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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에 이어서 이번에는 히브리서 강해를 연재합니다.
히브리서는 야고보서보다 분량이 많고 구절마다 해석해야 할 부연 설명도 더 많기 때문에 언제 끝내겠다고 목표를 정하고 시작하지 않습니다. 한달 이상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단기에 마무리할 목표를 잡지 않고 매 구절마다 조심스럽게 해석하면서 진행하겠습니다.
<히브리서 개관>
히브리서의 저자는 명백히 밝혀져 있지 않아 확실히 지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13장 뒷부분은 분명 사도 바울의 말투로 확인되므로 히브리서 저자를 보통 사도 바울로 보고 있습니다. 피터 럭크만 박사님은 사도 바울이 그의 회심 직후에 히브리서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갈 1:17 참조), A.D 35년 경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 시내 산으로 내려가 홀로 묵상하며 여러 날을 보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히브리서는 교회시대와 환란시대 사이의 "과도기적 서신서"인데, 야고보서와 쌍벽을 이루는 "대환란 서신서"라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에는 이스라엘 집의 새 언약(new covenant)이 언급되며 이 책 전체의 주제는 "더 좋은 일들"(히 6:9)입니다. 더 좋은 소망(7:22), 더 좋은 희생제물들(9:23), 더 좋은 부활(11:35), 더 좋은 본향(11:16)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히브리서에는 오직 믿음이 구약 율법을 대체했다는 내용이 전혀 없으며 로마서와 고린도후서 등에서 발견되는 사람이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교리 대신 믿음과 행위를 동시에 강조하는 대환란적인 교리들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서는 대환란에 대해 전혀 모르는 해석가들, 은혜복음 관점으로만 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 투성이입니다.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이나 "신약 교회"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히브리서 본문의 많은 분량이 율법과 제사에 대한 복잡한 설명들로 채워진 이유를 알 수가 없고 구약 모형론을 통해 조금 이해해 보려 시도하지만 핵심은 짚지 못합니다.
앞서 제가 시리즈로 연재했던 야고보서는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대환란 성도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서신서라고 말할 수 있고, 히브리서는 야고보서보다는 좀더 이스라엘 대환란 성도들에게 맞추어진 서신서로 보면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서신서의 제목도 "히브리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1장부터 설명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1-9>
1 전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여러 번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2 이 마지막 날들에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를 통하여 그분께서 세상들을 지으셨느니라.
3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케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 있는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니
4 그는 이처럼 천사들보다 더 월등하게 되셔서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이름을 유업으로 받으셨느니라.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 중 어느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며, 또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에게 아들이 되리라.”고 하신 적이 있느냐?
6 또다시, 그분께서 첫째로 나신 분을 세상으로 데려오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하라.”고 하셨으며,
7 또 그 천사들에 관해서는 말씀하시기를 “그는 자기 천사들을 영들로, 자기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고 하셨느니라.
8 그러나 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무궁하며 주의 왕국의 홀은 의의 홀이니이다.
9 주께서는 의를 사랑하고 죄악을 미워하셨나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께서 주께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의 동료들보다 우위에 두셨나이다.”라고 하셨느니라.
1 전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여러 번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히브리서는 내용을 더 심도있게 살펴보기 위해 많은 절을 한번에 인용하지 않고 절별로 살펴볼 것입니다. 1절에서 "조상들에게"라고 하는 말씀이 등장하는데, 이 조상이 누구를 말하는지는 혼동할 필요가 없지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런 히브리인들의 선조들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씨(갈 3:29)"라고는 할수 있으나 아브라함이 우리 육적 조상은 아닙니다. 1절은 이 서신서가 교리적으로 히브리인에게 향하고 있다는 점을 처음부터 명백히 하고 있으니 잊지 말고 계속 읽어나가야겠습니다.
