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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처님께서 밝히신 무아의 진리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영상2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그럼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숲속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잔잔합니다. 저마다 마음 깊은 곳에 나는 누구인가. 왜 나는 이렇게 힘든가 라는 질문이 남아 있지요. 부처님께서는 무하상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후는 나가 아니다. 만약 오운이 나라면 그대는 그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리라 하지만 우리의 삶을 보십시오. 원하지 않는 질병은 찾아오고 미움은 마음대로 사라지지 않으며 과거의 상처는 우리가 원치 않아도 다시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라고 붙잡고 있는 이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요? 내가 조종할 수 없는 몸 마음 감정이라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라는 집착이 오히려 고통의 씨앗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숲길 위로 아침 햇살이 조용히 스며듭니다. 마치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너 자신이라고 믿었던 것은 실은 끊임없이 변하는 흐름일 뿐이다.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나라는 존재를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판단해 왔습니다. 내 기분 내 생각 내 자존심 내 입장 이 모든 것들이 마치 변하지 않는 진실인 것처럼 믿으며 살아왔지요. 하지만 부처님은 이 믿음 자체가 착각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이것은 신체와 느낌과 지각과 의도와 의식이 잠시 모여 있는 조합일 뿐 영원하고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강물이 흐르듯 우리도 몸의 순간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어제 나와 오늘의 나는 같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나도 다음 순간에는 달라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변화무쌍한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나를 찾으려 애씁니다. 그래서 괴로운 것입니다. 여러분 잠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10년 전 여러분은 무엇에 화를 냈습니까? 그때는 분명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었는지 의문이 들지 않습니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입니까? 몸의 세포는 모두 바뀌었고 생각도 달라졌으며 가치관도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이 존재는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오은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로 설명하셨습니다. 색은 우리의 몸과 물질적 형태를 말하고 수는 느낌과 감각을 의미하며 상은 지각과 인식을 행은 의지와 행 행위를 식은 의식 작용을 뜻합니다. 이 다섯 가지가 찰나. 찰나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일 뿐 그 안에 고정된 나라는 실체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화의 진리입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발견을 하고 있습니다. 자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뇌의 여러 부분이 협력하여 만들어내는 일종의 착각이라는 것이죠. 기억 감정 사고 이 모든 것들이 각각 다른 내 영역에서 일어나지만 우리는 이것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나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통합된 실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이 진리를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한 가지 착각에 갇힙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럴 수밖에 없어. 하지만 이 생각이 우리를 얼마나 묻고 있는지 아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변하는 것에 집착하면 반드시 고통이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몸은 늙고 관계는 변하고 자식들도 떠나고 직장도 명예도 건강도 모든 것이 변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변하지 않는 나를 찾아 매달립니다. 그래서 괴로운 것입니다. 마치 물 위에 비친 달을 붙잡으려 애쓰는 아이처럼 말이죠. 물결 위로 떨어지는 빛은 아름답지만 붙잡을 수 없는 허상입니다. 우리가 내 자존심 내 생각 내 과거라고 주장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이때 감정은 점점 조여옵니다. 불안 억울함 후회가 밀려옵니다. 하지만 그 감정조차 나가 아니라 잠시 머물렀다. 지나가는 손님임을 깨닫는 순간 마음은 다시 고요해집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한 중년 남성이 계셨습니다. 평생 회사에 충성하며 일했는데 구조 조정으로 갑자기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나는 실패한 가장이야. 나는 무능한 사람이야.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족들과도 제대로 대화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괴로워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는 성공한 직장인이다. 나는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다라는 고정된 자아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보시기에 이것은 착각입니다. 직장인이라는 것도 조건이 모여서 만들어진 일시적 상태일 뿐이고 가장이라는 역할도 악기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 조건이 바뀌면 상태도 바뀌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나의 본질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조건이 바뀌면 나 자체가 무너진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생겨났다가 조건이 사라지면 사라진다. 직장을 잃은 것은 여러 경제적 조건과 사회적 조건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본질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자식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며 살아왔는데 자식들이 결혼하고 눈잎한 후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어머니는 깊은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이렇게 키웠는데 내가 평생 희생했는데.