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4월 8일 월요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제1독서 : 이사 7,10-14; 8,10ㄷ
제2독서 : 히브 10,4-10
복 음 : 루카 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분야에서의 집중력이 남다르다는 것입니다.
집중하는 그 순간에는 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 어떤 전기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쓸데없는 것 무시하기의 전문가.”
쓸데없는 것을 무시하는 그 전문성(?)이 자기 예술에 헌신하는 능력을 키울 수가 있었고,
눈앞의 과제나 프로젝트에 자신을 묶어두는 능력을 결합하여
전설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학창 시절, 공부하면서 음악 듣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또 여기에 텔레비전을 봐도 상관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실제로 집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집중에 솔직히 죄송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바꿔놓습니다.
그러다 보니 SNS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전화도 못 받습니다.
문제는 자기를 무시해서 SNS 메시지를 보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이것저것 못하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더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는 어떤가요? 주님께만 집중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의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두고 집중하면서, 정작 주님을 외면할 때가 너무 많은 우리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탄생에 대한 예고를 기념하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이날, 우리는 예수님 탄생 예고를 들으신 성모님을 보게 됩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인데, 잉태해서 아들을 낳게 된다는 천사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이 메시지는 성모님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무조건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안 되는 이유만을 이야기합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면서 하느님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만 집중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느님의 메시지는 무조건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집중하고 있었을까요?
“기뻐하시오. 은총을 입은 이여,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기쁨에 찬 인사말을 전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오늘 복음은 가브리엘 천사와의 세 번의 대화를 통해
마리아께서 어떻게 자신의 신원과 소명을 알아듣고 응답하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첫째 대화는 천사의 인사말에 대한 마리아의 당황,
곧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입니다(루카 1,29).
둘째 대화는 천사의 아기 잉태 예고와 그 아기의 신원과 소명에 대한 마리아의 물음,
곧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라는 물음입니다.
셋째 대화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마리아의 응답, 곧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응답입니다.
이 대화를 통하여, 마리아의 깨달음 역시 세 가지라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지금 이 일을 하시고자 하는 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곧 성령이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고
거룩한 하느님의 아들이 탄생하는 이 일은 다름 아닌 '하느님이 하시는 일'임을 깨달음입니다.
둘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신의 신원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곧 '주님의 여종'임을 깨달음입니다.
셋째는 자신의 소명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는 ‘아기 잉태’를 원하신다는 것이며,
바로 이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깨달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명에 마리아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였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분의 사랑을 허용하는 일,
곧 그분께서 당신의 사랑을 내 안에서 이루시도록 나 자신을 그분께 허용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수락하고, 그분의 사랑을 수락하고, 그분의 사명을 수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름하여,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예'(fiat)라는 동의, 곧 받아들임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은총이 나에게 파고들도록 자신을 그분께 승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곧 당신께서 원하신 바를 내 안에서 하시도록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승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화답송처럼
“주님, 당신 뜻을 따르려 이 몸이 대령했나이다.”(시편 39,8)라고 말하는 것이요,
제2독서에서처럼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히브 10,9)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름하여,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분께 결혼의 단란함과 미래뿐만이 아니라,
율법의 위반자로서 목숨까지도 내어드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일이었습니다.
나아가서 그것을 희망하고 바라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그분만이 자신의 전부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름하여, 말씀에 대한 '믿음'의 봉헌이었습니다.
그분의 희망 안에 일치를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마리아의 소명은 구세주의 구원 은총을 입은
우리 모두의 소명이요, 교회의 소명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이요, 그 사랑을 믿고 따르는 일이요,
먼저 받은 바로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상 필요한, 한 가지는 임이 나를 사랑하도록 허용하는 일, 임의 사랑에 나를 승복하는 일,
임이 온전히 나를 사랑하도록 나를 온전히 내어 주는 일, 사랑에 앞서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
하여, 받아들인 그 사랑으로 사랑하기, 임으로 임을 사랑하기입니다.
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내 안에 사랑이 있다는 사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주는 이가 있다는 이 사실이 그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우리는 참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 1,28)
주님!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제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이 사실, 참으로 놀랍고 아찔한 감미로움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에 승복하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그 사랑을 퍼내게 하소서. 아멘.
