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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주일마다 민숙이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책을 민수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두 번의 인구 조사 기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민수기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인경 성경이 이 책을 아리스 모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유래합니다. 아리스모인 숫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한자로 옮겨 백성 민 셈수 기록할기 민수기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는 인구 조사가 중요합니다. 첫 번째 인구 조사는 1장에 나옵니다. 이 인구 조사는 출애굽 약 1년 후 20세 이상의 출애굽 1세대 남자의 수를 기록한 것이고, 두 번째 인구 조사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 출애굽 세대의 2세들 중에 20세 이상 남자의 수를 센 것입니다.
민수기는 이 인구 조사를 아주 중요하게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인구 조사를 중심으로 민숙이의 내용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6장 이전에는 출애굽 세대들의 광야 생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6장 이후에는 출애굽 세대의 2세들 그 자녀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2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하나의 주제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입니다. 27장 오늘 본문 바로 앞에는 슬로브아의 딸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새로운 공동체에서 기업을 나누어 가질 때 그 어떤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28장과 29장은 새로운 공동체는 예배 중심의 공동체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지도자의 교체였습니다. 모세의 시대가 저물고 여호수아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독일에 있는 한인 교회들도 지금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동안 이민 1세대가 교회를 세우고 믿음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2세대와 3세대가 그 믿음의 바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환기입니다. 이런 전환기에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셨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 그것을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에 올바르게 응답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성경 내용을 같이 보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런 전환기에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스스로에 대해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그 역사를 주관한다는 말입니다. 먼저 역사 전반에 대한 계획을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그 계획은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찬 천국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그 계획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 가고 있습니까?
사람들을 통해서입니다. 천지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다스리게 하자.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창조 세계를 사람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각 시대마다 사람을 불러 일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예로 들어봅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땅에 실존했던 실제 국가입니다. 국가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국민 주권, 영토, 이 세 가지의 요소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국민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에 모래알같이 많아질 것이다.
참고로 이 약속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에게는 한 명의 아들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의 국민을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민수기 26장에서 살펴보았다시피 아브라함의 후손은 20세 이상의 남자의 수만 해도 60만 명이 넘었습니다.
주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때가 되자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집트에서 이집트에 살던 이스라엘을 시내산으로 이끌어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그 언약식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을 선포하고 이스라엘의 헌법에 해당되는 십계명과 그에 따른 율법을 반포하십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권이 어디 있는지를 나타내십니다. 모세를 통해 이 일을 하셨습니다. 국민 주권 이 두 가지가 해결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여호수아에게 주어졌던 사명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이어 달리기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신실한 종들을 통해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감독이시고, 그 감독의 작전을 수행하는 이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여호수아입니다.
그런데 이때 각각의 선수들, 그 선수들 간의 바통 터치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맥락에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역할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일을 여호수아에게 넘깁니다.
여러분 이때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해줘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여호수아에게 손을 얹어 안수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의 권위를 여호수아에게 물려주라고 합니다. 20절입니다.
너는 그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권위를 물려주어서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에게 복종하게 하여라.
지금까지 모세 자신이 가지고 있던 권위입니다. 그래서 회중들은 모세의 말을 듣고 모세에게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권위를 여호수아에게 넘겨주라고 합니다. 그리고 회중들로 하여금 여호수아를 따르게 하라고 합니다.
이 일이 쉬울까요?
제가 존경하는 한국의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에 하신 이야기입니다. 그 목사님은 아주 큰 교회에서 목회하셨습니다. 이 목사님의 목표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를 세우는 거였습니다. 목사가 주인이 아니라 교인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자기 자신부터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되겠다 그런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4개로 분리해서 각각의 교회로 개척해 주었습니다. 각각의 교회에는 담임 목사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교회를 각각의 교회들을 돌아가면서 순회하며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한 교회의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이 광고 시간에 말하기를
여러분 뒤에 보십시오. 아주 귀한 손님이 와 계십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소개하더라는 거예요. 이 순간 이 목사님은 너무너무 서운했다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 교회를 개척하고 또 수고해서 교회가 성장하자 자기들에게 분립해서 개척해 주었건만 지금 나를 손님이라고 했냐 귀한 손님이라고 했냐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이성적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렇지 교회를 분립해서 각각의 교회 담임 목사를 세웠다면 손님이 맞지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너무 서운하더라는 거예요.
