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1. 11;00
11월 11일 오전 11시 부산 유엔군 묘지 방향으로 머리를 향하고
잠시 묵념을 올린다.
매주 한 번씩 들르는 로또 판매점에서 11.11분에 로또복권을
사겠다고 의사를 밝히자 그 어르신은 11.11분에 발매 버튼을 누른다.
로또복권을 받아 시간을 확인하니 발행시간이 11시 11분 11초이다.
사실 11분(分)까지는 가능하다고 생각을 했으나 11초(秒)까지
정확하게 맞춰 발매가 될 줄은 몰랐다.
로또복권을 바라보며 잠시 흥분에 빠졌다.
어쩌면 나에게도 행운이 오려나?
2007년 어느 날 새벽 5시 58분,
집 앞 편의점에서 발매시간까지 불과 2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검단산에
올랐다가, 간밤에 돌아가신 셋째 큰아버지가 돼지를 안겨주었던 꿈을
날려버렸다.
그날 새벽 6시 발매 개시시간에 샀더라면 내가 산 복권이 1등이었는데,
내가 가고 2분 후 소방관이 산 복권이 1등에 당첨되어 동네가
떠들썩했었다.
4년 전 2018년 1월 제788회 1등은 2, 10, 11, 19, 35, 39이다.
그러나 내가 산 복권은 3, 10, 11, 19, 35, 39로 첫 숫자 하나가 틀려
3등으로 밀려나는 바람에 많이 아쉬웠지.
복권 발행 시간이 11.11.11.11.11이라,
장난기가 발동해 '1'이라는 숫자가 무려 10번이나 찍힌 로또복권
사진을 지인들에게 보내니 반응이 다양하다.
미리 축하 인사를 하는 친구,
당첨 여부를 떠나 기념으로 오래 간직하라는 친구도 있었고,
당첨되면 특정단체에 기부행위를 할 것인지 여부를 타진하는 사람,
행운이 오기를 바란다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암튼 11월 11일은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다.
빼빼로 데이라는 상술에 의해 젊은이들이 '빼빼로' 과자를 서로
선물하며 즐기는 날이기도 하지만,
6.25 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 상잔이 벌어진 우리나라에 참전을
하였다가 전사한 유엔군이 안장되어 있는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묵념을 올리는 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참전하였던 캐나다 군인 381명, 영국군
889명 등 11개국 2,315명의 전사자가 죽어서도 대한민국을 지켜
주고 있다는 고마움에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혹시 나에게 복권 당첨이라는 행운이 찾아온다면 그곳에 일부라도
기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1. 13. 05시
밤새 천둥, 번개와 함께 세차게 내리던 가을비가 그쳤다.
그놈의 장대비를 맞은 단풍나무에 조금 남았던 단풍잎이 다 떨어졌다.
까치밥으로 남겨두었던 홍시도 많이 떨어졌고 몇 개만 남아 하늘가에
대롱거린다.
산길 가로등 아래에서 이틀간 상상만 해도 행복하게 만들었던
로또복권을 꺼내 확인을 한다.
로또복권은 5,000원도 당첨되지 않은 낙첨복권으로 전락하며
혹시나 하던 기대감이 역시나로 바뀐다.
사실 기적을 바란 거도 아니고 행운을 기대한 거도 아니기에 실망은
하지 않는다.
'뇌종양' 선고로 절망 속에 빠졌다가 회복을 하고,
죽지 않고 살아서 걸어 다니는 거만으로도 기적이고 행운이 아닌가.
비 그친 산길을 걸으며 황혼의 삶에선 뺄셈도 덧셈도 다 무의미
하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가을이 깊어간다.
바람이 불때마다 숲 속의 나무들은 나신(裸身)이 된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를 맞고 떨어진 낙엽이 땅의 일부가 되어가듯이
나의 몸 또한 가을의 일부가 되어간다.
2022. 11. 13.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