2 이 마지막 날들에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를 통하여 그분께서 세상들을 지으셨느니라.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마지막 날들"에 대해 올바로 정의내려야 히브리서가 실제 "마지막 날들"(7년 대환란 중에서도 그 후반기)에 살아가고 있는 히브리인 대환란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교리임을 확증할 것입니다. 무후천년 학자들은 "마지막 날들"이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거짓말하는데 카톨릭과 제도 개신교는 이 주장대로 2천년 동안 인간의 힘을 통해 "천년 왕국을 이룩하기" 위해 애써 왔습니다.
다른 서신서들에서 동일한 "마지막 날들"을 찾아봄으로써 의심을 지워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으리라. 그러면 너희 아들들과 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며 너희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사도행전 2:17).
또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디모데후서 3:1).
먼저 알 것은 이것이니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베드로후서 3:3)
이 구절들에서 말씀하시는 "마지막 날들"에 대한 진리는 그 날들은 아직까지 오지 아니하였다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와 베드로후서가 기록될 당시 "마지막 날들"은 아직 미래시제였습니다. 사도행전의 경우에는 베드로가 요엘 2:28-32를 인용하여 설교했던 것인데 요엘의 예언은 사도행전 2장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은 "모든 육체 위에 부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시대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몸 안에 들어오시면 죽은 영이 거듭나는 것이며 "육체 위로 성령이 부어지는 현상"은 없습니다. 물론 은사주의자들은 이것을 두고 많은 거짓말을 합니다. 그들은 육체에 징표가 나타나는 것(위조 방언, 위조 신유)을 곧 "성령의 기름부음"이라 장황하게 자랑하는데 성령께서는 죄인의 육신을 지금 살리시는 게 아니라 죽은 영을 살리시는 것입니다.(로마서 8:9)
1절에서 강조되는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들"과 관련되어서 곧 오실 재림주이시며, "만물의 상속자"로서는 천년왕국 통치자가 될 왕이시고, "세상들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대환란 끝에는 천사가 "영원한 복음"(계 14:7)이라는 것을 전파하는데 이것은 은혜 복음이나 왕국 복음과도 전혀 다른 것입니다.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분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원천들을 지으신 그분께 경배드리라.”고 하더라(요한계시록 14:7).
대환란 때는 두 가지 복음이 선포되는데 이스라엘인 14만4천 동정들을 통해서 "왕국복음"(마 24:14)이 온 세상에 선포된 후 대환란 끝 무렵에는 하늘의 천사가 "영원한 복음"을 선포할 텐데 그것은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단순한 내용입니다.
히브리서 1:2 본문은 왕국복음과 영원한 복음이 대환란 때의 복음임을 보여주는데, 오직 은혜관점으로만 히브리서를 본다면 이를 검증할 수 없습니다.
3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케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 있는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니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신데, 그래서 그분은 영적, 실제적 "빛"으로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요 1:9; 12:46).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해서 적그리스도를 제시할텐데 그래서 사탄은 "빛의 천사"(고후 11:14)를 보냅니다. "천사"라는 말은 그 앞의 말을 받아서 "현현하다(나타내다)"는 의미를 가질 때가 더러 있습니다. 사탄이 "빛의 천사"로 나타난다는 것은 "빛의 현현"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예수님을 모방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하나님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기도 하신데(골 1:15), 모슬렘들은 "하나님은 아들이 없다"고 마호멧이 지어낸 코란이 거짓말한 대로 굳게 믿고 있습니다. 마호멧의 알라는 이름도 없고(알라는 "신"이라는 아랍어 일반 명사), 아들도 없고 인격도 모호하며 육신으로 나타난 적도 없는 디즈니랜드의 미키마우스 god에 불과합니다.
주님께서 만유인력을 창조하셨고 유지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뉴턴에 의해 증명되기 수천 년 전부터 성경은 증거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는 북쪽을 빈 자리에 펼치시고 땅을 허공에 매다시는도다(욥기 26:7).