순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반영억 라파엘 신부
일상적으로 합리적인 말을 하면 알아듣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고집불통도 있습니다만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말을 하면
그에 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상식에 어긋나고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느님의 뜻으로 믿고 따르는 때도 있습니다.
신앙의 선조인 아브라함은 일가친척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했고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는 역할을 했던 모세도
처음에는 할 수 없다고 했지만, 하느님의 도구로 충실했습니다.
기드온은 하느님을 믿고 불과 삼백 명으로 십오만 병사에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요셉은 임신한 약혼자와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라는 꿈의 현시를 받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1,30).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리아는 이해되지 않는 이 말씀에 결국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바로 이것을 순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구원의 역사는 순명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것에 따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순명이라 하지 않습니다.
비합리적 비상식적, 비논리적이라 생각되어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인간의 협력과 동의로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세상은 바로 마리아의 믿음과 믿음에 따르는 순명으로 인하여
구세주의 탄생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의 풍습을 생각하면 약혼한 처녀가 부모도 모르고 약혼자도 모르게
임신하여 배가 불러온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처지가 됩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응답은 죽음을 각오한 대답이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순명은 인간이 바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바칠 것을 다 바친 것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의 마음을 닮아 하느님의 뜻 앞에서는
미루지 않는 결단을 내려 협력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루카1,37).
하지만 인간의 협력을 요구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결코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복종 없이 천명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이현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진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걸작품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디이든 주님의 뜻에 기꺼이 순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 분명히 역사하십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당신이 쉼을 원하시면 저는 사랑으로 쉬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일하라고 명을 내리시면 저는 일을 하면서 죽고 싶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일상 안에서 언제든 주님의 말씀에 순명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순간순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용기 있게 선택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는 연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연장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도구, 연장이 되는 기쁨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루카1,35). 하였습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내려오시고 높으신 분의 힘이
우리를 덮어 죽기까지 주님의 말씀에 순명 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어머니, 그 누가 십자가 없이 천국을 바라리오.
어머님
인간으로 볼 때 당신처럼 불행한 사람이
인류 역사상 또 있겠습니까?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
천상의 이 말을 듣고 나서
당신의 역사는 얼마나 파란이 많았습니까?
남편 요셉에 대한 걱정,
말구유에서 아들의 해산,
이집트로 피난,
마침내 십자가 곁에서
외아들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당신에게
그보다 더한 십자가가 있었겠습니까?
성총을 충만히 받는다는 것이란
반드시 지상의 행복이나 평화를 받는 것이 아님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육신의 안락은 물론
정신적 안락을 의미하는 것도 아님을 알았습니다.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총을 구하는 것은 오히려 지상에서 고통을.
십자가를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원죄 없이 잉태한 당신이
여인 중에 총복을 받으신 당신이.
누구보다 가혹한 십자가를 져야 했고
누구보다 처참한 고통을 받았거늘
그 누가 십자가 없이 천국을 바라리오! -배문한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원래는 3월 25일입니다.
그런데 왜 부활 제2주간 월요일로 옮겨서 축일을 지내게 되었을까요?
교회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 성주간과 겹치면
부활 제2주간 월요일로 옮겨서 지낸다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성주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이루어지는
교회 전례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인 성찰에 따른 교회의 결정입니다.
저는 신학적인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주는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의 역사에서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축일입니다.
마리아의 순명이 있었기에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구원도 마리아라는 처녀의 자유의지와 결단을 통해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기꺼이 아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거룩하게 지내는 성주간에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본당 교우들과 함께 메주고리, 파티마, 루르드로 이어지는
성모님 발현 성지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의 발현 성지순례를 하는 중에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성모님에게 특별한 공경과 사랑을 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교회는 성모님을 ‘천주의 모친’으로 공경합니다.
성모님은 인간 예수의 어머니이면서 삼위일체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성모님에 대한 지극한 공경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어머니에게 요한 사도를 아들로 부탁했습니다.
교회는 사도로부터 이어지기에 성모님은 교회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는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을 ‘복되신 동정녀’로 공경합니다.
성모님의 잉태는 성령으로 인한 잉태였기에
성모님은 동정녀라고 교회의 전승은 이야기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성모님의 몸에서 ‘임마누엘’ 주님이 태어나셨습니다.
