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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ea - 엘리트 글쓰기 논술 교실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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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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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序 言 Ⅱ. 戰後 日本 經濟發展의 特徵 Ⅲ. 日本經濟의 構造調整 Ⅳ. 円貨換率變動의 發展過程과 円高構造的 影響分析 1. 円貨換率變動의 發展過程 2. 円高構造的 影響에 따른 海外直接投資의 擴大 Ⅴ. 結 論 |
Ⅰ. 序 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이후부터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현재 아시아에서의 유일한 선진국이며 세계최대의 경제대국으로 향하고 있다.
이같은 일본의 지속적인 경제발전 속에서 일본경제는 대폭적인 무역흑자를 동반함에 따른 대외적인 경제마찰과 함께 엔고현상이 나타나면서 결국 이 엔고현상은 1985년 플라자협정 이후 급속한 상승이 지속되어 최근에는 일본경제의 구조적 변화하에서의 엔고를 활용한 새로운 해외직접투자의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전후 일본의 경제발전과정 속에서 1985년 이후의 엔고 구조적 영향에 따른 해외직접투자가 어떻게 확대되었는지 분석하여 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Ⅱ. 前後 日本經濟發展의 特徵
일본경제발전의 특징은 한마디로 정부주도형의 발전 모델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것은 가능한 단기간에 선진 「구미」의 경제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catch up, 즉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아래와 같은 일본의 경제발전과정에서 증명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전후 일본의 경제발전과정에 관해 되돌아보기로 하자.
우선 주목할만한 것은 통상산업정책을 통해 사후적인 비교우위데이타(RCA, Revealed Compartive Advantage)에서 보아 일본은 가장 성장률이 높은 商品郡을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으로 향해 수출한다는 구조의 실현에 성공했다는 것이다.1)
그것은 일본의 정부주도형의 발전모델이 시장기구에 의존하는 개인주의적 자유무역정책의 전형으로서의 영국에 비해 보다 단기간에 경제발전을 가능케 했다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경제발전에 있어서 비교우위 산업을 계속 육성해 간다는 것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일본의 산업정책이 민간에 있어서의 미숙한 시장조사, 비전을 정부의 지도력 하에서 공급해 갔던 것은 통산정책의 성과였다.
실제로 일본의 장기적 경제개발계획에 의해 이 통산정책을 실현해 갔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로 일본 고도성장기에 있어서의 경제발전의 특징을 검토해 보면 알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후 일본의 경제개발정책을 <표 1>에서 살펴보고 싶다.
<표 1>에 의하면 1956년 초기의 일본의 고도성장기에는 통산성 주도형의 경제개발정책에 의해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출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 당시(1956년)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경제개발계획을 시행했던 시기로서 그 의미는 크지만 당시 경제개발정책으로서는 일본경제의 부흥을 창출하기 위해 중점산업에 집중 투입한다고 하는 「傾斜生産方式」이 채택되었다. 이에 따라 산업합리화 정책과 기업합리화 촉진법에 의해 일본경제의 부흥과 자립에 필요한 개별산업의 보호, 육성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1950년대를 통해 일본은 산업정책만을 수행한 것은 아니고 일본 특유의 재정, 금융정책과 연계하여 경제개발정책을 행한 것에 특징이 있다.2)
이같은 경제개발정책에 힘입어 일본의 고도성장 제1기(1956~1965년)는 「神式景氣」, 「巖戶景氣」라고 특징지어지고 있다.3)
그 경제개발의 성장패턴으로서는 민간설비 주도형에 의한 설비의 확대화, 생산공정의 연속화, 자동화를 목표로 한 기술혁신적 투자 즉 자동차, 가전, 합성섬유 및 석유화학, 전자 등의 내구소비재산업이 그 축을 이루었다. 이는 전후 경제발전에 있어서 日本明治의 기본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부국강병을 위해 산업집약화 형태로 산업을 고도화시켜갔던 것을 의미한다.