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그것은 나는 헌신적인 어머니다. 자식들은 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고정된 자아상과 기대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자식도 부모도 내 관계는 인연에 따라 만나고 인연이 남으면 흩어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자식이 독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그것이 어머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도 아니고 자식의 불효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관계의 형태가 바뀌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변하지 않는 관계를 원합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을 변하지 않는 존중을 말합니다. 이것이 고통의 원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성제에서 고통의 원인을 집착이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나에 대한 집착 내 것에 대한 집착이 가장 큰 고통을 만들어냅니다. 내 생각이 옳아야 한다. 내가 인정받아야 한다. 내가 손해 보면 안 된다. 이런 집착들이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그런데 이 모든 집착의 뿌리에는 고정된 나라는 환상이 있습니다. 만약 고정된 나가 없다면 누가 손해를 보는 것일까요? 누가 무시당하는 것일까요? 무화를 깨닫는다는 것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보드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내용 중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모든 법은 조건으로 생겨나고 조건이 사라지면 사라진다. 이 말은 곧 고정된 나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내가 옳다. 내가 중요하다. 내가 손해 봤다. 이 나라는 중심축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인간을 이렇게 보셨습니다. 신체 인생 느낌 인수 지각인 상 의도인 행 의식 인식 이 다섯 가지가 찰나. 찰나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일 뿐이라고요. 바람이 지나가면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그 나뭇잎의 흔들림을 두고 이 흔들림이 나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입니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 또한 이와 같습니다.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의 무거운 짐이 스르르 내려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이 몸은 10년 전과 같습니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몸의 세포는 평균 7년에서 10년 사이에 모두 교체된다고 합니다. 즉 10년 전에 몸과 지금의 몸은 물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몸입니다. 그렇다면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이 마음은 어제와 같습니까? 기분도 생각도 관점도 모두 달라졌습니다. 아침에 화가 났다가 저녁에는 평온해지고. 어제는 슬펐다가 오늘은 기쁘고 이렇게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변하지 않는 나가 있다고 착각할까요? 그것은 기억 때문입니다. 과거의 기억들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마치 하나의 연속된 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기억조차 변하는 것이며 매 순간 재구성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현대 뇌과학 연구도 이것을 확인해 줍니다. 음 우리가 과거를 기억할 때마다 그 기억은 조금씩 변형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의 나조차 실제로는 지금 이 순간 재구성된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고정된 나는 없습니다. 다만 조건에 따라 생겨났다. 사라지는 현상들의 연속이 있을 뿐입니다. 음 이것이 연기법이고 무화의 진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깨달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짐으로 저것이 사라진다. 이 말씀은 모든 존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조건에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있기 위해서는 부모가 있어야 하고 음식이 있어야 하며 공기가 있어야 하고 사회가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조건이 모여서 나라고 불리는 현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어느 것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몸입니까? 하지만 몸은 음식에서 왔습니다. 마음입니까? 하지만 마음은 감각과 경험에서 형성됩니다. 생각입니까? 하지만 생각은 언어와 문화에서 배운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나라고 할 수 있는 독립적 실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수많은 조건들이 일시적으로 모여 있는 상태가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무화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진리를 깨달으시고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셨습니다. 고정된 나가 없다면 집착할 대상도 없습니다. 지킬 자존심도 없고 싸울 명예도 없으며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해탈입니다. 음 이것이 자유입니다. 오늘을 사는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음 내가 실패해서 가족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음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두렵습니다. 내가 무능해서 이런 일을 겪는 건가요? 이 모든 질문의 중심에는 고정된 나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나다라고 부르는 것은 잠시 조건이 모인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과정은 잘못이 없습니다. 펄러가는 강물에 옳고 그름이 없는 듯 우리의 인생도 시대와 환경과 만남의 조건 위에서 만들어진 흐름일 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잘난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흐름을 그대로 보라. 그리고 집착을 내려놓아라. 이 한마디만 가르치셨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자신을 탓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남과 비교하는 마음도 잦아들며 삶이 훨씬 가벼워집니다. 