하와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왔고, 죄의 결과는 죽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순종으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고,
예수님께서는 죄, 죽음,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동정녀는 생물학적인 의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독신으로 사는 것은 동정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께 의지하면서 동정을 지키는 사람을 동정녀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정결하게 사는 이들이 동정녀입니다.
성모님은 ‘강한 어머니이며 신앙의 여성’입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성모님은 예수님 십자가를 함께 지셨습니다.
십자가에 내려진 예수님을 무덤에 묻기 전에 성모님은 가슴에 묻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에게 성모님은 힘들 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두려울 때는 용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고, 성모님은 친척인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당찬 여인들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엘리사벳은 구세주의 어머니를 알아보았고, 태중의 아이까지 축복하였습니다.
성모님은 구름 속에 있는 고귀한 여성이 아니었습니다.
천상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하는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동정녀이기 전에, 천주의 모친이기 전에 성모님은 강한 어머니였고, 신앙의 여성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마리아의 노래’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지내면서 ‘마리아의 노래’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 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
오늘은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이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의 응답을 통해 사람이 되시는 위대한 사실을 오늘 복음은 전해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다는 것은 곧 인간의 차원이 하느님의 차원으로 들어 올려졌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하느님과 같이 되게 하려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이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마리아의 응답은 이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이룰 수 있게 하였고,
그 마리아의 자세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된다.
복음: 루카 1,26-38: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가 이어지고 있다.
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하는데,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28절)
이런 인사는 남자가 들은 것이 아니라 오직 마리아에게만 주어진 인사였다.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새로운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28절)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천사를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하늘의 심판관을 몸에 받아 모시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느님께서는 한 처녀를 당신의 어머니로 만드셨고, 당신 여종을 어머니로 삼으셨다.
온 세상도 하느님을 품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온전히 그 품에 오시어 사람이 되셨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31절)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 그녀 안에서 행하시는
거룩한 신비를 드러내 줄 아기에 대하여 말한다. 마리아는 처녀로서 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 아기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 되실 분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의미한다.
그분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세상을 다시 창조하실 분이시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34절)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이 물음은 동정 잉태라는 신비에 대한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천사는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내려오시어 잉태하리라고 한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35절)
마리아가 열매를 맺게 하신 분은 물 위를 감돌며 창조를 이루시는 성령이시다(창세 1,2 참조).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써 아들이신 말씀을 잉태하시게 되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말씀을 잉태하고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이웃에게 낳아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말씀을 잉태한다는 것은, 마리아와 같이 자신의 인간적인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버려야 한다.
나 자신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면 주님을 올바로 따를 수 없다.
하느님의 말씀을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매 순간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끊고 자신을 버리는 고통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십자가이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우리는 마리아와 같이 말씀을 잉태하고 그 말씀을 낳아줄 수 있을 것이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마리아는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하와의 불복종을 되돌려 놓는다.
그리하여 한 천사였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첫 번째 처녀의 타락이
다른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 이 처녀 마리아의 믿음으로 극복되고 있다.
마리아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평범한 한 시골 처녀였다.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고 평범한 삶을 사는 인간이었다.
그 마리아가 그렇게 하느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고백하고 실천해야 한다.
주님의 뜻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박상대 마르코 신부
주님의 성탄 대축일(12월 25일)에서 거꾸로 아홉 달이 되는 오늘,
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께서 보낸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성자를 잉태할 것을 기별받은 일을 경축한다.
이것이 주님의 탄생예고 대축일(3월 25일)이며, 다른 말로는 聖母領報 대축일이다.
出産이 있으면, 당연히 受胎가 있어야 하는 법,
그렇다고 오늘의 대축일이 9개월 정도의 임신기간이라는 인간적인 계산에서
그 첫날을 단순히 축하하자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성모 마리아 신심이 남달리 강했던 동방교회가
이미 550년경부터 3월 25일을 성모영보대축일로 지낸 것을 보면,
오늘 축일의 의미가 대단히 컸다는 짐작이 간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 세상의 구원은 이미 천지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계획이다.
우리는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이 구원계획의 수행 또한
하느님께서 스스로 주도하셨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때가 왔을 무렵,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셨다.(갈라 4,4 참조)
이 사건을 오늘 복음이 보도하고 있다.