이 당시의 일본의 경제발전은 선진외국기술의 도입에 의해 가능케 하는 이른바 구미제국으로의 catch up의 시기였다는데 특징이 있다.4)
이렇게 하여 일본은 무역, 외환의 자유화가 적극 진행되면서 1963년에는 IMF 8조국에 1964년에는 OECD에 가맹함으로써 실질적으로도 개방체제와 경제대국을 향한 토대구축이 형성되었고 그 이후(1966~70년대)에는 일본의 고도성장 제2기라고 일컬어지는 이자나기(いざなぎ)의 경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이 당시는 무역, 자본의 자유화 물결 속에서 수출을 축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고는 하지만 여기에는 금융조직이 큰 영향을 미쳤다.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10%를 넘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확장자금의 7할을 민간금융기관으로부터 공급한다고 하는 압도적인 은행의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더욱이 생산, 노동력에 있어 큰 부분을 점하고 있는 일본이 이 부문을 지탱하는 금융조직을 원만히 활용해 갔다는 것은 일본의 경제발전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를 통하여 일본은 제1, 제2기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고 또 이 고도성장에 따라 수출증가가 지속되면서 자본축적과 함께 외수, 내수 모두 급속히 진전되는 결과를 초래케 해 제2의 고도성장기(1966~70년대 초반)인 1968년에는 마침내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림 1>과 같이 무역 적자기조에서 흑자기조로 이행하고 특히 1980년대 이후부터는 무역흑자가 계속적으로 증가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은 이같은 경제확대와 무역흑자를 동반하게 된 배경으로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앞에서 지적한 일본의 독특한 산업정책5)이었지만, 일본경제발전에 있어 왕성한 기업가 정신에 의한 기술혁신과 일본인의 근면한 정신 그리고 관민협조체제도 빼놓을 수 없는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일본은 기술혁신을 동반하면서 정부와 민간기업의 협조 속에서 근면한 정신에 의해 선도산업을 우대하는 독특한 산업정책을 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결과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비약적인 수출증대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경제규모는 커졌다고는 하지만, 1980년대부터 문제는 경제발전의 코스트측면이다. 총체로서 일본의 경제규모가 증대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 분배의 공평을 결려하면 문제는 남는다. 성장의 극대화만으로는 선진국으로서의 경제발전이라고는 말할 수 없게 된다. 선진국의 초월과정을 종료한 경제는 늦든 빠르든 최대다수를 위한 성장정책을 요구받게 되는 것이다. 이 의미에서 볼 때 1985년 엔고의 시점에서 선진국의 초월과정을 일단 종료하고 경제의 구조과정을 활발히 진행시키는 새로운 경제발전의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표 1> 일본의 1955~1992년 [경제계획] 일람표
名 稱 |
策定內閣 |
期 間 |
內 容 |
經濟自立 5個年 計劃 |
鳩 山 |
1956~1960年 |
경제의 자립과 완전고용의 달성, 중화학공업화를 목표로 했다. 부흥기에서 다 음 단계를 목표한 계획이었다. |
新長期 經濟計劃 |
岩 |
1958~1962年 |
고도성장기 전기의 경제계획으로 민간자본축적의 증강과 중화학 공업화의 촉 진을 목적으로 했다. |
所得倍增計劃 |
池 田 |
1961~1970年 |
10년간으로 평균성장률 7.2%, GNP를 2배로 하려고 하는 계획으로 공공부문의 역할을 중시한 케인지안적인 경제정책과 경제계획으로서 매우 주목을 받았다 |
中期經濟計劃 |
佐 藤 |
1964~1968年 |
소득배증계획에 있어서의 고도경제성장의 왜곡을 시정하려고 한 경제계획으로 물가안정을 목적으로 했다. |
經濟社會 發展計劃 |
佐 藤 |
1967~1971年 |
균형이 가진 충실한 경제사회의 발전과 중점적인 자원배분과 안정적 성장의 확보를 목표로 했다. |
新經濟社會 發展計劃 |
佐 藤 |
1970~1975年 |
1970년대 전반의 경제계획으로서 사회보장의 충실, 사회자본 정비의 질적향상 을 목표했다. 이 정책은 성장정책에서 생활우선정책으로의 방향전환이라고 말 해졌지만, 이 때문에 도시의 세금을 농촌의 보조금으로 지출하는 패턴이 생겼 고 큰 정부로의 방향전환이 되었다. |
經濟社會 基本計劃 |
田 中 |
1973~1977年 |
성장목표를 9.4%에 둔 매우 적극적인 것이다. 그러나 석유위기 때문에 가능하 기 어렵게 되고 성장율은 3.8%로 목표를 크게 밑돌았다. 그 계획은 재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재정주도형의 경제운영을 시행, 사회자본배증, 간선교통 통신네트워크의 형성 등 혹은 [열도개조론]에 기초를 둠과 함께 국제협조의 추진달성을 꾀하였던 것이다. 이 계획은 이미 한 측면으로서 복지재정으로의 전환이 있고, 소화48년은 [복지원년]이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국민부담율의 상승을 필요로 하고, 한층 [큰 정부]으로의 이행을 촉진했다. |
75年代 前期 經濟計劃 |
三 本 |
1976~1980 (5個年) |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복지증진 |
新經濟社會 7個年 計劃 |
大 平 |
1979~1985 (7個年) |
지역사회의 균형발전과 내수지향 확대 |
80年代 經濟 社會 計劃 |
中會根 |
1983~1990 (8個年) |
개방된 시장의 형성과 세계공헌 |
新經濟計劃 |
竹 下 |
1988~1992 (5個年) |
내수시장과 고령화사회의 안정 및 국제화 촉진 |
자료: 八田莫二, 伊藤史朗共著, P.225 및 日本世界經濟白書, 各年度板에서 作成
<그림 1> 일․미의 무역수지 추이
IMF, IFS, 각 기호 및 山一證券, 統計總覽, 1995, 3 에서 작성
Ⅲ. 日本經濟의 構造調整
