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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 김선태 회원님이 정리 하신 내용을 옮겨왔습니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경복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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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경복과 근정의 참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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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인의 이중적 문화의식
0 호주 시드니주립박물관 아시아특별전-한국관 없고 아시아 각국관 한켠-왜이리 초라 해!
0 뉴질랜드 오클박물관—첫 전시실 한국-많은 유물전시-우리문화재는 죄다 약탈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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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금성과 경복궁
0 스캐일콤프랙스-자금성의 뒷간 정도?--자금성의 모방작이라고?
0 완성된 해-- 자금성--1420년, 경복궁--1395년--25년 먼저 지은 건축물
0 황궁<자금성>은 5문3조(24만평), 왕궁<경복궁>은 3문3조(14만평)--60% 수준
0 특징--자금성-위압감을 주는 장대함 과시에 역점-- 자금성(성곽)
경복궁-자연과 어울림--차경()의 미학--북악산,인왕산-가시적정원
베르사이유(전원 목가적) 헝가리 부디궁(도나우강기슭 산성 )빈궁전 (도심속 랜드마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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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적 체취가 남은 궁궐
0 자금성-장대함, 위압감 뿐
0 경복궁-인간적체취-삼문-근정전(정전)-사정전(근무)강녕전, 교태전, 자경전(생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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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복궁의 자리 앉음새
0 1392-개성 수창궁 개국--한 달 뒤 천도 밝혀-겨울 추위 반대
0 1393-계룡산(권중희 추천)-무학대사 동행 -직접 보고 공사 시작-하륜의 반대
0 권중화, 정도전에게 검토 토록-부적당 결론 - 초석 게룡대 한켠에 있음
0 하륜 신촌 주장-조준,권중화 반대--무학대사와 협의 현 위치 정해
0 정도전 파견()--도감 청성백, 심덕부 임명--12월 터닦기
5. 경복궁의 창건
0 1394년9월 마스터플렌 작성시작- 12월에 완성
0 1394년 12월 4일 개토제--1395년 9월 29일 준공
인력-경기좌도 4,500명, 경기우도5,000명, 충청도5,500명-1,2월과 8,9월,농번기(승려)
설계(3개월),시공기간(10개월),동원인부15,000명-연침(7칸)정전(390칸)-12월28일이궁
0 무학대사 예언-북악을 등질경우-무악재고개(3천 선사 수도-서대문형무소)
낙산 아래(인재 쏟아져-서울대학교)
인왕산이 강해 (군부장악-5.16쿠데타)
동의 낙산 약함(걱정-인민군 동대문으로 입성)
관악산은 병오가 낙맥(경상도 정권이 생김)
6 경복궁의 뜻과 증축
0 1395년 10월 정도전 궁궐, 주요전각 이름 올림
경복궁-시경-대아의 거취(이미 술에 취해 덕에 배부르니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리라)
0 경복궁 담장-1398년에 완공
0 왕자의 난 2회-정종-개성 환도--태종5년 한양으로 천도--창덕궁지어 이어
--태조 이성계 운명--창덕궁 이궁
0 법궁 경복궁 보다 창덕궁 더 이용—인간적 편안함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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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근정전의 부지런하다는 뜻
0 법전-정종, 세종, 단종, 세조, 성종, 중종, 명종 --근정전에서 즉위
0 근정전-우리나라 현존 목조건축물중 가장 큰 건물<종묘, 경회루 등 엇비슷>
0 2단의 월대 위, 중층구조, 회랑으로 둘러 싸여
0 규모--정면 5칸, 측명 5칸, 기둥-다포, 지붕-팔작지붕
0 뒷면 중앙 어좌-뒤(일월오악병), 보개(절의 닫집)-구름무늬, 7조룡 한쌍--권위
0 정도전의 근정전 기문-부지런하면 다스려져-아침(정무),낮(방문),저녁(수령), 밤(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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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근정전 월대의 석견상
0 월대의 3종의 석상—사방(4신:청룡,백호,현무,주작), 시각(12지상), 서수()
0 암수한쌍, 몸 맞대고 시선 각각-춘성유기(유득공)-석견(새끼-대를이어 왜구에 짖는것)
-엄숙한 공간에 유머감각
9 근정전 앞마당의 박석
0 최고포토라인-근정전 오른쪽 모서리-박석과 정전의 선이 어울림