아마 모세도 그럴 수 있습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 공동체에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 차라리 내 이름을 생명체에서 지우십시오. 이 공동체는 이렇게 무너지도록 놔두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지켜왔던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를 이제 후임자에게 넘겨주고 자기 자신은 손님처럼 조용히 사라져야 되는 그런 상황입니다. 섭섭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모세와 여호수아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해요.
니가 가지고 있던 모든 권위를 여호수아에게 넘겨주어라.
근데 여러분 그 순간 모세가 어떻게 했습니까?
이 순간에 대한 기록이 신명기 31장 7절과 8절에 나옵니다. 성경을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그대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용기를 내시오. 그대는 주님께서 그대의 조상에게 주시기로 맹세하신 땅으로, 이 백성과 함께 가서 그들이 그 땅을 유산으로 얻게 하시오. 주님께서 친히 그대 앞에 가시며 그대와 함께 계시며 그대를 떠나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시오.
이것은 모세가 후임자 여호수아에게 권면하는 말입니다. 형식은 권면인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여호수아가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여호수아가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기도입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마지막은 기도하는 것이 사역이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신명기 33장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12 지파 후손들 그들을 축복합니다. 서운해하고 갈등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후배들을 보면서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모세는 역사를 볼 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고 이제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이제부터는 이 사람이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것처럼 그렇게 수고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본 겁니다. 성경에는 이런 예들이 아주 많이 나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그들은 어려운 시기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잘 감당했습니다. 엘리야가 자신의 역할을 마치고 이제 제자 엘리사에게 역할을 물려줍니다.
그때 엘리야가 자신의 제자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데려갈 때가 가까웠다. 내가 떠나기 전에 너 나한테 부탁할 거 있으면 부탁해라.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그걸 묻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말하기를
선생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을 제가 갑절로 받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아주 당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제 후임자에게 목회직을 물려주는데 그 사람이 말하기를
목사님보다 갑절로 설교를 잘하기를 원합니다.
이런 말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제가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들까요?
뭐 내가 그렇게 설교를 못 했냐 그렇게 무능했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엘리야는 지금 엘리사의 이 말을 자기에게 도전한다. 그렇게 여기지를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생각하기를
지금까지 내가 수고했듯이 이제부터는 이 사람이 수고할 것이다.
내가 이 사역을 감당하면서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한때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 이제 조카입니다.
차라리 나를 여기서 죽여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앞으로 그 일을 이 사람이 해야 된다.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든 일을 감당할까?
그걸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래 맞아요. 하나님 이 사람에게 갑질의 능력을 주십시오.
그래서 나처럼 흔들리지 않고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긍휼의 마음으로 그를 축복합니다.
역사를 자기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후배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한번 살펴봅시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오.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기보다 더 큰 일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고 경쟁자로 여기지도 않았고, 질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봅시다. 독일에 있는 한인 교회들은 이민 1세대 어르신들의 수고와 믿음으로 교회가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연스러운 바통 터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세대와 2세대 사이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살아온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교회를 봉사하는 것도, 교회를 섬기는 것도 다릅니다. 어떤 때는 섭섭할 수가 있고요. 어떤 때는 아쉬울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질투가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나를 뒷방 늙은이 취급하나 우리를 뒷방 늙은이처럼 그렇게 대하나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관점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것이다.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하나님이 이 역사를 운행하고 계신다.
저 사람은 나의 뒤를 이어 다음 일을 해야 될 일꾼이다.
하나님께서 다음 세대는 저 사람을 세운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이 안쓰러울 수 있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 축복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모세의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엘리아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세대와 세대가 협력하고 서로 축복하는 그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협력하게 하십니다. 21절입니다.
