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절망에 빠뜨린 그날의 진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국적도 종교도 이념도 전부 다른 나라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단 한 번도 같은 테이블에 앉아 본 적 없던 사람들이었죠.
목표는 단 하나였어요.
우리가 평생을 찾아 헤맸지만 끝내 찾지 못했던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걸 가졌는데 우리는 왜 저 나라를 따라가지 못할까?
그날 저는 마침내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절대로 따라갈 수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이 제가 찾은 답이었죠.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거의 모든 사람이 저와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 작은 나라 하나 앞에서 말이죠.
저는 예르잔 이스마일 로프입니다. 카자흐스탄 국가 개발 전략 위원회에서
수석 기획관을 맡고 있죠.
영국 런던 정치 경제 대학교에서 개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난 10 수 년 동안 제 나라의 미래를 오직 숫자로 만 설계해 온 사람입니다.
그날 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었어요.
세계 은행과 유엔무역무역개발회의가 함께 소집한 초대형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죠.
이 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이 발표된 그날부터 저는 거의 밤잠을 설쳤습니다.
수개월을 오직 이날 하루만 손꼽아 기다려왔죠.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우리 카자흐스탄의 압도적인 스케일이었어요. 우리 영토는 이 172만 제곱km. 무려 한국에 27배가 넘습니다.
전 세계 우라늄 공급량의 40% 이상이 우리 땅에서 나오죠.
최근 수십 년 사이 지구상에서 발견된 가장 거대한 유전이라는 카샤간과 탱기지가 우리 발 밑에 잠들어 있고요.
군수 산업과 항공기 엔진에 빠질 수 없는 크롬 미래 배터리의 심장인 리튬과 니켈 코발트까지 가질 수 있는 자원은 다 가진 나라. 그게 우리 카자흐스탄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이 모든 걸 다 가지고도 우리는 1인당 국민 소득 1만 달러 언저리에서 수십 년째 발이 묶여있었어요.
땅 속의 자원을 캐서 내다 하는 데만 익숙해진 나머지 정작 우리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힘은 끝내 길러지지 않았던 겁니다.
저는 바로 그 늪에서 빠져나올 답을 찾으려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답이 어디에 있는지 저는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죠.
자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던 나라 영토는 우리의 27분의 일에 불과했던 작은 나라 전쟁이 끝난 직후 1인당 국민 소득이 차에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완전한 불모지. 그런 나라가 어떻게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선진국이 되었는가?
저는 그 공식을 통째로 흡수하려고 여기까지 날아온 겁니다.
제 계산은 단순하고 명확했어요.
저렇게 아무것도 없던 한국이 정상에 올랐다면 모든 하드웨어를 다 가진 우리가 그 공식을 얻기만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선진국을 넘어 세계 경제를 우리 손으로 주도할 수 있다.
저는 그렇게 확신하며 회의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입니다. 그런데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저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어요. 이 거대한 강당 어디에도 정작 한국에서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겁니다. 주인공은 자리에 없는데 그 자리를 가득 메운 전 세계 관료들이 저마다 한국을 연구하고 한국을 이야기하고 있었죠. 처음 회의실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저마다 한국 관련 자료를 한 알음씩 들고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밤새 정리한 정보를 서로 나누느라 로비 전체가 웅성거렸죠. 아프리카에서 온 장관들은 한국의 라이스벨트 사업 자료를 펼쳐놓고 머리를 맞대고 있었어요. 쌀 한 톨 제대로 거두지 못하던 나라가 어떻게 자기 국민을 먹이고도 남아 다른 나라의 농업 기술을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는지 그들에게 그건 거의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관료들은 또 다른 주제로 열을 올리고 있었어요.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 산업화를 두고 경론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쪽에선 산업화가 먼저였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그 둘이 거의 동시에 굴러갔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며 새삼 소름이 돋았어요. 생각해 보면 인류 역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선진국 진입을 동시에 이뤄낸 사례는 정말 손에 꼽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는 둘 중 하나만 잡으려다 다른 하나를 놓치고 말았죠.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는 독재의 늪에 빠졌고 민주화를 먼저 택한 나라는 경제가 주저앉았어요. 그런데 한국은 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거기에 선진국 진입이라는 세 번째 토끼 토끼까지 거머쥔 겁니다. 이게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인지 이 분야를 평생 파원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그 옆 테이블에선 케냐에서 온 관료가 두꺼운 자료 뭉치를 펼쳐든 채 이 말을 짚고 짚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가가자.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중얼거렸죠. 이게 말이 됩니까? 포스코라는 제철소가 1973년에 이미 첫 쇳물을 뽑아냈다는데. 우리는 아직도 못하고 있어요. 이건 불가능한 숫자예요. 그 옆에선 베트남에서 온 기획관이 한국의 1970년대 수출단지 도표를 보며 정신없이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었습니다. 페니 종이를 긁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죠. 나이지리아 대표단은 한국의 새마을 운동 백서를 펼쳐들고 자기들끼리 언성을 높이며 토론을 벌이고 있었어요. 브라질에서 온 관료는 형광펜으로 수취 하나하나에 줄을 그어 가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요. 오대양 6대주 단 한 번도 같은 자리에 모여본 적 없던 유력 인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에 들린 자료는 전부 한국의 것이었습니다. 국적 또 종교도 이념도 전부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각각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일을 이름은 단 하나였어요. 한국 오직 한국이었습니다. 정작 그 한국 사람은 단 한 명도 이 자리에 없는데 말이죠. 이 회의에 공식 의제도 결국 하나였습니다. 한국의 발전 모델을 기반으로 신흥국의 성장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한다. 50가의 나라의 부총리와 장관 대통령실 고문들이 자기 나라 예산을 묶어두고 수천 km를 나라와 마주한 질문이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묵직한 가죽 의자에 몸을 묻었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앞줄의 어느 빈자리 하나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50개 나라의 대표단이 거대한 강당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데 단 한 자리만 덩그러니 비어 있었어요. 그것도 가장 앞줄 가장 좋은 자리가 말이죠. 명폐에 적힌 나라 이름을 보고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중국 그 중국의 자리가 텅 비어 있었던 겁니다. 마침 제 옆자리엔 우즈베키스탄 크리스탄에서 온 관료가 앉아 있었어요. 저는 그에게 턱짓으로 빈자리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저 자리 중국 자리 아닙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날아갑니다. 오겠습니까? 세계 2위라는 나라가 여기 와서 한국한테 머리를 숙이는 그림을 누가 견디겠어요? 저는 속으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중국이 어떤 나라였죠. 바로 얼마 전까지도 세계 무역기구 안에서 우리는 아직 배고픈 개발도상국이라고. 끝까지 우기던 나라였습니다. 