주께서 만물을 놓아버리시면 즉시 우주는 대폭발(빅뱅?)을 일으켜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우주는 빅뱅으로 창조되지 않았지만 사라질 때는 거창한 대폭발을 일으킬 것입니다. 어리석은 스티븐 호킹과 어리석은 아인슈타인은 세상을 붙들고 있는 분이 주님이 아니라고 말하더라도 주님께서 그 교만한 인간들을 포함해서 우주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붙들고 있던 손을 놓으시면 우주에 대단한 격변이 올 것입니다(벧후 3:10, 12, 계 20:11).
주님은 아직 "위엄있는 분"(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성도들을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 중보는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 재림하시기 직전까지 이어집니다. 주님은 대환란 끝까지 하늘의 대제사장으로 역할을 수행하실 것인데, 그래서 히브리서는 여전히 대제사장으로 계신 주님에 대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4 그는 이처럼 천사들보다 더 월등하게 되셔서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이름을 유업으로 받으셨느니라.
주님께서 받으신 천사들보다 훨씬 뛰어난 이름은 바로 "예수"라는 이름입니다(눅 1:31-33, 행 4:12, 빌 2:9-11). 이 이름은 잉태되기 전에 먼저 천사가 마리아에게 알려준 이름이었습니다. 이 이름은 어떤 천사들의 이름보다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이 "예수"라는 이름은 주님께서 지상생애를 사시면서 유업으로 받으신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셨다면 인류에게 "예수"라는 이름이 부처나 마호멧과 다른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십자가 구속을 이루셨기에 그 이름은 이름 자체가 죄의 용서를 말하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라는 이름은 지극히 존귀한 주님의 "유업"입니다.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 중 어느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며, 또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에게 아들이 되리라.”고 하신 적이 있느냐?
시 2:7을 인용한 이 말씀은 주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임을 가르치는 교리적 구절인데, 칼빈주의자들은 이를 완전히 그르쳐 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알려지지 않은 먼 과거"에 어디선가 태어나신 하나님이라고 추측해 버리는데, 한글개역에는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를 "오늘날"이라고 바꿔 놓았습니다. "오늘"은 정확한 오늘을 말하지만 "오늘날"은 대략적 시기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이 삼위일체에 관해 저지르는 이 치명적 실수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버금가는 오해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된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오늘"은 영원 전의 어떤 하루가 아니라 주님께서 인간 마리아의 태에서 태어나신 "오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사람의 모양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사람의 모양으로서 피조물 인간이 되셔서 주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원래 주님은 "말씀"(요 1:1)이셨지만(또는 지혜. 잠언 8장) 육신으로 태어나셨을 때 그분은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과 부자 지간이었듯이 하나님과 부자 관계를 형성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다른 별칭은 "마지막 아담"이십니다(고전 15:45).
6 또다시, 그분께서 첫째로 나신 분을 세상으로 데려오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하라.”고 하셨으며,
7 또 그 천사들에 관해서는 말씀하시기를 “그는 자기 천사들을 영들로, 자기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고 하셨느니라.
6절이 교리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재림이 아닌 그리스도의 초림입니다. "첫째로 나신 분"의 의미는 주님께서 만물의 머리가 되시는 창조주라는 것이고, 그분이 육신으로 태어나시기 위해서는 아버지에 손에 이끌려 "세상으로 데려와 인간 여자에게서 태어나셔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이 그분에게 경배하는(눅 2:13,14) 사건이 실제 일어났습니다.
7절은 시편 104:4을 인용한 것인데, 시편 104편은 보통 시편 말씀들이 그렇듯이 "지상 재림"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7절의 후반부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하는데, 이 구절은 쉬운 말씀은 아닙니다.
저는 "자기 천사들을 영들로"와 "자기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와 앞뒤로 맞춤 구절인 것으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천사들"과 "자기의 사역자들"이 별개 존재가 아니라 같은 대상을 지칭한다는 것입니다.
