북섬도 보이고 지죽도 해안의 다양한 기암절벽들도 지나간다. 배가 이동함에 따라 활개바위 우측의 남근바위가 서서히 활개바위 석문으로 들어가는 형상을 보인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배 이동방향이 달랐는지 그런 형상은 볼 수 없었다.
소위 ’이빨바위‘ 또는 ' 충치바위'라고 부르는 암벽해안에서는 배를 정박시키고 우리 일행을 바위해안에 내려주기도 한다. 금강죽봉의 위용은 바다에서 바라보면 더욱 실감이 난다. 마치 왕대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솟아오른 듯 어마어마하다.
배가 암벽해안에 접근할 때 움푹 들어간 암벽을 자세히 보니 정말 충치가 있는 이빨처럼 치아가 검고 흉하다.
고흥 지죽도 금강죽봉과 활개바위 트레킹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멋진 해안절경들은 왜 남해 해안에 특히 많이 분포되어 있을까? 거제도 해금강, 사량도 지리(망)산, 수우도 은박산 해골바위, 소매물도 등대섬, 해남 주작산이나 달마산 및 두륜산, 남해도 금산, 욕지도 및 연화도, 무인도인 세존도 바위섬 및 좌사리도, 노르웨이의 세계적인 수직절벽 프레이케스톨렌을 닮은 갈도의 수직절벽 등등. 지죽도에서 멀지않은 금당도는 어떤가? 금당도 역시 수억년 동안 파도와 풍우에 씻겨 신비스러운 형상을 한 기암절벽이 즐비하여 해금강을 방불케 하는 해안절경으로 유명하다.
잠시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혹시 조물주께서 한반도를 만들다가 마지막에 남은 흙과 바위들을 주물럭거려 남해안에 이들 기암벽같은 예술작품들을 빚어놓은 것은 아닐까? (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