일본경제는 전장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1950~60년대에 걸쳐 輸出振興政策을 추진한 결과 國際收支制約을 타파하고 1960~1970年代의 고도성장을 실현시켰다. 특히 1970年代에는 두 번의 석유위기의 극복하에서 省에너지자원형으로의 산업조정을 통하여 기술집약산업의 진흥을 꾀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속에서 1980年代에 들어서고 나서의 일본경제는 국제수지의 구조적 흑자가 정착되고 이에 따른 무역마찰로 심각히 대두되면서 국제협조를 위한 경제구조의 조정이 중요한 정책과제가 되었다. 이를테면 1985년 프라자합의 이후의 급격한 엔고6)와 그 엔고의 배경에 있는 무역마찰은 내수규모의 팽창과 무역흑자축소를 위한 수입촉진정책을 가속화시켰다. 이 급격한 환율비율의 변동은 당연 일본경제의 구조조정을 가져오게 하는 하나의 큰 요인이 되었고 이에 따른 일본의 경제구조조정에 있어서의 內需指向策은 오로지 대외불균형을 균형형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國際協調型 經濟構造」에로의 이행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무역수지흑자의 축소는 당시의 「日本의 政策目標」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7)
<그림 1>에 의하면 일본은 지속적인 거액의 무역흑자를 동반하고 미국은 막대한 무역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일․미간의 무역마찰의 원인이 되고 이로 인해 수입촉진을 가져오게 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국내경제규모에 대한 수입규모는 1995년 현재 3200억달러로서 1985년 엔고 이후 상당히 증가되었다고는 하지만 미국 EC에 비하면 아직 낮기 때문에 일본의 수입촉진정책의 강화는 세계무역의 확대균형 및 발전도상국의 경제발전과 공업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가 있겠다.
즉 최근 급속한 경제발전을 지속하고 있는 아시아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 지역의 전통적인 수출시장이었던 미국이 거액의 무역적자로 인해 발전도상국 지역으로부터의 수입에도 제약을 받고 있는 이상, 흑자국인 일본은 발전도상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수출시장으로서 부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아시아지역의 경제발전의 결과는 강력한 경제동태를 계속 발휘하고 있는 일본의 무역구조의 존재와 상당히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일본의 세계무역에 있어서의 제품무역의 비율, 즉 80년대의 5%에서 88년에는 약 7%, 90년도에는 약 10%, 95년 현재에는 약 14%로서 그 비중이 해가 거듭할수록 더욱이 상승하고 있다는 면에서도 증명된다.
특히 일본의 제품수입비율의 상승이 對先進地域 뿐만 아니라 발전도상국 지역인 중국, 아시아 NIEs, ASEAN으로부터의 제품수입의 증가를 동반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8)
이와 같은 일본의 무역확대를 기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의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전장에서도 접촉했듯이 전후 한결같이 「생산과 수출」을 지향하는 「완전가공형」 생산체제를 이루어 오면서 1980년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기술집약에 바탕을 둔 수출지향책에 의해 무역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1985년 엔고 이후의 일본경제구조조정에 있어서는 과거의 「완전가공형」 생산체제를 타파하고 보다 국제분업을 활성화시켜 갈 수 있도록 하는 산업구조의 이행을 의미한다. 완전가공형 생산체제를 타파하고 보다 국제분업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한다고 했을 경우 수입을 불리기만 하면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比較優位 劣位」의 개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일국의 比較優位, 劣位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해당국의 생산요소부존비율의 변화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본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눈부신 경제부흥과 발전의 단계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과잉의 노동력을 활용한 勞動集約的 輕工業品(纖維 雜貨)의 생산과 수출의 확대를 통해서였다. 그후 1970년대에는 달러쇼크와 석유쇼크와 같은 어려운 경제불황을 걸치면서도 기술집약에 따른 산업구조의 고도화 즉 중화학공업화를 바탕으로 하는 고도성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1985년 이후의 엔고과정하에서의 현재까지는 한편에서는 노동집약적 중공업과 소재산업(알루미늄, 석유화학) 그리고 重厚長大型重化學工業(조선, 철강)의 구조불황업종화가 문제시되면서 다른편에서는 첨단기술산업(마이크로, 전기전자, 新素材製品)을 중심으로 하는 광범위한 기술집약적 산업의 부흥이 가속화되고 있는 반면 최근에는 脫工業社會의 출현이라고 하는 이른바 경제의 서비스화 소프트화에로의 이행국면을 재촉받고 있다. 이와 같은 경제구조과정을 통해 일본의 경제는 성장하고 一人當 GNP도 커졌다고 하더라도 1985년 이후의 엔고현상은 지금까지의 설명과 같은 일본의 경제조정 뿐만 아니라 그 이외에도 많은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던 것은 사실이다. 이를테면 <그림 2>에서도 보여지고 있는 것처럼 1985년 9월부터 엔고현상은 급격한 대폭적인 상승만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우선 엔고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일본의 철강업, 자동차 등의 대규모의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쟁력 상승을 위한 설비의 집약화와 인원삭감 등을 통한 기업합리화조정을 기하게 되었다.9)
이것은 이미 성숙기에 있는 일본의 重厚長大型의 산업이 새로이 구조전환의 필요에 직면하고 있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엔고의 지속에 따른 경제의 구조조정 속에서의 최대의 과제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산업에서부터 생산감소로 인한 고용불안에 있었다. 이 때문에 수출중심산업인 기계공업은 특히 1985년 이후 엔고의 과정중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함에 따라 엔고 이후의 짧은 기간을 통하여 품질향상과 가격절감에 성공하여 빠른 기간내에 하이테크의 공업을 주축으로 한 수출신장을 가져왔다. 이 공업은 일본의 경제발전에 있어 하나의 경제조정을 걸친 성공한 사례로서 기술혁신의 모범으로도 지적되고 있다.