그 명분으로 온갖 무역 혜택과 보조금은 다 챙겨가면서도 말이죠. 그런데 정작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강제로 끌어올려진 유일한 나라의 진짜 비밀 앞에서는 끝내 고개를 숙이지 못했어요. 머리를 숙이고 배우러 오기엔 그놈의 거대한 자존심이 도무지 허락하질 않았던 거죠. 저는 우즈베키스탄 관료에게 낮게 한 마디를 흘렸습니다. 자존심이 밥을 먹여 주진 않죠. 그는 피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게 바로 저들이 영원히 우리 옆자리에 머무는 이유죠. 저 텅빈 명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는 이제 똑똑히 알 것 같았습니다. 가장 위대한 진실을 눈앞에 두고도 오직 오만한 자존심 하나 때문에 그것을 외면해 버린 나라 그 자존심이 결국 자기들을 영원한 중진국의 늪에 가둘 거라는 사실을 정작 그들만 모르고 있었던 거죠. 더 기가 막힌 건 따로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마련한 건 한국이 아니었어요. 한국 정부는 이 회의를 주최하지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정작 당사자는 쏙 빠져 있는데 전 세계가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그나라 하나를 파헤치겠다고 제 발로 기어 모여든 거죠. 도대체 한국이 어떤 나라이기에 자원도 영토도 없던 그 작은 나라가 무슨 일을 해냈기에 지구 절반의 인사들이 이렇게 무릎을 꿇듯 매달리는 걸까요? 저는 자료를 한 번 더 손에 꽉 쥐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비밀의 첫 번째 단추를 반드시 풀어내리라. 그렇게 다짐하던 순간이었어요. 바로 그때 당당의 모든 조명이 한꺼번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육중한 문이 무겁게 닫혔어요. 저는 숨을 죽였습니다. 이제 그 봉인된 미스터리의 첫 페이지가 열릴 차례였죠. 강당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꺼졌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면의 거대한 화면 하나에만 불이 들어왔어요. 그리고 그 빛을 등진 채 한 사람이 천천히 단상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백발의 노학자였어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국제경제학 정교수이자 세계은행 수석 경제자문위원인 리차드 보웬 박사님 저는 숨이 턱 막혔습니다. 제가 런던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시절 그분의 논문이라면 한 줄도 빠짐없이 외우다시피 했던 제 학문의 우상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거인이 지금 제 눈앞에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서 있었던 겁니다. 보앤 박사님이 안 구경을 고쳐쓰고 마이크를 잡자. 50개 나라의 장관급 관료들로 가득 찬 객석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얼어붙었어요. 그리고 그분의 첫 마디가 강당을 갈랐습니다. 인사말 같은 건 단 한 줄도 없었어요. 먼저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려고 이 자리에 선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듣고 싶어 하는 달콤한 말이 아니라 여러분이 외면해 온 차가운 진실을 말하러 왔어요. 오웬 박사님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얼음장처럼 냉정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의 성공을 모방하는 것은 신흥국에게 더없이 유익한 사다리였습니다. 그렇게 오늘 떼던 보앤 박사님의 목소리가 한층 더 서늘해졌어요. 그러나 단언컨대 한국의 발전 정책을 그대로 복사하겠다는 무모한 생각은 지금 당장 버리십시오. 그대로 따라하는 순간 여러분은 100% 실패합니다. 순간 강당 곳곳에서 팬이 멈췄습니다. 저도 모르게 들고 있던 팬을 떨어뜨릴 뻔 했죠. 이 회의에 모인 50개의 나라가 바로 그 한국을 따라하겠다고 예산을 묻고 수천 km를 날아왔는데 그 한국을 가장 깊이 연구한 세계 최고의 석학이 1000 마디부터 따라하면 망한다고 선언해 버린 겁니다. 제 뒷줄에 앉아 있던 파키스탄 관료가 옆사람에게 다급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지금 저게 무슨 소리예요? 그럼 우리는 대체 뭘 배우러 여기까지 온 겁니까? 저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엉켜버렸죠. 객석이 술렁이려는 찰나 보앤 박사님이 손에 든 리모컨을 눌렀어요. 거대한 화면 가득 한 장의 흑백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폭격으로 지붕이 통째로 날아간 건물 그 잔해 및 차가운 진흙 바닥에 가만히 조각 하나를 깔고 옹기종기 앉은 아이들 그 작은 손에는 하나같이 연필이 쥐어져 있습니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바뀌었다. 좋습니다. 천막 학교 판자집 교실 노천 수업 저는 그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보앤 박사님의 목소리가 다시 강당을 울렸습니다. 경제학이 정의하는 국가 재건의 정석이 무엇인지 아세요? 전쟁이 끝나면 가장 먼저 군대를 정비하고 무너진 공장을 다시 세우고 당장 먹고 살 인프라에 돈을 쏟아붓는 겁니다. 그게 상식이죠. 그런데 한국은 그 상식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보앤 박사님이 화면 속 아이들을 손으로 가리켰어요. 이 아이들을 보십시오. 이 사진은 전쟁이 끝난 뒤에 찍힌 게 아닙니다. 총성이 오가고 폭탄이 떨어지던 그 지옥 한복판에서 찍힌 겁니다. 한국인들은 폭탄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그 전쟁통에도 천막을 치고 판잣집을 세워 아이들 수업을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어요. 지구상에서 그렇게 한 국민은 한국인들이 유일합니다. 저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습니다. 전쟁 중에 학교를 연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그를 가르친다. 이건 제 머릿속 어떤 경제 모델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어요. 보앤 박사님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953년 휴전 협정이 맺어졌습니다. 그때 한국 정부와 국민이 가장 먼저 손을 댄 게 무엇이었을까요? 군대도 아니고 공장도 아니었습니다. 학교였어요. 유엔과 미국에서 원조 자금이 들어오는 족족 그 막대한 돈의 상당 부분을 무너진 학교를 다시 짓고 교사를 길러내는데 부어 넣었습니다. 당장 먹을 쌀이 없어. 미국이 보내준 밀가루로 연명하던 나라가 말이죠. 화면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이번엔 거대한 숫자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웠어요. 19503년 한국의 문맹률 약 80% 보엔 박사님이 그 숫자를 짚으며 말했습니다. 당시 한국 국민 10명 중 8명은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그런 나라가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의무 교육을 밀어붙였어요. 그리고 불과 한 세대 만에 그 문맹률을 거의 0에 가깝게 끌어내렸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이렇게 빠른 속도로 한나라 전체가 그들 깨친 사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보엔 박사님이 화면을 다시 넘겼어요. 이번엔 여러 나라의 이름이 나란히 떠올랐습니다. 자 비교해 봅시다. 같은 시기 비슷한 출발선에 섰던 나라들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보엔 박사님이 첫 번째 나라를 짚었습니다. 필리핀 1950년대만 해도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 가는 구국이었습니다. 한국보다 훨씬 잘 살았어요. 미국의 원조도 한국 못지 않게 않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요? 소수 특권층의 주머니로 화려한 건물과 당장의 소비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데 쓰이지 않았어요. 그 결과 반세기가 지난 지금 두 나라의 위치는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보행 박스 박사님이 두 번째 나라를 짚었습니다. 바로 가나입니다. 1957년 독립 당시 가나의 1인당 소득은 한국과 거의 같았습니다. 오히려 카카오라는 든든한 자원까지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가나는 그 자원의 기대 손쉬운 길을 택했고 한국은 사람에게 모든 걸 걸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1인당 소득은 가나의 몇 배에 달합니다. 출발선이 같았던 두 나라의 운명을 무엇이 갈랐을까요? 보앤 박사님의 시선이 객석을 천천히 쓸고 지나갔어요. 자원도 원조도 출발선도 비슷했습니다. 차이는 단 하나였어요. 그 돈을 땅에 쏟았느냐 사람에게 쏟았느냐 제 옆자리에 우즈베키스탄 관료가 작게 신음하듯 중얼거렸어요. 말도 안 돼. 굶어 죽기 직전인데 그 돈을 학교에다 썼다고요. 저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카자흐스탄이었다면 그 돈으로 가장 먼저 도로를 깔고 발전소를 둘을 세웠을 테니까요. 당장 눈에 보이는 것부터 짓는 것 그게 당연한 순서라고. 저는 평생 그렇게 배웠습니다. 