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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및 관련 단어 소개 10≫
◆기도◆祈禱
인류는 최초부터 종교를 가졌듯이 처음부터 기도를 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기도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속한 행위이다. 또한 인간에게 있어 가장 보편적이고 오래된 것이며 내적이고 심오한 행위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과 자연을 초월하여 무한으로 향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기도 안에서 절대자와 ‘너’ 와 ‘나’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며 자신의 한계와 나약함과 죄를 인정하는 가운데 절대자에게 매달리어 자신이 채워지기를 원한다. 기도에는 원시 종교에서부터 벌써 여러 가지 모양(맹세, 제물 봉헌, 청원, 저주,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전구, 감사 등)이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인간학적으로 볼 때 기도는 인간이 자연을 초월하여 절대자에게 자신을 여는 인격적인 교류 행위이다. 이 기도 안에서 인간은 자신을 발견하고 실현시키고 성장시키면서 완성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절대자를 삶의 원천과 중심과 목적으로 받아들여서 신에 의해서 살고 신을 향하여 살게 된다. 구약성서가 말하는 기도는 야훼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에 기초를 두고 있다. 야훼께서는 ‘과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셨으며, ‘현재’에는 그들의 번영을 축복하시고, ‘미래’에 가서 완성된 구원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같은 야훼의 계약을 어겼으므로 재난과 패전 등의 벌을 받아야만 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신음하고 슬퍼하여 야훼께 외치게 되었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여 구원자를 보내 주셨으니 그들은 다시 야훼께 감사하고 그분을 찬양하게 되었다. 하느님과 인간간의 이 같은 생생한 교류에 대해서 시편과 지혜 문학서가 감동적인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고대에는 왕과 예언자가 백성들을 위해 야훼께 기도하고 제물을 바쳤으며, 예언자는 야훼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여 회개를 권고했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진 뒤부터는 사제들이 기도를 주관하면서 제물을 바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성전은 ‘기도하는 장소’(이사 56:7)가 되었다. 사실 야훼께서 즐겨 받으시는 것은 예절이나 제물이 아니라 진실한 기도의 자세이다. 정의를 실행하고 약한 자를 보호하며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는다면 야훼께서는 제물을 받지 않으시고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신다. 야훼와의 이러한 관계에서 드리는 기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윤리적인 책임을 자각하게 하고 정의와 자비의 사회를 실현하게 하였다. 기도가 전례(典禮)로서 규정되었던 시기는 기원전 5세기경이다. 그 전례적인 기도는 야훼의 존엄성을 강조한 나머지 그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하고 천사가 항상 야훼와 인간 사이를 중계했었다. 이리하여 야훼와 백성간의 친교는 차차 형식주의와 율법주의로 흐르게 되었다.
인류의 기도와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는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다. 예수께서는 기도의 사람이셨으며 기도는 그분의 존재 전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복음서는 가끔 예수께서 기도하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한다. 특히 그 분이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그 분은 기도하셨다고 말하고 있다(마르 14:32-36, 루가 3:21, 6:12-13, 9:28-29). 예수께서는 다른 종교가와는 달리 기도에 대한 자기 체험을 말하지도 않고 또 기록하지도 않으셨다. 그분은 기도의 모범이시지만 모범을 보이시기 위해 기도하시지 않았다. 기도는 예수께 호흡과 같이 필수적인 것이었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제자들이 예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주의 기도’를 가르치셨다(마태 6:9-14, 루가 11:2-4). ‘주의 기도’는 모든 기도의 모형이며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7가지 기원은 기도의 근본적인 내용과 자세를 말해 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지만 당신은 하느님을 ‘Abba’(아빠)라고 부르셨다(마르 14:36). 예수의 기도는 이 ‘아빠’와의 끊임없는 대화, 자녀다운 친교, 그리고 깊은 일치였다. ‘아버지’는 일종의 거리감과 경의,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반면, ‘아빠’는 아무 거리감과 두려움이 없는 완전한 일치의 상태를 가리킨다. 이 ‘아빠’야말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의 본질을 말하는 적절한 표현이다. 사실 이 단어만큼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에 대한 개념을 충분히 표현하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아빠’란 예수께서 아버지와 본성상 동등하고 하나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말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외아들이기 때문에 당신만이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었다. 결국 예수께서 아버지를 불렀던 ‘아빠’야말로 원래의 기도이며 진정한 기도이다.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고 그 열매인 성령을 받았을 때 성령에 의해서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예수의 형제들이 되고 아빠의 총애를 받아 하느님의 생명까지 이어 받게 되었기 때문에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새 창조 및 새 탄생이 이루어졌음을 확증해 주신 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당신의 아들의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갈라 4:6, 로마 8:15도 참조) 아버지와 외아들 사이의 사랑의 끈이신 성령께서는 인간 예수로 하여금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게 해 주셨다. 이제 같은 성령께서는 제자들을 아버지의 자녀와 예수의 형제가 되게 하시고 예수와 같은 입장에서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시고 기도하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기도의 원동력이며 스승이시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 아니, 인간의 모든 기도는 예수의 기도에 참여하는 것이며 예수의 기도의 연장이다. 성령으로 인하여 일종의 신비스러운 ‘양도’ 또는 ‘교환’이 일어나 예수의 기도가 그리스도인 안에 들어가 아버지께 바쳐진다. 다시 말해서 삼위일체 안에 오고가는 부자(父子)간의 교류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 안에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의 신적인 친목 안에 끌려 들어가 외아들과 같은 입장에서 ‘아빠’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기도이며 이는 거저 주시는 은총이다. “이제는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내 안에서 기도하시는 것이다”(갈라 2:20 참조). 이렇게 볼 때 기도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의화(義化)의 사실을 말과 다른 수단으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성 요한 다마셰노는 기도를 “하느님께 영혼을 올리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밖에도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성 예로니모, 성 아우구스티노), ‘하느님과의 친교’(성 금구 요한), 그리고 ‘하느님과의 친밀함’(니사의 성 그레고리오)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며 ‘하느님과의 일치’이다. 기도의 내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오리제네스는 “기도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여 그분과 대화하고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기도는 애정을 다하여 하느님을 쳐다보는 행위” 또는 “하느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애정으로 가득찬 행위”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말했던 신 · 구약성서와 교부들과 성인들의 가르침을 요약해서 기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서 여러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친교이다. 