이같은 끊임없는 산업의 혁신을 통하여 일본경제는 1995년 현재 세계의 GNP 15%를 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순채권국(1994년말 약 1200억달러)이고 세계경제에 있어서도 경제대국이 되었을만큼 산업분야에서 기술혁신에 바탕을 둔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진행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림 2> 美달러貨의 장기추이
주: 연평균환율기준
자료: IMF. International Financial Statistics, 각호에서 작성
실제로 급속한 진전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경제의 구조조정은 앞에서도 접촉했듯이 무역흑자의 축소를 위한 수입확대책10)이라고 하는 형태로 상호의존적인 국제협조에의 방향전환을 기하는 속에서 한편에서는 끊임없는 기술혁신에 의한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라 엔고의 불황을 극복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엔고를 활용하는 이른바 해외직접투자의 확대를 통한 새로운 경제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Ⅳ. 円貨換率變動의 發展過程과 円高構造的 影響分析
1. 円貨換率變動의 發展過程
엔화환율변동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대략적으로 검토해 보면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무역이 GDP의 20% 수준까지 증가하는 경제발전의 활황 속에서도 일본은 19세기 전반에 걸쳐 금본위제도를 채택하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1867~1897년까지 금본위제도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그 이후 은본위제도(silver standard)를 채택하에 있었지만, 세계경제는 금본위제와 관련한 변동환율제의 연속이었다.11)
일본은 이 당시 금본위제를 채택한 서구와는 달리 디플레이션 현상을 피할 수 있었다. 즉 1874~1887년까지 일본의 도매물가(wholesale price)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는 일본의 은본위제를 변동환율제하에서 효율적으로 운용되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표 2>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일본 엔화는 미국 달러화와 영국 파운드화에 대해 평가절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1887년부터 1896년의 기간에 달러화에 대한 엔화환율은 연간 3.15% 상승하였으며 파운드화에 대한 엔화환율은 연간 3.03% 상승하였던 것이다.
<표 2> 도매물가, 명목/실질환율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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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매 물 가 |
명 목 환 율 |
실 질 환 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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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미국 |
영국 |
¥/$ |
$/£ |
£/$ |
¥/$ |
$/£ |
£/$ |
1875-1896 1875-1887 1888-1896 1897-1914 1915-1940 1915-1921 1922-1928 1929-1940 1941-1953 1954-1973 1974-1989 |
1.43 -0.27 3.91 2.67 3.76 10.58 -5.21 3.29 40.24 1.37 2.85 |
-2.77 -3.10 -2.30 2.15 0.54 5.10 -5.81 -1.76 5.92 2.16 5.71 |
-2.30 -3.03 -1.24 1.58 1.96 9.90 -9.77 1.27 6.74 3.24 9.74 |
3.15 2.16 4.56 0.17 2.86 0.35 0.51 5.69 34.13 -1.42 -4.24 |
3.03 2.06 4.41 0.34 1.62 -2.91 3.72 3.03 32.37 -2.11 -6.23 |
0.12 0.10 0.15 -0.17 1.24 3.26 -3.21 2.66 1.76 0.69 1.99 |
-0.17 -0.66 -1.65 -0.34 -0.36 -5.13 2.69 0.64 -0.18 -0.62 -1.37 |
-0.71 -0.69 -0.74 -0.74 -0.17 -3.59 1.20 1.01 -1.13 -0.24 0.67 |
-0.36 0.03 -0.91 0.40 -0.19 -1.55 1.49 -0.37 0.94 -0.38 -2.04 |
자료: Hundred Year Statistics of the Japanese Economy, Bank of Japan
특히 <그림 3>에서 보여주듯이 엔화환율의 연간 변동성(Variability)이 파운드화의 변동성보다 더 크게 증가되고 있으며 1883~1896년 기간에는 매우 극심한 환율변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변동성은 실질무역(trade flow)이나 실질생산물(real output)에 대한 역효과(adverse affects)를 나타내주고는 있지 못하다.
일본의 실질소득증가율과 산업생산은 미국과 영국의 그것과 비교가능하거나 혹은 더 높은 수준이다. 1885년과 1990년의 기간에 일본의 실질소득은 미국의 2.35%, 영국의 2.79%보다 높은 3.10%를 기록하고 있으며 1874~1896년 기간의 산업생산은 미국의 1.96%, 영국의 4.4%보다 높은 4.75%를 점하고 있다.