0 박석-다듬지 않음-미끄럼, 반사광 막아- 월대밑과 70cm 표고차--폭우 오는날 조정
0 박석 원산지-강화도 매음리, 황해도 해주-구들로 사용-1만장 사용케해<궁궐,왕릉 등>
Ⅱ. 아미산과 십장생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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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복궁의 천재지변
0 1544(중종39년) 근정문 동수각-벼락-임금의 덕부족-역적, 살인 이외 죄수 전원 석방
0 1553년(명종8년) 큰화재(강녕전,사정전,흠경각) 불타-윤원형-임금 압박-주범이 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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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재교의 천록상 조각
0 명당수(영재교)-천록(전설속의 신령스런 동물) 4 마리-생동감 넘쳐-구멍뚫린 것
-유득공-영재교3 -남별궁에서 한마리 발견-대원군 경복궁 복원 때 제자리로
3 경복궁 배치의 기본 골격
0 3문3조(3문:광화문,흥례문,근정문) 3조(외조,치조,연조)
-외조(근정전권역-외교사절,문무백관 조회)-민가의 사랑채
-치조(사정전권역-정무-만춘전,천추전 등--편전-민가에 없는 영역
-연조<침조>(강녕전, 교태전, 자경전-왕과 왕비의 생활공간-민가의 안채
0 3문3조-왕궁 권위위해- 직선상의 배치, 대칭구조
0 변조 -연조 공간의 끝부분—십장생굴뚝, 아미산조성, 꽃담—긴장 풀어줌
-일직선의 긴장—왕궁의 엄정성, 건축적 긴장--자연스럽게 이완시켜
0 치조공간 서쪽-경회루(연회)--그 뒤편--태원전(죽음의 공간)
0 연조 뒤 공간—많은 부속건물 없어짐—함화당, 집경전, 장고 남아
0 건청궁, 향원정(고종의 거처)--안으로 들어갈수록 깊이 느껴
0 경복궁의 바른 관람 순서
-첫날-외조, 치조, 연조공간과 아미산 굴뚝, 경회루 살피기
-둘째날-태원전 권역, 장독대, 건청궁, 향원정 돌아보고 신무문으로 나가
바깥 담장보기
- 다음 실내장식과 고궁박물관 관람으로 끝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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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왕의 집무실, 사정전
0 근정전 뒤편네 위치
-사정문 통해, 3단 석축위, 15칸집, 팔작지붕, 처마곡선이 하늘로 향애
-신하들과 회의, 경연 등
-건물 중간 고주 생략-호방한 구조, 천장 높고 마루바닥
-어좌 어탑위, 용상 뒤(일월곤륜도)--용상 앞 기둥(운룡도)--현재 복제화
-정식 일월곤륜도 와 운룡도는 고궁박물관에 소장
-천추전,만춘전-여기서 정무,격식있는 회의, 근신들과 논의 등--온돌
-사정전 권역전체-행각-동서행각(일반행정사무실)
-앞쪽행각(천자고<내탕고>내탕금: 판공비, 기밀비-용도-흉년구제,포상금
-천자고(천지현황,우주홍황) 8칸-그릇에도 천지현황 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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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왕과 왕비의 침소, 강녕전과 교태전
0 3문3조의 마지막권역
-내전, 침전-왕과 왕비의 생활공간
-강녕전(외부인 출입 많아 ; 월대) --행사장-11칸 장중
-교태전-월대 없고 행각 연결--시녀들 안살림-단아,아늑함
-두 건물 용마루 없음--왕과 왕비침소--모두 다 용마루 없음
-교태전 대문(양의문) 옆-주황빛 굴뚝(‘천세만세‘’만수무강‘ 새겨
-온돌의 굴뚝-가장 열을 잘 이용함-건축미학상 특별한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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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슬기로운 그들과 굴뚝의 과학
0 국제 온돌학회-‘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실제 숯을 피워 실험-완벽한 기능
0 서양식 벽난로- 불타면서 바로 굴뚝으로 빠져 나가 열손실 많아
0 온돌구들-개자리<습하고 찬 공기 머물게>--구들개자리, 고래개자리, 굴뚝개자리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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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름다운 아미산 꽃 계단(화계)
0 아미산 화계-인간적 체취-아미산,자 경전꽃담장, 경회루 연못 등-꽃, 석물, 괴석
0 화계--우리나라 정원의 특징—비탈진 땅<배산임수>-화계<산사태 예방, 꽃밭 기능>
0 아미산 화계-밝고 화사한 꽃담, 셋째단에 4개의 아름다운 굴뚝
-30장 6각 굴뚝, 기와 지붕위 4개의 연가-각면-,당초,학,박쥐,봉황,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불로초,바위,새,사슴,나비,해태,불가사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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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환상적인 자경전 꽃담장
0 조대비를 위해 건축-1866년까지 수렴청정
0 자경전 십장생 굴뚝 -설치미술, 장식 건축--십장생 그림 벽화 보물 810호