보앤 박사님이 객석을 천천히 둘러봤어요. 특히 자원으로 부유한 나라에서 온 관료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짚어갔죠. 당시 서구의 학자들은 이 나라를 비웃었습니다. 당장 먹을 것도 없는 최빈국이 초등 의무 교육을 하겠다고 나서고 글 모르는 어른들에게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이는 걸 보고 위험한 도박이라고 손가락질했죠. 하지만 여러분 그건 도박이 아니었습니다. 오엔 박사님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힘이 실렸어요. 그건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를 배우고 사람을 키워내기만 하면 이 나라는 반드시 우리 손으로 다시 세울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해낸다. 그 지독한 확신이 깔려 있었던 거예요. 그들은 단 한 번도 안정적인 길을 먼저 택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가장 가장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제 발로 먼저 뛰어들어 불가능을 기어이 가능으로 바꿔낸 사람들이었어요. 보앤 박사님이 단상 끝으로 한 발 다가서며 객석을 향해 물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나라가 전쟁의 포화 속에 있을 때 마지막 남은 돈으로 학교를 세울 수 있겠어요. 당장 굶어 죽을 판에 20년 뒤를 보고 아이들에게 연필을 쥐어줄 수 있겠어요. 이 시작점 바로 이 무서운 시작점부터 따라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의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강당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어요.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 손에 들린 자료를 내려다봤어요. 오일머니로 무엇을 사고 어떤 시설을 어디에 짓겠다는 계산으로 빼곡한 제가 몇 달을 매달려 만든 우리 카자흐스탄에 마스터플랜이었죠. 그런데 그 순간 그 계획서가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건물을 설비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만 적어놓고 있었던 거예요. 정작 그 모든 걸 굴러가게 만드는 진짜 시작점 사람의 정신 그 미친 확신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도 적지 못했던 겁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제 머리를 스쳤어요. 우리 가자흐스탄에도 석유가 있고 우라늄이 있고 광활한 땅이 있습니다. 한국이 가진 것보다 백 배는 더 많은 자원을 깔고 앉아 있죠.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까요? 이제야 어려운 풋이 그 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땅 속에 자원만 받지. 그 땅 위에 선 사람을 키울 생각은 하지 못했던 거예요. 저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팬을 고쳐 주었어요. 그리고 보엔 박사님의 한마디 한 마디를 미친 사람처럼 받아적기 시작했습니다. 화면 속 흑백 사진의 아이들이 차가운 진흙 바닥에 앉아 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연필을 놓지 않았던 그때 작은 눈빛들이 말이죠. 그제야 저는 어려운 풋이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 회의에 모인 50개의 나라가 왜 그토록 한국 앞에서 절절 매는지를요? 그건 한국의 공장이 부러워서도 기술이 탐나서도 아니었습니다. 돈으로도 자원으로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그 무언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던 거죠. 그리고 보앤 박사님의 이야기는 이제 막 그 첫 단추를 풀었을 뿐이었습니다. 보엔 박사님이 다시 리모컨을 눌렀습니다. 화면이 바뀌자 이번엔 힙부연 흑백 영상이 흘러나왔어요. 좁고 어두운 작업장 천장에 매달린 알정구 하나에 의지한 채 수백 명의 어린 여공들이 빼곡히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가발에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심고 있었고 누군가는 미싱으로 신발과 옷감을 받고 있었어요. 화면 아래 자막이 바뀌었어요. 1960년대 9로 수출산업공단 보행 박사님이 입을 열었어요. 이게 19 160년대 한국의 모습입니다. 자원도 없고 기술도 없고 자본도 없던 나라가 가진 거라곤 단 하나 사람의 손뿐이었죠. 그래서 한국은 그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가발을 만들고 신발을 꿰매고 섬유를 짰어요. 선진국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가장 값싼 노동 그게 한국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보앤 박사님의 시선이 객석의 한쪽 구역으로 천천히 옮겨갔어요. 방글라데시 그리고 에티오피아에서 오신 분들 지금 여러분의 나라가 바로 2단계에 있습니다. 전 세계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옷 상당수가 여러분의 공장에서 꿰매지고 있죠. 값싼 노동력으로 버티는 노동집약적 경공업 수십 년 전 한국이 썼던 바로 그 자리에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겁니다. 해당 국가 관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는 게 멀리서도 보였어요. 그때 방글라데시 대표단의 한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박사님 그렇다면 같은 옷을 꿰매던 우리와 한국이 지금 이렇게 벌어진 결정적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보앤 박사님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주 정확한 질문입니다. 차이는 그 돈의 사용처에 있었습니다. 한국이 위대한 진짜 이유는 이 경공업에 머물지 않았다는 데 있어요. 가발과 신발을 팔아본 그 피 같은 돈을 한국은 어떻게 했을까요? 상식적으로는 그 돈을 국민들에게 골고루 나눠 줘야 합니다. 당장 배고픈 사람들 입에 밥을 넣어주는 게 인지상정이죠.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그 돈을 한 푼도 나눠 주지 않고 세계 은행마저 고개를 내저은 거대한 도전 속으로 통째로 던져버렸어요. 화면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이번엔 빛바랜 영문 문서 한 장이 떠올랐어요. 세계은행이 작성한 공식 보고서였습니다. 글씨가 쾅 하고 바뀌었어요. 한국의 종합 제철소 건설은 경제적으로 전혀 타당성이 없다. 보앤 박사님은 하나님이 그 문장을 손으로 짚었습니다. 이게 1960년대 후반 한국이 제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세계은행이 내린 결론입니다. 세계는 한국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어요. 주제 파악도 못 하고 까분다며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판단에도 나름의 근거는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엔 철을 다룰 기술자도 제철 경험도 심지어 변변한 철도 기술조차 없었으니까요. 제철소를 지을 돈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그 돈을 어디서 끌어왔는지 아십니까? 5엔 박사님의 목소리가 한층 무거워졌어요. 식민지배의 대가로 받아낸 청구권 자금이었습니다. 조상들이 흘린 피해 대가 목숨값과 다름없는 돈 한국은 그 돈을 단 한 푼도 흩뜨리지 않고 0일 만에 허허벌판에 제철소를 세우는데 쏟아부었습니다. 기술이 없으니 선진국 기술자들을 데려와 밤낮 없이 배웠고 경험이 없습니다. 맨몸으로 부딪히며 하나하나 익혀 나갔어요. 뒤로 물러설 곳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이 돈마저 날리면 나라의 미래가 통째로 사라진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화면이 다시 바뀌는 순간 강당 전체가 숨을 멈췄습니다. 시뻘건 쇳물이 거대한 용광로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어요. 영일만 모래밭에 세워진 그 제철소에서 마침내 첫 쇳물이 터져 나오는 겁니다. 타당성이 없다던 그 도전이 결국 성공한 거죠. 보엔 박사님이 그 결과를 짚었습니다. 그리고 이 제철소는 단순히 쇳물 하나를 뽑은 데서 끝나지 않았어요. 값싸고 질 좋은 철이 쏟아져 나오자 그 철로 배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고 기계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훗날 한국이 조선과 자동차에서 세계를 재패하게 되는 그 모든 뿌리가 바로 이 모래밭에서 시작된 겁니다. 제 뒷줄에 파키스탄 관료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흘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게 정말 그 가난한 나라가 했다고 보엔 박사님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화면이 또 바뀌었어요. 이번엔 소달구지가 다니던 진흙탕 길 위로 거대한 도로 공사 현장이 펼쳐졌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나라의 등뼈를 관통하는 대동맥을 깔겠다는 계획이었죠. 보앤 박사님이 객석을 향해 물었습니다. 