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와 룻기는 동 시대, 즉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사울 왕이 세워지기 전의 기간에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책 내용의 명암은 크게 대비됩니다. 즉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암울하고 악취 나는 비참한 역사”를 다뤘다면, 룻기는 “한 쌍의 남녀의 밝고 향기로운 탁월한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한 신실한 성경 교사는 이 책의 주요 인물인 룻에 대하여 “가시나무 사이에서 자라는 백합”같고, “어두운 밤에 빛나는 밝은 별”과 같다고 극찬합니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되, 제가 주목하고 누린 것은, 롯(Lot)과 그의 딸의 근친상간의 결과인 모압 족속의 후손이면서 우상 숭배의 땅에서 자란 룻(Luth)이 예수님의 조상의 계보에 포함되게 된 과정입니다(마 1:5). 아래 본문은 비슷한 처지의 나오미의 두 며느리가 운명이 엇갈리는 결정적인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들이 다시 소리 높여 울었다.
그리고 나서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을 맞춰 작별 인사를 하였으나
룻은 시어머니를 굳게 붙잡았다(Ruth clung to her)(룻 1:14).
이 당시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그들의 왕이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저마다 자기가 보기에 옳은 대로 하던” 때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나름 뼈대 있는 지파인 유다 지파의 자손인 엘리멜렉은 기근을 피하려고, 아내인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메시아의 출현 예정지인) “유대 베들레헴”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룻 1:1). 그러나 하나님의 다루시는 손길은 나오미를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은 과부가 되게 하셨고(1:20), 모압 여인들인 두 며느리도 졸지에 과부들이 되었습니다.
나오미와 룻: 위 본문 전후 문맥을 보면,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자신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권하자, 처음에는 두 며느리 모두 “아닙니다. 저희도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후 룻은 (어머니와 어머니의 백성뿐 아니라) “어머니의 하나님께서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추가합니다(16절). 이와 대조적으로 성경은 오르바가 “제 백성과 신들에게로 돌아갔다”라고 적고 있습니다(15절).
저는 이 대목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조차도 믿음이 흔들리던 그 시대에, 이방 여인으로 우상의 땅에서 성장한 룻이 개종하여 시어머니를 따라 여호와를 믿기로 선포한 것은 놀라운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훗날 나오미는 룻을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보아스와 결혼하도록 중매인의 역할을 자처합니다(룻 3:1-4). 이것은 우리를 “순수한 한 처녀”로 “남편인 그리스도께” “약혼시키려는” 사도 바울의 사역을 떠올리게 합니다(고후 11:2).
룻과 보아스: 남편을 잃은 룻이 늙은 시어머니를 따라가면 부자인 보아스를 만나 재혼할 것이라는 암시는 어디에서도 없습니다. 또한 그들의 처음 만남도 “우연”이었고’(2:3), 그 만남 당시에 보아스와 룻의 관계는 “주인님”과 그 밭에서 생계를 위해 이삭을 줍는 “나리의 여종들 중 하나만도 못한” 여인의 관계에 불과했습니다(13절). 그나마 연결 고리를 찾자면, 보아스는 죽은 남편의 친척 정도였습니다.
보아스와의 결혼을 통한 룻의 신분 상승: 그러나 우여곡절 끝이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게 되고(4:13), 그로부터 아들까지 낳게 된 것은 룻에게는 대단한 신분 상승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즉 룻은 1) 자기가 이삭을 줍던 밭주인이 남편이 되었으니 더 이상 이삭을 주어 생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2) 또한 그녀가 낳은 아들인 ‘오벳’(Obed)이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고 그 다윗의 후손으로부터 예수님이 탄생하셨으니 룻은 소위 최고의 ‘로열 패밀리’의 족보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마 1:5-6, 16). 모압 족속의 후손은 영원히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 들어올 수 없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엄청난 신분 상승이자 주님의 긍휼의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신 23:3).
그런데 룻기를 해설한 <라이프 스터디>(8장)는 보아스가 1) 부유하고 관대하게 주는 사람, 2) 말론의 친족으로서 그의 잃어버린 재산권을 구속한 후에 룻을 아내로 맞이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구속하시어 교회를 그분의 증가를 위한 배필로 삼으신 것을 예표하고(엡 5:23-32, 요 3:29-30), 룻은 죄로 인해 타락한 옛사람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토대로 그분과 결혼하여 신성하고 유기적인 연합을 이룬 교회를 예표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관점이 맞다면, 이 보아스와 룻의 ‘밝고 향기로운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세상에서의 신분 상승은 소유한 땅값이 치솟아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경호원이 재벌 2세와 결혼하여 로열 패밀리의 일원이 되거나, 시골 청년이 고시 패스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게 되는 등 주로 물질적인 영역에 국한될 뿐입니다. 그러나 위 룻과 보아스의 경우처럼, 우리가 주님과 결혼하여 그분이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단체적인 신부가 되는 신분 상승은 영원히 가치가 있는 신성하고 존귀한 사건입니다(계 21:9-10). 오, 우리 눈을 열어 주셔서 이 방면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감상하게 하소서!
오 주님, 우리로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시나무 사이에서 자라는 백합”같게 하시고,
“어두운 밤에 빛나는 밝은 별”과 같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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