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의 마지막 외출
햇살이
사람들을 보며 달려드는
단풍잎 물든 가을날을 머리에 한껏 이고서
휴대전화 가게에 들른 노부부
"영감한테 이색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임자한테
요 빨간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어"
"그 색이야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걸
다 늙어 나보고 하라 그러우"
"내 눈에
임자는 아직 시집올 때 그대로야"
"이 양반이 주책스럽긴..."
노부부의
알콩달콩 주고받는 이야기에
가난한 집에서도 빛나는 햇살을 닮은
미소를 짓고 있던 주인은
"할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 같은데요?"
한바탕
웃고 난 노부부는 주인 남자의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는
저 언덕길 넘어 행복이 기다리던
집에 와서도 문자 보내는 법을 배운 대로
해보면서 깨를 볶고 앉았는데요
다음날
시장에서 새 옷들도 두어 벌 산
노부부의 얼굴엔 행복을 갈아입은 사람처럼
새하얀 미소들로 달력에 수놓아 가는 걸 보니
멀리 여행을 가시려나 봅니다
커다란 가방에 한 짐 가득 채워놓은
옷가지들을 마루 끝에 내밀어 놓는 걸 본
달님이 여행을 가시는 곳이 어디냐고
새벽녘까지 물어도 입을 다문 하늘처럼
말없이 앉아만 있던 노부부는
같은 물만 돌리는 물레방아처럼
침묵으로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다
아침을 알리러 나온 해님이 밝혀놓은
손때 묻은 마당과 집 안 구석구석을
훑어보더니 호흡을 고르며 도착한 곳은
'고속버스 터미널,
대합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꼭 쥔 두 손에 온기를 불어놓던 노부부는
방송하는 소리에 맞춰 버스 승차장으로
걸어 나오더니 마산이라고 적힌 버스에
할머니를 올려보내고는
차창에 비친 모습에 눈물이 비칠까
노을빛에 곱게 빗어넘긴 은빛 머리 할머니를
실은 버스가 멀어질 때까지 뒤돌아 서서
서로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점이 되어버린 버스를 망부석처럼
바라만 보고 있던 할아버지는
사계절 같은 바람을 안고 산
시간을 뒤로하고
태백이라고 적힌 버스에 혼자 오르더니
주머니
깊숙이 넣어뒀던 휴대전화기를 꺼내
"잘 가고 있는 거여?
작년 임자 생일 때 사준 세터
아끼지 말고 꼭 입고 댕겨"
"내 걱정은 마시구요
노란 통에 들은 약은 매일 식사하고 나면
드셔야 하고요
병에 든 약은 이틀에 한 번 드시는 거나
잊지 마세요"
"내가 문자 보내면 꾸물거리지 말고
답장을 얼른 보내야 해?"
"알았어요"
"보이는 대로 일하지 말고
몸을 아껴야 혀"
자식 위해 한없는 희생만 했던 노부부는
아들 때문에 마지막 남은 집마저
은행에 넘어가 버리는 바람에
딸 내들 집으로 가야 하는
더는 함께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모습은 늙어도
마음은 그대로인 부부이기에
꼭 다시 만나자는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몸은 멀어도
뜨거운 그 이름은 가슴에 두자며...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