당시 한국 전체의 자동차가 몇 대나 있었을 것 같습니까? 고작 3만 대 안팎이었습니다. 길에 다니는 차도 거의 없던 나라가 나라 1년 예산에 무려 20%를 단 하나의 도로에 통째로 쏟아부은 겁니다. 저는 제 귀를 의심했어요. 차도 없는데 고속도로를 깐다. 그것도 국가 예산의 1/5을 이건 우리 카자흐스탄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순서였습니다. 이번엔 인도에서 온 관료가 손을 들었어요. 박사님 그렇게 무리하게 자원을 한 곳에 몰아넣으면 다른 부모님은 무너지지 않습니까?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었나요? 고웬 박사님이 답했습니다. 당연히 있었습니다. 야당도 언론도 심지어 세계 전문가들까지 모두 반대했어요. 공사 도중 비용이 부족해 여러 번 위기를 맞았고 험준한 산악 구간에서는 목숨을 잃은 노동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 모든 반대와 희생을 뚫고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도로를 완성해 냈어요. 그리고 그 도로가 뚫리자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시간이 반나절로 줄었고 전국이 하루 생활권으로 묶였습니다. 물류 비용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그 길을 따라 공장들이 줄줄이 들어서기 시작했죠. 오웬 박사님이 그 의문의 핵심을 짚었어요. 여러분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수요가 생긴 다음에 인프라를 깐다. 그게 정상적인 순서니까요. 그런데 한국은 거꾸로 갔습니다. 인프라를 먼저 깔아놓고 그 위로 미래를 강제로 끌어당겼어요. 화면의 또 다른 장면이 떠올랐어요. 이번엔 아무것도 없는 바닷가였습니다. 보앤 박사님이 설명을 이었어요. 여기는 바로 마산이라는 지역입니다. 한국은 이 텅 빈 해안가에 수출 자유 지역이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외국 기업들이 들어와 마음껏 공장을 돌릴 수 있도록 세금을 깎아 주고 인프라를 미리 깔아 준 거죠. 아직 들어올 기업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들이 올 자리부터 먼저 닦아 놓은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외국 자본과 기술이 한국으로 빨려 들어왔고 한국의 노동자들은 그들 곁에 선진 기술을 얻게 너머로 배워 나갔습니다. 모웬 박사님이 단상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쳤어요. 소리가 강당을 울렸습니다. 당시 전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들은 이 세 가지를 두고 하나같이 무모한 도박이라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건 도박이 아니었어요. 물류의 뼈대를 세우고 제조업의 기반을 깔면 반드시 세계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산의 밑바닥엔 단 하나의 확신이 있었죠.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해낸다. 보엔 박사님의 목소리가 강당을 가정메웠어요. 전쟁이 한복판에서 학교를 열어 사람을 키웠던 바로 그 확신이 이번엔 산업으로 옮겨붙은 겁니다. 사람을 키운 그 손으로 이제 나라의 뼈대를 세우기 시작한 거예요. 저는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아파올 지경이었습니다. 순간 제가 몇 달을 매달려 만든 우리 카자흐스탄의 계획서가 떠올랐어요. 자원을 먼저 팔아 돈을 모으고 그 돈이 쌓이면 천천히 도로를 깔고 그다음에 공장을 짓는다. 차근차근 안전하게 순서대로 저는 그게 가장 합리적인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그 순서론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돈이 모이기를 기다리지 않았어요. 수요가 생기기를 기다리지 않았어요. 미래는 현재 지어놓고 현재를 그 미래에 끌려가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깨달았어요. 우리가 수십 년째 늙어서 빠져나오지 못한 진짜 이유를요. 우리는 늘 안전한 다음 순서를 기다리기만 했던 겁니다. 해안가에 빈 관악가 앞에서 늘 한 발 물러섰던 거예요. 화면 속에선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장면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도로 위로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 위로 한국의 수출 그래프가 수천 배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어요. 저는 그 가파른 직선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보엔 박사님의 이야기는 이제 겨우 1960년대를 지나고 있을 뿐이었어요. 보엔 박사님이 리모컨을 눌렀습니다. 화면 가득 한반도 지도 하나가 떠올랐어요. 그런데 그냥 지도가 아니었습니다. 지도 위 네 개의 도시가 붉은 선으로 연결되며 거대한 그물망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었죠. 창원 울산 구미 자 이걸 보십시오. 포항에서 저를 뽑습니다. 그 철이 창원으로 가서 근처 기계와 무기가 되죠. 그 기계가 울산으로 가서 배와 자동차로 조립됩니다. 그리고 구미에서 만든 전자 부품이 이 모든 것에 토뇌가 되어 줍니다. 손끝을 따라 내 도시 사이로 굵은 선들이 정신없이 오갔어요.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 4개가 서로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게 바로 1970년대 한국이 만든 겁니다. 나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묶어 버린 거죠. 처리 기계가 되고 기계가 배가 되고 그 모든 걸 전자가 제어하는 국토 단위의 완벽한 산업 생태계예요. 이건 한 도시의 공장 하나가 잘 돌아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한 곳이 멈춤 옆이 받쳐주고 반듯이 성장하면 그 옆이 함께 커지는 살아있는 유기체였으니까요. 게다가 이 내 도시는 우연히 모인 게 아니었습니다. 혀를 만들면 그 철을 받았을 기계 공장이 가까이 있어야 하고 기계가 나오면 그걸 조립하고 이팔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이 곁에 있어야 한다. 그 모든 흐름을 미리 계산해서 나라 전체를 하나의 설계도 위에 그려 넣은 겁니다. 시선이 객석의 한쪽으로 천천히 향했어요. 인도 그리고 베트남에서 오신 분들 지금 여러분의 나라는 거대한 외국 자본을 유치해서 세계의 공장이 되겠다고 달리고 있죠. 좋은 전략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목소리가 서늘해졌어요. 여러분은 그 공장 건물과 최신 설비를 돈으로 사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리 기계가 되고 기계가 배가 되는 저 톱니바퀴 전체를 사 올 수 있습니까? 그 안에서 돌아가는 자립 기술을 통째로 수입할 수 있습니까? 해당 국가 관료들이 입을 담으로써 씁니다. 그 침묵 위로 못이 박혔어요. 없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외국 자본의 하청 기지로 남을 뿐입니다. 그들이 떠나는 순간 모든 게 멈추는 거죠. 그때 베트남 대표단의 한 사람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습니다. 박사님 그렇다면 그 산업 생태계라는 건 충분한 자본만 있으면 결국 만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저희도 시간을 두고 투자하면 되지 않을까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젖는 모습이 보였어요. 좋은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가 지금부터 직접 보여 드리죠. 다시 리모컨이 눌렸습니다. 순간 화면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어요. 녹슨 결혼 깨진 요리창 잡초가 무릎까지 자란 황빈 공장 부지. 한때 거대했을 생산 라인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멈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 한 줄의 자막이 떠올랐어요. 카자흐스탄 제철 플랜트 가동 3년 만에 가동률 40%. 저는 그 자막을 보는 순간 온몸이 굳어 버렸습니다. 화면 속 시선이 마치 저를 향하는 것만 같았어요. 수백 명이 앉은 강당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저 혼자 밝아 벗겨진 기쁨 두 분이었습니다. 카자흐스타는 크롬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캐내는 나라이고 우라늄 부국이며 막대한 오일머니를 손에 쥔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는 2000년대 초 한국의 제철소 모델을 그대로 베껴왔죠. 수억 달러를 들여 최신식 설비를 사들였습니다. 한국이 했던 그대로 똑같이 그런데 왜 망했습니까? 그 질문이 당당히 울려 퍼지는 순간 주변 관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죠.
답은 간단합니다. 그들은 기계를 샀습니다. 하지만 그 기계를 돌릴 사람
사지 못했어요. 수십. 년간 한 우물을 판 숙련곡 1mm의 오차도 잡아내는 정밀 품질 관리 시스템 그리고 내
공장을 돌리는 근로 정신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모든 것이 그
없었던 겁니다. 최신. 기계는 그저 가장 비싼 고철 덩어리가 되어 멈춰섰을 뿐이죠.
저는 그 말에 반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요.
