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1일 (신유) [양력 4월 12일]
124
망궐례를 했다. 식사를 한 뒤에 별방군과 정규군 하번군을 점검 하고서 놓아 보냈다. 공무를 마친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125
3월 초2일 (임술)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양력 4월 13일]
126
나라제삿날(中宗 章敬王后 尹氏 祭祀)임에도 공무를 보았다. 승군 (僧軍) 일백 명이 돌을 주웠다.
127
3월 초3일 (계해) 비가 저녁내 오다. [양력 4월 14일]
128
오늘은 삼짇날 명절이건만 비가 이렇게 내리니 답청도 못하겠다. 조이립(趙而立) 우후․군관 등과 동헌에서 이야기하며 술을 마셨다.
129
3월 초4일 (갑자) 맑다. [양력 4월 15일]
130
아침에 조이립(趙而立)을 배웅하고 객사 대청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서문밖 해자와 성을 더 쌓는 곳을 순시했다. 승군들이 돌줍는 것을 성실히 하지 않으므로 책임자(首僧)를 잡아다가 곤장을 쳤다. 아산에 문안갔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 하니 다행이다.
131
3월 초5일 (을축) 맑다. [양력 4월 16일]
132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군관들은 활을 쏘았다. 저물녁에 서울 갔던 진무가 돌아왔다. 좌의정 류성룡(柳成龍)의 편지와 '증손전 수방략(增損戰守方略)'이라는 책을 가지고 왔다. 이 책을 보니 수전·육전·화공전 등 모든 싸움의 전술을 낱낱이 설명했는데, 참으로 만고의 훌륭한 책이다.
133
3월 초6일 (병인) 맑다. [양력 4월 17일]
134
아침밥을 먹고난 뒤 출근하여 군기물을 점검했는데, 활․갑옷․ 투구․전통․환도 등이 깨지고 헐어진 것이 많아 색리․궁장․감고 등을 문책했다.
135
3월 초7일 (정묘) 맑다. [양력 4월 18일]
136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난 뒤에 활을 쏘았다.
137
3월 초8일 (무진) 종일 비가 내렸다. [양력 4월 19일]
138
3월 초9일 (기사) 종일 비가 내렸다. [양력 4월 20일]
139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140
3월 초10일 (경오) 맑으나 바람이 불었다. [양력 4월 21일]
141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난 뒤에 활을 쏘았다.
142
3월 11일 (신미) 맑다. [양력 4월 22일]
143
3월 12일 (임신) 맑다. [양력 4월 23일]
144
식사한 뒤에 배있는 곳으로 나가 경강(여수시 봉산동)의 배를 점검했다. 다시 배를 타고 소포(여수시 종화동 종포)로 나가는데 때 마침 샛바람이 세게 불고 격군(보조사공)도 없어 도로 돌아왔다. 곧바로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145
3월 13일 (계유) 아침에 흐렸다. [양력 4월 24일]
146
순찰사에게서 편지가 왔다.
147
3월 14일 (갑술) 종일 많은 비가 내렸다. [양력 4월 25일]
148
이른 아침에 순찰사(李洸)를 만나러 순천으로 가는데, 비가 몹시 퍼부어서 길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선생원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서 다시 해농창평(순천시 해룡면)에 이르니, 길 바닥에 물이 석 자나 괴었다. 겨우 겨우 순천부에 이르렀다. 저녁에 순찰사와 격조를 터 놓고 이야기했다.
149
3월 15일 (을해) 흐리며 가랑비 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양력 4월 26일]
150
다락 위에 앉아서 활쏘고, 군관들에게는 편을 갈라 활을 쏘게 했다.
151
3월 16일 (병자) 맑다. [양력 4월 27일]
152
순천부사가 환선정에 술자리를 베풀었다. 겸하여 활도 쏘았다.
153
3월 17일 (정축) 맑다. [양력 4월 28일]
154
새벽에 순찰사에게 작별을 고하고 선생원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인 뒤에 본영으로 돌아왔다.
