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를 그리는 기름인 '린시드 유'가 떨어져서 사러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저, 여기 가까운 데에 있는 서울 여대 화방에 자전거 타고 휭 가서 사오면 될 일인데, (그랬었는데)
이제는 그 일도 어려워져, 멀리 ‘남대문 시장’까지 외출을 해야만 하는 일이 되고 말았답니다.
왜냐면, 이전의 화방 주인이 은퇴를 한 뒤 새로 화방을 인수했던 부인이 장사하기가 힘든지(화방 일이 힘든 육체적인 기술도 있어야 하고 상당한 전문 지식이 필요한지라) 오락가락해,
일을 하는지 않는지 모르기 때문에, (가서 허탕치느니)어쩔 수 없이 먼 길을 돌아가는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아침 시간이었는데,
버스를 타면 지하철 한 번 갈아타고 갈 수 있는 남대문 시장에, 공짜로 가려니 지하철 세 번을 갈아타야만 했지만,
그런 불편함도 마다 않고 거기 화방에 도착해,
기름은 물론 이제 다 떨어져가는 스케치북 한 권과 유화물감 두어 개, 그리고 크레파스 낱개로 몇 개를 골랐더니,
7만 5천 원 가량이 나오드라구요.
(미술 재료가 비싸요.)
그렇게 사들고 나오니,
갈 때는 흐렸던 날씨가 활짝 개, 그렇지만 강한 햇볕으로 도심을 걷기가 힘들정도였답니다.
그렇지만 돌아올 때는 지하철을 두 번만 갈아타려고 좀 걸었지요.
그렇게 돌아왔더니 1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 정신없이 점심(찬 밥)을 챙겨 먹고,
오늘 사온 재료들을 펴놓기는 했는데,
이렇게 없는 돈 퍼 들여 그림을 그려봤자, 뭐해? 하는 심사가 일면서 확 짜증까지 나는 겁니다. 요즘, 투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올 여름) 열대야 속에서도 손을 놓을 수 없어 그려댔던 그림들이 벽면을 다 채우고도 겹치도록 놓여있지만,
생활에 도움이 되는 건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 팔릴 가능성도 없는데, 그나마 기초생활수급자로서 기초연금 등으로 아끼고 아껴 살면서 그 돈을 퍼들여 캔버스에 재료들을 사서 그려대기만 하면, 뭐 하느냐고! 하는 스스로에 대한 울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뭐, 전시할 것도 아니니...... 하고 씁쓸해 했던 건,
며칠 전이었습니다.
제 최근 작인 '파타고니아 풍광'을 그린 뒤, 그 동영상도 만들어, 칠레 ‘파타고니아’의 ‘뿐따 아레나스’ 현지에(제가 거기에 머물 때 구했던 숙소 주인집 사람들이 좋아서,
그리고 그들은 처음부터도 제 그림에 관심도 많고 좋아해 줘서, 여지껏 그들과 연락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당연히 그리고 더구나 현지 그림을 그리는 동영상(스페인어 버전)을 보내주고 있는데요.) 보냈더니,
그림이 너무 좋다면서(? 자기네 나라 풍광을 그려 스페인어 버전의 동영상까지 보내주었으니 그들로써는 반가웠겠지요. 어느새 '마젤란 해협' '뿐따 아레나스 항구 풍경'등의 그림에 대한 동영상도 이미 받아봤던 터라),
문,
이런 그림들을 그리면서, 왜 한국에 있는 칠레 대사와 접촉을 하지 않는 거에요? 거기에 알려서, 최소한 칠레에 당신의 그림들을 소개하는 기회거나 전시를 해도 될 것 같은데......
하는 문자를 보내왔드라구요.
그래서 제가 우습기도 해서, 답장을 보냈는데,
고마워요. 좋은 생각이고요.
당연히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난 그런 일을 잘 못한답니다. 게다가 그들과 접촉하기도 쉽지가 않을 테고......
하는 답장을 보냈더니,
바로, (거기서 인터넷 검색을 했던 모양으로) 한국 서울에 있는 칠레 대사관 전화번호와 홈페이지 주소까지를 보내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더욱 우스워서(우스워서가 아닌 허탈해서...... 대사관 사람들이 얼마나 까다롭고 몸을 사리는데요. 그래서 그 안으로 파고 들기는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는요......
하는 답을 보냈더니,
그런가요? 잘 알겠어요.
하는 답을 받은 걸로 얘기가 일단락 됐는데요,
아마 그들은 그랬을 겁니다.
본인이 못 한다는데, 뭐...... 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씁쓸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근데, 제가 왜 허탈해 했는지 아십니까?
물론 그들의 생각은 고맙고 또, 그렇게 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제안이기도 했지요.
그렇지만요, 그건 그저 일반인들의 입장과 생각일 뿐,
전시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생각처럼 간단하고 쉽게 돼주질 않는 건데, 그런 것까지 그들이 알 리가 없다는 거고,
제가 그런 일을 해보겠답시고 나서봤자, 헛 힘만 뺄 게 분명하고(?), 그러면 나중에 또 다른 상처만 받을 터라서... 애당초 그런 시도 자체를 하지도 않고 있는 거라,
그들의 고마운 제안도 그저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쩌면 여러분(일부 까페 회원님)도,
왜, 그런 좋은 제안을 시도도 않고 지레 겁을 먹느냐? 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뭐 잘 되기를 바라느냐?(본인의 노력도 않고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기질 기다리고 있느냐?) 고 나무랄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왜 그런 걸 모르겠습니까?
근데, 제가 여태까지 살아왔지만(이제 70이 낼 모렌데), 제 특성 상 능력 상, 그런 일은 요원한 일이랍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어디 한두 번 그런 일을 해왔던가요?
저는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젠, 아예 그런 시도조차 상상도 않고 지내고 있는 거거든요.
사실 저는, 외부인과 접촉하는 걸 몹시 두려워하고 또 거기에 재주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사귀는 일은 어찌어찌 해서 겨우 남들 만큼은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뭔가 목적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꾸미는 일은 아주 서툴고 거의 못하는 사람입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제대로(아니, 제 뜻대로) 돼 준 일이 없답니다. 그게 바로 '능력 부족'이라는 얘기지요. 그림도 그렇겠고, 처세술도 그렇고, 사업수완도 없을 거고......
그런 제가 더구나 이 나이에, 어딜 외부로 발 벗고 나서겠습니까?
그러면 저에게,
그럼, 이 세상을 살면서 아예 불평불만을 가져서도 안 된다!고 하실 수도 있겠지요.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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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현실적으로는... (2))에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엊ㅅ습니다. 곡 전시회를 하지 않드라도 열심히 그리는,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니까요.
힘내세요.
무엇을 바라지 말고 그저 행위 자체를 즐기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상적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초인'도 못 되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며 행복해 하는 '아마추어'도 아니랍니다.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절박하게 하는 일이거든요.
게다가, 어쨌거나 저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