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히브리서 제8강
한 번의 제사, 영원한 속죄
말씀 / 히브리서 9:23-10:18
요절 / 히브리서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오늘 말씀은 히브리서 4장 14절부터 시작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 대한 최종 결론입니다. 구약 시대에 자주 드려졌던 짐승 제사와는 달리 예수님의 단번에 드린 제사에 대해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드리신 희생 제사가 어떤 효력과 능력을 가지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통한 구원과 하나님의 자녀됨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깊이 영접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죄 때문에 고통당하는 우리 인생들을 위해 제사 제도를 주셨습니다. 제사를 통해 죄에 대해 희생제물을 드리고 죄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과의 자녀 된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죄로부터 진정 자유한 인생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장막을 쳐서 성소를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백성들과 함께 만든 이 성소는 하늘 성소의 모형이었습니다. 성소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므로 정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짐승의 희생제물의 피로 정결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이 땅에 세워진 성소도 흠 없는 짐승의 피로 정결하게 했는데 그렇다면 참 되고 원형인 하늘 성소는 과연 무엇으로 정결하게 해야 할까요? 땅의 것보다 더 좋은 제물로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기 ‘더 좋은 제물’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한 구원의 희생제물이 되어주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염소와 송아지의 짐승의 피로 하지 않으시고 오직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단번에 들어간 성소는 모형이요, 그림자인 이 땅의 성소가 아니라 원형인 하늘 성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이 좌정해 계시는 하늘 성소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하늘 성소는 일정한 장소로 국한하기 쉽지만, 히브리인들의 관념 속에서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하늘 성소라 함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가리키는 초월적인 장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십니다. 예수님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도록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 땅의 성소에서 대제사장이 드린 제사와 예수님이 드리신 제사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해마다 들어간다는 것은 제사의 효력이 1년이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드리는 제물은 단지 1년 치 죗값을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치를 수 있는 죗값은 얼마나 될까요? 유한한 피조물인 짐승도 우리의 죗값을 치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영원하신 창조주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치를 수 있는 죄의 대가는 얼마나 클까요? 예수님은 영원하십니다. 영원하신 예수님이 치를 수 있는 죗값도 영원합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죗값을 완전하게 치를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 어떤 흉악한 죄일지라도 영원하신 예수님은 다 치르시고 없이 하십니다. 무엇보다 이를 단번에 하셨습니다. 모든 죄를 한 방에 날려 버리셨습니다. 대제사장이 했던 것처럼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 번 매년마다 자기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 번 고난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단번에 죗값을 해결하셨습니다. 26절 ‘단번에’라는 말을 영어 성경에서 보면 ‘once for all’로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해결했다는 의미입니다. 단번에 자신을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리시므로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해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단번에 속죄 제사를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피의 능력이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강력하고 충분히 완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이천여 년 전,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운명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죄’라 하면 도덕적인 측면, 또는 죄의식 정도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죄는 우리 인생들의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죄는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과의 분리 단절입니다. 우리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분리되어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 원수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거룩함이 있습니다. 이 거룩함은 죄와 함께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 인간이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 인간은 영적인 목마름으로 고통당하고, 인생의 의미와 참된 길을 몰라 방황하고, 고단한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죄는 우리 인생을 고달프게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 죽음이라는 가장 최대의 고통을 가져옵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강한 과목에서 학점이 잘 안 나오면 재수강할 수 있습니다. 학교와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과정 가운데서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그래도 세상은 우리에게 ‘다시’라는 기회를 줍니다. 하지만 죽음은 어떻습니까? 한 번 죽으면 끝입니다. 다시 기회는 없습니다. 내가 죽기 전까지 살아온 것에 대해 고스란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죽음 이후엔 누구라도 어김없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이 심판 때에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멸망으로 나뉘게 됩니다. 여기, 영원한 멸망은 계시록 21장 8절에 나오는 ‘둘째 사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그곳에서는 다시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영원토록 고통당해야 하는 전혀 소망이 없는 그런 곳입니다.