현대심리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개념을 다룹니다. 인지 행동 치료에서는 자아 개념이 너무 경직되어 있으면 스트레스에 취약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반대로 자신을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은 실패나 거절에도 덜 흔들리고 회복력이 높습니다. 심리학자 캐롤 드웬 교수는 이것을 성장 마인드셋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성장하고 변화하는 존재라고 믿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무와 가르침은 2500년 전에 이미 이 진리를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나를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으면 실패해도 내가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번 조건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입니다. 다음번에는 조건을 바꾸면 됩니다. 나이가 들어도 내가 가치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몸이라는 조건이 변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지혜와 경험이라는 새로운 조건은 더 풍부해졌습니다. 이렇게 보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직장을 잃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조건이 바뀔 것일 뿐 새로운 조건을 만들면 새로운 기회가 생깁니다. 배우자와 갈등이 생겨도 상대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조건이 맞지 않는 것일 뿐 조건을 조정하면 관계가 개선될 수 있습니다. 자식이 말을 듣지 않아도 화내지 않습니다. 자식도 자식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이며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이렇게 무화의 관점으로 보면 모든 문제가 비난과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조정의 대상이 됩니다. 음 이것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자비입니다. 자비란 단순히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가 조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조건을 함께 개선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자비입니다. 내가 고통받는 것도 조건 때문이고 상대가 나를 괴롭히는 것도 그 사람의 조건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미움이 사라지고 연민이 생깁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원수로 갚으면 원수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원수를 사랑으로 갚을 때 비로소 원수가 끝난다. 이 말씀은 무화의 관점에서 나온 것입니다. 고정된 나도 없고 고정된 원수도 없다면 관계는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감정이 올라올 때 이 감정은 나가 아니다라고 보기부터 시작하십시오. 분노 불안 외로움 이 감정들은 나가 아니라 잠시 머무는 손님입니다. 감정을 주인으로 착각하지 않을 때 우리는 훨씬 가벼워집니다. 화가 났을 때 내가 화난 것이 아니라 화나는 감정이 지금 일어난 것이다라고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그 감정과 거리를 둘 둘 수 있습니다. 감정과 거리를 두면 감정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감정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관이라고 합니다. 관찰하는 수행입니다. 500 마사나 명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그저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금 화가 일어나는구나.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올라오는구나. 주먹을 쥐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구나. 이렇게 관찰하다 보면 감정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물러갑니다. 우리가 감정과 싸우거나 감정을 억누르려 하면 감정은 더 강해집니다. 하지만 감정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감정은 저절로 약해집니다. 과거의 상처를 고정된 나의 역사가 아니라 흐름 속의 사건으로 보기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상처는 더 이상 나를 규정하지 않습니다. 10년 전 실패가 지금의 나를 규정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이론이 지금의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흘러간 정황이니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상처 때문에 현재를 살지 못합니다. 나는 어렸을 때 학대받았어. 그래서 살아남을 수 없어. 나는 사업에 실패했어. 그래서 다시는 도전할 수 없어. 이런 생각들이 현재의 가능성을 막습니다. 하지만 무아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릅니다. 과거의 학대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현재의 나를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사업에 실패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때의 조건과 지금의 조건은 다릅니다. 과거는 과거에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묶을 수는 없습니다. 내 말이 옳아야 한다는 집착 내려놓기는 필요합니다. 무한은 곧 관계의 지혜입니다. 집착이 사라지면 갈등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남자와 다툴 때 내 생각이 옳다고 우기지 마십시오. 나라는 고정된 관점이 없다면 상대방의 관점도 똑같이 타당합니다. 다만 조건이 다를 뿐입니다. 남편은 남편의 경험과 환경에서 형성된 관점을 가지고 있고 아내는 아내의 경험과 환경에서 형성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서로 다를 뿐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면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삶이 힘들 때 나를 탓하지 말고 조건을 보라는 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원인의 조건으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은 내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제 상황 산업 구조 건강 상태 이 모든 조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조건을 보면 자책이 사라지고 조건을 바꾸면 상황이 개선됩니다. 변화는 곧 자유라는 사실도 받아들이십시오. 나가 변한다는 건 잘못이 아니라 가능성입니다. 