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회복하라 (창세기 22:1-13)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좀 나태한 마음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이것쯤이야 어떠랴 하면서 예배를 이래 저래 빠지고, 기도도 하지 않고, 성경 말씀도 읽지 않고, 속회 예배도 드리지 않고...... 자꾸 예배에 빠지고, 기도도 하지 않고, 그렇게 살다보면 여러분에게 손해입니다. 뭐 손해 안 볼 것 같죠?
캐나다는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넓은 땅, 맑고 깨끗한 공기, 울창한 숲, 평화로운 도시, 어디나 흐르는 맑고 깨끗한 시내와 강물, 이 지구상에 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있다면 아마 캐나다 일 것 같습니다.
2000년 5월 19일 캐나다의 워커톤 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주민들 중에 고열과 설사 심한 구토를 하는 사람들이 병원에 왔습니다. 의사가 진찰한 결과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날마다 환자가 늘어났습니다. 며칠 사이에 1000명의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시 보건 당국이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수돗물에 이상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여러 사람이 죽었습니다. 몰리라는 5살짜리 여자아이도 이 병에 걸렸습니다. 아름다운 금발과 호수같이 푸른 눈의 이 어린이는 병에 걸린지 3일 만에 신장이 공격받아 투석을 했고 동맥이 공격받아 혈관이 터져 5일 만에 죽었습니다.
정부에서 전문 조사관을 파견하여 조사한 결과 수돗물에 인체에 치명적인 이콜라이라는 박테리아에 오염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시의 수도사업장에서 직원들이 염소 소독기를 꺼 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것은 사소한 부주의였고 근무 태만이었는데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그 일로 사람이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시는 물이 오염되면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이 감염되어 죽을 수 있습니다. 나태한 마음 태만한 마음... 이것쯤 어떠랴 하는 마음으로, 별 생각없이 하고 있을 때, 죽음의 고통과 슬픔이 워커톤 시를 덮쳤던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 아들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 후에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흉년을 당하고, 가정 불화를 겪기도 했죠. 이제 원하던 아들도 얻었고 가정도 평화롭고 돈도 많고, 아무걱정이 없었습니다.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정말 나를 잘 섬기고 있는가? 나를 제대로 믿고 있는가? 아브라함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가?’ 하는 의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 있는지,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지 그것을 시험해 보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네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나에게 번제로 드리라.”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태하고 흐트러졌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 다시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로 했습니다.
우리들도 아브라함처럼 되기가 쉽습니다. 어려운 일도 없고 모든 것이 안정되고 평화롭고,....
돈도 많이 벌고 자녀는 잘되고 사업도 잘되고 걱정도 없고......
천국처럼 평화롭게 살던 아브라함은 정작 가장 중요한 신앙에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 전에는 아브라함은 자신이 아무 문제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처럼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이 신앙을 회복하는 데는 몇 가지 과정이 있습니다.
첫째, 신앙을 회복하는 제일 원리는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기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서 네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네 자식을 바쳐 예배를 드려라 하셨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예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차이는 예배의 차이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있고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요4:24) 했습니다. 마태복음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예배, 노아의 예배, 아브라함의 예배는 받아 주셨습니다. 다윗과 사울이 있습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사람입니다. 인생의 고비 고비 마다, 앞길이 막혀 절망스러울 때,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예배없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려운 인생의 위기에서 사울왕은 하나님께 간 것이 아니라 신접한 여인에게 갔습니다. 그 일 후에 사울은 길보아 전쟁을 했고 그 전쟁에서 아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제단 중심의 사람입니다. 예배 중심의 사람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먼저 제단을 쌓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더라 하는 말씀이 계속 나타납니다. 기독교인이 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예배중심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은 후,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예배를 게을리 했습니다. 예배하는 일에 나태해 진 것 같습니다. 이삭을 낳은 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예배했다는 말씀이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예배를 요구하셨습니다.
예배를 회복하면 신앙을 회복합니다.