우리는 분명 한국과 똑같은 기계를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그 기계 앞에서 한
사람이 달랐던 거예요. 한국의 기술자들은 기계가 멈추면 잠을 세워서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멈추면 그 기계를 판 외국 회사에 전화를 걸어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렸죠. 그. 작은 차이
가동률 40%라는 처참한 숫자로 돌아온 겁니다. 화면이 또. 바뀌었어요. 이번엔 아프리카의. 어느 농촌이었어요. 한때 한국식. 마을 운동을 본
시설들이 지금은 무너지고 방치된 채 흉물로 남아 있었죠. 케냐는 한국의. 농촌 개발 운동을 본떠 왔습니다. 마을 회관을. 짓고 길을 닫고 똑같은 간판을 걸었죠. 겉모습은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원조. 자금이 끊기는 순간 모든 게 멈췄어요. 왜일까요? 그들은. 건물을? 베꼈
지만 그 건물은 스스로 굴러가게 만드는 주민들의 마음가짐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화면이 다시 바뀌었어요. 이번엔 중남미의 어느 산업단지였습니다. 거
대한 부지의 도로와 건물은 먼듯하게 들어서 있었지만 입주한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였죠. 자막이 박혔습니다. 입주율 30%. 이들은 한국의 수출 단지를 그대로 복사했습니다. 땅을 닫고 건물을 올리고 도로를 깔아. 놨죠. 하지만
그 안을 채워야 할 물류 시스템 금융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 투명한 행정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모든 것을 빠뜨린 겁니다. 그 결과가 바로 저 텅빈 유령 단지입니다. 여러분 똑똑히 보셨습니까? 건물은 복사됩니다. 기계도 복사됩니다. 도로도
다 복사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매긴 나라들은 하나같이 유령 공장만 남기고 무너졌습니다. 한국과. 똑같은 껍데기를 가지고도 말이죠. 단상. 앞으로 한 발 다가갈가
모습이 보였어요. 70년대에 한국이 중화학 공업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세상은 또 비웃었습니다. 원자재 하나 안 나는 나라가 무슨 중공업이냐고요? 철광석도 수입하고 섬도 수입하는 주제의 분수를 모른다고 했죠. 하지만 한국은 그 비웃음 속에서 돈
수 없는 것들을 하나하나 직접 길러냈습니다. 기술자를 키우고. 품질 기준을 세우고 공장을 내 몸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만들어 냈죠. 남들이 기계를. 사들일 때 한국은 사람을 빚어냈던
저는 그 말 앞에서 정신이 아득해졌어요. 문득. 우리 수도 아스타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늘을. 찌르는 화려한 고층 빌딩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노력하지 않은 그 번쩍이는 스카이라인.
늘 그것이 우리의 자연이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빌딩들이 전혀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건. 우리가 만든 게 아니었어요. 땅. 속에서 캐낸 팬 석유와 광물을 팔아 외국 회사가 대신 지어준 것이었죠 화려한. 외형 아래
그것을 떠받칠 우리만의 제조 생태계는 텅 비어 있었던 겁니다. 자원이라는 모래 위에 쌓아 올린
거대한 모래성 저는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유가가 떨어지는 순간 모래성은 언제든 주저앉을 수 있었어요. 실제로 우리는 그 일을 몇 번이나 겪었죠. 국제 유가가 곤두박질 칠 때마다 화려하던 도시의 불빛은 흔들렸고
살림은 휘청거렸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다시 유가가 오르기만을 기다렸어요. 우리.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그 위기를 넘어설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겁니다. 화면. 속에선 한국의 4대 산업입니다. 시톱니.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용종. 불꽃이 튀고 쇳물이 흐르고 정밀 장비가 쉴 새 없이 가동되고 있었죠. 저는. 그 살아있는 생태계를 멍하니 바라봤어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제가 들고 온 계획서를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회사는 계획이 아니라 사람을 빚는 계획으로 말이죠. 그런데 이야기는 아직 가장 뜨거운 순간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화면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장면이었어요. 번쩍이는 공장도 거대한 도로도 아니었습니다. 매캐한 연기가 거리를 뒤덮고 있었어요. 수십만 아니 수백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죠. 화면 아래 자막이 떠올랐습니다. 1980년 광주 그리고 1987년 6월 저는 그 장면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봤어요. 독재에 맞춰서 나오는 한국의 민주화 항쟁이었습니다. 최로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쓰러지고 또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어요. 화면 한쪽에서는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거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엔 박사님은 그 위에 또 하나의 장면을 겹쳐 올렸어요. 거리에서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는 바로 그 순간 같은 시각 한국의 공장들은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용접 불꽃이 튀고 막내 벨트가 움직이고 배가 진수되고 있었죠. 거리의 혼란과 공장의 질주가 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흐르고 있었어요. 모앤 박사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대부분의 나라는 정치가 흔들리면 경제가 함께 주저앉습니다. 거리의 시위가 터지면 공장은 멈추고 정권이 바뀌면 모든 계획이 백지가 되죠. 그게 신흥국들이 무너지는 가장 흔한 패턴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달랐어요. 거리에서는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공장에서는 단 한 명도 라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싸우고 경제는 경제대로 굴러갔던 겁니다. 보앤 박사님의 시선이 객석의 한쪽으로 향했어요. 나이지리아 브라질에서 오신 분들 여러분의 나라는 거대한 경제 구조를 가졌습니다. 월드컵도 치렀고 올림픽도 열었죠. 그런데 왜 그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요? 정치적 갈등이 터질 때마다 나라의 힘이 사방으로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부패가 그 틈을 파고들었고 모두가 제 몫을 챙기자 정작 나라 전체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어요. 해당 부분은요. 관료들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그때 브라질 대표단의 한 사람이 손을 들었어요. 박사님 그건 한국의 위정과 큰 충돌 없이 넘어간 것 아닙니까? 저희는 정말 극심한 갈 갈등을 겪었습니다. 보엔 박사님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한국의 그 시절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질 만큼 격렬한 충돌이었죠. 차이는 갈등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격렬한 갈등 속에서도 단 하나만큼은 모두가 건드리지 않았 안 왔다는 점이에요. 바로 나라를 먹여 살리는 경제의 뼈대였습니다. 정권이 누구의 손에 넘어가든 공장만큼은 멈추면 안 된다. 그 암묵적인 약속을 온 국민이 지켜낸 겁니다. 저는 그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어요. 생각해 보면 우리 카자흐스탄은 정반대였습니다. 정권이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은 가장 먼저 제 잇속부터 챙겼죠. 누가 권력을 잡느냐에 따라 사업이 통째로 통째로 엎어지고 어제의 계획이 오늘 표지 총각이 되곤 했으니까요. 화면이 다시 한번 반전됐습니다. 이번엔 거리에 역이 대신 휘황찬란한 불빛이 화면을 채웠어요. 거대한 경기장 하늘로 솟구치는 불꽃 전 세계에서 모여든 선수들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엠 박사님은 화려한 장면에서 갑자기 시간을 거꾸로 돼 버렸어요. 여러분 화면에 화려함에 속지 마십시오. 진짜 이 이야기는 이 올림픽이 열리기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이 왜 무엇 때문에 이 올림픽을 통치하여 했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오웬 박사님이 객석을 향해 몰아서 1980년대 초 세계 지도에서 한국을 정확히 짚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요?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한국은 그저 전쟁을 치른 가난한 나라 혹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동양의 작은 분단국일 뿐이었어요.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라는 이름은 아무런 무게도 갖지 못했습니다. 고웬 박사님의 목소리가 진지해졌어요. 그런데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였습니다. 세계 물건을 팔아야 살 수 있고 글로벌 기업을 끌어와야 성장할 수 있는 나라였죠. 그러려면 단 하나 세계가 한국을 알아야 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물건을 누가 사 주겠습니까?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에 어느 기업이 공장을 짓겠어요. 그래서 한국은 가장 무모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전 세계에 눈이 한 곳에 쏠리는 단 하나의 무대. 올림픽을 가져오기로 한 거예요. 