기도는 예수께서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시는 행위에 참여하는 행위이므로 하느님의 은총으로서 주어진 것이다. 기도는 구도(口禱)와 염도(念禱)로 구분된다. 구도는 일정한 기도문 또는 문귀를 외는 기도이며, 염도는 기도문이나 문귀를 쓰지 않고 내심에서 하는 침묵의 기도이다. 구도는 전례기도와 비(非)전례기도로 나눌 수 있다. 전례기도는 교회의 공식적인 기도이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 즉,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지체인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기도이다. 전례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성직자의 지도에 따라 교회가 인준하는 경문을 사용하고, 교회의 이름으로 바치는 것이어야 한다. 전례 기도에는 최고의 기도인 미사와 그 밖의 성사, 준성사, 성무일도, 말씀의 전례 등이 있다. 비전례기도는 전례가 아닌 모든 구도이며 공동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바친다. 아침, 저녁기도, 로사리오 기도, 십자가의 길 기도, 여러 호칭기도, 자유로운 형태의 기도 등이 비전례기도에 속한다. 화살기도는 개인적인 비전례기도이다. 염도는 저자에 따라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묵상 염도, 감동적인 염도, 단순한 염도[수득적 관상(修得的 觀想)], 신비적인 염도[주부적(注賦的) 관상]로 구분된다. 이것은 구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염도가 깊어져 가는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하느님과의 친교가 여러 가지 중개수단(언어, 상상, 이미지, 상찰 등)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점차 직접적이고 순수한 친교가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기도는 구원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대개 구원과 은총을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베풀어 주신다. 기도는 ‘마음의 호흡’과 ‘영혼의 음식’과 같은 것이므로 얼마 동안 기도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유혹을 받거나 죄를 범하게 되어 신앙생활에 해를 입게 된다. 리구오리의 성 알퐁소(St. Alphonsus Maria de Liguori)는 “기도하는 자는 구원을 받고 기도하지 않는 자는 멸망한다”고 말하였다. 기도를 하기 위한 준비에는 간접적인 준비와 직접적인 준비가 있다 간접적인 준비는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서적인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뜻에 의하면, 간접적인 준비는 기도 직전에 하고 있는 일을 침착하게 평온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직접적인 준비는 몸과 정신의 긴장을 풀고 기도의 은총을 성령께 빌면서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다.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감실이나 십자가, 상본 같은 것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혹은 눈을 감고 하느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의식하거나 예수께서 자기를 보고 계신다는 것과 자기도 예수께 말씀 드리고자 함을 생생하게 의식하는 일이다. 그와 더불어 기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재인식하고 기도를 잘 하려고 하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도에서 위로와 기쁨을 맛볼 때가 있고 잡념과 무미건조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그러나 기도 중에 느끼는 기쁨이나 어려움으로 기도를 평가할 수 없으며 생활과 행동에서 맺어지는 그 열매로 평가해야한다. 기도 중에 큰 위안을 받고 특별한 체험을 한다 해도 생활에 아무 변함이 없다면 소용이 없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기도하여 하느님과 이웃을 보다 사랑하게 될 때만이 그 기도가 진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도 중에 느끼게 되는 위로와 기쁨은 영적, 내적, 감정적, 감각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여러 가지 종류와 단계가 있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서는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되 위로와 기쁨을 맛보려고 기도해서는 안 된다. 참다운 기도란, 자기 만족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하느님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특히 감정적인 위로와 감각적인 기쁨에 구애되지 말아야 한다. 기도를 방해하는 잡념과 무미건조도 그 내용과 원인에 있어서 여러 가지 종류와 단계가 있다. 즉 기도의 준비 부족, 양심의 가책, 고민, 불안, 질병, 고통 등으로 인한 것들이 있으며 또한 지나친 긴장, 흥분, 마음의 산만 등으로 인한 것들도 있다. 반면, 자기에게는 아무런 잘못이나 이유가 없는데도 잡념과 무미건조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때는 인간의 연약함, 한계성, 또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시련이다. 시련에도 여러 단계가 있어, 단순하고 가벼운 시련이 있는가 하면, ‘감각의 암야’, ‘영혼의 암야’(십자가의 성 요한)까지도 있다. 잡념과 무미건조에 대해서 취해야 할 자세는 침착, 인내, 끈기이다. 분심과 무미건조의 상태를 의식할 때마다 초조함과 불안, 흥분 등을 피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기도에 들어가는 노력을 되풀이해야 한다.
기도의 수련은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과 마음 깊은 곳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나뉜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기도하라”(루가 18:1)고 가르치셨고, 사도 바울로도 “언제나, 늘 기도하라”(에페 6:18, 1데살 5:17)고 말하였다. 계속적인 기도의 수련은 화살기도와 성서 구절(특히 시편) 등을 되풀이해서 외는 수련이나 주님과 함께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거나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는 수련 등이다. 주님은 또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도하라고 하셨다(마태 6:6 참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도하는 수련은 묵상, 관상(觀想) 등이다. 늘 기도하는 것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도하는 것은 상호 보충관계에 있다. 늘 기도하면 할수록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도하게 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도하면 할수록 늘 기도하게 된다. 이 두 종류의 기도는 점차 가까워져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의 현실이 된다. 이 현실은 예수 안에서 절정에 도달했었다. 예수야말로 아버지와의 끊임없는 친교와 깊은 관상 안에 사신 분이셨다.
늘 기도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도한다면 기도가 생활 속에 침투되어 마침내 기도와 생활이 단 하나의 현실이 된다. 이 현실 역시 예수 안에서 절정에 도달했었다. 예수야말로 기도와 활동을 온전히 조화시키고 통합시키신 분이셨다. 그리스도인도 늘 기도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도하면서 이 두 종류의 기도가 한 현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또한 기도와 활동을 조화 통합시켜 한 현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金保祿)
◆삼종기도◆
안젤루스(Angelus)라 함은 라틴기도 첫 단어가 안젤루스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세 번,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알려 준 예수의 잉태와 강생(降生)의 신비를 기념하기 위하여 바치는 기도이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낮, 저녁에 종을 세 번씩 치는데, 이 종소리를 듣고 봉송하는 기도라 해서 삼종기도라고 한다. 종은 세 번씩 세 번 치고 계속해 치는데, 매번 세 번 치고 나서는 잠시 여유를 갖는다. 삼종기도의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11세기 팔레스티나 성지(聖地) 회복을 위한 십자군(十字軍) 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십자군이 떠날 때 이들의 승리를 위해 성당 종을 세 번 치면 기도를 바치라고 한데서 비롯된 것 같다. 이후 1318년 교황 요한 22세는 저녁에 종이 울리면 평화를 위해 성모송을 세 번 외도록 요청하였다. 14세기에는 아침에도 행해졌고 15세기에는 낮에도 행해졌다. 처음에는 금요일에 한해서 낮에 바쳐졌으나, 16세기 이후 매일 하루 세 번씩 행해졌다.