그리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은 성도가 몸이 변화되면 "하늘의 천사들처럼 된다"고 말하기도 하고(마 22:30, 막 12:25, 눅 20:36) 실제로 재림하시는 주를 따라서 내려오는 성도들은 천사처럼 보입니다(마가복음 8:38, 데살로니가후서 1:7). 사도 요한에게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한 그 천사는 자신이 요한의 동료 종이라고 밝혔습니다(계 19:10; 22:9). 아마도 계시록을 기록케 인도한 그 "천사" 양반은 "선지자 다니엘" 일런지도 모릅니다. 다니엘서와 계시록은 매우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저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저는 분명히 다니엘일 것이다라고 확정하지는 않았고 그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상을 종합하여 설명하자면, 물론 이 글에서 "천사론"을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6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누가복음 2장 사건을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7절의 "또 그 천사들"의 지칭은 6절의 초림 때 찬양한 천사들일 수도 있지만 사람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7절의 천사들의 해석은 진짜 천사거나 성도들이거나 선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오는 성도들(우리와 환란성도들)을 언급한다 여깁니다. 주님께서는 재림하시면서 우리들을 그저 달고 오시는 게 아니라 "사역자들"(ministers)로 삼으셔서 뭔가에 쓰신다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주와 함께 2억의 적그리스도 UN 대군을 화염으로 태워버리는 "전쟁 사역"(요엘 2:5)을 할 것이고, 천년왕국 때는 주님을 도와 통치 "사역"을 나누어 맡을 "사역자들"(ministers)이 될 것입니다. 주께서는 오는 세상(천년왕국)을 천사들의 지배에 맡기지 않는다고 하셨고 천사와 동등한 성도들이 다스린다 하셨습니다(히브리서 2:5).
8 그러나 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무궁하며 주의 왕국의 홀은 의의 홀이니이다.
9 주께서는 의를 사랑하고 죄악을 미워하셨나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께서 주께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의 동료들보다 우위에 두셨나이다.”라고 하셨느니라.
8절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님께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아버지)"께서 "하나님(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된 신이라고 억지쓰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항상 이런 구절을 피해다니며 살아가는데 이들은 영적으로 매우 비참하고 가련하고 눈먼 죄인들로서, 구약의 "여호와"께서 바로 육신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항상 구약만을 끼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발견되는 신성의 증거들을 제대로 공부하거나 묵상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성서와 유사하게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많은 구절들이 칼질된 개역성서를 만일 여러분이 보고 있다면 자신의 믿음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방금 저는 "주 예수"께서 구약의 "주 여호와'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이 말에 찬성하지 못한다고 발끈하고 싶으시다면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주님께 왜 이리 말씀하셨나 물어 보십시오.
8절의 "주의 보좌"는 천상의 보좌가 아닌데, 하늘 보좌는 아버지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 하늘 보좌가 아닌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 예루살렘에 자기 "보좌"(다윗의 보좌, 눅 1:32)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의의 홀"(창 49:10, 민 24:17) 또는 철장(시편 2:9, 계 2:27; 19:15)으로 인류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9절에서 "기쁨의 기름"은 구약에서 "기름"이 성령을 예표하기 때문에 주께서 요한에게 침례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 위에 임한" 사건(마 3:16)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고 실제 그때 들려왔던 하나님의 음성의 내용과도(기쁨) 일치합니다(마 3:17, 벧후 1:17).
이 사건(비둘기 같이 성령이 내려오면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온 것)으로 인해 주께서는 주의 "동료들"보다 우위에 있게 되셨는데,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으로 재창조하신 형제들(즉 우리)보다도 우위에 있으십니다. 우리는 거듭날 때 누구도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처럼 보이게 내려오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식으로" 성령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모든 면에서 닮으셨지만, 그러나 그분은 독생자이시기 때문에 이런 독특한 면모를 갖고 계십니다.