이 같은 인생들의 죽음의 문제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해결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자기를 희생제물로 드림으로 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셨습니다. 영원한 멸망, 영원한 불과 유황의 지옥불이라는 심판에서 제외시켜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신령한 하늘의 형체를 입게 되는 온전한 구원을 위해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십니다. 우리는 죽음과 심판에 대해 두려워하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완전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10장 1,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율법에 따라 대제사장이 해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제사가 사람들을 온전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만약에 대제사장이 드리는 제사가 사람들을 단번에 정결하게 할 수 있었다면 다시는 제사 드릴 필요도 없고 더 이상 제사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은 해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구약의 짐승 제사는 매년마다 제사 드려야 했습니다. 왜냐면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죄로 인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도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지도 못하고 죄의식으로 시달려야 했습니다. 구약의 짐승 제사는 오히려 죄를 기억하게 했습니다. 구약의 속죄 제사는 죄를 지어 제물을 가지고 온 사람이 자기 손으로 그 짐승을 죽여 잡아야 했습니다. 그 짐승은 죽임을 당하면서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 치면서 고통스럽게 죽어갑니다. 그런 짐승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받을 심판이 이와 같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죄를 이처럼 기억할 때 더욱 죄의식으로 두려워합니다. 이는 짐승의 피가 근본적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피는 불완전하고 한계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아무리 반복해서 많은 속죄 제물을 드려도 그들의 양심까지 정결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반복되는 죄로 인해 이제는 희생제물의 피를 보아도 무감각해졌습니다. 죄에 대한 심각성도 잃어버리고 양심이 무뎌졌습니다. 형식화되어 더 이상 제사의 의미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려면 구약의 제사 제도로는 더 이상은 안 되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필요했습니까? 영원한 속죄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진정한 자유함을 얻게 할 수 있는 제사 제도와 대제사장, 희생제물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제사와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으로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친히 희생제물이 되어주시므로 단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시편 40편 6-8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그리스도가 오시는 이유를 미리 예언한 시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제사와 제물 자체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이것들을 원하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많은 제물을 드리고 제사 드려도 죄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제물을 드리면서도 죄를 짓고 악을 행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려고 한 몸, 즉 육신을 입으시도록 준비하셨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피 흘리시며 희생제물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희생제물이고,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고 기뻐하는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나타난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인류구원역사를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세례받으실 때,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친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아파트 분양을 다 마치면 모델하우스를 철거하거나 다른 용도로 대체하듯이 그림자와 같았던 불완전한 구약의 제사 제도를 예수님은 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온전한 제사를 세우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우리는 율법과 형식에 갇혀 그림자만 보며 살아가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였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섬길 수 없었습니다. 냉냉하고 메마른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처절한 고통을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그 몸을 단번에 드림을 통해 우리는 단번에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어떤 공로로도 죄 문제는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원하신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단번에 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이 모든 인간 구원 계획을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단번에 거룩하게 됩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우리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의 양심을 죽어 심판받아야 마땅할 행실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식으로 고통당할 필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함을 누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이제 단 번의 예수님의 피 흘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고 거룩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2절과 14절도 보십시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우리 인생들의 죄를 위해 예수님이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영원히 의롭다고, 영원히 거룩하다고 하시고, 우리를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으로 말미암는 은혜입니까?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희생제물이 되어주신 예수님의 단번의 제사로 말미암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인생과 하나님의 자녀 되지 못한 인생의 큰 차이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같은 희생 제사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큰 은혜로 다가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기다리시다가 하나님의 때에 두 번째 나타나셔서, 즉 재림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대적인 원수 사탄 마귀의 세력은 철저히 응징당하고 심판받아 영원한 멸망에 처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때를 기다리시면서 이 땅에서 연약함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응원하면서 중보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같은 예수님의 두 번째 나타나심을 우리의 소망 삼고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온전한 속죄가 없다면 우리의 기다림은 실패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의 기다림과 소망은 헛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온전한 속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최후 승리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소망하며 기다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5,16절을 보십시오. 성령께서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구약의 예레미야서 31장에 나온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우리 마음과 생각에 새기게 하고 우리의 죄와 불법을 하나님이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체결되는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됩니다. 옛날 언약은 마음과 생각이 바뀌지 않은 채로 율법의 구문만 지키기 쉬웠습니다. 의무감에 율법을 지키는 측면이 컸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의 법이 우리 마음과 생각에 있기에 하나님의 법을 마음으로부터 지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 약속대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고 성령님은 우리 심령에 내주하셔서 우리 인생을 거룩함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 내면에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죄에 넘어져 있을 때도 성령께서 일으켜 세우시고 거룩한 소원들을 불러일으키시고 능히 이겨낼 힘을 주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덧입을 때 우리 죄는 가리워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보지도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여전히 죄와 허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나를 새 사람으로 보십니다. 의의 사람, 거룩한 사람으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로부터 진정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의 죄와 연약함으로 낙심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죄를 이기고 승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는 나의 죄 때문에 반복해서 제사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 믿고 의롭게 된 우리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피의 공로를 믿고 매 순간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기 몸을 희생제물로 드려 우리를 영원히 온전하게 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단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이처럼 죄와 불법이 사해졌으니 죄를 위한 제사 제물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완성하셨습니다. 내가 연약하여 죄에 반복해서 넘어지더라도 더 이상의 속죄 제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죄 사함 받았으니 함부로 살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위한 대가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다 해결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죄에 얽매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힘입어 죄와 싸우며 거룩함에 이르는 성화의 신앙 여정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희생 제사로 말미암아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은혜와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로 말미암아 우리를 친밀한 당신의 자녀로 받아주시고 우리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깊이 새기고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덧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며 이제는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가는 거룩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