삼종기도에는 평시(平時)에 바치는 삼종기도와 부활시기에 바치는 부활 삼종기도의 두 가지가 있는데, 평시의 삼종기도는 다음과 같다. "주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성신으로 잉태하시도다(성모송 한번 왼다) /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성모송 한번 왼다) /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성모송 한번 왼다) / 천주의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시어, 그리스도의 언약하신 바를 얻게 하소서 / 기도합시다. 천주여 이미 천사의 아룀으로 성자 그리스도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그의 고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우리 마음에 내리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이 평시의 삼종기도는 꿇어서 바치는 데 주일에는 기쁨을 표시하는 뜻에서 일어서서 바친다. 부활 삼종기도는 또한 기쁨을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항상 일어서서 바친다. 교황 베네딕토 14세, 레오 13세, 비오 11세는 한달 동안 매일 삼종기도를 바치는 이에게 전대사(全大赦)를 허락하였다.
◆아침기도◆
① 가톨릭 교회의 일반 신자들이 아침에 드리는 기도, 이는 하느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께 속죄하는 하루가 되도록 생활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는 기도이며 조과(早課)라 부르기도 하였다. 일찍이 3세기의 테르툴리아노(Tertulianus)는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가리켜 합법적인 기도라고 한 적이 있고, 로마의 히폴리토(Hippolytus of Rome)에 의하면 신자공동체는 아침마다 주교가 지정한 장소에 모여 사제와 부제로부터 봉독한 성서와 관련된 주제의 강론을 듣고 기도를 하였다.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칙령 이후 신자들이 급증하자 교회는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의 시간을 정하고 이 기도를 드리도록 모든 신자에게 명하였다.
신자들은 새로운 하루를 주신 아버지 하느님께 예수를 통하여 감사를 드리며(골로 3:17), 하루 일과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1고린 10:31) 성실히 수행 할 수 있는 은총 주시기를 자유롭게 기도한다. 이러한 자유기도에 익숙하지 못한 신자들을 위하여 또 공동으로 기도드릴 때의 편의를 위하여 한국 천주교주교회의는 주의 기도와 봉헌의 기도 등으로 구성된 아침기도문을 만들어 두었다.
② 성무일도(聖務日禱)의 찬과(讚課). 이는 찬미경이라고도 불린 기도인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아침기도’로 바뀌었다. 아침기도는 찬미가 시편, 성경소구, 응송, 즈가리야의 노래, 청원기도, 주의 기도, 본기도, 강복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기도의 이러한 구성과 성무일도의 기도시간 편성은 이미 6세기 베네딕토(St. Benedictus)의 저서에 나타나며 이보다 앞서 3세기에 신자 공동체가 일정한 장소에 모여 기도하였던 아침기도에서 그 원형(原型)을 찾을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무일도의 개정에 있어 원칙을 정하면서 "아침기도인 찬미경과 저녁기도인 만과경은 온 성교회의 존엄한 전통에 따라 매일 성무일도의 두 개의 돌쩌귀로서 가장 중요한 시간경으로 간주될 것이며 또한 이런 관점에서 바쳐져야 한다"(전례헌장 89)고 하였다. (⇒) 성무일도
출처 : [가톨릭대사전]
◆평화의 기도◆
기도문의 하나. 1917년 성명미상의 작자에 의해 프랑스어로 씌어진 이 기도문에는 복음적인 내용이 짙게 깔려 있고 매우 대중적이다. 원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작품으로 간주되어 왔던 것인데, 최근에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이 기도문에는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랐던 복음의 사도이자 평화의 사도인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에 대한 희망과 자랑, 그리고 복음적 이상이 역력히 나타나 있다
◆가정 기도◆
가정은 사회의 기본적인 단일체이며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가정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법을 배운다.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교 가정에 사제적 역할을 주셨다. 신도들은 혼인성사에서 세례 때 받은 사제직을 실천하므로 부부와 가족은 사제적 소명과 사명의 근거를 갖게 된다. 이로써 그들의 일상생활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영적인 희생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성체성사와 다른 성사들을 거행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들을 봉헌할 때뿐 아니라 기도 생활, 곧 예수님을 통해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기도로써 대화할 때마다 영적인 희생을 한다는 것이다.
가정 기도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공동으로 기도를 바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공동체 기도는 세례성사와 혼인성사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이며 또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확실히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리스도교 가정의 가족들에게 적용된다. “거듭 말하거니와, 그대들 가운데서 둘이 합심하여 땅에서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마태 18,19).
가정 기도의 목적은 ‘가정생활 자체’이다. 출생과 생일 축하, 부모의 결혼기념일, 집을 떠남과 별거와 다시 집으로 돌아옴, 중요하면서도 원대한 결정, 희망과 실망, 기쁨과 슬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을 생각해 보라. 이 모든 것은 가정의 역사에 하느님이 사랑으로 개입하셨음을 보여 준다. 이들은 청원과 감사, 주님께 대한 신뢰와 찬양 그리고 흠숭을 하기에 적합한 순간들을 제공한다.