<정리>
이렇게 해서 히브리서 개관과 1장 앞부분 해석을 마쳤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히브리서는 매 구절구절마다 최대한 의미를 자세히, 자세히 설명하려고 애쓸 것이고 대충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다 싶을 정도로 볼 것입니다. 그것은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글을 보시고 똑같은 입장이 되어 성경을 연구하실 여러분을 돕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까지 성경을 읽고 공부해 오면서 너무 많은 구절들을 불성실한 방법으로 건너 뛰어가며 "핵심만 캐취하기 위해" 애쓰며 읽어 왔습니다. 한 구절이 다 이해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구절로 캥거루처럼 건너 뛰어 다니며 점프식 독서들을 많은 분들이 해 왔을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게 되면 깨달음이 점점 줄어듭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성경 공부는 대충 대충 하는 자세는 지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목적으로 히브리어와 헬라어 공부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겠다고 고민하고 있다면 그 헛된 일을 즉시 멈추십시오. 그리고 왜 내 믿음과 성경 이해가 진보가 없는지 다시 근본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완벽히 공부한 박사들도 시대와 세대를 모르고 읽으면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같은 본문에서는 헛방망이질만 휘두릅니다. 여러분은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에 의해 일깨워진 지각으로 읽어야 하고 그리고 주께서 여러분에게 지혜를 주셔서 구절들을 흘려버리지 않고 모두 읽을 수 있게 "주의력"을 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이단과 거짓 교사들은 "영적인 주의력 산만(결핍)"에서 그들의 낭떠러지행 행보를 시작한 것입니다.
모든 거듭난 사람은 말씀을 먹고 이해할 수 있는 성령에 의한 공통된 체질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사용하지 않아서 그 체질을 잊어버렸을 따름입니다.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에 주의하듯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베드로후서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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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야고보서에 이어 히브리서도 하시니 수고가 많으십니다.잘읽겠습니다.
풍성한 은혜 얻으시기 바랍니다. 자주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6 절을 초림으로 해석하시는데,
<또 다시> 세상으로 데려올 때인데,
그럼 초림 이전에
성부께서 성자를 세상에 데려온 적이
있는가요?
또다시 뒤에 쉼표가 찍힌 거 보이시죠 그 또다시는 그냥 문장 연결이지 "세상으로"를 수식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셨다 와 비슷하게 은환님이 문장을 착각하신 겁니다.
그래요,
어떤 성경을 보시는지 대충 알겠지만,
개역개정에는 없네요,
개역개정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어느 성경이 더 옳다고 보십니까?
<다시>가 앞 문장에 이어서 다음 순서를 가리킨다는 말이
무슨 연관이 있나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왜 킹제임스는
컴마를 찍었을까요?
어쨋든 6절은 문맥이 초림을 선명히 그리고 있기에 님께서 개역에 컴마가 빠져있다는 것으로 의문 제기를 하신대도 별 도움은 안 될 것 같군요
어떤 유사점의 해결방법은 그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문제 느낌은 그게그거다 ?
은혜복음 과 십자가의 복음의 그 공통점과 차이점은?.
나의 답은 ,
문제가 문제다.
답 내실분 혹시 인나요?
성경책은 가지고 답을 내세요? 배우고 싶어요. 솔직히 잡소리 이제는 질립니다. 존경하는 아워데일리 브래드님 , 힘내세요 ,
1장에서 천사와 그리스도의 비교를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원래 성자 하나님이셨던 신분과,
그의 구속사역으로 인하여 재림의 영광을 곳곳에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10절의 창조와 11-12절의 새창조,
높아지신 그리스도의 모습(13절),
그렇습니다.
6절의 그리스도의 모습이 초림인지 재림의 모습인지는
논란이 많지만, 학자들은 두 가지로 봅니다.
<다시>가 문장 앞에서 문장 전체를 지시하는지 - 이런 경우 <강림>으로 봅니다.
<다시> 들어오실 때에를 지시한다면 당연히 재림으로 봅니다.
