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그림 그리기 '우아한 시체'- 가족과 친구와 함께 그려보자그래나무 2019. 6. 11. 17:21
아이들과 즐겁게 했던 그리기 놀이를 소개하려고 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했던 공동 작업으로, '우아한 시체(Cadavre exquis)' 라 불리는 이 놀이는 1925년경부터 시작되었다. 시작은 개인이 종이 위에 한 단어씩 쓰고 이를 가린 후 옆으로 넘겨 그 단어를 쓰게 하는 집단적 유희였다.(영어로는 Exquisite Corpse) 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첫 문장이 '우아한 시체가 새로운 포도주를 마실 것이다 Le cadavre exquis boira le vin nouveau’였고 였고 이후 이 공동작업의 이름을 '우아한 시체' 놀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놀이는 곧 그리기로 이어졌다. 종이를 넷으로 접어 한 면에 머리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하면 양쪽 끝 선만을 연결해서 다음 사람이 나머지를 그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아래 이미지는 초현실주의자들이 했던 작업이다. 자세히 보면 종이 네 군데에 접혔던 흔적이 보인다. 이브 탕기, 호안 미로, 막스 모리스, 만 레이 이렇게 4명이 작업한 것으로 서로 앞사람이 무엇을 그렸는지 모른 채 이어서 그린 것이다. 혼자서 그렸다면 이런 재미있는 형상들을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런 놀이를 했을까?
왼. “Cadavre Exquis” by Max Morise, Man Ray, Yves Tanguy, Joan Miró, 1927 오. “Cadavre Exquis” by Yves Tanguy, Joan Miró, Max Morise, Man Ray, 1927
20세기 초에 일어난 초현실주의는 전쟁과(1차, 2차세계대전) 역사적 사건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당대 유럽은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이러한 극단적 대립은 절대적인 이분법적인 사유가 지배적이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이분법적 세계관을 지향하기 위해 그동안 인간 정신에서 억압되어 왔던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고자 했고, 서로 다른 요소들이 통합 가능한 수평적 관계를 제시함으로써 당대의 모순점을 끌어안고자 했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한 상황 속에서 만나게 되는 지점을 추구한 것이다.
'우아한 시체'와 같은 놀이 또한 초현실주의자들이 추구했던 다양한 실험들 중 하나이다. ‘우아한 시체’ 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린 그림들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새로운 이미지들로 창조되었고, 개인 각자의 상상력이 표현된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림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그들이 공유하는 공동의 가치도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서로의 의견과 생각을 주고받는 상호 소통의 관계적 삶 또한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묘하면서도 시적인 이미지들이 창조되었다.
어쨌든 이런 배경들을 다 떠나서 가족끼리 친구끼리 정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놀이이다. 그것도 종이와 연필만 있다면 말이다.
재료
종이, 연필 또는 펜(색연필, 사인펜 등 채색재료는 선택)
방법
1. A4 크기의 종이와 연필을 준비한다.
2. 3등분, 또는 4등분으로 접는다(세명이면 3등분, 두명이나 네 명이면 4등분이 좋겠다. 정해진 것은 아니고 3등 분도 해보고 4등 분도 해보고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해 보자. 각자 한 장씩 가지고 시작해서 다음으로 넘겨도 되고 한 장만으로 해도 된다.)
3. 윗부분부터 머리가 될 부분을 상상하여 자유롭게 그린다. 다음 사람이 연결해서 그릴 수 있도록 밑으로 살짝만 삐져나오게 그리면 된다. 다음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뒤로 잘 접어서 넘겨준다.
4. 다음 사람은 윗부분을 알지 못한 채 삐져나온 선을 연결하여 중간 부분에 들어갈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고 역시 다음 칸으로 선이 조금 삐져나가게 그린 다음 보이지 않게 뒤로 접어서 다음 사람에게 전달한다.
5. 마지막 사람은 아래 부분에 들어가면 좋을 것을 상상하며 그린다.
6. 다 완성되면 펼쳐서 다 같이 그림을 감상한다.
흥미진진
3등분 하여 세명의 초등학생들이 그린 작업
4등분 하여 네명의 초등학생들이 그린 작업
4등분 하여 네명의 초등학생들이 그린 작업
4등분하여 부모와 아이들이 진행한 작업. 채색을 해도 좋다. 아이들은 똥을 참 좋아한다.
위의 이미지들을 여러개 중 몇 개를 추린 것인데 다 살펴보면 어느 하나 재밌지 않은 게 없다. 마지막에 전체 그림이 공개될 때의 기대감과 결과에 대한 즐거운 웃음소리는 경직되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풀어지게 한다. 그림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가 전체의 그림을 다 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고 너와 내가 만들어낸 새로운 창조물에 다들 만족스럽다. 혹시 내 아이가 뭘 그려야 할지 몰라 주저해도, 상상력의 부재로 대충 단순하게 그려내도 그것에 대해 지적하지 않는다. 명심하자. 이것은 놀이이다. 어떠한 목적과 목표로부터 자유롭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짜인 스케줄이 너무 빼곡해서 왔다 갔다 하기에 바쁜 아이들일수록, 다시 말하자면 뭔가를 배우기에만 바빴던 아이들일수록 내가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에는 두려워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우리 아이들에겐 독서와 놀이와 빈둥거릴 시간이 꼭 필요하다. 놀이를 통해 이완된 신체를 경험해본 사람이, 놀이를 통해 자발적인 동기를 가지고 스스로 평가를 내려본 사람이 어떠한 목표가 주어졌을 때 집중해서 추진력 있게 나아갈 수 있다. 이 놀이는 재밌고 특이한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즐거운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뭐든지 한번에 다 되는 것은 없다. 무던하게 꾸준하게 이번 한 번을 다음을 위한 시간으로 차곡차곡 쌓아가자. 그럼 두번째 세 번째는 분명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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