그리스도교 가정은 가정 교회로 여겨지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야 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 가정에서 자녀를 교육해야 할 양도할 수 없는 권리에는 집에서 종교적 신심과 기도를 가르치고 일상 중에 기도하라는 그리스도의 권면을 실현시키는 일도 포함된다. 부모는 자녀들을 점차 하느님의 신비 속으로 인도하고 하느님과 개인적인 대화를 하도록 이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기도함으로써 자신들의 사제직을 수행하게 된다. 곧, 자녀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고 성사를 준비하며 아플 때에는 가족이 함께 묵주 기도를 바친다. 부모가 생각과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정직성의 본보기는 인생 수업이며 무한한 가치를 갖는 경신례이다. 집 축성이나 자동차 축성 등 준성사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부모로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가정 기도와 전례
가정 교회의 이러한 기도 생활은 자녀들을 자연스럽게 전체 교회의 전례 기도 속으로 인도한다. 어떤 의미에서 가정의 기도 생활은 자녀들에게 전례 기도를 준비시키고 개인과 가정 그리고 사회 생활에서 전례 기도를 하도록 해 준다. 그리스도교 가정은 가족들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가정 안에서 전례주년의 시기와 축일들을 거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이런 목적을 위해 더욱 대중적인 신심 활동을 하게 되지만 이 활동들은 가족과 함께 교회에서 바치는 전례 거행과 연결될 것이다.
아침과 저녁 그리고 식탁에서 가정 기도를 바침으로써 ‘하루’를 성화할 수 있다. 금요일에 성심 공경을 하며 토요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을 갖고 가족이 주일 미사에 참여하여 영성체를 함으로써 ‘주간’을 성화할 수 있다. 또한 매달 기념하는 인물들을 위해, 예를 들어 11월에는 연옥에 있는 거룩한 영혼들과 6월에는 예수 성심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한 달’을 성화할 수 있다.
몇몇 교회에서는 특히 온 가족과 함께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가족 미사를 마련하여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가족 중심의 전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현재 새 「로마 가톨릭 성무일도서」(Roman Catholic Daily Office)가 있으며 특히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를 포함한, 한 권으로 된 「간략한 시간 전례서」가 나와 있다. 이 기도들은 교회나 가정에서 가족이 함께 바칠 수 있는데, 이는 사제들이 매일 의무적으로 바쳐야 하는 성무일도를 대중화시킨 형태이다. 그리스도교의 한 해가 다양한 전례 시기들이 가정에서 행할 수 있는 활동과 연결되면 더 큰 종교적 의미를 띠게 된다. 예를 들어, 예수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면서 대림 시기 동안 서로에게 선행을 베풀고 대림환과 연결시킨 신심 활동을 할 수 있다. 성탄 시기를 위해 구유를 꾸미고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수 있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 성가대원들을 환대할 수 있다. 재의 수요일에 축성된 재를 받고 사순절에 걸맞은 활동을 할 수 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때 받은 성지를 들고 행렬을 하고 나서 그 성지를 집에 걸린 십자고상 뒤에 정성껏 모실 수 있다. 부활절에는 특별한 예수 부활 대축일의 촛불을 마련할 수 있다. 다양한 전례 시기에 따라 거룩한 생활과 특별한 신심 활동을 하며 십자고상, 성상 또는 성화들을 공경할 수 있다.
우리는 가정이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세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스도교 가정은 가정 안에서 매일 해야 할 일을 완수하고 모든 책임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도 안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를 발견한다. 가족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얼마나 친밀히 일치해 있고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가족 구성원들이 교회 생활과 사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 참여하지 않느냐가 결정된다. 전례와 자기 봉헌과 기도를 하면서 그리스도와 생생히 일치해 있을 때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그리스도교 가정의 목표가 성취될 수 있다.
◆묵주 기도◆=로사리오
묵주 기도는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외는 전례 신심 기도이다. 성서에 나오는 열다섯 개의 신비들이 묵주 기도의 주제이다. 묵주 기도는 이 신비들을 묵상하면서 15단을 바친다. 15단을 5단씩 묶어 각기 환희와 고통과 영광을 묵상하는 묵주 기도는 예수님의 강생과 고통과 영광에 초점을 맞춘다. 묵주 기도는 150개의 시편을 외는 대신 성모송을 150번 반복하기 때문에 ‘마리아 시편집’이라 불리기도 한다.
교회는 이 신심 기도를 강력히 추천하며 많은 교황들이 묵주 기도를 참된 그리스도론적 신심을 발전시키는 훌륭한 기도로 칭송하였다. 특히 묵주 기도에서 묵상하는 신비들은 성서와 전례에서 따온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묵주 기도를 바치면 대사를 얻을 수 있다.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에서 정확히 지적하듯이 묵주 기도는 대중 신심이며 전례에서 유래하여 백성을 전례로 인도하는 기도이다. 묵주 기도는 전례와 쉽게 조화를 이루는 경건한 기도이다. 전례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묵상하는 묵주 기도에서 기억하는 것과 똑같은 신비를 거행한다.
그러므로 전례에서 원동력을 받는 경건한 삶을 실천하는 묵주 기도는 신도들의 마음과 정신을 그리스도의 신비와 친숙하게 한다. 그래서 묵주 기도는 전례 행위에서 신비들을 거행하기 위한 훌륭한 준비일 수 있다. 그러나 전례를 거행할 때 묵주 기도를 바쳐서는 안 된다.
출처 : [전례사전]
◆보편 지향 기도◆
신앙고백이나 강론 뒤에 하는 보편 지향 기도는 신도들이 자신들의 사제직 기능을 행사하는 기도로서 온 백성을 위한 일련의 청원 기도이다. 그러므로 보편 지향 기도는 ‘신자들의 기도’라고도 불리며 회중과 함께 드리는 모든 미사에 포함되어야 한다. 보편 지향 기도 때 바치는 기도 지향의 순서는 보통 다음과 같다. 교회의 필요, 국가의 위정자들, 세상 구원, 도움이 필요한 이들 그리고 지역 공동체.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특수한 경우에는 특정한 예식 거행에 더욱 근접하는 지향을 두고 기도할 수 있다.
사제는 백성에게 기도하자고 초대하고 부제, 선창자 또는 독서직은 지향을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그러면 백성은 각 기도 후에 공통 응답문으로 응답하거나 침묵 기도를 바친다. 주례자가 마침 기도를 바치면 신도들은 ‘아멘’으로 응답한다.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에도 유사한 청원 기도가 있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 전례에는 고정된 보편 지향 기도문이 실려 있다. 주례자가 청원 기도를 바치면 침묵 기도를 한 뒤에 지향에 따른 기도문을 왼다. 그러면 회중은 아멘으로 응답한다. 전구(轉求 Intercessions) 참조.