19세기에 걸쳐 각국들은 은본위제에서 금본위제로의 지속적인 이동과 함께 이에 대한 상대적인 수요도 변화하고 있지만, Fisher(1911)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금본위제 이행의 국가들의 물가수준은 증가하고 있는 반면 은본위제 국가들의 물가수준은 하락추세를 보여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본은 1919~1920년 기간에 최초로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고정(peg)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엔화는 평가절하되기 시작하여 일본의 금본위제 복귀가 다시 허용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1923년 일본의 Kanto 지방의 대지진과 금융공황(financial panic)으로 인해 달러화의 peg를 철회하게 되었고 1915~1940년 기간의 실질환율의 변동성은 급증하였다.
그 이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국제거래(intemational transactions) 및 공식적인 엔화환율(official yen exchange rate)은 붕괴되었다. 이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물가수준의 추가적인 증가로 이어졌고 특히 일본은 도매물가가 53.8% 이상이나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948년 이후 엔화환율이 공식적으로 재 발표되기 시작하였고 이때 환율은 달러당 4.53엔으로 1940년의 달러당 160엔보다 평가절상 되어져 있었다. 1950년 일본의 인플레이션의 장기적 영향으로 달러당 361엔까지 평가절하 되었다가 이후 브레튼우즈체제의 범위내에서 환율은 안정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고 나서 미국은 통화량 초과공급 현상에 따른 영향으로 브레튼우즈체제도 붕괴되면서 각국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게 되었다. 일본도 1973년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게 되었고 이후 엔화는 달러화와 파운드화에 대해 평가절상추세를 보이기 시작하였고 몇 번의 등락을 거듭하였다.
이러한 엔화환율변동의 발전과정 속에서 일본의 엔고현상은 1970년대 초반 닉슨쇼크(Nixon Shock)12)로 인해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와 함께 일본의 변동환율제의 채택에 따라 일본 엔화는 변하기 시작하였다.
즉 1973년 변동환율제 채택 이전까지의 일본 엔화는 달러당 360엔이었던 것이 1973년 7월에는 처음으로 263.45엔으로 절상되는 이른바 제1차 엔고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제1차 석유위기를 거치면서 등락을 되풀이하다 1977년 이후에는 미국의 무역수지의 구조적 적자와 더불어 일본의 무역수지의 흑자로 1978년에는 달러당 176엔까지 상승하는 제2차 엔고시대를 경험하였다. 하지만 1985년의 플라자회담(plaza accord) 이후 미국의 고금리 정책에 따라 100엔대라고 하는 본격적인 엔고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를 우리는 제3차 엔고시대라고 정의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고 나서는 일본의 변함없는 무역흑자의 증대로 인해 더 한층의 엔고조짐과 함께 1993년 4월 미․일정상회담이 기폭제가 되어 마침내 제4차 엔고시대는 동서의 냉전종식에 따른 세계경제체제의 변화 및 일본의 지속적인 무역흑자에 따른 것이다.
<그림 3> 실질환율지수
자료: 상동
이후 한때 달러당 100엔대가 붕괴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대체적으로 110엔대를 유지하고 있다.
2. 円高構造的 影響에 따른 海外直接投資의 擴大
일본은 앞장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1970년대 초반 선진국과 함께 변동환율제로 이행한 이후 미국 달러화에 대해 평균 15% 정도 절상되었고 1985년 이후에는 빠른 속도로 절상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그림 2 참조).
일본 엔화에 대한 이같은 미국 달러화의 약세추세는 선진국간 투자율 격차에 의한 생산성 차이를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일본의 높은 저축율, Market Share 위주의 기업경영목표와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 등으로 일본의 높은 투자율을 낳았고 이에 따라 일본의 자본형성이 급속히 진전되면서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향상되었다. 즉 <그림 4>와 같이 1인당 실질 GNP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일본의 노동생산성 향상이 미국보다 계속 앞서가면서 특히 1985년 엔고 이후에는 더욱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4> 일․미간 실질 노동생산성 추이
주: 실질 노동생산력은 자국통화기준의 실질 1인당 GNP를 1971년(=100)기준으로 지수화
자료: IFS, 1994 Annual 및 山一證券, 統計總覽, 1995, 3 에서 작성
이 일․미간의 노동생산성의 차이는 투자율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그림 5>에서도 보여지듯이 일본은 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에 비해 거의 두배나 높아 상대적으로 높은 자본형성을 유발하여 노동생산성 증가율의 격차를 낳게 했던 것이다.
<그림 5> 일․미간의 투자비중(GDP대비)
자료: IFS, 1994 Annual 및 山一證券, 統計總覽, 1995. 3 및 주간해외경제,
한국은행, 제96-40호에서 작성
<그림 6> 80년대(1985년 이후)의 엔高구조
일본의 고투자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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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저축율 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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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무역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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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 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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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본유출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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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외직접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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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엔고와 산업공동화, 내외경제동향연구회, ECO-레포트, 1995.4.