첫번째 경우도 강림 자체로 보지, 그것이 초림이다라고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양심적으로 문장전체에서 볼 때,
어느 것이 매끄럽게 맞을까요?
성부께서 성자를 데리고 온다는 사실이 성경에는
아주 많이 나오는데,
그런 구절들이 부담으로 다가오니 사람들은
자꾸만 초림으로 보려 합니다.
혼인잔치 비유는 잘 이해하지만,
정작 아버지가 아들의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아들과 함께 세상에 오신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움츠려드는 이유가 뭘까요?
히브리서 1:5,6,7은 각각 시편 2:7, 97:7, 104:4을 언급하는 것입니다."또다시"와 "또"로 계속 접속되는 것은 그 언급 순서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첫째로 나신 분을 세상으로 데려오심"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합니다. 성부께서 초림때는 주님을 데려오셨는지 몰라도 재림은 주님께서 스스로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첫째로 나신 분"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처음" 태어난 분이란 것이지 주님의 부활을 말하는 의미로 여기서 사용되진 않았다 봅니다. 물론 이 표현은 부활에도 적용됩니다 요한계시록 1:5은 주님의 부활을 말씀하지만 히브리서 1:6은 초림을 말합니다.
그리고 6절을 오은환 님과 같이 재림문맥으로 맞추려 한다면 "또다시"가 맨 앞에 있을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첫째로 나신 분을 '또다시' 세상으로 데려오실 때에"라고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다시는 그렇게 접속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편 97:7이 히브리서 1:6의 근거구절은 맞지만 성경에서는 종종 재림 언급의 구약 본문을 신약에서 초림상황으로 응용하실 때도 있습니다.
죄송한대요 오은환 님은 삼신론자 같아요? 문제
하나 창조주하나님과성자하나님의 공통점과차이점은 무엇 인가요? 어이가 없어서요 ㅈㅅㅇ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성부) 그와(성자)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4:14)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문제 두가지. 는 삼신론과 행위구원론
아니 공통점은 이거고 차이점은 저거다 라고 말 해 주세요
성경구절 말구요
나누지 않는 사람 에게는 성경도 어짜피 말장난 수준이죠
누가 성경을 배제 한다고 해요,성경책없이 성경을 얘기 하자는 거지요
브레드님,
히1:6절,
...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이 말씀은 시편97:7절을 인용했다고 봅니다.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학자들은 여기에 나오는 신들을 이방 잡신이나
혹은 천사들로 보고 있습니다(주석들 참고).
문제는 시97편이 전체적으로 주의 재림을 묘사하며,
그 때 나타나는 심판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점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조각한 형상들, 우상들은 헛것들이기에(하박국 2:18) 성경은 우상들을 신이라고 인정하는 적이 없습니다. 성경이 피조물을 신이라고 할때는 삼위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 혹은 천사들을(요한복음 10:34) 그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1:7도 기본적으로 진짜 천사를 말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보다는 거듭난 자녀들을 언급한다고 보았습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바 이방 우상 잡신들을 시편에서 말씀하신 그 신들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우상들은 생명이 아님으로 하나님께
경배할 수 도 없습니다.
그러면 누구일까요?
성도들이나 천사들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이
그들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시97편 본문이
초림인가 재림인가를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너무 통감합니다 깊이있는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이 또 기다려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님께서 하신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 예루살렘에 자기 "보좌"(다윗의 보좌, 눅 1:32)를 세우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보좌에 앉아 왕노릇하는 나라가 천년왕국을 말하는지요?
둘째 천년왕국 후에는 누가 다스리는지요?
다윗의 보좌에 지금 누가 앉아있나요. 유대인들은 계속 그걸 기다리는데 아직 아무도 그렇게 안했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다윗의 보좌에 앉으시는데, 다윗은 주님 발치에서 작은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에스겔서에 나옵니다.
천년왕국 후에는 계속 예수님이 다스리십니다. 다만 그때는 하나님도 연합통치하시는 형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