◆로레토의 호칭 기도◆
오월의 성모 성월, 성체 강복 그리고 몇몇 수도회에서 성무일도의 공통 시간경 끝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공경하여 노래하는 호칭 기도이다. 1587년 교황 식스토 5세가 공적 경배에서 사용하도록 인준한 이 호칭 기도의 명칭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성지 성당 이름을 딴 것인데, 거기서는 1558년부터 이 호칭 기도를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호칭 기도 자체는 이 연대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존재하기 시작하였음). 마지막 네 개의 호칭(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 승천, 묵주 기도의 성모님, 평화에 관한 호칭)과 ‘교회의 어머니’ 호칭은 나중에 성좌에서 직접 삽입하였다. 이 호칭 기도는 1150년에서 1200년 사이에 생겨났으며 아마 파리 또는 파리 근처에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로마 예식서」와 「대사 편람」에 실려 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 찬미(49회)는 그리스 교회의 기도들, 특히 아카티스트 찬미가(라틴어로 번역되어 800년경 베니스에서 처음 발간되었음)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호칭 기도에는 본디 겸손의 어머니, 자비의 어머니, 성령의 성전, 구속의 문, 제자들의 모후 등 15개의 호칭이 더 들어 있었다.
첫 20개의 호칭은 ‘어머니’요 ‘동정녀’이신 마리아께 바치는 마리아 찬미가이다. 그다음 13개의 호칭은 마리아의 직무와 능력 또는 덕행들을 빼어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뒤에 공통 칭호들이 4개 나오고 이어서 12개의 칭호가 마리아를 ‘여왕’으로 부른다. 호칭 기도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공통 부분에 나오는 본기도로 끝난다. 호칭 기도에 나오는 칭호들에는 지나친 점이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칭호들은 첫 6세기 동안 교부들의 작품에 근거한다.
이 칭호들에는 관상과 신뢰 깊은 탄원이 번갈아 이어지므로 호칭 기도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청원하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기도가 되게 한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 호칭 기도(~呼稱 祈禱 Litany of the Blessed Virgin Mary), 연도(連禱 Litanies) 참조.
◆위령 기도◆
위령 기도는 전에 연도(煉禱)라고 하였으며, 세상을 떠난 교우들을 위해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가톨릭 기도서 74쪽). 이는 시편(129편, 50편)과 기도문으로 되어 있다. 이는 세상에서 보속을 다 못하고 죽은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연옥에서 정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때 고통 중의 연옥 영혼을 위해 하는 기도를 말한다.
연옥의 영혼은 자력으로 천국에 올라갈 수도, 고통을 덜 수도 없으므로 지상의 교우들이 기도와 희생으로 빨리 천국에 오르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 기도 중에 가장 중요한 기도는 역시 위령 미사이다. 이 미사에는 기일 미사, 장례 미사, 보통 미사 등이 있는데, 그때마다 미사 예물과 함께 사제에게 미사 봉헌 신청을 해야 한다.
출처 : [용어사전]
◆주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 사도신경과 함께 가장 오래된 기도이자 복음 전체의 요약이다.
이 기도는 7가지 청원으로 되어 있는데, 앞의 셋은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넷은 우리의 소망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다.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기도◆
1. 의의 : 기도란 일반적으로 하느님과 인간과의 대화라고 정의한다. 예전에는 신공(神功)이라고도 하여, 기도와 선공(善功), 혹은 신에게 바치는 공양(供養)이나 돈(佛供)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결국 기도란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올리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을 말한다.
기도의 어원은 사무엘 하권(7,27), 열왕기 상권(8, 28)에서처럼 ‘중재한다’, ‘사이에 들어간다’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기원’, ‘무엇을 의탁함’, ‘원함’ 등에서 기원한다(루가 5,33; 22,42; 골로 1,3).
구약 시대의 기도는 전지 전능하시고 살아 계신 인격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찬미의 기도였다. 하느님은 선하신 분이시므로 선한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고, 또한 하느님과 화합이 가능하며 잘못이 용납된다고 믿었다.
한편 신약 시대의 기도는 영적이다. 아버지를 대하듯 솔직하고 확신에 찬 마음과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과 소원을 아뢰었다. 즉 인간은 일시적이고 사소한 소원을 하느님의 뜻에 복종시켰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올바르게 구하기만 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루가 11,9-10)고 하였다.
2. 마음과 자세 : 기도하는 마음과 자세는 신뢰심과 인내 그리고 확신을 가져야 하고, 하느님의 뜻에 일치해야 한다. 그런데 기도는 사사로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으로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자세도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때는 일어서며, 죄를 고백하고 통회할 때는 무릎을 꿇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앉는다.
3. 때와 장소 : 기도는 언제나 해도 좋으나, 가능하면 조용하고 하루 중 제일 좋은 시간을 택해야 한다. 아침은 하루의 모든 일과를 드리며, 저녁은 하루를 반성하고 감사하고 내일을 의탁하며 편안한 밤이 되도록 기도한다. 장소 역시 어디서나 좋으나, 성당은 기도하는 집이기에 가장 좋다. 그리고 감실에 예수께서 살아 계시고 성체를 이루는 제단이 있기에 가장 좋다.
4. 기도의 분류 : 기도에는 소리 기도(念經祈禱)와 마음 기도(默想祈禱)가 있다.
소리 기도는 마음속의 생각과 감정을 하느님께 표현하기 위해 소리내어 하는 기도이다. 이는 어떤 기도문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정성되이 외움을 말한다.
마음 기도는 하느님과 직접 관계되는 일이나 하느님께로 이끌어 가는 일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한다. 특히 마음 기도는 하느님께서 내 앞에 현존하심과 그분 앞에 자신이 대면해 있는 마음으로, 영신 사정에 대해 관찰하고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주님과 대화하며, 감사하고 새로운 결심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이때의 묵상 자료는 대자연, 성서, 신심 서적, 교회의 가르침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신비적(神秘的) 기도가 있는데, 이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깨닫고 있든 없든, 우리의 모든 생활에 하느님께서 침투하시는 분위기이며 그 동향을 말한다.
