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무너진 꿈을 회복하라!
(창 37:1-12)
시작하는 말씀
할렐루야!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 어떻습니까? 저는 오늘 "비젼송"과 "영광송"을 하는 데, 하나님 나 같 은 인생을 이와 같이 영광스런 예배 의 자리에 불러 주시다니요, 나 같은 미천한 인생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게 하시다니요, 정말 복받치는 감격이 제게 있었습니다.
여러분, 조금 힘들어도, 예배가 살아 있으면, 주님이 기뻐하 시는 귀한 이 제단위에서 여러분들, 예배로 여러분들의 삶을 제물로 드 릴 수만 있으면, 웬만한 땅의 어려 움과 저주가 물러갈 줄 믿습니다. 그런 마음의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조금 힘들고 어려워도, 예수님 때문에, 예배의 은혜 때문에, 기뻐하 고 감사하기로 결심해 버리면, 반드 시 우리의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는 축복을 주님이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독특한 "Mechanism(조직)"이 있습니다. 그 것이 뭐냐 하면, 여러분 가정이 잘 되고, 자식이 잘 되고, 내 인생이 편 하기만 하다고 해서, 절대로 우리는 만족하지 못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분복(타고난 복)"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영광을 체험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은혜로 Touch를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정말 살아계신 예배를 드리고 가시기를 바라고, 말씀 하나도 그냥 흘러 버리지 마시고,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 어떻게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말씀 하나가 우리의 삶을 치유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오늘 이 예배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주 내 맘에 오신 후에 주 날 인도하시네, 주께 내 맘 드린 후에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더욱 사랑할수록 주 날 사랑 해, 매일 내 맘에 기쁨이 넘치네, 더 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이란 찬송을 이 시간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 내 인생을 나의 예수 믿는 이 은혜가, 가면 갈수록 더 은혜가 있 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때 자라는 것 말고, 끝까지 은혜 있게 하시고, 가정 생활도 주님 보시기에 끝까지 더 은혜롭게 감당하게 하시고, 그 야말로 우리의 신앙 생활, 예배 생활, 주님을 섬기는 것이 가면 갈수록 더 은혜 있게 하셔서, 우리의 진 정한 고백으로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이라고 주님 앞에 우리의 삶을 의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모두는 태평 양을 건너 올 때에 꿈을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가 살던 곳에서, 거기가 한국이든지, 혹은 과거에 우리가 유럽, 중동, 남미, 호주 등 어떤 곳 에 살았든지에 상관 없이, 일단 태 평양을 건너서, 대서양을 건너서, 미 국에 왔을 때는, 꿈을 가지고 왔습 니다. 과거에 살았던 것보다는 조금 더 낫게 살아야 되겠다는 기대를 가 지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 다.
'아멘' 입니까? 그 마음의 소 원을 가지고, 오늘 이 'Message'를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과거에 살 았던 인생보다도, 더 귀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면, 우리에게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우리 앞에 귀한 신앙의 'Model' 을 하나 정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Role Model'을 하나 정하고, 그 분이 살았던 발자취를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흥'이란 것이 무엇 입니까? '부흥'은 'Revival'입니다. 'Revival'이란 것은 과거에 있었던 은혜를 재현하는 것입니다. 사전 전 의 역사를 부흥하기 원한다면, 사전 전에 나타났던, 그 부흥의 원리와 능력과 발자취를 다시 한번, 우리가 재현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귀한 신앙의 선배들이 구름 떼와 같이 증거 되고 있고, 달려 갔습니다.
특별히 여러분, 과거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가장 멋있게 살았던 사람 들은 대부분, '이민자'였습니다. 할 렐루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 럼, 이민자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 야곱'도 이민자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성경에서 가장 Perfect한, 흠 없이 살았던 '다니엘'은 참으로 '이민자'의 삶을 어릴 때부터 살았습니다. 신앙 의 위대한 선배였던 '바울'도 '이민 자'였습니다.
