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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처음 기억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저학년 때에도 교실에 걸려 있었겠지만 기억이 없었다. 칠판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우리나라 지도, 왼쪽에는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면(面)을 표시한 군 지도도 한쪽 옆에 걸려 있었다. 내가 살고 있던 면 단위의 크기를 어렴풋이나마 기억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지도에 여백이 있는 부산 아래쪽에 경계선을 그어 따로 배치해 놓았다. 한참이 지날 때까지 제주도가 목포보다 부산과 더 가까운 곳이라 생각했다. 평면지도에 커다랗게 표시된 그린란드는 중국이나 미국보다 크게 보였다. 지도가 준 약속을 알지 못한 결과였다.
지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땅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거리는 줄여 표시하고, 목표물을 상징화하여 방향을 정하고 종이나 화면에 나타낸 그림이다. 하늘과 땅의 약속인 셈이다.
오래전, 차를 타고 여행을 간 일이 있었다. 도로에 세워진 안내 표지판이나 이정표를 보면서 운전했다. 어쩌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는 내려서 지나가는 사람이나 다른 운전자에게 길을 물었다. 그러면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줬다.
삼척을 지난 어느 지점에 이르렀는데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 중인 도로, 완공된 도로, 옛날 도로가 섞여 있어서 갈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차에서 내려 안내판과 실제의 도로를 맞추어 봐도 헷갈리긴 마찬가지였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지만 새로 난 도로는 가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에게 물었지만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리를 모른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겨우 가는 길을 알 수가 있었다.
이후로 길 안내를 하는 내비게이션을 차에 장착했다. 공업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지형이 나날이 바뀌고 사는 사람들도 바뀌게 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길은 누구에게나 낯선 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누군가에 물어서 내가 목적하는 곳에 혹은 궁금해하는 곳을 찾는 일이 어려워졌다.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지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었다.
내비게이션 지도는 땅에서 이동하는 나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서 안내한다. 안내 음성은 길 떠나는 자식에게 길 조심하라는 어머니 잔소리 같다. ‘과속 방지턱이 있으니 조심하라’ ‘낙석을 조심하라’ ‘과속을 조심하라’ 등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이 대부분이다. 가는 길이 엉뚱하지 않은지, 위험한 곳은 조심하도록 시시각각 알려준다. 길 떠난 자식이 낯선 길에서 낭패나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부모 마음이 이와 같을까.
흔히 사람 사는 것을 두고 인생길을 살아간다고 한다. 길은 시작과 끝남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 말이다. 사람은 모두 그 끝남을 염두에 두고 길을 떠난다. 준비 없이 맨몸으로 길 떠나는 경우는 적다. 등산을 갈 때는 등산 장구를 챙기고 해외여행을 떠날 때는 그에 알맞은 준비를 한다.
길고 먼 인생길을 떠날 때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준비했나. 어디로 가겠다고 신발 끈을 바투 잡았나. 등산 장비 챙기다가 해외여행 가방을 싸지는 않았는지. 한참 동안은 내 내비게이션 장치에 목적지를 입력하지 못했다. 목적지가 분명하지 못해 갈팡질팡했기 때문이다. 남들은 저만치 제 갈 길을 가고 있는데 이 길 저 길 기웃거리기만 했다.
그 길은 외길이 아니었음을 안다. 내 내비게이션은 갈래 길마다 섰다. 그때마다 어디로 갈 것인지 나에게 물었다. 가보지 않았던 길을 난들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지점에서는 쉬었다 가라는 아버지 말씀. 쉬면서 앞과 옆을 보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자기의 좌표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앞만 보고 곧장 갔더라면 길가에 꽃이 피었는지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늘을 날며 지저귀는 새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 속에 사는 아름다운 사람의 웃음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람마다 누구도 그려주지 못하는 자신만의 지도가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 어떤 지도를 그렸는가. 시작점에서 마지막 도달하는 지점의 위치는 정확히 입력했는지. 안내하는 길을 또박또박 걸어가고 있는지. 엉뚱한 길을 가고 있지는 않았는가. 주의 사항을 무시하고 내 멋대로 달려서 속도위반 딱지는 몇 개나 받았는가. 울퉁불퉁한 길을 냅다 달려서 차 밑바닥에 손상은 가지 않았는가. 지도 속에 나의 좌표를 다시 새기고, 나를 들여다보는 지도 여행을 기억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