5. 종류와 요소 : 기도는 일상 기도, 성체 중심의 기도(미사 전례, 성체 기도 등), 기타 축성, 축복, 화살 기도 등이 있다. 그리고 기도의 요소로는 흠숭, 감사, 간구, 참회 등이 있다. 그러나 기도는 단순히 기도문을 외우는 것만이 아니라, 생활화해야 한다(2데살 3,5).
흠숭(欽崇)이란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거룩하심과 선하심을 공경하는 것이며, 감사(感謝)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섭리하시고 사랑과 은총을 풍성히 주심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간구(懇求)란 하느님의 오묘한 진리와 이치를 알 수 있도록 구하고, 자신과 타인의 구원과 행복을 청하는 것이다. 또한 참회(懺悔)란 자신을 반성하고 뉘우치며 용서를 청하는 것을 말한다.
6. 기도서(祈禱書) : 이는 교회가 공인한 전례서이다. 미사 경본, 성무일도서, 신자들의 신심 생활을 위한 찬미가, 묵상, 기도 등을 모아 놓은 책이다. 예를 들어 ‘가톨릭 기도서’는 신자들이 드려야 할 중요한 기도를 모아 놓은 것이다. 일상 기도는 외우고, 언제나 기도서를 휴대하며 기도한다면 신앙생활에 매우 유익할 것이다.
기도와 전례들을 수록한 기도서 ‘천주 성교 공과(功課)’가 1862년 목판으로 인쇄되어 출간되었었는데, 이는 1963년 2차 바티칸 공의회 결정에 따라, 1969년에 ‘가톨릭 기도서’가 출간될 때까지 약 백여 년간 한국 교회의 공식 기도서였다.
◆고백의 기도◆
사적인 참회의 기도에서 발전된 공적으로 죄를 고백하는 기도. 가톨릭 주요 기도문 중의 하나이다. 고백의 기도는 원래 사제의 사죄경(赦罪經, absolution)과 함께 준성사(準星事)와 준성사가 아닌 고해성사를 위한 틀을 형성하였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받기전 고해를 준비하면서 이 기도를 바칠 것을 권장하고 있다. 8세기 이후 기도문의 형태를 갖기 이전에는 몸을 깊숙이 굽혀 죄를 고백했었다. 병자의 도유(塗油)와 죽은 이를 위한 교황의 강복 때도 사용되었다. 카롤링거 시대 이래로 종과경의 시작(1956년 폐지된 일시경에서도)에, 고백의 기도와 죄의 용서를 청하는 기도를 드렸다. 또한 사제가 제단에 오르기 전 미사를 준비하는 제단앞의 기도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다시 미사 개회식으로 옮겨와 오늘날 사제와 신자들은 이 기도를 바치며 참회한다.
이 기도는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즉 하느님과 모든 성인들과 천사들에게 죄를 고백하는 부분과 상인들과 천사들에게 죄사함을 얻을 수 있게 도움을 청하는 부분으로 되어있다. 기도문은 다음돠 같다. “전능하심 천주와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과연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 또한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 (가슴을 치며) 내 큰 탓이로소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 성녀와 형제들은 나를 위하여 우리 주 천주께 빌어 주소서.” [참고 : 현재 개정된 고백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가슴을 세 번 치며)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화살기도◆
아무 때나 순간적으로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매달리듯 그때그때 느껴지는 정(情)과 원의(願意)대로 간단하게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화살처럼 직통으로 하느님께 간다고 해서 ‘화살기도’란 이름이 붙었다. 예를 든다면 “예수, 마리아여!”, “하느님, 나를 도우소서”, “내 주시오, 내 천주로소이다”, “지극히 거룩한 예수 성심이여, 내 마음을 네 마음과 같게 하소서!” 등이다.
◆틈새 기도◆
본당에서 미사에 참례하고 나오는데 주임 신부님께서 나를 부른다고 상상해보자. “자매님, 총구역장을 맡아주십시오.” 아, 형제님이라면 “형제님, 남성 총구역장을 맡아주십시오.”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하자. 그 순간 나는 무엇을 떠올리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지금 잠시 상상해보자.
옛날부터 신학교와 수도원에서는 눈을 뜨며 일어나는 순간 “주님을 찬미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하루를 시작했다.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열심인 신자들에게는 정해진 기도가 하루 종일 이어진다(성무일도, 시간전례). 이른 새벽에 바치는 독서기도와 아침기도, 미사, 3시경(오전 9시 기도), 6시경(12시 낮기도), 9시경, 저녁기도, 그리고 끝기도. 수도원에서는 종을 쳐서 기도시간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도시간이 아닌 시간에도 기도할 수 있기 위함이다. 항상 기도하기 위해서 특정한 시간에 정해진 기도를 바쳤던 것이다.흔히 “기도생활 어떻게 하시나요?”라고 물으면 “하루에 몇 번, 모두 더해서 2시간 정도 기도합니다.” 이런 식으로 답한다. 그러나 이는 기도, 기도생활에 대한 오해이다. 기도생활이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이다. 언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가? 매 순간, 우리의 삶 전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하게도 생활하면서 하느님을 자주 잊어버린다. 하느님을 잊어버림에서 하느님을 멀리 떠나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한순간도 하느님을 잊지 않으려는 삶, 매 순간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이 기도생활이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여라.”(신명 8,11 참조)
그러므로 정해진 기도시간에 기도함으로써 기도하는 습관, 곧 하느님을 떠올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며, 이렇게 단련이 되어 기도시간이 아닌 시간에도 하느님을 기억하여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숨을 쉬는 것보다 더 자주 하느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권고대로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숨을 들이마시며 “주 예수님”, 그 숨을 내쉬면서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신자들 역시 나름대로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했다. 아침에 눈을 뜨며 영광송을 바치고, 아침 저녁기도, 세 번의 삼종기도, 식사 전후 기도, 일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 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 그리고 화살기도… 그런데 왜 이렇게 자주 기도하는 것일까? 앞에서 이런 기도는 연습이라고 했다. 하느님을 기억하는 연습! 연습은 당연히 실전을 위한 것일 터. 틈을 내서 자주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글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본당 신부님의 갑작스런 부탁에 무슨 생각이 떠오를까? 직장에 다니느라 주일미사 참례도 겨우 하는 형편이다, 손자 돌보아야 한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 취미활동에 막 재미를 붙여서 여유가 없다, 어느 모로도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기타 등등 많은 생각이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느님이 떠오르던가? 다른 그 어떤 상황, 어려움, 그 무엇에 대한 고려보다도 하느님을 떠올리며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먼저 나오던가? 나의 판단이 내려지기 전의 그 짧은 틈새에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먼저 떠올리기 위하여 우리는 시시때때로 기도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직장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어 부서를 축소하고자 했습니다. 마침 직원을 보내달라는 곳이 있어 회사에서는 저에게 그곳으로 옮기면 어떻겠느냐 제안했습니다. 새 근무지는 근무환경도 열악하고 급여도 삭감될 것이며,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그곳으로 옮겨줄 것을 제안했지만 다들 거절한 터에 마지막으로 제게 의사 타진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설된 지 몇 년 안 된 부서인데 그 사이에 여러 명이 회사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바로 이런 처지에 놓였다면 나는 무슨 생각, 무엇을 고려하게 될까?
