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시장 43 (2권 1. 김홍신, 펌글)
불빛 신호가 왔다.
두 사람이 성역을 나서고 있다는 신호였다.
우리는 살금살금 기어나가 대문 옆에 바짝 붙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두 사내를 해치우고 안으로 문고리가 닫히지 않게 해둬야만 했다.
나는 살금살금 기어서 개나리숲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윽!"
사내가 내 손에 잡혀 뻗어 누웠다.
나는 사내를 끌고 올라가 공격조에게 인계했다.
공격조는 사내의 옷을 벗기고 재갈을 물려 나무에 묶었다.
"형, 제법 어울리는데요."
애들이 작은 목소리로 내 차림새가 그럴 듯하다고 말했다.
얼핏 보아서는 독생성자의 보좌역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사내 둘을 잡아내고 문고리가 닫히지 않게 돌멩이를 세웠다.
안에서 다른 인기척이 없다는 신호가 왔다.
"옷 벗겨 입고 잘 묶어 둬."
내 명령대로 애들은 민첩하게 움직였다.
나는 애들이 옷을 다 입자마자, 허리를 펴고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셰퍼드 두 마리가 우리를 올려다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앞장 서라, 빨리."
애들이 앞장 섰다.
나는 표창을 꼬나 쥐고 셰퍼드를 향해 내리꽂았다.
두 마리가 순식간에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가 컹컹거리며 쓰러졌다.
애들이 달려들어 입마개를 씌워 담 밑에 처박았다.
현관문을 슬쩍 밀었다.
소리 없이 현관이 열렸다.
내가 앞서고 애들이 뒤따라 들어왔다.
응접실엔 아무도 없었다.
"지금부턴 한방에 애들을 해결해야 돼. 알겠지?"
녀석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 벗겨 입었던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졌다.
응접실 옆에 있는 방문을 벌컥 열었다.
"누구냐?"
붉은 전등 밑에 나신을 드러낸 사십대 사내가 보였다.
그의 목 밑에 날카로운 칼 끝이 금방이라도 찌를 듯 버티고 있었다.
침대 속엔 나이 어린 소녀가 얼굴을 가리고 누워 있었다.
얇은 이불을 들추자, 실오라기 한 점 걸치지 않은 채 수그리고 있었다.
사내는 교주가 아니었다.
독생성자의 수제자라는게 그의 목걸이에서 대번에 들어났다.
사내를 묶었다.
발가벗은 사내의 살집은 탄력있게 좋았다.
재갈을 물렸지만 악쓰는 소리가 새어나갈 만큼 강했다.
소녀를 이불로 싼 채 묶었다.
소녀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짜아식, 병아리 끼구 자빠져서 세상 모르고 있어."
애들이 사내의 목뼈를 가격했다. 사내가 나뒹굴었다.
이곳에 들어온 여자 신도의 최초가 이러한 것이라는 걸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미나가 이런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도 이런 작태 때문인 것 같았다.
여신도는 나이에 상관없이 이런 꼴을 당해야만 했다.
이것이 그들의 교리이기도 했고, 배반할 수 없게 만드는 올가미이기도 했다.
남자 신도들도 마찬가지로 빠져들었다.
집단 혼음으로 남자 신도들의 본능을 이곳에 묶어두는 것이었다.
예배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성전의 모든 불은 꺼진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성대한 집단 혼음 파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번 빠져든 신도들은 헤어나올 수 없는 올가미를 뒤집어쓰게 되고, 배반할 수 없는 약점을 잡히게 되는 것이다.
천국직행교의 말로를 볼 수 있는 날에 가서야 비로소 이들의 전모를 알 수 있을 만큼,
이들은 모든 것이 철저한 비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소녀를 응접실로 끌어냈다.
사내가 입을 열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소녀를 끌어낸 것이었다.
"바른 대로 대지 않으면 죽인다."
소녀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직 입교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골수 신도라면 이렇게 떨진 않을 것 같았다.
"미나라고... 여기선 선녀인데, 그 여자를 알겠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소녀에겐 대선배이고 어쩌면 소녀의 일상생활을 지도하고 감독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이 이곳의 규칙이었다.
"지금 어디 있어. 바로 대."
소녀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칼끝이 무서운지 눈을 감고 있었다.
"저.... 지옥에요."