경제백서, 일본기획청, 1995에서 작성
이러한 일․미간의 생산성 차이 즉 일본의 생산성 향상으로 일본은 생산비용의 절감을 가져왔고 M/S 위주의 경영방식으로 수출지향적 생산을 함으로써 <그림 6>의 도식과 같은 일본의 무역흑자→엔고→Japan Money 유출→일본의 해외직접투자확대라는 순환구조를 이루며 1980년대(1985년 이후) 엔고를 구조화시켰던 것이다.
특히 일본의 무역흑자 확대는 미국경제의 쌍둥이적자 발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이 쌍둥이적자로 인해 경제의 fundamental측면의 엔고구조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그림 7>처럼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80년대(1985년 이후) 대폭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고 1994년에는 사상 최대치인 1660억달러나 넘는 무역적자를 기록했고 또 누적재정적자의 비중은 미국의 GDP대비 1980년대 초부터 급격히 상승하여 1994년 현재 약 70% 정도의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 7> 미국의 쌍둥이적자
주: 1) 무역수지는 국제수지 기준
2) 94년 누적재정적자비중은 상반기 기준
자료: IMF, International Financial Statistics, 각호에서 작성
이 미국의 쌍둥이적자가 바로 1985년 이후의 엔고발생과 함께 일․미간의 무역마찰을 더욱 격화시키는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같은 일․미간의 무역마찰이 격화될 때마다 달러약세로의 환율조정이 있었으나 무역불균형은 환율조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요인이 존재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그림 1>을 보고싶다. 이 그림에 의해 명백한 것처럼 미국에 비해 일본의 대폭적인 무역흑자는 Japan Money를 형성시켰고 이를 통해 일본상품에 대한 구매력을 제공하여 해외직접투자의 확대와 함께 일본의 무역흑자를 구조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엔고를 구조화시키는 이러한 Japan Money는 해외직접투자의 확대를 가져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의 해외직접투자는 1980년대에 특히 1985년 엔고 이후 급격히 확대되면서 그 형태와 투자지역, 투자의 결정요인 등이 크게 변화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변화를 알기 위해서도 1970~1980년대를 통해 일본의 해외직접투자가 어떠한 특징을 갖고 전개되어 왔을까를 간단히 접촉해 놓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림 8> 일본의 해외 직․간접투자추이
주: 1) (+)는 일본자본의 유출을 의미하는 것으로 장기자본수지에서는 적자로 나타남
2) 대외증권투자는 채권, 주식, 외화채권 투자
자료: 일본은행, 경제통계월보, 각호에서 작성
<1970年代>
1960년대 후반부터 일본은 경제성장의 제약요인에서 탈피해 간다고 하는 경제상황하에서 1970년대 초반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나선 엔화환율은 미달러에 대하여 점증적으로 상승되고 국제수지의 흑자도 정착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일본의 해외직접투자는 활발히 진행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으나 이 당시의 일본의 해외직접투자의 특징을 보면 EC제국에 대해서는 수출확대를 위한 상업, 서비스부문으로의 투자가 중심이고 아시아, 중남미 등의 발전도상국에 있어서는 제조업부문(低賃金利用), 자원개발부문(자원확보)에의 투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13)
이는 일본의 해외직접투자가 다국적화가 되어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1980년대에 이르러 일본자본의 다국적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1970년대 말까지 일본의 선진국으로의 해외직접투자를 보다 높은 이윤율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상대국의 수입제한을 회피하기 위한 생산거점의 이동 즉 「무역마찰회피형」의 직접투자라고 하는 「輸出代替的現地生産」이 강하다.14)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1970년대 말에 이미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마찰을 의식하면서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80年代>
1970년대까지의 하나의 추세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일본의 해외직접투자는 발전도상국으로 향하는 자원관련투자가 많았지만 1970년대 말부터 섬유, 칼라TV, 철강 등을 중심으로 선진국을 향한 직접투자가 증대되면서 무역마찰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1980年代(1985년 엔고) 이후에는 <그림 6>에서도 나타나고 있듯이 「일본의 무역흑자」→엔고→일본의 해외직접투자 확대라는 80년대 엔고 구조하에서 일본의 해외직접투자는 다음과 같은 3가지의 형태의 큰 구조적 변화를 보였다.
첫째는 경상수지의 대폭적 흑자를 동반한 직접투자의 증대이다.
이것은 1980年代에 들어가 일본경제는 완전한 자본수출국으로서의 역할이 증대된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발전과 국제수지의 관계는 국제수지 단계설에서 설명되고 있지만 이 설에 의하면 자본수출국의 상태는 큰 제도적 정책적 변화가 없는 한 중장기에 걸쳐 지속된다고 말해지고 있다.15)
이처럼 일본은 1980年代를 통해 국제수지의 흑자 속에서 직접투자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일본의 해외직접투자가 그 투자선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해외직접투자는 1980년대에 들어서고 나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이행시켜오고 있고 그 점에서는 1980년대의 일본의 해외직접투자도 「선진국형 직접투자」라고 말할 수 있다.16)
셋째는 직접투자와 무역마찰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직접투자와 무역의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代替와 補完의 두 가지의 형태로 나타난다.