“저는 가만히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지금 당신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십니까?’ 순간 미지의 곳으로 저를 보내고자 하시는 그분의 뜻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지금까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편했다면 이제부터는 부지런해져야 하고, 자신의 것을 덜어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새 임지에 가겠다고 회사에 말씀드렸고, 제안했던 분들은 오히려 미안해했습니다.”
나의 재정적인 어려움, 출퇴근 시간의 늘어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 등등 나를 먼저 걱정하는 여러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생각들이 떠오르기 직전에 먼저 틈을 내서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것, 이것이 하루 중 틈을 내어 기도를 연습한 실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얘야, 평생토록 늘 주님을 생각하여라.”(토빗 4,5 참조)
“저는 ‘오늘도 무사고 운전기사가 되게 해주시고, 제 차를 이용하는 모든 분들에게 예수님을 대하듯 행동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주십시오.’라는 기도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택시기사입니다. 손님이 제 차를 타시는 순간, 그리고 짐이 많은 손님, 술에 취해 도로로 내려와 택시를 잡으려는 손님, 노인이나 장애인 등의 손님을 보면 그 즉시 ‘제가 사랑해드려야 할 예수님께서 저를 찾아오셨군요. 예수님, 당신을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나의 그 어떤 인간적인 판단이 들기 전에, 나 중심의 이기적인 생각이 들기 전에 얼른 틈을 내어 기도한다면 우리는 매 순간 이미 하느님과 함께 사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되겠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2티모 2,8) 우리는 틈을 내서 예수님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작은 기도가 우리를 하느님의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제 직장은 언덕길 위에 있습니다. 그 길은 경사가 조금 심하고 응달 지역이라 눈 내리는 겨울철엔 언덕 아래 공터에 주차하고 걸어서 올라갑니다. 지난겨울 눈 내린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여 언덕을 올라가는데 택배차가 그 언덕에서 뒤로 미끄러진 상태로 헛바퀴가 돌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20대 젊은 택배기사는 몹시 당황스러워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예수님, 몹시 당황스러우시지요? 예수님, 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지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에게 다가가 차를 일단 멈추고 따라오라 했습니다. 회사에서 삽과 염화칼슘 한 포대를 들고 가서 눈을 녹인 다음 천천히 차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렇게 틈새 기도, 우리의 아주 작은 기도는 내 앞에 계신 하느님을, 예수님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출처 : [굿뉴스]
◆호칭기도◆
일련의 탄원기도로서, 사제나 부제, 성가대 등이 선창하고 신자들이 응답하는 형태의 기도. 선창자가 여러 가지 탄원의 기도를 하면 그 때마다 고정된 기도, 예를 들면 “예수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우리를 구하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등이 뒤따르는 형태와, 선창자가 선창하는 내용 그대로를 신자들이 다시 반복하는 형태(예를 들면 kyrie, 즉 자비를 구하는 기도)도 있다. 구약성서에 이미 그 전형(典型)이 보인다(시편 118, 136, 다니 3:51-90). 4세기에 동방교회에서 시작되어 5세기 말에 로마로 전해졌고 교황 성 젤라시오(St. Gelasius) 1세(재위 : 492∼496)는 호칭기도를 미사경문에 삽입했고 행렬이나 특별한 의식에 사용하였다. 르네상스시대 이후로는 성가대에 의해 다성(多聲)으로 노래되었다.
로마 전례에 있어서 이 기도는 모든 행렬, 부활성야제의 성세 예식, 서품식과 서원식, 임종경 등에 사용되며, 여러 종류가 있지만 공통의 구조를 갖고 있다. 즉 삼위일체의 하느님께 기도하고, 특정한 주제에 상응하는 탄원의 기도를 드리며,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Agnus Dei)를 세 번 외고 탄원을 요약하는 짧은 기도로 끝이 나는 것이다. 또한 응답의 형태는 하느님께 드리는 탄원일 경우는 “우리를 구하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등이나 성모와 성인들께 드리는 탄원일 경우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로 명백히 구별된다. 종류로는 ‘모든 성인들의 호칭기도’, ‘성모 호칭기도’, ‘예수 성명 호칭기도’, ‘예수 성심 호칭기도’, ‘성 요셉 호칭기도’ 등이 공식적인 신심으로 인가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이들 호칭기도는 정식으로 대사(大赦)를 얻게 되어 매번 바쳐질 때마다 전대사(全大赦)가 허락되었다. 이 밖에도 대사는 얻지 못하나 교황에 의해 인가되어 국가별로 사용되는 100여 개의 호칭 기도가 있다. 동방 정교에서도 많은 호칭기도가 사용되는데 특히 성찬의 전례에 사용됨이 특징이다. 암브로시오 전례에서는 사순절 동안 매주일에 ‘대영광송’ 대신 ‘호칭기도’를 드린다. 영국 국교에서는 성인 호칭기도는 없으나 다른 호칭기도가 아침기도의 끝기도로 사용된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봉헌기도◆
제대에 준비된 제물위에 축복이 내리도록 하는 기도. 옛말로는 묵념축문(默念祝文)이라고 하였다. 이는 제물 준비의 부분을 끝맺는 기도이며 아울러 당일 미사의 현의를 드러내고 감사송(感謝誦, praefitio) 직전에 집전사제에 의하여 봉송된다. 이 기도문은 제작 연대나 형식에 있어서 본기도(collecta)의 연대(5∼6세기) 및 형식에 가깝다. 그러나 본기도가 영세신자와 예비신자들이 합석한(collecta) 가운데 바쳐진데 대하여 봉헌기도는 예비신자들과 분리되어(secreta) 영세신자들만이 드리는 기도라는 옛 의미를 지닌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독서기도◆
성무일도의 제1시(時)이며 과거의 조과(朝課). 이는 주로 성서와 성서 외의 문헌에서 각각 한 편씩 발췌한 독서, 시편에서 뽑은 3편의 구절들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십자가의 길◆
가톨릭 신심행사중에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것 중 하나.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 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14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성화(聖畵)로 혹 조각으로 표현하여 축성된 십자가와 함께 성당 양벽에 걸어둔 곳(14처, stations)을 하나하나 지나가면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1317보) 이것은 초기 교회시대에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실제로 빌라도 관저에서 갈바리아 산까지의 거리를 걸으면서 기도드렸던 데서 유래한다. 이 순례지가 지리적 정치적인 장애를 받게 되자 15세기, 16세기에 유럽에서는 성지 모형의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각 처의 숫자와 기도의 구체적인 형태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기도는 특히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널리 전파되었는데 1688년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B. Innocentius) 11세는 이 수도회의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했고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이 기도를 바치는 자에게 전대사(全大赦)를 허락하였다. 1694년 교황 인노첸시오 12세는 이 특전을 확증했으며, 1726년 교황 베네딕토(Benedictus) 13세는 모든 신자들이 이 특전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1731년 교황 글레멘스(Clemens) 12세는 모든 교회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곳의 숫자도 14처로 고정시켰다.
