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철강선 제조업체인 고려제강(Kiswire)이 조성한 수영공장(현. F1963)은 2008년까지 45년간 와이어를 생산하다 가동을 멈췄다. 동 부지에 2016년 부산비엔날레 개최를 계기로 복합문화공간 F1963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엔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들이 있는데, 그 중 아래 장소는 1년 내내 햇빛이 투영하는 '유리온실'이라 명명된 곳이다.
두 갈래 길로 나뉘는 이 곳은 '소리길'로 대나무 산책길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이 생각난다. 두 갈래이지만 다른 것이 바닥재이다. 설명에 따르면, 지금은 멈춘 와이어 제조설비 공장 바닥의 콘크리트를 잘라 조성했다고 한다. 요즘은 재활용을 통한 스토리텔링이 호소력이 있다^^
'두 갈래 길' 말고 아래와 같이 3번째 길도 있었다. 옵션이 2개 뿐이라는, 그것도 남이 만든 옵션을 꼭 내가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리스크는 덤이지만 말이다.
F1963은 옛 공장 건물을 몽땅 부수고 재건축한 것이 아니라, 기존을 여기저기 기워서 레노베이션 한 것이다. 다른 곳에서 건물 외벽에 아래와 같은 철사망으로 뒤덮여 있는 것을 봤다면 아마도 100% 기존 건물을 가렸기 때문일 것이다. 철망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여자가 걸어가는 모습'은 이미 여기저기에 전시되어 있어 익숙해진 영국의 팝아티스트 줄리언 오피(1958~)의 작품이다.
기존 건물을 레노베이션하고 철망으로 덧붙인 형태라서 아래와 같이 공간이 생긴다. 서울을 포함해 도시 곳곳에 이러한 형태의 레노베이션 건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F1963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석천홀'에 도착했다. 돌아볼 곳은 동 복합문화공간에 있는 2개의 전시관 '석촌홀'과 '국제갤러리'이다.
<Rainbow-Wire 2020> 타이틀이고, 부제가 <무한대의 사색 Infinity of Comtemplation>이다. 작가 8명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왜 예술을 시작했고,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차피 이러한 질문 자체가 무한한 사색을 필요로 할 것이고 아마도 죽을 때까지 끝이 나지 않으리라.
넓은 홀의 천장에 많은 사물들이 매달려 있다. 색상도 맞춰서 그라데이션을 주었다. 한 켠에 놓여 있는 빈백소파에 앉아 위를 쳐다보며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이디ㅏ. 자세히 보면 접근금지 표지판을 포함해 다대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이다. 현대예술 중 한 분야로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작가 김순임<바다풍경-다대포>(2020)
천장엔 색칠한 쓰레기들이 매달려 있고 벽면에는 빔 프로젝트로 세상에 흩뿌려져 있는 쓰레기 영상이 흐른다.
쓰레기 더미를 뒤로 하고 계속 전시장을 돌아다닌다. 아래 왼쪽의 무작위의 동그라미들이 산재해 있는 작품은 최례 작가의 ‘공(空)’ 시리즈 작품이다. 작품 타이틀은 번호들로만 매겨져 있어 생략한다.
작가는 동그라미 변주를 표현했다. 보기에는 특별해 보이지 않는 동그라미 그림처럼 느껴지겠지만, 실제로는 한국에 거의 없는 목판 수성 판화 작품이다. 무한대의 공간과 시간을 표현했다고 한다. 무한대는 어찌 보면 끝이 없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스럽기 그지 없기도 하다. 어차피 한계가 없으니 어차피 끝도 시작도 없다.
<러브-195>의 무한 색상 변주이다. frame 색깔까지 더해져 다채롭다. 그런데 frame 떄문에 한계 지워진 상자 안에 든 limited love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작품 타이틀의 '195'는 유엔이 발표한 국가 수이다.
작가 이상엽 <Love-195>
'도시 풍경'이다. 잘 보면 현대 고층건물군으로 겹겹이 쌓인 도시 풍경이 맞다.