155
3월 18일 (무인) 맑다. [양력 4월 29일]
156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157
3월 19일 (기묘) 맑다. [양력 4월 30일]
158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159
3월 20일 (경진) 비가 몹시 쏟아지다. [양력 5월 1일]
160
저녁나절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각 관방의 회계를 밝혔다. 순천 관내를 수색하는 일이 제 날짜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대장․색리․도훈도 등을 문책했다. 사도첨사(김완)에게도 만날 일로 공문을 보냈는데, 혼자서 수색했다고 했다. 또 한나절 동안에 내나로도․외나로도(고흥군 봉래면)와 대평두․소평두 섬을 다 수색하고 그 날로 돌아왔다고 하니, 이 일은 너무도 엉터리 거짓이다. 이를 바로 잡으려는 일로 흥양과 사도첨사에게 공문을 보냈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일찍 들어왔다.
161
3월 21일 (신사) 맑다. [양력 5월 2일]
162
몸이 불편하여 아침내 누워 앓다가 저녁나절에 동헌에 나가 공무 를 봤다.
163
3월 22일 (임오) 맑다. [양력 5월 3일]
164
성 북쪽 봉우리 아래에 도랑을 파내는 일로 우후 및 군관 열 명을 나누어 보냈다. 식사한 뒤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165
3월 23일 (계미) 아침에 흐리고 저녁나절에는 맑다. [양력 5월 4일]
166
아침밥을 먹은 뒤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보성에서 올 널빤지가 아직 안 들여 왔기 때문에 색리에게 다시 공문을 보내어 독촉했다. 순천에서 심부름꾼을 보내 온 소국진(蘇國進)에게 곤장 여든 대를 쳤다. 순찰사가 편지를 보내었는데 보니,
167
"발포권관은 군사를 거느릴 만한 재목이 못 되기로 갈아 치워야 하겠다"
168
고 하므로 아직 갈지 말고 그대로 유임하여 방비에 종사하게 해달라고 답장을 보냈다.
169
3월 24일 (갑신) [양력 5월 5일]
170
나라제삿날(世宗 昭憲王后 沈氏 祭日)임에도 공무를 보았다. 우후가 수색하고 탈없이 돌아왔다. 순찰사와 도사(都事)의 답장을 송희립(宋希立)이 아울러 가져왔다. 순찰사의 편지 가운데,
171
"영남 관찰사(김수)의 편지에 `대마도주(종의지)가 공문을 보냈는데, 벌써 대마도 배 한 척을 귀국(조선)에 보냈는데, 만일 도착하지 않았다면 풍랑에 깨졌을 것이라'고 했더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매우 음흉하다. 동래에서 서로 바라다 보이는 바다인데 그럴 리가 만무하며, 말을 이렇게 거짓으로 꾸며대니, 그 간사함을 헤아리기 어렵다"
172
고 하였다.
173
3월 25일 (을유)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5월 6일]
174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경상병마사가 평산포에 도착하지 않고 곧장 남해로 간다고 하였다. 나는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을 한스럽다는 뜻으로 답장을 보냈다. 새로 쌓은 성을 순시해 보니, 남쪽이 아홉 발이나 무너져 있었다.
175
3월 26일 (병술) 맑다. [양력 5월 7일]
176
우후와 송희립(宋希立)이 남해로 갔다. 저녁나절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177
3월 27일 (정해) 맑고 바람조차 없다. [양력 5월 8일]
178
일찍 아침밥을 먹은 뒤 배를 타고 소포(여수시 종화동 종포)에 이르러 쇠사슬을 가로질러 건너 매는 것을 감독하고, 종일 나무 기둥 세우는 것을 바라 보았다. 겸하여 거북함에서 대포 쏘는 것도 시험했다.
179
3월 28일 (무자) 맑다. [양력 5월 9일]
180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활 열 순을 쏘았는데, 다섯 순은 모조 리 다 맞고, 두 순은 네 번 맞고, 세 순은 세 번 맞았다.
181
3월 29일 (기축) 맑다. [양력 5월 10일]
182
나라제삿날(世祖 貞憙王后 尹氏 祭日)임에도 공무를 보았다. 아산 고향으로 문안 보냈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 니 참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