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여름날 오후. 뭉개구름
조각들이 학의천 냇물에서
조용히 헤엄을 치고, 물방개
소금쟁이가 냇가 수초에서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 도망을 간다.
작은 여름꽃 하나가 잔잔한
냇물 위에 떨어져 파문을
일으킬 때, 얇고 밝은 원피스를
입은 고운 여자가 양산을 쓰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아슬 아슬
징검다리를 건너 오고 있다.
나는 저쪽으로 가려고 이쪽에서
기다리고 있고, 여자는 어느새
이쪽 마지막 징금다리 돌까지
와서는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이리 움찔 저리 움찔, 움직이는
모습이 위태하다.
그러더니 마침내 내 바로 앞에서
넘어질듯 하다가 한 손으로 나의
옆구리를 순식간에 당기듯 잡고는
안전하게 뭍으로 나온다. 여자가
물에 빠지지 않아 다행이다.
그리고는 잠시 후,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달아
말하면서 무슨 죽을 죄를 지은
마냥 어쩔 줄 몰라 한다. 여자가
잡아 당기는 바람에 내가 대신
물에 빠졌다.
만남의 시작이 그랬고, 많은 날들이
지났다. 낙원으로 가는 길엔 돌부리가
가득하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는 없는
호텔 캘리포니아ㅡ딸기와 베리와
천사의 키스로 만들어진
써머 와인을 함께 음미하고,
여자들의 소란스런 입술에서
소문이 만들어지는 곳. 거기는
지옥으로 가는가까운 곳인가?
그러나 함께 했기에 아름다운
곳이었다.
또 다시 세월이 흐른 지금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는지 기억에
없기에, 그리고 시간이 마음을
속인다는 말은 확실하기에,
다 하지 못한 남은 말들이 있지만,
이제는 함께한 날들의 의미를
영원히 그리고 하루 더
마음 속에 묻어 둬야겠다.
그 여름날이여, 안녕!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 되어 있다 : 서양 속담
*호텔 캘리포니아 : 이글스의 노래
Hotel California
*딸기와 베리와 천사의 키스로
만들어진 써머 와인 : 노래
Summer Wine에서 인용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 : 김소월의 개여울에서 인용
*시간은 마음을 속인다 : 노래 Casa
Bianca의 영어 버전에서 인용
*영원히 그리고 하루 더 : 노래 Those
were the days에서 인용
카페 게시글
삶의 이야기
징금다리를 건너며
여름날
추천 0
조회 234
24.08.01 18:04
댓글 12
다음검색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썸머 와인
오랫만에 들어 보았어요.
좋은 노래죠.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호텔캘리포니아 노래는 언제 들어도
멋집니다
우수회원 으로 등업 해드렸습니다
즐거운 카페 활동 되시길 바랍니다
♡♡♡
그렇죠.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죠.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팝송 명곡들의 가사를 적절히 배치하신 필력이 신선하고 빛이 납니다. ^^
저의 생각을 간파하신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옛노래 제일 좋아하는 캘리포이나~~잔잔하게 들어요
네. 멋진 노래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