작가 이상엽 <City Landscape-G>
작품 타이틀 <숨-망각의 숲> 아래 '삶과 도피'의 합성어처럼 보이는 'L I F ESCAPE'가 쓰여 있다. 작품 재료는 산업단지 폐기물인 철, 아연가루, 우레탄 폼 등이라고 한다.
작가 최원규<숨-망각의 숲 Breath-The forest of obllvion>
현대예술의 특징은 제한 없는 무한대의 소재와 창의적인 작품 제작 프로세스에 있다. 이 작품은 '피그먼트 프린트' 라고 되어 있는 바, 구겨진 종이 위에 빔 프로젝트 영사 후 촬영한 것이다. 아이돌(우상)의 해체를 표현했다. 자세히 보면 예수 위에 누군가가 또 있다.
작가 홍준호 <Deconstruction of Idols; Religion #019>
작가 홍준호 <Deconstruction of Idols; Religion #026, #027>
옆 방에 프르는 동영상을 보기 전, 이런 문장들이 쓰여 있다. "끊어진 선은 매듭 없이 다시 연결 될 수 없고,"
"틀어진 관계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 왜 이리 무시무시하게 단절을 표현하는지 의문이 든다. 왜 되롤릴 수 없는가? 되돌릴 수 있다^^
작품은 유리 조각 파편들이다. 한번 깨진 파편들은 복구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동일한 모습과 형태는 아닐지라도 복구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작가 조민선 <beyond the orb-fragility> 동영상 중
작가 조민선 <beyond the orb-fragility> 동영상 중
'석천홀'의 <무한대의 사색> 관람을 마치고 대나무 숲이 있는 곳으로 나간다. 잠시 숲 속을 산책하고 다음 여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산 국제갤러리이다. 서울에도 경복궁 옆에 국제갤러리가 자리한다. 세계적인사진 작가 칸디다 회퍼(1944~)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의 시작은 계단이 이어지는 3개의 사진들이었다. 계단이라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회퍼 사진의 특징은 거대한 인공적인 공간 안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텅 빈 극장. 코로나 시대를 예언한 것인가? 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
그녀는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대극장의 텅 빈 구조물을 찍어냈다. '공간의 초상' 혹은 '관계의 이야기'라고도 한다.
F1963을 나와 국제시장으로 간다. 부산 출신 지인과 동행한 바, 운전을 하며 저 앞 3개의 건물이 부산 명물 '엘시티'라고 알려준다.
부산 '국제시장'만 들어본 나로서는 '부평 깡통시장'이라는 팻말에 여긴 다른 곳인가 했는데, 2 시장은 붙어 있다.
시장은 그냥 구경만 해도 재미있다. '나나스키'라고 쓰여 있는데, 뭔가 했더니 '울짱아찌'이다.
부산 출신 지인은 '덕이 수산'이 오랜 단골이었다. 이곳은 국제시장이다. 빨간 고기를 10만원 어치를 구입해 택배로 부쳤다. '빨간 고기'가 뭐냐 했더니, 일본어로 '아까무쯔'라고, 우리말로 모른단다. 두산백과 검색 결과 '눈볼대'라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부산오댕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간판에 오뎅과 어묵이 나란히 써 있길래, 뭐가 다른가 찾아봤다. 두 단어는 다른 말이었다!
어묵[魚-/かまぼこ] : 생선살을 으깨어 반죽한 뒤 가열·응고시킨 음식. 생선묵
오뎅 [ おでん] :생선묵·유부·무·곤약 등을 꼬챙이에 꿰어 장국에 익힌 꼬치.
10,000원 어치이다. 서울에서 만원으로는 절대 이만큼의 오뎅을 살 수 없다. 여행에서 돌아와 무를 사서 오랜만에 오뎅국을 여러차례 끓여먹었다.
2021년 1월 3일 쓴 기록이지만, 여행은 2020년 12월에 했으므로 시리즈명은 '2020 겨울산책'으로 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