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6642]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出紅流洞[출홍류동]
出紅流洞-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
石面紛紛墨間紅(석면분분묵간홍)
山頭日日雨和風(산두일일우화풍)
人生自有傳名處(인생자유전명처)
不在鼪林鼯穴中(부재생림오혈중)
鼪=족제비 생. 鼯=날다람쥐 오
홍류동을 나오며
바위 위에 여기저기
검고 붉은 먹물 글씨
산 위에는 하루하루
비 뿌리고 바람 부네.
인생에는 본래부터
이름 남길 곳 있나니
날다람쥐 숲과 굴은
그런 데가 아니라네.
구한말 영남의 저명한 유학자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1873~1933) 이 가야산 해인사
홍류동 계곡을 찾았다. 홍류동은 계곡이 깊고 길며,
풍광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지금까지 명승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의 풍광을 즐
기던 심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절벽이든 물속이
든 빈 공간만 있으면 크고 작은 이름들을 새기고 붉
고 검은 먹물을 들여놓아서다. 나 아무개는 이 명승
을 왔다 가노라! 고 증언하는 수백년 세월을 겪은
각자(刻字)다. 거창하게 글자를 새겨 후세에 이름
을 남기려는 욕심의 서툰 흔적은 그저 아름다운 풍
광만 더럽힐 뿐이다. 이름이란 날다람쥐의 소굴인
산중의 바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남겨야 할
것이다. 천년 전 최치원은 이름 각자를 남기지 않
았어도 지금껏 홍류동의 명사로 유명하지 않은가!
자기 존재를 알리는 법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한다.
解說
안대회 成均館大 敎授 漢文學
朝鮮日報2016年06月04日(土)字A26面에서
원문=암서집巖棲集 卷六 / 詩
出紅流洞
石面紛紛墨間紅,山頭日日雨和風。
人生自有傳名處,不在鼪林鼯穴中。
홍류동을 나오며 읊다〔出紅流洞〕
석면에 붉고 검은 글씨 어지러이 보이는데 / 石面紛紛墨間紅
산 위에는 날마다 비와 바람이 쓸어대네 / 山頭日日雨和風
인생에는 이름을 전할 곳 따로 있나니 / 人生自有傳名處
이 산골 날다람쥐 사는 숲과 굴에 있지 않다네 / 不在鼪林鼯穴中
[주-D001] 석면에 …… 보이는데 :
이 구절은 홍류동 계곡의 석면에 역대로 그곳을 다년간 사람들의
이름이 무수히 새겨진 정경을 두고 말한 것이다.
이건창(李建昌, 1852~1898)도 이를 보고
“고금에 노닌 사람의 성명이, 팔만대장경보다 많네.
〔今古遊人題姓字, 多於八萬大藏經.〕”라고 읊은 시가 있다.
《明美堂集 卷3 紅流洞戲題》
[주-D002] 인생에는 …… 않다네 :
이건창의 시에도 역시 “한 글자도 적지 않은 최치원은, 오늘까지 사람들이
칠언시를 외우네.〔一字不題崔致遠, 至今人誦七言詩.〕”라고 한 구절이 있다. 《明美堂集 卷3 紅流洞戲題》
ⓒ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 김홍영 정석태 김보경 (공역)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