여섯 달 전에 즈카리야를 찾아가 세례자 요한의 수태를 알렸던 가브리엘 천사가
이번에는 마리아에게 가서 그녀가 하느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의 어머니로 간택되었음을 전한다.
이 전갈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28절)는
마리아에 대한 천사의 인사 말씀으로 시작되었다.
당황한 마리아가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천사의 전갈이 이어졌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30-31절)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성취를 위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음이 선포되는 순간이었다.
하느님 편에서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처녀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요셉과 약혼만 했지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지에서
마리아는 당황함 속에서도 침착하게 그 가능성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천사는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가진 엘리사벳의 경우를 설명하고,
마리아가 하느님 아들의 어머니가 되는 일에 ‘성령 하느님’이 굳센 보증이 될 것임을 약속한다.
흔히 약속이나 계약을 할 때, 사람들이 주고받는
큼직한 인감도장이 찍힌 서류도 없고 보증서도 없다.
오직 ‘성령 하느님’이 그 보증이다. 이제 결정은 마리아에게 달렸다.
그러나 마리아는 모든 것을 믿음과 순명으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하고 대답하였다.
이는 단순한 대답이 아니다.
이는 마리아가 자신을 깡그리 바쳐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며,
온 인류를 들어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일이다. 이로써 마리아의 역할은 분명해졌다.
마리아가 바로 하느님의 구원협조자(coredemptrix)로 간택된 것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는 일,
하느님 스스로가 인간이 됨에 있어 인간을 협조자로 선택했다는 것,
이는 하느님 신성(divinitas : 神性)에 우리 인간성(humanitas : 人間性)이 참여함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신성이 인성을 취하심이다.
따라서 오늘은 마리아뿐 아니라 우리 全 인류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날이다.
그러나 그전에 우리도 마리아처럼 당당히 “Ecce ancila Domini”(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fiat mihi secundum verbum tuum!“(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즉, ”fiat voluntas tua!“(주님의 뜻이 저에게 이루어지소서)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리라.
이는 결코 소극적인 관망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용임을 알아야 한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 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이 땅 위에서 얼마나 많은 언어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바쳐지는 기도인가?
누구든지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그 옛날 천사와 마리아의 만남 안으로 들어가 이 만남을 다시금 살아 숨 쉬게 한다.
누구든지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천사와 함께 인류구원의 시작과 성취를 기뻐하게 되며,
동시에성모 마리아의 믿음과 순명을 자신의 것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 기도는 마리아와 함께 至高의 하느님께 드리는 믿음과 순명의 誓願이다.
누구든지 이 기도를 묵주에 실어 바치는 사람은,
비록 자신이 죄인이라 할지라도
손에서 손으로 자손만대에 이 誓願을 물려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출처] ‘벨라수녀 영화방’ :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에 봉독되는 성경 본문들이 강조하는 주제는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명’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제1독서에서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으로 선언됩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쉽게 감지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고자 하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은 성모님의 응답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우리말로 “보십시오.”라고 표현된 그리스 말 ‘이두’는
단순히 “네.”로도 옮길 수 있는 낱말입니다.
물론 이 “네.”는 앞으로 감수하여야 할 모든 고난과 도전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합니다.
이 “네.”를 통하여 성모님의 작은 몸에
창조주가 인류 역사의 거대한 질서와 함께 들어오십니다.
그런데 사실 ‘하느님의 육화’는 성모님의 “네.” 이전에
예수님의 “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하느님으로서 위상을 고집하지 않으시고
나자렛의 마리아에게서 태어남을 허락하셨기에 성모님의 허락도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2독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라는
예수님의 고백을 두 번 되풀이함으로써, 인간과 함께하시고자 하는 뜻에
이미 예수님께서 동의하셨음을 분명히 합니다.
언젠가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이 장엄한 사건이 나자렛의 작은 집에서 이루어진 것에
큰 위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이 대성전이나 교회의 공적 자리가 아닌
소박한 공간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느님의 거대한 계획은 가난하고 누추한 공간에서도 시작됩니다.
성당에 갈 수 없을 때, 기도할 장소가 마땅하지 않을 때,
나의 열악한 환경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별 볼 일 없는 내 삶의 자리가
“은총이 가득한 이”가 “기뻐하고”,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