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신궁들의 금
맛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 반 소
순 원
이번 여름 폭염 중반기는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 2관왕 양궁의
장혜진, 구본찬 두 남녀 궁사들과 박영상, 진종오 선수들이 위기에서도 긍정의 힘을 발휘하며 가뭄에 단비 같은 금메달 소식을 띄워주곤 하여
행복했다.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리우올림픽 금 과녁을 명중시킨 신궁 장혜진
선수의 성실한 수련생 모습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세계랭킹 6위 장혜진 선수가 개인전 금메달을 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그 누구의
구상에도 없었다. 기대한 여 궁사라면 아마도 기보배나 최미선 선수였을 것이다. 그 예상을 깨버린 것은 경기장의 공간을 장악한 심술궂고
변화무상했던 돌개바람의 폭거였는지도 모른다.
장혜진은 1997년 대구 남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활을 잡았다.
IMF로 온 국민이 신음할 때 부모의 이혼으로 홀아비 슬하에서 아버지 일상의 반쪽을 거들면서 세 여동생들을 돌보랴, 학업을 이어가랴,
양궁수련선수로 활동하는 등 힘겨운 일과였지만 항상 명랑한 태도로 암울한 집안 분위기를 북돋우며 희망의 꿈을 소중하게 키워왔다.
꿈을 붙들고 있었건만, 꿈은 좀처럼 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 친구인 같은 학년의 기보배가 2002년 전국소년체전에서 3관왕에 오를 때 장혜진은 전국대회에 나갈 실력이 되지 못했고, 그녀를 양궁선수로
알아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심리적인 자책감 때문이었을까? 양궁선수에게 치명적인 클릭커병을 앓게 되어 날마다 울고불고 했다. 가족들이 양궁을
그만두라 했어도 자신은 양궁에 소질이 부족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포기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고교 2학년이 돼서야 처음 전국대회에서 메달을 땄다. 방학을
반납하고, 연습에 매달렸고, 훈련 후 집에 들자마자 거실에 쓰러져 잠들어 버린 날도 많았다. 그런 고난의 와중에서도 그녀는 웃음을 피워내는
명랑•쾌활한 낭자였다. 장혜진은 딸만 넷인 딸부자 집 맏딸이였다. 합숙소에서 집에 가는 날엔 초등학교 6학년 막내의 옷을 사주거나, 음식을
장만하는 등 집안 살림을 살뜰히 챙기는 엄마 같은 맏딸의 역할을 잘도 해내는 효녀였다.
4년 전 런던올림픽 선발전에서 간발의 차로 4위에 머물러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리우올림픽 선발전에서는 3위로 리우올림픽이라는 꿈의 무대에 생전 처음 진출하게 되었다.
장혜진 선수의 신장은 158cm로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아 땅콩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친구들이 땅콩 중에 최고가 되라는 뜻으로 ‘짱콩’이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쉴 새 없이 활시위를 당기느라 손이 항상 퉁퉁 부어있었다. 친분
있는 사람들이 악수를 청해도 부끄러워서 손을 내밀지 못하는 빌미가 된 것이다. 대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다. 짱콩의 인생에
대 발전이 시작된 거보였다.
2010년부터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하고 탈락하기도 하더니
2014년부턴 두각을 나타내어 월드컵 3차대회에서 1위에 올랐고, 인천아시아경기에서는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차지했다. 리우올림픽
최종선발전에서 4위로 탈락한 후배 강채영에게 접근하여 수고했다며 따뜻이 위로해준 언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런던올림픽 탈락의 꼬리표를 4년간
달아본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혜진은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대표팀 1진은 아니었다. 주요
국제대회에는 1진 3명이 출전하는데 2015년 9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프레올림픽 때 1진과 함께 브라질에 갔지만 그날 경기에 장혜진은
출전할 수 없었다. 국제경기가 끝난 뒤에야 그 자리에서 연습하면서 올림픽 때는 기필코 이 자리에서 활을 쏘겠다고 다짐했다. 4등으로 탈락한 뒤
장혜진의 슬럼프는 오래가지 않았다. 계획이 잘 안 풀리더라도 긍정적인 자세로 노력하노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2016년 8월 8일 리우올림픽 여자양궁단체전이 리우데자네이루
슴보드로모 경기장에서 열렸다. 초속 7~8m의 바람이 불규칙으로 불어댄 상황에서 29세의 선수대표 장혜진은 1번 사수로 나서서 8점 이상을
쏘았다. 선수단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32강에서 결승전까지 대표 팀의 전승을 견인하며 금메달을 수상하여 올림픽출전사상 8연승을 쟁취했다.
장혜진은 올림픽 대표선수 6명 중 가장 나이가 많지만 태릉선수촌
훈련장에서 몸 개그를 펼치며 수다의 중심에 서서 웃음이 떠나지 않도록 분위기를 띄우는데 앞장섰고, 구본찬이 그 분위기를 이어가는 선수로 훈련으로
누적된 피로를 풀어냈다.
리우올림픽 단체전 우승 후취재진이 금메달 수상 소감을 묻자 장혜진은
“무지갯빛 솜사탕 맛입니다.”라고 응답했고, 개인전 우승 뒤 인터뷰에서는 “배고플 때 먹는 초코파이 맛”이라고 대답했다. 어려운 가장형편으로
인하여 중, 고, 대학시절 연습할 때 초코파이 같은 간식거리조차 아음 놓고 먹을 수 없었던 시절이 떠오른 것 같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또는 혹독한 슬럼프에 빠져 클리커병까지
앓았던 장혜진은 바람이 요동치던 올림픽 경기장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침착하게 경기를 펼쳤다. 브라질에 도착하여 그렇게 좋아했던 초코파이를 간식으로
날마다 먹으면서 올림픽경기를 은근히 즐기기도 한 셈이다.
2016년 8월 13일 리우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의 32강전에서
러시아의 시체니코바 선수를 6:2로 물리쳤고, 16강전에서 만난 북한의 강은주 선수도 6:2로 넘었다. 8강전에선 영국의 폴카드 선수를 7:1로
제압했으며, 4강전에서는 단짝 친구이자 동료인 신궁 기보배 선수를 상대할 땐 3점을 쏘는 실수를 범하고도 더욱 차분한 침착성을 발휘하며
7:3으로 기보배의 높은 벽을 장혜진 특유의 긍정성으로 넘었다.
마침내 결승에서 만난 독일의 운르흐의 큰 키와 늠름한 체격에도
기죽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이미 하나의 금메달을 확보해 놓았으니, 조금은 마음을 비운채 한 발 한 발 침착하게 잘 쏘아 리우 최고의 여
궁사 자리를 점령하였다. 런던올림픽 출전탈락 4등의 아픔에도 웃었던 장혜진 선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늦게 피어 더 아름다운 신궁, 장혜진 선수는 가정형편의 어려움과,
누구보다 더 깊었던 슬럼프를 극복해낸 장한 대한의 딸이다. 금메달 2관왕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고생을 많이 하신 아버지가 나로 인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효심이 깊은 믿음직한 맏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 “짱콩”, 그 이름값도 똑 부러지게
잘 해내어 친구들의 멋진 우상이 되었다.
리우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면서 갖가지 시련을 극복하며 소망을 이룬
장한 젊은 피들의 멋진 행진이 보도되면서 행복을 느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장래가 촉망되는 희망의 불씨들이 많다. 긍정의 힘을 앞세운
젊은이들의 용감한 도전정신에 큰 박수로 응원하고 싶다.
(2016.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