즉 대체관계는 보호무역주의가 강해지면 직접투자가 촉진되고 반대로 자유무역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직접투자보다도 무역의 쪽이 촉진된다고 하는 것이다.17) 물론 이 관계는 단순히 자본이동에만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인 생산요소의 국제간 이동에 있어서도 성립하지만 경제성장이라고 하는 動學的觀點에서는 직접투자에 의한 국제분업이 보다 촉진되고 무역량도 불어난다고 하는 이른바 무역과 직접투자의 보완관계의 쪽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1980년대의 일본의 對美投資는 무역마찰과의 관련이 강하고 무역과 직접투자와의 사이에 代替關係가 강해진 것을 엿보게 할 수 있다. 이만큼 1980년대의 일본의 해외직접투자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1970~80년대를 통한 이같은 일본의 해외직접투자의 전개과정을 보아도 엔고 구조적 영향으로 인해 해외직접투자가 증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림 8>에서 일본의 해외 직․간접투자 추이에서 명확히 증명된다.
즉 1970년대에 연평균 24.7억달러로 증가되고 있는 것이 1980년대, 특히 1985년 엔고 이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의 해외직접투자가 급격히 증가되었음을 엿볼 수 있겠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1985년 엔고 이후 증권투자와 함께 해외직접투자가 증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본의 해외직접투자가 1970~80년대의 자원관련, 제조업관련의 직접투자에서 금융의 국제화 자유화와 서비스무역의 활발화 등에 힘입어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서비스분야의 직접투자증대와 함께 직접투자의 패턴도 변화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하면 1990년대부터 일본의 해외직접투자는 <그림 9>와 같은 새로운 엔고 구조하에서 아시아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가 있겠다.
<그림 9> 1990년대의 새로운 엔高 구조
생산성 우위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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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 투자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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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무역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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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 구매력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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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경제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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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아시아 차관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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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 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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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본유출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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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시아 직접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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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그림 6>과 같다.
실제로 1990년대에 들어 일본의 무역이 아시아 중심으로 증대되는 것처럼 일본의 직접투자도 아시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그림 10>을 보고싶다.
<그림 10> 円高로 인한 對아시아 수출 증대
자료: 일본의 통관 통계와 IMF, International Financial Statistics, 에서 작성
우선 <그림 10>에 의하면 1985년 이후 엔고에 의해 아시아로 향하는 수출이 급증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엔의 상승에 따라 NIEs와 중국으로 수출이 증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발전도상국에 있어서 일본이 가장 중요한 수출시장으로서 떠오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시아지역 특히 아시아NIEs 및 아시아지역의 발전도상국은 대개 일본으로부터 자본재, 중간재를 수입하고 그것을 가공하여 완성재로서 미국으로 수출한다고 하는 패턴이 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의 경제성장에 있어 일본경제의 영향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은 아시아지역으로의 수출증대와 함께 해외직접투자의 확대를 모색하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림 11>과 같은 도식을 그려보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도식에서 보는 것처럼 아시아 시장의 성장잠재력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엔고를 활용한 일본의 해외직접투자가 아시아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림 12>에서도 명백해진다.
<그림 11> 亞細亞에 있어서의 現地生産擴大의 圖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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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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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우위표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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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 시장의 성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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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집약적 산업공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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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밀착형 산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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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화 정책 대상산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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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경제형 산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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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생산 집약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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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기지 생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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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재료의 현지생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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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그림 6> 과 같다.
<그림 12> 일본의 지역별 및 아시아 직접투자증가 추이(제조업)
岢자료: 日本大藏省 統計(각년도판)에서 작성
즉 1985년 엔고 이후 일본의 해외직접투자는 매년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특히 아시아 지역으로의 직접투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엔고 이후의 일본의 해외직접투자증대와 함께 아시아 지역으로의 투자확대의 요인으로서는 다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1) 1985년 이후의 엔고의 진행과 그 정착은 수출경쟁력을 저하시킴과 동시에 해외기업의 円表示市價總額의 저하를 가져오게 하여 買收cost를 경감시켰다.
2) 경제마찰격화로 인해 수출대체적 현지생산으로의 급속한 전환이 필요해졌다.
3) 기업의 국제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상황하에서 일본의 기업은 세계적인 관점에서 기업경영의 세계전략을 가능한 빠른 속도로 추진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 세 가지의 점에서 특히 강조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프라자합의(1985년 이후의 엔고)에 의한 국제적 환율조정에 따라 크게 바꾸어진 일본기업의 국제전략 즉 급속한 엔고에 대응하는 형태로서 가격삭감을 기하기 위해 對外直接投資를 실행하고 있다. 일본의 對아시아투자의 특징은 최초에는 NIEs에서부터 다음에는 ASEAN제국에서 중국 등의 투자상대국 지역으로 이동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對중국투자가 급증하면서 대기업의 투자와 함께 중소기업의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같은 일본의 투자지역의 변화는 엔고의 대응책으로서 비롯된다.