그는 상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여기서 그는 여호수아입니다. 상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가서 설 것이며 여호수아를 대신하여 엘르아살이 우림의 판결을 사용하여 나 주에게 여쭐 것이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모세에게 직접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휘관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지휘관들을 통해 지휘했습니다. 모든 일들이 모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대제사장 엘루아살이 우림과 둔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물을 것입니다. 종교적인 영역을 제사장이 담당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이 정해지면 그 뜻은 여호수아를 통해 실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행정적인 영역과 군사적인 영역을 담당하게 할 것이다.
그 말씀입니다. 역할 분담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이렇게 역할을 분담해 주신 것일까요?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끔씩 설교를 듣다 보면 좀 졸리시죠? 왜 그럴까요?
목사가 졸리게 설교를 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 플러스 여러분이 예배 순서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제가 설교를 한 다음에 결단의 기도를 하는데요. 그 결단의 기도를 여러분이 나와서 인도해야 된다고 한번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졸릴까요?
설교 내용을 가지고 결단의 기도를 여러분이 진행해야 됩니다. 그러면 지루한 설교 내용이라 할지라도 그 설교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하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이 일이 내 일이 아니다 너의 일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졸린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공동체의 일도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흥미가 없고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동체가 성장하고 커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역할을 나누어서 주십니다. 함께 일하게 하십니다. 그래야 공동체가 성장하고 건강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예로 들어봅시다. 예루살렘 교회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구제에 있어서 헬라파 과부들이 소외되었습니다. 사도들은 그걸 몰랐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참 무능하다. 어찌 일을 저런 방식으로 처리할까 수근수근 거렸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립니까?
일곱 집사를 선택해서 안수합니다. 그리고 그 집사들로 하여금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과 구제하는 일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에 헌신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을 이미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들을 뽑아 그들의 머리 위에 안수했던 겁니다.
오늘 본문과 비슷한 내용이지요. 이렇게 하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6장 7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나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이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회가 더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교회를 반대하던 일에 앞장서던 그런 제사장들마저도 회심하고 돌아오더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협력에 실패했을 때는 어떻게 됩니까?
사무엘과 사울의 경우를 한번 살펴봅시다. 사무엘은 원래 사사이자 제사장이었습니다. 모든 권력이 사무엘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사직에서 물러나고 새로 왕을 세워줍니다. 자신은 종교 지도자로서의 역할만 감당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정치적 지도자의 역할은 당연히 사울로 하여금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사이에 협력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사무엘상 13장과 15장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두 개의 에피소드가 소개되고 있는데요. 13장을 보면요. 블레셋과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블레셋은 워낙 워낙 군사력이 강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도움을 간청하는 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집전하기로 했던 사무엘이 늦게 왔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이 직접 그 제사를 드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울이 직접 사울 왕이 직접 제사를 드렸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는 정치 지도자의 권위를 넘어서서 종교 지도자의 역할까지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모든 권력을 다 가지려고 했던 겁니다.
이런 욕심은 사무엘상 15장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전리품 중에 좋은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옵니다.
왜 전리품을 가지고 왔습니까? 하나님은 진멸하라고 했는데 왜 가져왔습니까?
사무엘이 물었을 때 사울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이 재물을 통해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의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울은 여전히 여전히 종교 권력을 넘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종교 사회에서 이 사무엘의 권력이 자신의 권력보다 더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적 권력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권력까지 자신이 다 가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제사장들에게 많은 소와 양들을 나누어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재물들을 제사장들에게 나누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제사장들이 사울 편을 들 것입니다. 사울의 말을 잘 따를 것입니다. 이런 욕심 때문에 사무엘과 사울의 관계가 끝이 나버렸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의심하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관계가 끝난 것이 사무엘이 사울의 이 통치에 협력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닌가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니라 그래요 어디서 그렇게 말합니까?
사무엘상 16장 2절을 보면 사무엘은 죽을 때까지 사울의 일로 인하여 가슴 아파했다. 그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밥을 먹지 않고 가슴 아파했다는 겁니다. 자신이 세운 초대 왕이 권력에 집착해서 변질되어 버린 것을 보면서 가슴 아파했습니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구나 저런 사람을 왕으로 세우다니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러면 사울이 모든 권력을 독점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이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 시기에 하나님은 말씀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사울은 답답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엔도의 신접한 여인에게 찾아가서 점을 보았다고 합니다. 사울 자신이 망합니다. 이스라엘도 블레셋에게 망합니다. 모두가 망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이 무엇을 말합니까?
