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고 제주도 도착하는 날부터 간만에 내려온 손님들로 며칠동안 일기도 쓰지 못할 정도로 분주했습니다. 제게는 대학선배와 동기들이지만, 그들끼리는 고교동창이기도 해서 간만의 음주가 있는 수다가 밤낮으로 이어지다보니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난 화요일, 제주도 일상으로 돌아오고나니 다시 시작하게 된 주간보호센터 생활은 준이만 재개되려던 것이 졸지에 태균이까지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보내지 않겠노라는 제 말에 대해 센터는 태균이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하며, 준이가 다시 다니기 시작하자 태균이까지 당연하다는 듯 들어가 버리니 순식간에 당연하다는 듯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3월초 연휴 때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준이는 더할 나위없는 안정세입니다. 얼굴표정도 밝고 머리두통 증세는 전혀 보이지 않으며, 약간의 편마비 증세를 보여주는 동작은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안정되어 보입니다. 준이에게는 원래 집에 가지않는 것, 그리고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는 것이 오히려 안정을 준다는 것을 이번에 깨닫게 됩니다.
특수학교 입학을 위해 집으로 돌아간 완이의 학교생활 적응도 궁금해서 계속 연락해보니, 첫 날처럼 계속해서 잘 하고 있답니다. 부모도 신기해 할 정도로 완이가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니 그저 기쁠 수 밖에요... 이 기회를 이용해서 이제는 보충제도 제대로 먹여서 발전된 모습이 퇴행하지 않고 쭉 앞으로 가야한다고 잘 설명해 주었는데, 이제 실천은 완이 부모의 몫입니다.
손님들이 와있으니 아이들 주간보호센터 가있는 시간을 이용해서 다같이 제주도 명소들을 찾아서 다녀보니, 정말 처음으로 주어진 금쪽같은 나만의 시간들인데도 마음은 결코 편치가 않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제 마음가는대로 여행지를 정하고, 싸워가면서도 즐기는 세월들이 오히려 얼마나 편했는가만 절감하고 있을 뿐입니다.
끊임없이 자기주장과 자기신변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친구와 그걸 다 받아주려는 심신의 함양이 넓은 선배 사이에서, 어찌나 기가 빨리고 피곤해지는지 빨리 원래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해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에 대해, 특히 섬세한 여자의 감정에 대한 공감기능이 너무 떨어짐에도, 이런 공감기능 부작동에 대한 인지까지 되지않아서 늘 제가 상처받기 마련인 태균이 아빠와의 공동 생활이 저에게는 늘 숙제입니다. 가장 좋은 관계 지속 방법은 거리를 두고 각자 떨어져서 일상을 유지하며 살아가면서 가끔씩 가족 재회를 하는 것인데요,
다행히 태균이 아빠가 초기 지방근무 발령, 미국 유학, 영국 연구원 체류, 공무원 퇴직 후 5년 여간의 지방대학 교수 역임 등 거리를 둘 수 있는 삶의 노정들이 있었기에 다소 불편할 수 있는 가족관계가 자연스럽게 큰 무리없이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싯점부터는 제가 영흥도행에 이어서 제주도행을 감행했으니, 거리를 두고 서로에게 감정적 부담을 주지않는 관계유지는 제가 늘 실천한 방법입니다. 어찌보면 태균이라는 존재가 곁에 있어 실천가능했기에 태균이는 제게 정말 큰 존재입니다.
그런데 며칠 동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보니 제가 늘 추구해왔던 자유로움이 어찌나 구속을 받는지 이제는 마음까지 불편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함께하는 시간 내내 들어만 주어야하는 긴 스토리들에다 (물론 들어서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수많은 과거이야기들이 이제는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태균이 아빠를 포함, 잘 실천해 온 삶의 방식인 적절히 사람관계 거리두기 작전이 얼마나 좋은 지를 절감하는 때입니다. 제 일상으로 돌아와서 나의 온라인카페에 글올리기,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구상하기 등등 그 시간들이 문득 문득 그리워졌던 요 며칠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고집스런 방향이 되어버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제 머리는 태균이가 알려준 방향대로 '문제적 행동의 뇌적 해석'이 너무 일상화되고 상습화되어서 일반적인 대화를 하기에도 어려움이 많다는 한계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일상적 대화 속에서 일부러 입을 여는 기회를 줄이려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사람이 사람에 공감하고 열린 마음을 대화 속에 녹이는 기술들이 나이들어갈수록 더 부족해지는 현상, 이것이 이번 간만에 만난 참으로 친하다고 느꼈던 오래된 친구와의 재회 속 아쉬움입니다. 반면에 아나키즘과 페시미즘이 적절히 혼합된 삶의 태도를 보이는 선배의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삶과 죽음의 대한 짧막한 언사들은 가슴을 흠칫하게 하곤 합니다.
태균이를 고려한 죽음의 계획 등이 아무래도 저의 일생 과제이다보니 그런 단계를 위한 생각의 정리들이 어쩔 수 없이 강요되는 나이임을 깨닫게 됩니다. 약간 연배들과의 만남은 그래서 의미있고도 머리아픈 구석들이 꽤 진하게 남겨집니다.
제가 먼저 지인들을 찾아서 만남을 추구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저를 찾아오는 지인들은 절대 막지 않는다가 저의 일상 삶의 모토인데 이제 이것마저 불편해진다면 안될 것 같아 머리를 비우려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픈 아이를 끌고 저를 찾아오는, 하소연 보따리 잔뜩 풀어놓고 싶어하는 부모님들과 만남이 얼마나 제게는 일상사이고 편한 것인지를 새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미 일상사에서는 흥미를 별로 느끼지 않는, 오래된 특수생활에의 편향은 어쩔 수 없는 특수삶에의 기꺼운 수용이 버릇처럼 되버린 듯 그렇게 굳어져 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는 중입니다. 몇 개 남겨진 저의 독사진조차 태균이가 찍어주던 사진들에 비하면 더할 나위없이 앞서지만 그래도 저에게 심리적 우세는 '아들이 찍어주는' 부족한 사진들입니다!
첫댓글 선생님
저도 그렇습니다
지긋지긋하다 하면서도 지원이랑 뭔가를 하고
지원이랑 여행을 가서 보통 여행객들과는 다른 여행을 즐기고 등등 이럴 때가 가장 마음 편하고 안정됩니다
비슷한 아이 키우는 엄마들과의 아이동반 모임이 가장 즐겁고요
같지만 다른 세상인 것이지요
그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사는 우리 세상에서
좋으면 되는 것이지요^^
언제나 좋은 에너지를 주시는 선생님
존경하고 신뢰합니다^^~
구구절절 얼마나 공감이 되는지, 거의 은둔자에 가까운 저와 정서적 세상은 같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태균씨가 센터에 적응만 할 수 있다면 엄청난 거라고 생각됩니다. 엄마와의 행복한 아성에서 왕자로 살다가 성밖 세상에서 덤덤한 돌봄의 평민으로 사는 느낌? 비유가 비슷하진 않는데 우야등 엄마라는 든든한 뒷배가 숨은 상태에서의 생활을 너끈히 소화한다면 정말 큰 전환점이라 생각되네요.
준이는 집으로 안 돌려보냈음 좋겠습니다.
준이가 친가에서 버려지지 않았음 좋겠습니다.
준이 몫의 유산이 당연 있을텐데, 하늘이 준이를 지켜주길 바랄뿐이네요.
태균씨 아버님은 정말 고맙습니다. 아픈 친자에게 냉정한 부들도 있는 판에 준이에게까지 살뜰하게 대해 주셨다니 제가 치유 받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