"뭐라구? 지옥!"
나는 그 순간 미나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왜? 지옥이라니."
내 격한 목소리였다.
애들이 내 등을 잡았다.
"진정해요, 형."
"이 자식들 다 죽인다."
나는 허리띠 속의 표창을 전부 꺼냈다.
소녀가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씰룩거렸다.
"지하실 말예요. 이 아래 지하실요."
"미나가 지하실에 있단 말야? 시체를 거기다 뒀어?"
"아녜요. 미나 천사는 살아 있어요. 지옥이라고 해요. 여기선."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곳에선 내가 갇혀 있던 지하실을 지옥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거기 열쇠 어디 있어?"
"전 몰라요. 천사들께서 간수하니까요."
"누구? 저 안에 있는 자식도 알아?"
"그럴 거예요."
소녀를 다른 방에 넣고 우리는 사내가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내는 묶인 줄을 끊어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지옥 열쇠 어디 있나?"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결코 말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의 목을 자른다 해도 그들은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정도였다.
"이 새끼, 이거 비틀어 줘."
나는 악이 받쳐 이렇게 말했다.
애들이 달려들어 사내를 헌집 벽 털어내듯 갈기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지하실 열쇠를 찾아낼 수 없었다.
사내는 초죽음이 되어 방바닥에 뻗어 누웠다.
"폭파할까요."
"안 돼. 사람이 다쳐. 지하실 속에 있는 사람 귀청 떨어져."
나는 지하실로 뛰어 내려갔다.
철문 위쪽의 창으로 미나를 불렀다.
"열쇠는 일등천사 서랍에 있어. 응접실에 크게 써 있어."
카랑카랑한 미나 목소리였다.
나는 응접실로 다시 뛰어가 일등천사라고 씌어 있는 서랍을 부수었다.
2층에서 사람 소리가 왁자하게 들렸다.
지하실 문을 열고 나오자, 독생성자의 제자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애들이 솜씨 있게 파이프를 휘두르고 있었지만 위험했다.
"미나, 안내해라. 어서, 빨리!"
미나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애들을 데리고 나갔다.
나는 닥치는 대로 표창을 던졌다.
앞장 선 제자들부터 차례차례 고꾸라졌다.
대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방어조가 불빛으로 공격을 개시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손을 들고 공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개들이 숲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갑자기 주위가 칠흑으로 변했다.
전깃줄을 약속대로 모조리 잘라 낸 것이었다.
성전 안에 있던 신도들이 집단으로 어둠 속을 뚫고 뛰어나왔다.
우리는 계획했던 대로 철수를 시작했다.
우리가 풀어놓은 개들이 정신없이 날뛰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개를 불러. 어서!"
내가 소리쳤다.
호루라기 소리가 흩뿌려졌다.
"성공입니다."
길을 안내하던 애가 숨가쁘게 말했다.
대기조에게 신호를 보내게 했다.
성전 쪽에서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뒤따르지 못하도록 휘발유를 부려놓은 곳에 불이 당겨진 것이었다.
산을 타고 옆으로 돌았다.
성근이가 스몰 라이트를 켠 채 미나와 공격조를 태우고 있었다.
나머지 차량이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개를 실은 화물차가 먼지를 일구며 쑤셔박힐 듯 달렸다.
나는 마지막 차에 올라탔다.
뒷산이 붉게 물든 듯이 밝았다.
아우성 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다.
"전속력, 달려."
나는 통쾌하게 소리쳤다.
'하나님, 봐주실 때도 다 있으십니다.
저런 무리는 진작 뿌리를 뽑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여태 놔둔 건지 모르겠습니다.
성황당을 믿던 저 착한 백성들에게 이게 무슨 작태란 말입니까.
하나님. 성황당은 미신의 본거지가 아니었습니다.
성황당은 우리 백성들이 마을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던 병기고였습니다.
옛날에는 방어무기가 두개골이었고 공격무기라고 해봤자 돌멩이밖에 더 있었습니까.
우리 백성들이 돌멩이를 주워모아 병기창고를 마을 어귀에 만들어 놓고,
침략자들과 싸우던 고마운 파수병이 바로 성황당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백성들이 그곳을 고맙다고 떠받든 것입니다.
하나님. 뭐 좀 알고 없애든지 해보세요. 답답하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