이 땅의 역사는 사람의 역사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끌어가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사람을 부르고 그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줍니다. 이것을 알고 우리는 서로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이 협력은 우리의 눈에는 사람과 사람의 협력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보실 때에는 하나님을 위한 협력입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협력해서 하나님을 섬길 때 그때 그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워가는 보람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설교를 정리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를 비롯해서 독일에 있는 한인 교회들은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런 전환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오늘 성경은 세대와 세대가 협력해서 이어달리기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서로 역할을 나누고 협력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시대가 변할 때마다 사람들을 불러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게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야구가 제일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야구는 대표적인 팀 스포츠입니다. 아무리 홈런을 잘 치는 타자가 있어도 팀원 간에 협력이 되지 않으면 그 경기를 이길 수 없는 그런 스포츠입니다. 투수는 투수대로, 타자는 타자대로 서로가 서로 협력을 해야 합니다. 야구에는 다른 스포츠에서는 볼 수 없는 희생, 번트, 희생 플라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아웃되더라도 팀의 승리를 위해 지금 진루에 있는 그 주자를 살아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희생과 협력이 쌓여서 점수를 내는 것이 야구입니다.
그런데 팀이 개인주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왜 개인주의에 빠집니까?
자기의 기록이 좋아야 연말 연봉 협상을 할 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내 개인의 기록이 좋아야 그 기록을 가지고 단장과 협의하면서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희생하지 않고 자기 성적을 내려고 하면은 팀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합니다.
야구에는 패전 처리 투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패전 처리 투수는 경기가 이미 기울어져 버렸습니다. 너무 점수 차이가 많이 나서 더 이상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때 감독은 마지막에 패전 처리 투수를 냅니다. 한마디로 전쟁에서 백기를 든 겁니다. 이 패전 처리 투수는 그 경기에 나가서 남은 경기를 마무리 짓고 와야 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봐주지 않으면 이 패전 처리 투수는 계속 두들겨 맞습니다. 상대방이 봐주고 그래 백기를 들었으니까 우리도 후보 선수 낼게 이러면 경기가 끝나는 겁니다.
팀원 중에 어떤 누구도 패전처리 투수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 폐전철이 투수가 되기를 원치 않는가?
가장 비참하고 가장 처량한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면은 여호야긴 왕 같은 사람들이 패전 처리 투수입니다. 나라가 망했습니다. 그는 10대의 소년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무슨 책임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을 바벨론에게 내줍니다. 왜 내줍니까?
바벨론의 분풀이를 이 사람에게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호야긴은 잡혀갈 때 두 눈이 뽑혔고 사슬에 묶여가지고 비참한 모습으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의 밥이 된 겁니다. 분풀이용 밥이 된 겁니다. 어쩌면은 역사의 쓰레기 청소와 같은 그런 역할입니다. 그러니 이 패전 처리 투수 역할을 누가 하려고 하겠습니까?
팀이 희생하지 않고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은 결국 누군가는 패전 처리 투수를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도 이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또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이 역사 속에서 누군가는 패전 처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선배 세대가 자신들의 즐거움만 생각하고 다음 세대를 배려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역사에서 패전처리 투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같은 세대 안에서 다들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교회의 누군가는 패전처리 투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상처받고 길길이 나누어져 버린 그 관계를 수습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자기 마음이 걸레가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짐을 아무도 지지 않으려고 하면 누군가는 혼자서 그걸 짊어지고 패전처리 투수가 되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안에는 이런 패전처리 투수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팀이 이겨야 합니다. 팀이 이겨야 패전 처리 투수가 필요 없습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선배와 후배가 협력해야 하고, 같은 세대의 사람들끼리도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희생이 없이는 이길 수 없습니다. 협력 없이 세워지는 교회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만들어 가실 때 우리를 우리를 통로로 부르십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