무엇 보다도, 오늘 우 리가 10여주에 걸쳐서 말씀을 전하 려고 하는 이 '요셉'은 이민자의 표 상(대표적인 상징)입니다. 그래서, 이 '요셉'이 살았던 삶의 자취를 우 리가 뚜벅뚜벅 걸어 가고, 적용하기 만 하면, '요셉'이 가졌던, 그 분복 과 은혜와 영감과 능력을 우리 모두 가 다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크게 요약하면, '구원의 역사'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다른 차원에서 보면, '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다루시느 냐?에 대한 Story'라고 말 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 '요셉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제 마음속에 "하나님, 나를 다루어 주십시오! 담임 목사가 말씀을 오랫동안 준비하고, 계획을 했습니다만, 주여, 이 말씀을 통 하여, 제가 먼저 영향 받게 하시고, 이 말씀을 통하여 제 삶 속에 부흥이 일어나게 하시고, 이 말씀을 통하여 제 삶이 먼저 바뀌게 하여 주시옵소서.
새 천년의 시간의 공간 속에 우리의 성도들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이 말씀에 영향을 받고, 하나님이 요셉을 다루는 그 흔적을 가지고, 그 흔적의 손길을 우리의 삶에 재현하므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한 분도 예외 없이, 심령과, 가정과, 자녀들과, 남은 여생 속에 진실된 부흥이 일어나 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마음의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루신 흔적이었 습니다만, 조금 더 깊이 들어 가면, 성경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약속의 말 씀을 어떻게 이루셨는지에 대한 행 적'이라고도 말 할 수 있는 것입니 다.
1. 자수성가(自手成家)가 아니라 (신수성가: 神手成家 )이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요셉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손길이 끊임없이 그의 삶을 인도하고 살았습니다. '자수성가'가 아니라, '신수성가'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신수성가'라 는 말은 제가 '조어'로 지어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노예, 죄수, 팔린 몸이었으며, 아무것도 없던 인생이 었지만, 하나님의 손으로 최고의 위 치까지 올라간 '신수성가'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신수성가'는 하나 님의 손으로 일가를 이루었다는 뜻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나 여러 분은 오늘 이 자리에 '자수성가'가 아닌, '신수성가'를 하려고 이 자리 에 왔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 아니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믿고,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건축과 부 흥도 '자수성가'가 아니라, '신수성가'로 이루어 주셨다고 믿습니다.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 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 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 게 하시려 하셨나니"
음모, 고통, 질시, 질투, 공격, 상처 등 이 모든 해로움을 하나님은 선으 로 바꾸셨습니다. 요셉의 삶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가 당대 최대의 제국인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 그를 판 형제들 앞에서 '창 50:20'을 통해 하나님이 자기의 생애를 주관하신 것을 고백했습니다. 이것을 기독 교적 전문용어로, '하나님의 주권'이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강력하게 펼쳐진 인생, 하나 님의 주권을 믿고 의지하는 생애, 하나님께서 악한 일들조차도 사용하 셔서, 선으로 바꾸신 것을 고백한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 교회의 남은 여생을 과연 주관하심을 믿을 수 있겠는가?'하는 이것이 일관된 우리의 태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 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 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 우주 공간 속에 버려진 우연한 존재 가 아닙니다. 우리는 비인격적이고 도 눈 먼 어떤 우연한 힘에 의해서, 밀려다니도록 내팽개쳐진 외로운 존 재가 아닙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 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피 값만큼 귀한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 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보 호하심의 대상인 것입니다.
오늘 성령님을 통해서 이 귀한 사상으로, 말씀으로 정말로 무장될 수 있도록, 그렇게 은혜만 주신다면, 우리 가운 데 있는 어떤 비참함, 좌절, 상처, 위장된 분노와 무너진 꿈도 주님이 회복해 주실 것입니다. 요셉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억울한 상황에서도 너무나도 놀랍게 하나님의 신실한 인도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을 모르는 애굽의 바로왕에게조차도 당당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창 41:38
"바로가 그 신하들에 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면, 이와 같이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나도 예수 믿으면, 당신처럼 영적으로 성공하 고, 은혜 받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겠는가?'라고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 받는 존재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무너질 수 밖에 없던 인생인 요셉을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셨는지를 구체적으로 보면서, 영적인 진리와 유익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I. 요셉의 배경
창세기 37장 본문에는 요셉이 17세 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셉 이 형들의 질시를 당하면서, 형들에 게 배신을 당하고, 조금 후에 팔리 게 되는 비참하고도, 비극적인 상황 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요셉은 나이 가 어릴 때부터, 슬픔과 비극을 어떤 식으로 Handling하는지를 하나님께로부터 배웠습니다. 먼저 그의 가족적인 배경을 보면, 우리의 생각처럼 화려하거나, 대단 히 축복된 것만으로 이어진 것은 아 닙니다.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그 런 가족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 다.