19세기에 이르러 이 신심은 전세계에 퍼져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는 가장 좋은 기도로 특별히 사순절에 널리 행해지고 있다. 성당이나 그 밖의 공적(公的)인 기도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혹은 사제와 함께 단체로 행해진다. 각 처를 순례하듯 옮겨가는 것이 원칙이나 단체로 할 때는 대표만 움직이고 다른 분들은 움직이지 않고 해도 무방하다. 각 처마다 정해진 기도문과 함께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외며 묵상한다. 14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처 : 예수, 사형선고 받으심. 제2처 : 예수, 십자가 지심. 제3처 : 예수, 기진하시어 넘어지심. 제4처 : 예수와 성모 서로 만나심. 제5처 :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 짐. 제6처 : 성녀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 씻어 드림. 제7처 : 기력이 쇠하신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심. 제8처 : 예수,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제9처 : 예수, 세 번째 넘어지심. 제10처 : 악당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고 초와 쓸개를 마시게 하였음. 제11처 : 악당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음. 제12처 : 예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 제13처: 제자들이 예수의 성시(聖屍)를 내림. 제14처 ; 예수, 무덤에 묻히심. 파스카의 신비를 생각하여 제15처 : 예수 부활 장면을 묵상하기도 한다.
◆백성을 위한 기도◆
미사 끝이나 시간전례에서 주요 시간경, 곧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끝에 사제의 판단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형태의 파견 축복이다. 마침 강복을 하기 전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도문이 있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백성을 위한 기도는 사순절 미사 때에만 사용되었다. 이 기도는 사제나 부제가 “축복을 받기 위하여 마음의 준비를 갖춥시다”라는 초대의 말로 시작된다.
◆식사 기도◆
식사 전과 후에 바치는 기도를 ‘식사의 은총’(Grace at Meals)이라고 하는데 이는 감사를 뜻하는 라틴어 gratia에서 유래한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에 감사드리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그리스도교 관습에는 보통 하느님께 준비된 음식과 음식을 나눌 사람들을 축복해 주실 것을 청하는 동시에 주신 선물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리고, 우리는 물과 음식에서조차 주님께 완전히 의존한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고정된 기도문을 사용하기도 하고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자유롭게 기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식사 시간은 가족과 친구들을 한데 묶는 사랑의 상징으로 머물지 않고 경배 행위가 되기도 한다.
출처 : [전례사전]
◆통회 기도◆
죄에 대한 아픔과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표현하는 기도이다. 고해성사를 거행할 때 고백자는 사죄를 받기 전에 통회 기도를 바친다. 새 예식서는 열 가지 통회 기도문을 제시하며 다른 형식문도 사용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전통적인 통회 기도는 다음과 같다.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통회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부분 대사를 받을 수 있다.
출처 : [전례사전]
◆묵상 기도◆
1. 묵상 : 이는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 몰두시켜 하느님의 현존 속에, 하느님과 관련된 일에 대하여 생각에 잠기는 것을 말한다. 묵상은 신앙의 신비나 그 진리, 예수님이나 성인들의 생애, 성서나 교회의 가르침 등을 깊이 생각함으로써, 신앙을 보다 깊이 통찰하고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알게 한다. 그러나 이는 관상(觀想)과는 구별되며, 성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 수련 묵상법은 그 좋은 예이다.
2. 묵상 기도 : 이는 생각만으로 드리는 마음의 기도이다. 묵도(默禱)란 ‘말없이 기도하다, 묵상하다, 명상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소리 기도(염경 기도, 통경 기도)와 구분한 마음 기도(묵상, 명상)이다. 여기 통경 기도란 여럿이 함께 소리내어 하는 기도이며, 염경 기도 역시 소리내어 하는 기도이다.
이렇게 보면 눈을 감음(默念) 역시 마음 기도 혹은 그 준비라고 말할 수 있다. 눈을 감음은 생각을 모아 일체의 잡념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동작이다. 일반 종교 의식이나 국민 의례에서도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음으로써, 번다한 세상과 인연을 끊고 고인(故人)이나 심오한 진리에 마음을 기울인다.
우리는 영성체, 복음 낭독, 강론 후 묵상 때 눈을 감고 우리의 마음을 드높은 세계로 올린다. 언제 어디서고 조용히 눈을 감고 영원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마음의 눈을 돌린다면, 우리는 깊은 신앙으로 인도될 것이다.
출처 : [용어사전]
◆전구◆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간청하고 탄원하는 행위로서, 어떤 사람의 바람이 성모 마리아나 천사 또는 성인들의 도움으로 하느님께 전달되기를 청하는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