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의 해를 위한 생태영성
존중
그렇게 '노란 조끼'를 입은 나무들을 산책로 곳곳에서 만나며, 한 그루의 나무라도 살리고자 했던 이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산책로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나무를 베어 내면 일하기 좀 더 수월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남 나무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살아갈 구 있도록 구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연을 여가 활동의 장소나 인간을 위한 자원 창고 정도로 여기는 현대 문명 속에서 생태영성은 이 창조 세게를 '다시 보자'고
초대합니다.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자연을 다시 보면서, 그것이 누구의 작품인지를 기억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하느님 을 중심에 두고 우리가 속한 창조 세계를 다시 바라보면, 다른 피조물은 단순히 인간을 위한 배경이 아니라
그들 고유한 방식으로 창조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무는 단순히 땔감으로 합판 원료가 아니라
자기 삶과 역활을 가진 하느님의 창조물임을 알게 됩니다.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셨다면, 각각
의 피조물은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찬미받으소서」 회칙이 강조하듯,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도 하느
님 보시기에 고유한 가치"(69항0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창조 세계의 다른 피조물은 인간을 위한 '효용 가치'와는
별도로 그 자체로 좋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내적 가치'를 지닙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우리 눈에 매력적으로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피조물은 그 안에 하느님이 부여하신
생명의 가치와 고유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다른 생명체들도 창조주로부터 받은 저마다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우리는 그들의 고유한 가치와 법칙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피조물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창조 세계 안에 사는 생명은 그 자신의 습성과 모습
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지구 공동체에서 우리 인간만 안녕할 권리가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도 하찮게 여겨지지 않고 쉽게 희생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도 우리 처럼 하느님의 작품임을
잊지 않고 귀하게 대하고 중요시해야 합니다.
최근 들어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ㅇ이 높아지면서 동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들이 늘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통해 다른 존재들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이 안녕할 권리를 존중하려는 변화를 봅니다. 예를 들어, 도로와
철도 건설로 단절된 생태계를 연결하고 야생동물의 원활한 이동을 돕기 위한 '생태 통로'가 전국 곳곳에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새가 투명 유리창이나 방음벽을 장애물로 인식하지 못해 충돌하는 사고를 방지하고자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운동도 활발합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들이 더 큰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노략들은 '자연에 대한
존중'을 꽃피우는 데 마중물 역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존재의 권리를 종중하고 보호하자늦ㄴ 이야기는 그 대상이 동식물에 국한되지 않고,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
특히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데, 그렇다며 자연 존중과 인간 존중은 분리 되어 있지
않고 연결된 주제입니다. 문제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인간의 유용성'에 매몰되는 경웅가 많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게 쓸모 있어 보이면 가지 있고, 그렇지 않으면 더 가치 있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 때문에 윌는 종종 그 존재에 깃든
'본래의 가치'를 보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사람도 그렇게 판단하고, 일부는 회생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회칙 모든 형제들
이 지적하듯이 "특히 가난한 이들, 장애인, 태아처럼 '아직 쓸모없는'존재, 노인처럼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18항)
하느님 보시기에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있을까요? 「찬미받으로서」 의 가르침을 따라 "유용성보다는 존재가 우선하는 것"
(69항)임을 되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약초'와 '잡초'를 갈라놓고 구분하는데, 하느님의 시선으로
그것을 다시 봅시다.(re) 보면 (spect)각각의 존재가 가진 고유한 가치를 마주할 수 있고, 그래서 존중(respect)할 수 있습니다.
잊지 맙시다. 불필요한 잡초는 없습니다.
'모두 다 꽃입니다.
글. 송영만 아우구스티노 신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