0 아름다운 담장-주황색 벽돌-화투짝 같은 무늬, 글자—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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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훈민정음의 수정전
0 사정전 행각 밖-세종 때 집현전이던 곳-세조<예문관>-대원군<수정전(편전)>
0 다섯벌대의 월대-고종<군국기무처>-- 갑오경장 발표한 곳
0 궐내각사 중에서 수많은 건물 훼손 - 살아 남은 건물 20%- 복원도 20% 정도
-함화당과 집경당-건물가치 으뜸 - 빈궁들의 처소- 훼손 안 되고, 행각들만 철거
-찾는 이도 적어- 궁중다실로 활용했으면
10. 흠경각의 옥루기륜
0 흠경각- 세종 때 장영실이 6년 걸려 만든 옥루기륜<자동천문 물시계> 설치
0 김돈의 흠경각기-7척의 산, 금으로 만든 태양-오운에 싸여 움직임 실제 태양과 같음
0 국조보감 기록-세종20년 옥루기 설치(물로 돌고, 북치는 사람, 종치는 사람,
옥녀 장치)
0 사방-농촌 4계 그림-[시경,빈풍칠월]등 그림—농촌 사정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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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궐내각사의 주련과 현판
0 현판과 주련- 현판(각 건물,문) 주련(기둥에 내걸린 글)-[궁궐의 주련과 현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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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궁궐의 우리나무
0 현재 복원-대원군 당시의 45% - 나머지 복원 계획 없어
0 소주방(대장금의 무대)-복원계획--건물터 확인-아름드리 소나무 6그루 걸림돌-포기
0 물푸레나무<가지 물이 푸르게 돼>-곤장,야구방망이,라켓자루,괭이자루,도리깨채 등
0 참나무-졸참, 굴참, 떡갈, 상수리나무 들-273년 폐허에서 자란 나무들
0 버드나무,수양버들(목가) 말채나무(지네 막아) 서어나무, 시무나무(향원정앞)
-김삿갓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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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죽음을 위한 공간 태원전
0 태원전-경복궁 서북쪽-왕, 왕비, 상왕, 대비 죽음-소렴,대렴 마친 시신
<재궁>모신 전각
0 선원전-국립민속박물관 자리-역대 선왕의 영정모심
0 망자-이승에선 떠난자, 저승-새 손님, 변 자 붙여 , 저승-서쪽<서북쪽에>
0 상례- 중시, 부속건물<영사재, 공묵재, 숙문당, 세납방, 행각>-엄숙, 침묵흐른 듯
0 1868년 중건후-빈집, 고종 9년<건국480년>-태조 이성계, 원종 어진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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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장례문화와 옛 의식
0 결혼식<부모가 보살핌> 장례<자식이 보살핌>-생활예법 사회화
0 시골 옛 풍습, 전통예절 잘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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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경복궁 수난사
0 1553(명종8년)-내전 일곽 대화재-이듬해 복구
0 1592 인진왜란-경복궁전체 불타- 273년 폐허로 남아--창덕궁-법궁으로 큰 몫
0 1865(고종2년)-중건 시작-1868년 완성
0 1873(고종10년)-건청궁 딴살림<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
0 1876(고종13년)-대규모 화재(800여 칸 소실)-창덕궁으로 옮김
0 1882(임오군란) 1884(갑신정변) 후 1885년 경복궁으로 돌아옴
0 1895- 명성황후 시해-러시아 공관 피신
0 1897년 고종 경운궁<덕수궁> 환궁--중건후 겨우 18년만 이용-1904년<통감부입궁>
0 1915 시정5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 핑계-건물 헐거나 민간에 팔아넘겨<4000여칸>
0 건청궁 헐고-조선총독부박물관 건립<시해 현장 없애려고>
0 1915년 조선총독부 설립계획-1916년부터 흥례문 등 철거
0 1917년 11월-창덕궁 대화재<강녕전, 교태전 헐어 창덕궁으로 옮겨>
0 1927년 초선총독부 건물 준공 -광화문<동북쪽 담장으로 이전
0 해방 때-근정전, 침전구역, 경회루, 향원정만 남아
0 총독부건물- 정부청사<중앙청>-5,16후수방사 30경비사단<태원전 권역>
0 동북쪽 사옹원 터--국립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세워 훼손
0 1993년 경복궁 복원계획-1996년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2010년-1차 복원사업 완료