화면에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긴장된 표정으로 회의장에 앉아 있는 한국 대표단의 모습이었어요. 보엔 박사님이 그 사진을 가리켰습니다. 당시 가장 유력한 개최 후보는 한국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옆나라 일본의 나고야였죠. 일본은 이미 한 차례 올림픽을 전국적으로 치른 경험이 있는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었습니다. 자본도 인프라도 국제적 신뢰도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어요. 모두가 나고야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끼어든 건 그저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여겼죠. 보앤 박사님이 한 발 다가섰어요. 생각해 보십시오. 전쟁의 위협이 도사린 분단 국가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을 상대로 올림픽 유치 경쟁에 뛰어든 겁니다. 상식적으로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난 싸움이었어요. 그런데 한국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를 돌며 한 표 한 표를 직접 설득했어요. 의원들을 만나 한국의 가능성을 호소했고 밤낮 없이 발로 뛰며 별을 모았습니다. 세계가 비웃는 그 싸움에 나라의 모든 힘을 쏟아부은 거죠. 화면이 바뀌며 결과는 발표하는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봉투가 열리고 한 도시의 이름이 투명됐어요. 서울 보엔 박사님이 그 장면을 짚으며 말했습니다. 결과는 한국의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세계가 당연하게 여겼던 일본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한국인분이 좋게 꺾어 버린 거예요. 그 순간 세계는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이름을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 숨이 멎는 것 같았어요.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을 이름조차 낯선 분단국이 이겼다니 그건 운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ON 박사님이 말을 이었어요. 하지만 진짜 싸움은 그때부터였습니다. 유치에 성공했다는 환호가 가라앉자 곧바로 더 차가운 회의론이 밀려왔어요. 분단 국가에서 안전하게 올림픽을 치를 수 있겠느냐? 그 부족한 인프라로 전 세계 손님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역사상 가장 비참한 올림픽이 될 거라는 조롱이 또다시 쏟아졌습니다. 화면의 그 시절 외신의 헤드라인들이 떠올랐습니다. 차가운 의심과 비아냥으로 가득했습니다. 보앤 박사님의 목소리에 눈이 실렸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또 한 번 그 비유성을 행동으로 받아줬습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가장 큰 미치는 교통이었어요.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이 몰려드는데 도시가 그걸 감당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한 여성이 있는지 아십니까? 서울의 지하철 여러 노선을 동시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를 한꺼번에 말이죠. 거기에 공항까지 초고속으로 확장했어요. 보통의 나라라면 하나를 짓는데도 몇 년씩 걸리고 예산은 두 배로 불어나며 공사는 한없이 늘어집니다. 선진국조차 올림픽을 치를 때마다 예산 초과로 골머리를 앓죠. 화면의 거대한 숫자 2개가 떠올랐어요. 공사 지연 연 예산 초과 0 보엔 박사님이 그 숫자를 짚었습니다. 한국은 그 모든 공사를 약속한 기간 안에 약속한 예산 안에 끝냈습니다. 전 세계가 골치를 앓던 그 일을 한국은 단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해낸 거예요.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행사를 마치 정밀한 기계를 조립하듯 완벽하게 짜 맞춘 겁니다. 저는 그 두 개의 영을 멍하니 바라봤어요. 그 숫자 숫자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카자흐스탄도 막대한 돈을 들여 국제 행사를 유치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화려한 개막식 전 세계로 송출되는 중계 화면 그 순간만큼은 우리도 세계 내일 점심에 선뜻했습니다. 그런데 축제가 끝나고 나니 남은 게 없었어요.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잇속을 챙겼고 예산은 세어 나갔고 공사는 늦어졌습니다. 그 거대한 시설들은 행사가 끝나자 텅 빈 채로 방치됐죠. 우리에게 그건 잠깐의 불꽃놀이였을 뿐 나라의 체질을 바꾸지는 못했던 겁니다. 보앤 박사님이 화면을 넘겼어요. 이번엔 올림픽 이후 한국의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였습니다. 자 이게 핵심입니다. 이름도 모르던 그 나라가 올림픽을 통해 단 16일 동안 전 세계 안방에 자신을 알렸습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올림픽이었다는 찬사와 함께 말이죠. 수십억 명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그 거리와 사람들과 기술을 처음으로 두 눈에 담은 거예요. 그 결과가 무엇이었을까요? 올림픽이 끝난 뒤 한국으로 들어온 외국인 투자는 몇 배로 뛰었습니다. 한국 기업의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팔리기 시작했고 한국이라는 이름의 가치가 폭발적으로 치솟았죠. 이름조차 없던 나라가 단숨에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로 올라선 겁니다. 다른 나라들이 일회성 축제로 끝낸 그 행사를 한국은 미래로 가는 다리로 바꿔 놓은 거예요. 세상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주화와 올림픽을 동시에 하겠다니 두 마리 토끼를 쫓다 둘 다 놓칠 거라고요. 하지만 한국은 그 둘을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피를 흘려 민주주의를 얻어내면서도 같은 시간에 산업을 키우고 올림픽을 완성했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나라가 아무리 흔들려도 국가와 기업과 국민이 끝내 한 방향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말 앞에서 가슴이 탁 막혔습니다. 혼란을 분열의 이유로 삼은 우리와 혼란마저 하나로 묶어낸 한국 같은 위기 앞에서 갈라진 두 나라의 운명이 너무도 선명하게 대비됐어요. 화면 속에서는 여전히 거리가 이게 함성과 공장의 겜금이 하나로 어우러지고 있었습니다. 이름조차 없던 나라가 세계의 무대 한복판으로 걸어 나오던 그 순간이 제 가슴 깊은 곳을 두드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보엔 박사님은 아직 한국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꺼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보엔 박사님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화면 전체가 피빛으로 물들었어요. 긴 박한 뉴스 화면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거대한 기업들의 이름 위로 부도라는 글자가 차례차례 찍혀나갔어요. 주가 그래프는 절벽처럼 곤두박질 치고 있었고 앵커에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한국의 외환 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냈다는 소식이었어요. 화면 아래 자막이 떠올랐습니다. 1997년 외환 위기 보엔 박사님이 물어본 표정으로 입을 열었어요. 지금까지 저는 한국이 어떻게 일어섰는지를 보여 드렸습니다. 이제부터는 한국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1997년 한국은 국가 부도의 벼랑 끝에 섰습니다. 그토록 가파르게 치솟던 그 나라가 하루 아침에 추락한 거예요.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였습니다. 저는 그 화면을 보며 묘한 감정에 휩싸였어요. 지금까지 한국의 끝없는 상승만 봐왔는데 갑자기 펼쳐진 추락의 장면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보엔 박사님의 시선이 객석의 한쪽으로 향했어요. 아르헨티나 그리고 스리랑카에서 오신 분들 여러분의 나라도 국가 부도를 겪었습니다. 그때 거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여러분이 가장 잘 알 겁니다. 보앤 박스 박사님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는 국가가 부도나면 똑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성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부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죠. 상점이 약탈당하고 가진 자들은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기 바쁩니다. 내 나라가 망했으니 내 것이라도 챙겨라. 경기자. 그게 위기 앞에선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본능이에요. 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카자흐스탄도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국제 유가가 폭락할 때마다 우리 화폐 가치는 곤도 바뀔 쳤어요. 그때마다 거리의 민심은 흉흉해졌고 정부를 향한 불신이 들끓었어요. 사람들은 먼저 은행으로 달려가 돈을 빼냈고 여유 있는 자들은 그 돈을 국경 밖으로 옮겼습니다. 위기가 닥치면 나라가 안에서부터 갈라지는 것 저는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오웬 박사님이 객석을 향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땠을까요? 그 절체 절명의 위기 앞에서 한국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갔을까요? 화면이 바뀌는 순간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거리에 사람들이 끝도 없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어요. 