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채를 활용한 러시안훅 트레이닝>
-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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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러시아와 전혀 무관한다. 또한 다시 말하지만, 장정일의 햄버거처럼 복잡한 준비물 따위도 필요치 않는다. 이것은 게을러터지고 의지박약하고 하체 부실한 당신을 위한 최소한의 트레이닝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당장 당신의 신변을 지켜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회의적이다. 나는 사기꾼 몽상가이기에 나 자신도 실제에 접목하지 못한 비과학적 접근일 뿐이다.(나는 멍청하게도 이 비생산적인 것을 터득하기 위해 20대를 기꺼이 탕진했다) 또한 거듭 말하지만, 당신이 이것을 배워야 할 까닭도 이유도 없다. 여기까지 읽고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얼른 페이지를 넘길 것을 권유한다. 이것은 다만, 당신의 두뇌를 말랑말랑하게 하고 A와 B가 상호 충돌하여 Z나 Y라는 비경제적 제3의 아드레날린을 생산해 낼 뿐이다. 내가 어떤 것을 주문해도 당신은 곧이곧대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당신과 나의 전두엽을 촉진시킬 것이다. 그럼 자, 릴렉스! 릴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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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은 눈을 감는다. 보다 능동적으로 수업에 임하고 싶다면 눈을 크게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도 좋다. 우측 벽 위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아 있고 당신은 파리채를 들고 있다. 여기서 TIP 하나. 파리를 잡는 것이 요지가 아니다. 파리는 그냥 파리일 뿐, 이것은 사건에 부로가하다. 서사라고 해도 좋다. 헛힘을 쓰면 정작 러시안훅을 배울 수 없다. 당신은 아무 생각 없이 벽을 내리쳤고 파리는 날아갔다. 파리는 지금 당신의 머리 위를 배회하며 어디에 앉을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여기서 당신의 상상에 급추진이 걸려 파리를 대기 밖으로 파푸아뉴기니로 짐바브웨로 날려 버릴 수도 있다. 심지어는 파리를 모래요정바람돌이로 마루치아라치로 머털도사로 변신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파리를 빠리로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렴, 어때! 이건 당신의 몫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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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공중에서 배회하다 좌측 벽 위에 앉는다. 당신은 이번에도 아무 생각 없이 벽을 내리친다. 조말선은 벽을 두고 기표와 기의 놀이를 했고 벽으로 요리도 했다. 장정일은 햄버거 하나로 김수영을 만났다. 요리는 이제 진부하다. 우리는 날것을 원한다. 파리는 다시 날아갔다. 당신은 슬슬 부아가 난다. 파리도 이제 잘 앉지 않는다. 여기서 TIP 둘. 파리채는 유연하다. 파리채는 어떤 지면과 마찰해도 자유자재로 제 몸을 꺾는다. 부러지지 않는다. 한 걸음 물러서서 왼발을 사뿐 디디며 파리채를 뒷목에 숨겼다가 큰 반원을 그리며 내리 꽂는다. 여기서 TIP 셋. 목표물을 겨냥해선 안 된다. 배추머리 장정구도 변칙 기술로 챔피언이 됐다. 15도 어긋나게 설정하고 찰나의 순간 파리채를 비튼다. 스냅의 각도에 따라 당신의 파리채는 다이너마이트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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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궁극적 과제는 파리를 압사시키는 데에 있지 않다. 파리의 피를 보는 것이 끝장을 보는 것이 아니다. 파리가 빗맞아 다리 하나만 떨어진다면 좋다. 날개만 살짝 스쳤다면 더욱더 좋다. 우리의 손엔 언제나 파리채가 들려 있고 파리는 돌아서면 잊고 식탁 위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공유하기를 원할 것이다. 고백컨대, 파리채를 이용한 러시안훅은 지속적인 자기 최면과 반복으로 완성되어 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은 파리의 아니, 빠리의 낭만 자객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계는 맨주먹으로 파리를 사냥하고 심지어는 팔꿈치로 파리를 짓이겨 버리는 몰지각한 세계이다. 최근엔
니킥으로 파리를 공격하는 국적불명의 이종 세력이 등장했고 화면을 통해 파리를 조종하는 신세대 사냥꾼들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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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결코 당신이 꿈꾸는 윤택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으로 바람 피는 당신의 남자를 때려 눕힐 수도 없고 사이비 비 종교에 빠진 마누라의 얼굴을 강타할 수도 없다. 이것은 다만, 당신의 헛된 꿈을 더욱 크게 부풀리고 부풀리어 종장에 터지게 만들 것이다. 폭발하게 만들 것이다. 당신은 아마, 최상급의 로맨티스트가 되거나 최상급의 격투기 선수가 될 것이다. 당신은 사랑해요, 좋아해요, 멋있어요, 따위의 문장들을 다신 입 밖으로 발설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심하라. 당신은 파리채와 키스하고 애무하고 섹스하고 파리채 새끼를 낳고 해피하게 한 세계를 살아갈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러시아와 무관하다. 무관하지만 러시아에 관한 모든 것을 포용한다.
참고문헌
최승자 - 이 시대의 파리채
이윤학 - 파리채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박형준 - 나는 이제 파리채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김기택 - 바늘구멍 속의 파리채
최치언 - 파리채는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
최금진 - 파리채의 역사
권혁웅 - 그 얼굴에 파리채를 대다
김경주 - 나는 이 세상에 없는 파리채다
심보선 - 파리채 없는 십오 초
황병승 - 여장남자 파리채
유홍준 - 상가에 모인 파리채들
조말선 - 매우 가벼운 파리채
김혜순 - 파리채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 러시안훅 : 키가 작은 선수가 키가 큰 선수를 상대로 팔목을 구부리지 않고 원을 그리며 내리찍는 훅의 변칙 기술. 파괴력이 대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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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적는 것도 힘드네요^^;
읽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승자 - 이 시대의 사랑
이윤학 -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박형준 -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김기택 - 바늘구멍 속의 폭풍
최치언 -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
최금진 - 새들의 역사
권혁웅 -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김경주 -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심보선 - 슬픔이 없는 십오 초
황병승 - 여장남자 시코쿠
유홍준 - 상가에 모인 구두들
조말선 - 매우 가벼운 담론
김혜순 - 달력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참고 문헌 원 제목입니다. 읽어본 시도 하나밖에 없네요 ㅠㅠ
비가 참 안 내리는 천안에 모처럼 비가 와서 즐거운 날입니다.
비록 12시까지 근무라 아쉽지만요^^;
시사랑님들 모두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첫댓글 러시아 하면 늘 떠오르는말 한국에서의 운전은 러시안룰렛보다 짜릿하다는 말...쌩뚱맞은가
잘 읽었습니다. 좋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