0 1차 복원 -89채<2,720평<9,000㎡>--고종 당시 500여동 현재 125동 25% 수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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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경복궁 건축의 꽃, 경회루와 건청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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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복궁 건축미학의 극치, 경회루
0 경회루 제외해도-경복궁 궁궐의 격식과 제도 갖춰-경회루 환상적인 궁궐의 꽃
0 근정전, 종묘와 함께 3대 목조건물-단일 평면으로 가장 큼
0 규모-연못-남북 113m X 동서 128m,
-경회루-48개 돌기둥 위, 정면 7칸 X 측면 5칸,
-남북 33m<110척> 동서29m<92척>, 넓이 298평<약1,000㎡>
- 1,200명 모인 기록
-누마루-한뼘 정도 높이로 3단 구성-외진, 내진, 내내진으로 구분
-분합문으로 구분 가능-들쇠로 들어올리면 한개 공간이됨
0 들보 11개-기둥사이 화반<꽃받침 모양>-하중 분산
0 천장-외진<우물천장>, 가운데 칸<대들보까지 노출 : 장대한 공간감>
0 둘레-계자 난간, 기둥과 기둥 사이- 낙양각<커튼 접어 올린 듯>-궁궐정자 특징
0 외국 사신을 위한 잔치용 누각-2005.6.1.-개방-
2. 경회루 물길의 숨겨진 과학
0 연못 물넣기-현폭<떨어뜨림>, 자일<수면에서 흘러들게>,
잠류<밑에서 잠겨넣기>
0 경회루-3가지 모두 적용<
- 북쪽 호안용입과 동쪽호안 용목덜미, 북쪽 바닥지하수>
- 동쪽 호안 다리밑->남쪽으로 세 개 다리->만쪽 호안->서쪽->서쪽 호안
->남쪽
-북쪽 용머리->서쪽->만세산 두 섬 사이->잠류, 자일 고요한 수면 유지-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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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초의 경회루
0 경회루의 역사
-창건 당시--습지-연못 파고, 누각 정도
-누각 기울어 위험- 박자청에게 보수 명함-약간 서쪽에 연못 만들고 약간 넓게
-태종11년 8월 22일 박자청 명-태종 12년 4월 2일 완공<약 8개월>
-경회루 간판 -양녕대군 19세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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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노비 출신의 우직한 토목건축가-박자청
0 개국공신 황희석의 하인-이성계 개국성공기원 사리함-제작자 박자청 외2 명
0 노비출신-개국 후 무관 말단-이복동생 의안대군의 입궐 막아-국왕 경호 호군 됨 -건축공사 뛰어난 자질-태종7년 성균관 문묘-넉달에 완성-백성 원성사
-공조판서, 의정부 참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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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양 건설의 실무 건축가 박자청
0 태조 3년-공역 첫발-재질 인정 받아-태종5년 창덕궁 완공-안마 하사 받음
0 태종 7면 문묘 완공, 태종8년-태조의 건원릉, 신의왕후의 재릉 주관
0 태종8년 공조판서, 태종 10년-용산 군자감, 곳간짓기, 경복궁수리,
청계청 호안공사
0 태종12년 경회루 건설, 태종13년 4월 서울 성곽 보수,
0 세종2년 살곶이 다리 건설
0 세종 3년 도성 수축 제조<총감독>, 세종4년 태종서거 산릉도감-믿음에 보은
0 세종5년-11월 (67세)별세-실록에 졸기-토목,공역 관장 공로-세종 익위공 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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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경회루 준공 이후
0 외국사신연회장, 출전장군송별연, 종친간연회, 활쏘기구경,
경전읽기, 시험장, 기우제
0 세종 15년 보수->성종<창덕궁으로 이거->비워둔 경복궁 퇴락-
0 성종5년 중수 공사
-헐고 다시짓기->돌기둥(꽃, 용 새겨)->물속 용그림자<용재총화 기록>
0 연산군-경회루 주변 호화장식->흥청망청 연회(만세산(꽃),봉래궁,일궁,월궁,벽운궁)
-모형궁 금, 은, 비단 장식->황룡주<유선>-비단꽃,동물모양 띄우고-촛불 밝혀
0 중종-가건물 헐고 몾재 돌려줘-본래 기능-청기와 논의 거절-제 기능 찾아
0 2005.6.1-궁궐지킴이 등 활용-마루 닦고-1일 100명 한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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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경회루의 참뜻
0 하륜 태종 때 쓴 기문- 경회루의 참뜻-중도, 화려하지 않음-누각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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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국제대회 연회장으로서 경회루
0 2010년 G20정상회의 만찬->중앙박물관-영부인 리움 이용-박물관 기능 아는것
0 2004,9.6.국제검사협회 연례총회만찬(경회루), 2005.6.1.세계신문협회총회(창경궁 명경전)--비난, 헐뜯기--세계적인 추세
0 세계철강협회-모든 나라 개최 경우 고궁, 박물관, 미술관 이용-창경궁 명경전 이용
0 목조건물인 한옥-3년만 사람 출입 없으면 폐가 돼.-촉석루 보존 잘되는 이유-개방
