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성호철 특파원,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중국과 일본 외교장관이 2일 만난 자리에서 “악인(미국)의 앞잡이” “인권 문제가 우려된다”며 원색적 비난을 주고받았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베이징의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열린 중·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미국은 과거에 일본의 반도체 산업에 따돌림[覇凌]과 같은 잔혹한 압박을 가했는데, 이번엔 중국에 그 낡은 수법을 쓰고 있다”며 “(똑같은) 살을 베이는 고통을 겪었던 일본은 위호작창(爲虎作伥)해선 안 된다”고 했다. 위호작창은 ‘호랑이를 위해 귀신이 된다’는 뜻으로, 악인의 앞잡이를 비판할 때 쓰는 고사성어다. 일본이 지난 31일 첨단 반도체 장비 23품목의 대(對)중국 수출을 사실상 중단하기로 발표하자, 미국의 반도체 통제에 동참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야시 요시마사(왼쪽) 일본 외무상과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2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열린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일본 외무상의 중국 방문은 2019년 12월 이후 3년여 만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조선일보
그러나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은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조치가 아니다”라며 “국제의 평화, 안전이란 관점에서 국제의 룰에 따르는 엄격한 수출 규제이며 앞으로도 적절한 대응을 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반도체 수출 규제는 전혀 물러설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양측은 현안마다 확연한 입장 차를 보였다. 친강은 “일본은 G7 회원국인 동시에 아시아의 일원”이라며 “역사와 인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인류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중대한 문제”라며 “일본은 책임을 가지고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에 하야시 외무상은 과학적 근거 없이 후쿠시마 관련 발언을 하지 말라는 취지로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이 내정간섭이라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홍콩·위구르자치구 인권 문제를 두고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했다. 하야시는 중국이 지난달 20일 일본 아스텔라스 제약의 50대 직원을 간첩 혐의로 구속한 데 대해 투명한 사법 절차 공개를 요구했지만, 친강 외교부장은 “중국 법률에 기반해 처리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일 양국은 한국·중국·일본 3국 고위급이 만나는 ‘한·중·일 프로세스’를 재개하는 데 합의하는 등 물밑에서 관계 개선 시도를 이어갔다. 이날 하야시 외무상은 리창 중국 총리,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연이어 면담했다. 일본 외교가의 관계자는 “최근 친중을 대표하는 정치계 원로인 후쿠다 전 총리와 일·중우호의원연맹 회장 출신인 하야시 외무상이 연이어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고위 인사와 대면 면담한 것 자체가 양국 관계 개선에 중요한 움직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