1) ( 부 모 ) 창 27:36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 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 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 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 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 이까"
요셉의 아버지는 '사기꾼'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요셉은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기꾼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동생 베냐민을 낳다 가 어머니 라헬이 죽었습니다. 10대 초반에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야 곱은 이 속이는 것 때문에 밧단 아 람이라는 하란 땅의 외삼촌의 집에 도망가서 아주 연극이나 소설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아내가 둘, 첩이 둘, 그리고, 아들 11명에 딸 1명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이가 썩 좋지 않았습니 다. 갈등 구조 가운데 어릴 때, 아버 지가 어떤 삶을 사는 지를 보게 되 었습니다.
2) ( 상 처 ) 받을 수 있는 환경 창 31:17-20
"야곱이 일어나 자식 들과 아내들을 약대들에게 태우고 그 얻은 바 모든 짐승과 모든 소유 물 곧 그가 밧단 아람에서 얻은 짐 승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 아비 이삭에게로 가려할 새 때에 라 반이 양털을 깍으러 갔으므로 라헬 은 그 아비의 드라빔을 도적질하고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 게 고하지 않고 가만히 떠났더라"
요셉의 첫 상처는, 그 아버지가 최 소한 15년 이상을 함께 살았던 장인 어른과 마지막 결별의 장면이 야반 도주였다는 겁니다. 사랑했던 외할 아버지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야 반도주를 할 때, 아마 보통 사람이 라면 큰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창 32:7-8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 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형 에서에 대한 공포스러움을 기억 한 채 대화하는 그 아버지와 어머니 의 힘들어하는 얘기들을 어릴 때 들 었습니다. 꼭 화려하고 거창한 삶의 기억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창 34:25
"제 삼일에 미쳐 그들이 고통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부지 중에 성을 엄습하 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요셉의 이복 누나인 디나가 세겜에 서 그 족장의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 했고, 디나의 친 오라비인 시므온과 레위가 견딜 수가 없어서, 음모를 꾸며서, 그 사람들이 할례를 행하고 고통스러워할 때 찾아가서 남자들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칼날을 번뜩이면서, 눈알을 휘번뜩 거리며, 사람을 죽이겠다고, 모진 입 을 아물고, 칼날에 피를 묻히고, 쫓 아 다니는 그 형들을 보면서, 요셉 은 어쩌면 보통 사람이었다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을 지 모 릅니다. 더구나 요셉은 사랑하는 어 머니를 일찍 여의게 되었습니다.
창 35:29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 로 돌아가니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그리고,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어 머니 라헬보다도 더 오래 살았던, 할아버지 이삭이었습니다. 요셉이 용서의 사람이 된 것이 결코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요셉과 형들, 그리고 동생 베냐민과도 나이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요셉이 이삭의 품에 안겨서 늘 많은 영적인 교훈을 받았을 지 모릅니다. 온유하고, 사람을 품으며, 용서하는 이삭의 삶을 통하여, 요셉이 따뜻한 온기로 이삭의 가슴이 아마 요셉에 게로 옮겨져 왔는지 모릅니다.
창 37:4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 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 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야곱의 잘못된 가족의 어떤 유전적 인자는 '자식편애'였습니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에서보다도 야곱을 편애했는데, 그 편애의 자취가 야곱 에게 남아서, 아마 야곱이 요셉만 사랑한 것 같습니다. 물론, 가장 사 랑했던, 그리고 먼저 죽은 아내가 낳았던 아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요셉을 야곱이 너 무나도 아꼈고, 편애를 했습니다.
이 편애 때문에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 고 질투하며 '왕따'를 한 것입니다. 17세의 나이에 가족들의 이 거친 환 경을 자기가 삶으로 체득해 왔고, 경험했고, 형들에게 '왕따'를 당했으 면서도, 낙심하거나 인생을 한탄하 면서 살지않고, 요셉은 놀라운 교훈 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II. ( 무너진 ) 꿈을 어떻게 ( 회복 ) 할까?