0 앞으로 국제대회의 만찬 고궁 이용하는 문화정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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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궁궐 속의 궁궐
0 건청궁-고종황제, 명성황후가 기거한 (살림 공간)-집옥재(서재), 향원정(정원)
-사람이 살았던 인간적 체취,-고종 10년 건청궁 시작-반대- 내탕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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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편안한 살림집 구조의 건청궁
0 건청궁 건립의 뜻- 1) 아버지로 부터 벗어나 왕의 정통성 확립--친정 선언
2) 거소만은 인간적 편안함을 갖고 싶어함--왕궁(구속의 연속)
순조-창경궁에 연경당지음,
헌종은 낙선재 지음-양반가옥 형태
0 건청궁-장안당(고종의 사랑채), 곤녕합(명성황후의 안채), 복수당(상궁들 거소)
-구조 명쾌, 자리앉음새와 모양 검소, 품위-부용루, 옥호루-향원정 잘 보여
-공예품처럼 다듬어져, 원자바오 방한시--살고 싶은 충동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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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0 세조 대 빈터에 취로정 세워-- 폐허 습지-연못 조성-육모 정자
0 향원정-왕과 왕비만의 사적 공간- 편안, 온화, 여성스러움
0 (송의 주돈이 글에서) -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에서 따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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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고종의 서재, 집옥재
0 1881년 지음-중국풍-넓은 홀, 세로 현판, 주련 중국 문인들의 글
0 서양식 시계탑(옆), 입식 생활-1893년 외국공사 5회 면담 이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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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건청궁의 근대시설
0 1887년 전기 가설-중국, 일본 보다 2년 앞서, 관문각(서양식 서재:1891년 완공)
0 싸바찐(러시아)-관문각, 독립문, 석조전, 정관헌, 중명전, 손탁호텔 등 설계한 사람
- 을미사변 당시 목격자-러일전쟁 때 피신
0 건청궁의 역사- 1895년 을미사변, 1896년 아관파천, 1909 일본이 헐어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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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건청궁 복원공사와 춘양목
0 2004.6~2007.12월 3년 걸려,
0 한옥 건축비--최소 평당 800만원, 재료,일류기술자 동원 1,500만원,
춘양목, 문화재급 기술자 2,000만원이 들어
0 춘양목(금강송)-고성,울진,삼척,봉화등 태백산줄기-눈많은 지역-가지짧고, 위로솟아
0 문화재 보존,복원 공사시 반드시 필요-삼척준경묘주변 보유 150만평-14만주 길러
0 산림청과 문화재청 금강송 확보 협약- 2155년 개봉 타임캡슐, 금강송 보호비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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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광화문에 새겨진 영욕의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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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궁이 지닌 현재적 의미와 가치
0 경복궁-외형적<건축의 아름다움>, 내면적<조선왕조 법궁이란 역사적 가치>
0 대원군 중건의 의미-법궁 복원-실추된 왕조의 권위 되찾기
0 복원의 뜻-
1) 경복궁 헐고 조선총독부 건립<법궁 두고 권위 획득어려워-동양최대 건물>로 가려
2) 독일 베를린 왕궁 복원- 개인 발원-95% 지지 국민성금, 20여년 걸려 복원 계획
왕궁- 나라 역사의 증거, 정통성, 권위를 만들어 주는 것- 복원을 후손으로서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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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시의 심장 광장
0 왕궁 앞 광장, 시민사회의 상징적 광장- 역사을 잇는 역사적 공간
0 서울 사청 앞 광장, 광화문 광장 복원- 심장 거리 가져
0 경복궁 복원 사업 2004년 청장 부임시- 광화문 복원만 남아-광장까지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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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무원은 생리적 수비수