둘째, 예배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먼저 예배의 장소가 중요합니다. ‘내가 네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서 예배하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곳이 모리아 산입니다. 하나님은 3일 길이나 걸리는 먼 곳, 모리아 산에 가서 예배를 드리라 했습니다. 이 모리아 산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번제의 예배를 드린 곳입니다. 이 모리아 산은 나중에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던 곳입니다. 성지 순례를 가서 보면 바로 그곳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그 곳은 2000년 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온 세상의 죄를 지고 죽으신 곳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할 곳은 주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할 곳은 교회입니다. 만민교회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들의 예배를 받으시려고 세우신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리아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듯이 오늘 우리가 예배할 장소는 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네 독자 이삭을 나에게 번제로 드려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들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양이나 염소로 번제를 드리라 하지 않았습니다. 암소나 황소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아들 이삭을 번제로 요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3일을 걸어 모리아 산기슭에 이르자 아브라함은 이삭과 단 둘이 산을 오릅니다.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번제에 쓸 나무와 불은 있는데 번제에 쓸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번제물은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이다.” 나중에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번제를 드리려고 하자 하나님은 미리 양을 준비하셨고, 그렇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배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하는 대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셋째, 하나님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면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직장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사업체를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하나님 섬기는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 애경사 쫓아다니느라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긴 것 같습니다. 아들은 정말 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돈도 귀중합니다. 그것이 있어야 살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고... 사업이나 직장은 돈을 버는 곳입니다. 그러니 귀중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더 귀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관계도 중요합니다. 사는 행복이 여기에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더 귀중한 일입니다. 그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어떤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유리 항아리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상하게 여겨 보고 있는 학생들을 두고 큰 돌들을 항아리에 채웠습니다. “여러분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예” 교수님은 자갈들을 다시 항아리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항아리가 가득 찬 거 같습니까?” “예”
이번에는 모래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모래가 돌 틈에 계속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이제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 이번에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은 주전자를 들어 물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한 주전자의 물이 다 들어갔습니다. 가장 큰 것부터 항아리를 채우면 항아리가 완전하게 꽉 차게 됩니다. 자갈이나 모래같이 자잘한 것을 먼저 넣으면 항아리에 많은 것을 넣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있습니까?
배재철 이라는 성악가가 있습니다. 그는 아시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성악가, 테너가수입니다.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라는 영화는 이 분의 이야기입니다. 서정적인 섬세함과 심장을 관통하는 힘있는 목소리를 함께 지닌 성악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찬사, 리리코 스핀토,(서정적인, 가슴을 찌르는 이라는 뜻) 아시아 성악 역사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뛰어난 테너 가수였습니다.
독일에서 오페라의 주역을 하면서 활동하던 2005년에는 독일의 자르브뤼켄 극장의 주역테너로 활동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중 갑상선 암 선고를 받고 수술 과정에서 성대신경이 끊겨 목소리를 잃었습니다. 테너 가수에게 목소리는 생명입니다. 그는 그 생명과 같은 목소리를 잃었습니다. (동영상 성악가 배재철, 유튜브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지난 월요일 저는 월드비전 컨퍼런스에 참석했는데 성악가 배재철 한양대 교수가 나와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의 성가대도 했죠. 공연을 앞두고는 자기의 목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가대도 서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목소리를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이 왜 목소리를 빼앗아 가셨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보다 세상의 공연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자기의 목소리를 더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려운 네 시간에 걸친 수술 후, 조금씩 목소리를 되찾게 된 배재철은 고통스러운 재활을 시작하고, 마침내 신경이 끊겨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하던 성대와 오른 쪽 폐가 되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목소리를 되찾은 배재철은 병상에서 했던 약속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분을 높이는 것을 위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시 목소리를 찾으면서 그가 불렀던 첫 노래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을 회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리아 산으로 가서 자신의 마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 보여드렸습니다. 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
창22:16-18에 보면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습니다.
여기 세가지 복을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자녀가 잘되게 해 주리라.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리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신앙을 회복하셔서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