그런데 그건 분노의 행렬이 아니었습니다. 폭동의 줄도 약탈의 줄도 아니었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도망가는 튀고 있었습니다. 화면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게 무엇인지 보였어요. 갓난아이의 첫 생일에 끼워 줬던 작은 금반지.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며 나눈 결혼 반지. 백발의 할머니가 평생 간직해 온 낡은 금부치 사람들은 그 소중한 것들을 자기 발로 들고 나와 있었습니다. 보앤 박사님이 조용히 말했어요. 나라가 빚을 갚을 돈이 없다는 소식 소식을 듣고 한국 국민들이 직접 나섭니다. 집 안 깊숙이 간직해 온 금부티를 꺼내. 나라의 빚을 대신 갚겠다고 줄을 선거예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니었었어요. 그죠? 내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화면 위로 황금빛 숫자가 떠올랐습니다. 참여한 국민 351만 명 보임금 21억 달러 어치 저는 그 숫자 앞에서 말을 잃었습니다. 351만 명 수백만의 사람들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아무리 내놓았다는 겁니다. 그 때 스리랑카 대표단의 한 사람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어요. 박사님 정말로 강제가 아니었습니까? 정부가 어떤 압박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결혼 반지를 내놓았다는 게 저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O엔 박사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저도 처음엔 믿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바로 그 점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어요. 화면에 그 시절 외신들의 헤드라인이 떠올랐습니다. 경제학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민족 위기 앞에서 가장 무섭게 하나로 뭉치는 사람들 보엔 박사님이 그 헤드라인을 짚으며 말했어요. 세계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어요. 어떤 경제 이론에도 국민이 제 손으로 금부치를 들고 나와 나라 빚을 갚는다는 모델은 없었습니다. 이건 정책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국가와 국민 사이에 오랜 세월 쌓인 깊은 신뢰가 없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그 말에 가슴이 묵직해졌어요. 신뢰 국민이 나라를 믿고 나라를 위해 제 것을 내놓는 마음. 우리 가자흐스탄에는 바로 그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위기가 오면 나라를 믿지 못했어요. 아니 믿을 이유가 없었죠. 위기 때마다 가장 먼저 제 잇속을 챙긴 건 다름 아닌 윗사람들이었으니까요. 한국에는 있고 우리에게는 없는 것 그건 석유도 기계도 자본도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향한 믿음 바로 그것이었어요. 보앤 박사님이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금 모으기가 단순한 감동적인 미담으로 끝났을까요? 아닙니다. 그 뒤에는 더 무서운 계산이 숨어 있었어요. 화면이 바뀌며 불 꺼지지 않는 연구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힌 창문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어요. 당시 한국은 살아남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을 겪었습니다. 수많은 기업이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어요. 거리에는 가장들의 한숨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한국은 정반대의 일을 버렸어요. 기업들은 연구소에 불을 끄지 않았습니다. 당장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차세대 기술 개발에 더 깊이 파고든 거예요. 보앤 박사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습니다. 왜였을까요? 한국 사람들의 가슴속엔 단 하나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위기만 넘기면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 지금 무너진 자리에서 기술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어두운 순간에 가장 먼 미래에 투자한 겁니다. 화면에 거대한 숫자 하나가 떠올랐어요. 3년 8개월 보엔 박사님이 그 숫자를 짚었습니다. 전 세계는 한국이 그 빚을 갚는 데 최소 10년은 걸릴 거라 예상했습니다. 영영 그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거란 거는 시각도 많았죠. 그런데 한국은 단 3년 8개월 만에 그 막대한 빚을 모두 갚아 버렸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앞당겨 세계가 입을 다물지 못할 속도로 위기를 쫙 그리고 위기를 넘긴 한국은 정말로 이전보다 강해져 있었습니다. 그 어두운 시기에 갈고 닦은 기술들이 훗날 한국을 세계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무기가 됐으니까요. 저는 그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위기를 분열의 이유로 3는 나라와 위기를 단결의 계기로 3는 나라. 위기 앞에서 도망치는 나라와 위기 한복판에서 더 먼 미래로 뛰어드는 나라 같은 위기를 만나도 그 끝은 이토록 달랐습니다. 문득 깨달았어요. 제가 들고 온 계획서에는 위기에 대한 대비가 단 한 줄도 없었다는 걸요. 저는 늘 유가가 오르는 상황 모든 게 순조로운 상황만 그려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보여준 진짜 힘은 모든 게 무너진 그 바닥에서 나왔던 겁니다. 저는 붉어진 눈으로 노트의 한 문장을 꾹꾹 눌러 적었어요. 진짜 국력은 잘 나갈 때가 아니라 무너졌을 때 드러난다. 화면 속에서는 금부티들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수백만 명의 마음이 모여 녹아내린 그 금이 쓰러진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보엔 박사님은 이제 가장 믿기 힘든 이야기를 꺼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스스로 선진국이 되기를 거부했다는 그 이상한 이야기를요. 지금부터 제가 드릴 이야기는 여러분이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것입니다. 너무 이상해서 처음엔 믿기지 않으실 거예요. 화면이 바뀌며 유엔의 한 회의장 영상 이루어졌습니다. 수많은 나라의 대표들이 빼곡히 앉아 있는 엄숙한 국제 기구의 풍경이었어요. 화면 안에 자막이 바뀌었습니다. 2021년 유엔 무역 개발 회의 여기 계신 여러분 대부분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 평생을 바치고 있습니다. 선진국 클럽에 들어가려고 온갖 조건을 증명하고 자격을 인정받으려 애쓰죠. 선진국이라는 그 타이틀 하나를 얻기 위해 말 그대로 구걸하듯 매달립니다. 그게 여러분이 이 자리에 모인 이유이기도 하고요. 보앤 박사님의 시선이 객석에 당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을 비롯해 1만 달러의 빚에 갇혀 있는 전 세계 100여의 중진국 주민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나라에 선진국 자격을 그냥 주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두 손들고 환영하겠죠. 저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우리가 수십 년째 늙은 게 바로 그 타이틀인데 거절할 이유가 없는 거죠. 그런데 보엔 박사님의 다음 말이 강당을 얼어붙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한국은 그 선진국 타이틀 힌트를 거부했습니다. 순간 강당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일었어요. 저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거부했다고. 그 누구나 갈망하는 선진국 지휘를 제발로 차버렸다고. 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선진국이었죠. 선진국들의 모임에도 이미 가입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은 공식적으로는 끝까지 개발도상국 간판을 떼지 않았어요. 세계가 너희는 이미 선진국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한국은 우리는 아직 개발도상국이라며 버틴 겁니다. 그때 인도에서 온 관료가 손을 들었어요. 박사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선진국이 되면 더 좋은 것 아닙니까? 대체 왜 그걸 마다한 거죠? 바로 그게 핵심입니다. 그 안에 한국 특유의 무서운 계산이 숨어 있었어요. 국제 무역 질서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아직 힘이 약한 개발 도상국에게는 자국의 농업이나 약한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줍니다. 외국의 값싼 농산물이 밀려들지만 큰 장벽을 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한국은 바로 그 권리를 쥐고 있었습니다. 값싼 외국 농산물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두꺼운 방어막을 세워 자국의 농민들과 작은 생산자들을 지켜온 거예요. 그런데 만약 한국이 공식적으로 선진국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선진국에게는 그런 보호 장치를 유지할 자격이 사라집니다. 자국 농업을 지키던 그 두꺼운 방어막을 스스로 걷어내야 하는 거죠. 그러면 값싼 외국 농산물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한국의 농민들과 중소 생산자들이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그걸 정확히 내다본 거예요. 선진국이라는 명예로운 이름표 하나를 위해 자국의 농업과 약한 산업을 희생시키지 않겠다. 