오늘도 이 말씀을 그대로 믿기만 하 면, 이 부흥의 역사가 우리에게 재 현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어떤 면 에서 진흙탕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과 같고, 쓰레기통의 장미가 될 수가 있었는데, 그 비결이 무엇 인가?
1) 문제를 통해서 교훈을 받아야! 모든 문제를 문제로 삼고 끝내지 말 고, 거기서 교훈을 받아야 하는 것 입니다.
창 31:55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 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라반이 야곱을 좇아 와서 책망을 했고, 사위는 못마땅했지만, 딸들과 손 자들에게 축복했습니다. 여기에서 요셉이 나름대로, 감동을 받았을 것 입니다. 야반도주를 해도 축복해야 할 사람은 축복해야 하겠구나! 또, 큰 아버지 에서를 두려운 마음으로 만나는 아버지 야곱을 본 요셉은, 정직하게 살아야 되겠구나!하고 정직의 중요성을 배웠을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면,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아버지가 정직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저렇게 결과를 두려워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34장에서 디나의 사건을 통하여 자기 형들의 잔인한 복수를 보면서, 잔인한 복수는 한 때의 잠 시 육신의 쾌감이 있을 지는 모르지만, 가문의 위신이 실추되는 것과 생명의 존재까지도 위태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훗날 이것이 그로 하여금, '용서의 사람'으로 일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세겜의 복수사건 이후에 야곱이 정신차리고, 벧엘에 서 이방신상을 제거하는 사건들을 보면서, 아버지가 젊었을 때 벧엘에 서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 다가, 나중에야 정신차리고 기억하 는 것을 보고, '인생은 우선 순위를 바로 하고 살아야 하겠구나'라는 것 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값을 치루더 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올바르게 되어야겠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요셉에게는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들 이 우리가 예상하지 않던, 어려움과 문제와 실패가 있더라도, 꼭 그것을 직접 경험을 하지않더라도, 요셉도 다 자기가 경험한 것 아니지요. 형 들이 잘못한 것이 있고, 아버지가 잘못했지만, 남들의 간접경험을 통 하여 놀라운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 입니다. 이러한 교훈을 평생 받을 수 있도록 영안을 열어 주시기를 바 랍니다.
2) 압박과 ( 미움 )을 껴 안아야! 창 37:4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 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 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요셉은 압박과 미움, 질투, 편애를 껴안았습니다. 아버지의 편애와 형 들의 질투와 거부 때문에 생기는 압 박을 올바르게 껴안으므로 그의 인 격을 세워나갔습니다. 그도 Teenager로서,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을 때 왜 좌절의 감정이 없었겠 습니까? 그 예민한 사춘기시절의 당 하는 고통이 컸을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 같으면 '왕따' 당하는 괴로 움 때문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질투와 미움은 인생의 큰 괴물입니다. 우리 모두를 산 채로 삼킬 수 있는 독약이 되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의 어떤 역사학자는 어떤 도시의 중 요한 자리에 세워져 있는 한 운동 선수의 조각상에 대해서 이렇게 말 했습니다. 그 조각상으로 세워진 운 동선수에게는 경쟁자가 있습니다. 비슷한 실력가였는데, 그 경쟁자의 조각상은 없고, 이 사람만 조각상을 세워주었습니다. 그래서, 경쟁자였던 운동선수가, 질투 때문에 그것을 없 애려고, 조각상의 기초를 망치로 까 부수기 시작했고, 끝내는 그 조각상 을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너지는 조각상이 그를 덮쳤고,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형들에게 배반 당하고, 팔리게 된 요셉의 심정이야 말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 로, 극도의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감정의 고통 뿐만 아 니라, 육신의 고통까지도 동시에 받 았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지고, 감옥 에 팔리우고, 감옥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그런 고통까지도 겪었습니 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에게 고통이 나 압박을 면제시키지 않고, 하나님 께서 그대로 두신 이유는 그것을 통 해서 하나님께서 진짜 중요한 것을 부어주실 때, 그것을 감당할 만한 인격의 그릇으로 성숙시키시기 위해 서 하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진리 인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 고통이나 배신을 당할 때, 복수심이나 질투심의 쓴 뿌리가 없어야, 인격이 세워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민생활을 하면서, 어떤 경우이든 사람들이 오해와 질투의 망치를 들고, 남들이 세워 놓은 삶의 동상을 깨 부수려고 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하면 껴안을 수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목회자들에게도 이런 성향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사역에 대한 고통이 있습니다. 요셉이 만약 껴안지 못했다면, 평생을 고통과 좌절의 신음으로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질투, 고통, 미움의 감정을 껴 앉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통과 질투를 잘 승화시켜서, 더욱 성결케 되고 견고해짐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닮아가게 되었으 면 좋겠고, 고통과 배신감이 우리의 인생을 좌절시키거나, 녹이지 않도 록 해야 합니다.