0 광장 복원 계획 대통령에게 허락 받았으나 부처간 이견과 예산 등 문제 직면
0 공무원들의 자기 지키기-교통, 문화,서울시 떠넘겨-서울시에서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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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광화문 광장안 서울시로
0 광장안 대통령 인가-표류-서울시로 인계-새 설계로 현재 모습 만들어
0 은행나무 옮긴 것 후회-서울시에 심장 광장, 경복궁 직시선 만들어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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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광화문 영욕의 이력서
0 태조 4년(1395) 경복궁 창건 당시 점문으로 건립
0 첫이름 오문()-“닫아서 민간의 이상하고 쓸데없는 말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열어서 사방의 어진 사람들이 들어오게 한다.“
0 세종 8년(1426) 광화문 명명
(광(:빛,군주의 은덕)은 사방으로 덮이고, 화(:교화,바른정치)는 만방에 미친다.)
0 출입구의 홍예(무지개문)가 세칸, 양 옆으로 긴 담장<동십자각과 서 십자각까지>
0 1592년- 경복궁 화재 때 불타-담장만으로 폐허
0 1868년 흥선대원군 경복궁 복원 시 복원<276년만에>
0 1926년 조선총독부 건물 완성-광화문 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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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 광화문이여
0 광화문-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자리로 옮겨-아나기 미네요시의 항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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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민예운동가 아나기 미네요시
0 아사까와 노리다까와 동생아사까와 다꾸미 형제에게 배워
0 야나기-3.1운동의 학살<조선인을 생각한다> 글 발표-동아일보 번역 게재
- [조선의 친구에게 보내는 글]-염상섭 번역 동아일보 연재
0 1924년 경복궁 집경당에<조선민족박물관> 개관- 세 사람의 사재 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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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총독부건물 가림막이 되어버린 광화문
0 경복궁 동북담장 광화문-6,25때 문루 불타고 석축만 남아
0 1968년 원위치 복원 철근콘크리트로 -박정희 대통령-총독부 건물 가림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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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콘크리트 복원이라는 것
0 일본에서 우행한 공법-나고야성, 사천왕사 등 이런 방법으로 복원
0 콘크리트 광화문을 헐어야 하는 이유
1) 지붕 선의 아름다움 죽어있어, 콘크리트 건물이 목조 궁궐과 어울릴 수 없어
2) 총독부 건물 가리개-총독부 건물에 맞춰, 축(3.8도 비틀어짐), 14m 안쪽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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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광화문 현판 글씨
0 원상복원-시대 정서 새글씨-대원군 시절 현판-탁본도 없어,
0 김응현 옹-글씨 못 받아-선인 글씨 집자-박정희 대통령 글씨 없애려 한다 오해
0 디지털 복원-대원군 당시 현판의 글씨로
0 문화재청의 여러 안 묵살- 감동 없는 글씨체라 비난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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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설치 미술로서의 공사 가림막
0 철거 당시 가림막이 설치미술가의 작품으로- 양주혜씨 작품
0 중건용 가림막-강익중씨 작품- 30억원 안 받고 대여해—우토르 마을 설치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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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방인이 기록한 ‘광화문 복원 의궤’
0 영국인 하워드 리드 ‘광화문의 부활, 잃어버린 빛을 찾다’-광화문 다큐멘터리-
- 금강송 벌목 현장까지 참가-슬픈역사, 끈질긴 생명의 문,
한국의 얼굴, 빛의 미소를 짓다 등 3부로 구성-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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