명분보다 실리를 이른바 국익을 택한 겁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저희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 모여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표 하나를 얻으려고 모든 걸 바치는데 한국은 그 이름표 때문에 잃을 것까지 미리 계산하고 있었던 겁니다. 같은 타이틀을 두고 우리는 갈망했고 한국은 저울질했어요. 그 차이가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남들이 우러러보는 그 자리를 철저히 손익으로 따져 보고 있었던 거니까요. 그런데 한국이 이렇게 끝까지 버티자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제 사회가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나선 거예요. 너희는 누가 봐도 명백한 선진국인데 언제까지 개발도상국 행세를 할 거냐. 이제 그만 선진국의 책임을 지라며 한국의 등을 떠밀기 시작한 겁니다. 화면이 바뀌며 유엔 회의장에서 의장이 무언가를 선언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이날 유엔 한국을 공식적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지휘를 바꿔 버렸습니다. 본인은 한사코 거부하는데 국제사회가 만장일치로 반대도 없이 그 지위를 올려버린 거예요. 저는 그 대목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치열한 표결도 아슬아슬한 통과도 아니었어요. 단 한 나라의 반대도 없는 만장일치였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입을 모아 너희는 선진국이 맞다고 인정한 겁니다. 정작 본인만 손사례를 치는데 말이죠. 화면에 한 줄의 자막이 떠올랐습니다. 이 기구가 만들어진 지 57년 만에 사상 첫 사건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이 국제 기구의 역사상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휘가 바뀐 나라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국이 인류 역사상 최초였어요. 그것도 스스로 원해수가 아니라 세계가 더는 봐줄 수 없다며 역사를 잡듯 끌어올린 유일한 사례였습니다. 세상 모든 나라가 들어가고 싶어. 발버둥치는 그분을 한국은 등떠밀려 들어갔습니다. 저는 그 장면 앞에서 한참 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그 문을 두드리다 지쳐 쓰러지는데. 한국은 그 문 앞에서 도리어 걸음을 멈추고 버텼고 결국 세계가 등을 떠밀어야 마지못해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도대체 어떤 나라는 말인가? 그런데 보엔 박사님은 여기서 가장 잔인한 진실을 꺼냈습니다. 화면이 다시 바뀌며 두꺼운 보고서 한 권이 떠올랐어요. 세계적인 국제 기구가 편해 초청국의 위기를 다룬 보고서였습니다. 이 보고서 안에서 전 세계 수많은 나라가 늪에 빠져 허우적되는 동안 단 한 나라에게만 특별한 별명이 붙었습니다. 화면의 영문 한 줄이 떠올랐어요. 성장의 슈퍼스타 세계의 경제학자들이 오직 한국에게만 헌종한 이름입니다. 그 누구도 따라한 적 없는 그 누구도 다시 해낼 수 없는 성장을 이룬 나라. 그게 바로 한국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보엔 박사님의 다음 말이 강당을 다시 한번 얼어붙게 만들었어요. 자 여기서 그래서 가장 잔인한 진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한국이 했으니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면 되지 않겠느냐.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길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사라졌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한국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가 있습니다. 값싼 옷을 만들어 팔고 그 돈으로 철을 만들고 자동차와 배를 만들며 한 계단씩 올라가던 그 사다리요. 한국은 그 사다리를 거침없이 밟고 올라가며 진작에 꼭대기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 올라간 뒤에 벌어졌어요. 그 사다리의 아래쪽 칸들을 이제는 거대한 인구 대국이 통째로 독차지해 버린 겁니다. 값싸게 만드는 분야는 그들이 싹쓸이하고 그 윗칸은 높은 기술 장벽으로 단단히 막혀 버렸어요. 뒤따라 오르려는 나라들이 발을 디딜 칸 자체가 사라져 버린 거죠. 오웬 박사님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은 그 사다리를 다 오르고 나서 사다리 자체가 끊겨버린 마지막 나라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한국이 절박하게 매달려 간신히 올라간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예요. 한국은 누구보다 일찍 그리고 여유롭게 정상에 올라서 있었고 사다리는 그 뒤를 따라오던 모두의 발 밑에서 끊어진 겁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이 한국의 그 빠른 성장을 따라잡으려면 이제는 그 몇 배의 시간이 걸립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 사다리가 이미 부서져 사라졌으니까요. 저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막연히 믿고 있었어요. 한국이 갔으니 우리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그 자리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게을러서 부족해서 못 가는 게 아니었나요? 우리가 오르려던 그 길 자체가 사라져버린 거였습니다. 한국은 누구보다 그것도 여유롭게 그 정상에 올라선 거인이었죠. 그 뒤로 길은 완전히 닫혀버린 겁니다. 그러니 세계가 한국의 등을 떠밀어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어요. 한국은 그 누구도 다시 오를 수 없는 자리에 이미 홀로 올라서 있었으니까요. 세계는 그저 한국이 한사코 거부하던 그 명백한 사실을 만장일치로 공식 인정해 준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멍하니 그 자막을 바라봤습니다. 성장의 슈퍼스타. 그리고 그 뒤로 끊어진 사다리 이 두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순간 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한국을 따라잡는다는 건 이제 단순히 노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한 일을 그들이 가진 정신을 통째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영영 그 끊긴 사다리 앞에 멈춰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런데 보엔 박사님은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압도적인 장면을 꺼내 화려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정상에 올라선 그 거인이 지금 그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요. 보엔 박사님이 단상의 화면을 조작했습니다. 순간 강당 전체가 거대한 기계음과 함께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어요. 그리고 다음 순간 눈이 부실 만큼 새하얀 공간이 화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언제 한 톨 없는 완벽한 청정실이었어요. 그 안에서 거대한 장비가 불꽃을 튀기며 손톱만 한 얇은 환경에 무언가를 새기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머리카락보다 수만 배는 많은 상상조차 어려운 정밀한 작업이었죠. 화면이 바뀌자 이번엔 망망대해가 펼쳐졌습니다. 수평선 너머로 거대한 홈트레인 산더미 같은데 한 척이 천천히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영화 160도가 넘는 극저온의 액체를 실어내 인류 기술의 정점에 있는 배였습니다. 또 화면이 바뀌었어요. 새하얀 설원을 거대한 강철 덩어리 하나가 갱음을 내며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머릿속에 눈밭을 찢으며 달리는 한국이 만든 전차였죠. 반도체에 그리고 무기 전혀 달라 보이는 이 세 장면이 숨 가쁘게 화면 위로 쏟아졌습니다. 보앤 박사님이 입을 열었어요. 이게 지금 그 정상에 올라선 거인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자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던 그 불모지가 지금 무엇을 쥐고 있는지 보십시오. 보엔 박사님의 시선이 객석의 한쪽 자원 부국에서 온 관료들이 모인 자리로 향했습니다. 여기 광활한 영토와 막대한 지하 자원을 가진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가진 것으로만 따지면 한국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분들이죠. 그런데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그 자원 가격이 떨어질 때마다 휘청거리는 사이 자원 하나 없는 한국은 대체 무엇이 되었습니까? 오웬 박사님의 목소리가 강당을 울렸습니다. 세계인이 쓰는 스마트폰 속 핵심 부품의 상당수를 지금 만들고 있습니다. 전 세계 바다를 누비는 가장 까다로운 특수선의 대부분을 안국이 짓고 있어요. 자원이 없어 모든 걸 수입해야 했던 나라가 도리어 세계의 목줄을 쥐는 자리에 올라선 겁니다. 저는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었으니까요. 우리는 땅을 파서 팔았고 단순히 그 누구도 못 만드는 것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같은 시간 동안 우리는 가진 것을 꺼냈었고 한국은 없던 것을 비전했던 거죠. 화면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이번엔 유럽 여러 나라의 국기가 나란히 떠올랐어요. 보앤 박사님이 설명했습니다. 최근 유럽의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세계 각국이 다급하게 무기를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미국도 유럽의 오랜 방산 강국들도 쏟아지는 주문을 도무지 감당하지 못한 겁니다. 공장은 부족하고 일손은 모자라고 부품 공급은 끊겼죠. 무기를 주문해도 몇 년씩 길게는 10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