말년에 이삭이 엄마가 죽은 요셉을 보람 삼아, 영적인 가르침을 베풀었을 것입니다. 그 때 요셉은 마르다가 아닌, 마리아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새겨들었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 주권 )과 섭리를 ( 인정 )해야!
그러나, 오늘 잃어버린 꿈을 회복하 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 째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요셉의 전체의 삶에 대해서 멋있게 설교했 던, 신약의 스데반 집사님이 계십니 다. 참 아름답게 요셉의 삶을 해석 했습니다.
행 7:9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 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 와 함께 계셔"
이것이 키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좌절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고통 과 음모와 죽음가운데서, 요셉의 모 든 어려움을 면제시켜 주시겠다'가 아니고, 그 어려운 고통과 음모와 죽음의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저 와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마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의 인격을 빚으시고, 우리를 강건하 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됨으로, 그 어려운 고통을 능히 감당해 나갈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사람으 로 키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안되면요, 좋은 것을 주어도 좋은 줄 모릅니다. 어릴 때 다 가져 보세요. 부잣집 집안에서 태어나 가지고, 모든 것을 어릴 때 부터 필요한 것 다 누려 보세요. ' 인생의 목표부재 인생'이 됩니다. 마약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혼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까? 이혼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릴 때 모든 것을 다 갖춘 부잣집 도련님들 보십시오. 인생의 목표가 없습니다. 제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처럼 다듬으시면, 한 순간 한 순간, 한 땀 한 땀, 한 시기 한 시기가 진정한 삶에 대한 목표와 감격과 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 갖춰 보십시오. 모든 것을 다 줘 보십시 오. 인생은 결코 만족할 수가 없고, 허무가운데, 허사가나 부르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요셉은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 을 확신했습니다. 비록 주위의 환경 이나 사건이 악하고, 그를 해할지라 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 합력하 여 선을 이루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벧전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 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 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이 삶 속에 적용이 되 면, 우리의 고난이 우리만의 고난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으로 바꿔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인격이 성숙되면, 그렇게 고 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려 주신다는 것을 확신 하게 되고, 로마서 8:28의 사실이 가 감없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 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 든 것 (좌절, 음모, 질투, 배반, 상 처, 가족적인 어려운 배경 등)이 합 력하여 선을 이룬다. 즉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시는 더 영광스러운 것 을 체험할 수 있는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예배에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여러 분들의 기도제목에 주님이 함께 계 십니다. 답답하고 슬프고, 괴로운 인 생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 께 계시는 것이 가장 큰 상급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요셉은 하나님 이 함께 계시는 섭리를 통한 보호하 심의 대상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되 었습니다.
요셉의 모든 인격의 역학, 그의 삶의 역동성과, 행동의 탄력성 은 자신이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의 확고성 가운데서, 하나님이 함께 계 시는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확인하는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제가 마지막으로 섭리에 대 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기독교에는 몇 가지 신경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이라는 신경이 있고, 도르트 신경, 하이델베르그 신경이 있습니다. 거기에 섭리에 대 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섭 리란,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하늘 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붙들어 다스 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전능하고, 한 정적인 능력이다. 그리하여, 나뭇잎 과 풀잎, 비와 가뭄, 열매와 흉작, 음식과 마실 물, 건강과 질병, 번영 과 가난 등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우 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고 생각하고,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안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신 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늘도 우리의 삶 을 붙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살려주시고, 새롭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의 확고성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