일본의 구체적인 엔고대책으로서는 내수의 확대와 함께 개별기업의 생산성향상, 자동화의 추진, 高附加價値製品生産으로의 이행, 사업의 다각화 등이다. 동시에 생산가격삭감을 위해 아시아제국 지역에서의 저임금노동력 등을 활용하는 투자환경을 고려하면서 投資先을 계속 이동해 가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가 있겠다.
이미 아시아에서의 생산거점을 갖는 기업은 그 지역에서의 생산체제의 개선과 더불어 가격삭감을 위해 보다 유리한 품목으로의 전환과 함께 생산거점의 이전을 추진해 간다고 하는 이러한 일본기업의 행동은 산업기반이 비교적 취약한 아시아 제국 지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시아에 있어서는 일본의 산업구조 조정의 과정에서 이미 이 지역의 공업화가 가속화되고 새로운 경제발전 메카니즘 형성의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 관점에서 일본이 아시아에로의 해외직접투자 확대는 바로 「일본의 새로운 역사적인 경제확대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일본의 해외직접투자가 확대해 가면 당연히 일본산업의 공동화에 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공동화 문제는 기본적으로 산업조정문제 다시 말하면 산업구조전환문제이고 시장메카니즘의 관철(국제화에 의한 기업의 이윤최대화, 가격의 최소화)을 통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목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적 또는 장기적 관점에서는 각국의 산업구조전환을 통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목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적 또는 장기적 관점에서는 각국의 산업구조전환을 통해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촉진하는 것으로서 이해된다.
산업구조전환이라고 하는 자원재배분의 과정에 있어서는 사회경제적 고통(노동수급에 따른 실업문제, 資本設備의 遊休化, 기업의 도산 등)을 동반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일본이 1985년 엔고 이후 고용의 감소, 기업의 도산 등과 같은 고통을 부단히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어려운 경제상황 즉 구조전환(산업조정)을 시장메카니즘에 의거한 생산거점의 해외이전을 적극적으로 행하면서 더 한층의 연구․개발활동에 의해 신제품․신제조과정을 통해 이 산업공동화 문제를 극복해 갔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기업의 세계지향과의 관계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일본은 기술의 단순한 혁신만은 아니고 기업조직의 혁신으로서 기업내부에서의 전통적인 것과는 또 다른 형태의 발전의 dynamism을 창출해 가는 특색을 갖고 있다. 이는 산업의 국제적 Network의 구축이라고 하는 일본의 세계경영전략을 의미한다.
일본은 실제로 세계경영전략의 측면에서 엔고에 대응한 해외직접투자의 확대로 인해 산업의 공동화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도 현실적인 과제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은 산업의 공동화로 인한 불황 속에서 매몰하기 쉬운 중장기적인 관점에 입각한 기술혁신을 지속적으로 진행시켜 왔던 것이다. 일본의 기술혁신은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소규모적인 기술혁신에 의한 신상품이 지속적으로 개발되었던 것에 특징이 있다. 이를 통하여 일본산업의 공동화를 어느정도 극복하면서 엔고를 활용한 해외직접투자의 확대에 의해 경제불황을 극소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금후도 일본은 엔고에 대응한 해외직접투자의 확대에 따른 산업의 공동화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크지만 그러나 일본은 또 다른 일본의 새로운 경제확대를 기하기 위해 기술우위를 토대로 한 해외생산의 진전 속에서 아시아로 향한 해외직접투자의 확대를 더욱이 모색할 것임에 틀림없다.
Ⅴ. 結 論
본 논문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일본경제는 1995년 현재 세계최대의 순채권국임과 동시에 세계최대의 무역흑자국이다.
일본은 이같은 Japan Money에 의해 1985년 이후 엔고가 지속되는 경제구조를 형성시켰고 이 때문에 수입개방의 촉진과 엔고를 활용한 해외직접투자가 새롭게 급진전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구조적으로 제품수입의 증가에 의한 내수지향책을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국제균형(경상수지의 흑자를 국제적으로 허용가능한 범위내로 한다)을 실현하는 것이 중장기의 구조조정의 과제가 되고 있다.
1988년도판 「일본경제백서」에서도 1985년 이후의 엔고현상이 나타나고 나서 일본의 구조조정과정을 통한 「새로운 성장의 시대」로 들어갔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국내적으로는 수입촉진 확대를 위한 내수지향책의 발전, 대외적으로는 해외직접투자의 진전이 앞으로의 성장방향으로서 중요시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만큼 1985년 이후 엔고의 영향으로 인한 경제의 구조조정과 이를 통한 국제적 경제협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은 우선 무역마찰 해소측면에서 수입확대를 더욱이 지속시키겠지만, 일본수출의 아시아시장공략으로 일본의 전체 무역흑자 규모의 대폭축소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아시아중심의 무역흑자에 의한 새로운 형태의 엔고 구조하에서 자본수출국으로서의 역할증진과 함께 아시아를 향한 해외직접투자가 확대되면서 이 메카니즘을 통해 또 다른 21세기의 기술입국을 목표로 하는 경제발전이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되어진다.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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