어제 나와 다른 오늘의 내가 있다면 그것은 성장의 증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관성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음 나는 한 번 한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야. 하지만 때로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조건이 바뀌었는데 과거의 약속을 고집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유연하게 변화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이 실천이 쌓이면 마음은 저절로 고요해지고 삶은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무화의 진리는 나는 없다는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부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밝히신 진리는 이것입니다. 집착할 고정된 나가 없기에 우리는 자유롭다.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미래의 나도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조건 속에서 변화하는 흐름입니다. 우리가 실체 없는 것에 집착할 때 고통이 생기고 그 집착을 놓는 순간 고통은 사라집니다. 물결 위에 비친 달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슬퍼할 필요가 없듯 변화 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저 흘러가면 됩니다. 숲속의 새 한 마리가 멀리 날아갑니다. 그 새가 바람에 올라탔다가 다시 내려가는 것처럼 우리도 변화를 딛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많은 분들이 무화를 오해합니다. 나가 없다면 누가 노력하고 누가 책임지며 누가 수행한다는 말인가라고 물으십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행위는 있으되 행위자는 없다. 변화는 있으되 변화하는 실체는 없다. 고통은 있으되 고통받는 자는 없다. 길은 있으되 걷는 자는 없다. 이 말씀은 모든 것이 조건에 따라 일어날 뿐 그 뒤에 독립적이고 영속적인 나라는 실제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롭게 변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묶이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화가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자유입니다. 고정된 나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자유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괴로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인정받지 못해서 내가 존중받지 못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입니다. 하지만 고정된 나가면 인정받을 나도 없고 존중받을 나도 없으며 원하는 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단지 조건이 이렇게 훌륭할 뿐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모든 집착이 사라집니다. 집착이 사라지면 고통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해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열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열반은 죽음이 아닙니다. 열반은 살아 있으면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무화를 깨달은 사람은 살아 있으면서도 열반을 경험합니다. 그것을 생전 열반 혁명 열반이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양반입니다. 여러분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정된 나라는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 여러분은 자유로워집니다. 그 자유가 바로 열반입니다. 그 자유가 바로 행복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무언가를 얻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집착을 내려놓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무화를 이해하는 순간 왜 내가 이렇게 힘들어 했을까라는 깊은 울림이 찾아옵니다. 남의 말에 마음이 상했던 이유 늙어가는 몸에 두려움을 느끼던 이유 관계에서 상처받던 이유 모두 내가 중요하다는 짐작 때문이었습니다. 그 집착이 스르륵 풀리는 순간 마음속의 따뜻한 영인이 생깁니다. 마치 안개가 거친 숲속에서 햇살이 잔잔히 내리는 것처럼 마음속 긴장이 풀리고 고요한 찾아옵니다. 이 고요함은 단순한 정서가 아니라 부처님이 말씀하신 해날의 첫걸음입니다. 한 노인이 계셨습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왔는데 자식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빠서 연락도 등했습니다. 노인은 서운함과 외로움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키웠는데 내가 평생 희생했는데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에서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무화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은 당신의 소유가 아니며 당신도 누군가의 소유가 아닙니다. 모두 각자의 인연 따라 만났다가 흘러가는 인연일 뿐입니다. 노인은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가 서운해 하던 것은 자식들이 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집착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식들에게는 자식들의 삶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삶이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것이 모아가 주는 평화입니다. 또 한 중년 여성이 계셨습니다.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늘 갈등 속에서 살았습니다. 남편은 말수가 적고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성은 이것을 무시와 냉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중 상담을 받게 되었고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도 남편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닐 뿐이죠. 당신의 기준으로 남편을 판단하지 마세요. 여성은 이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이 유일한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남편을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말은 적지만 매일 출근 전에 아내의 차 타이어를 확인했고 주말이면 집안 수리를 도맡아 했습니다. 그것이 남편의 사랑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여성은 자신의 고정된 기준 고정된 나의 관점에서 벗어나자. 남편의 사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무화의 실천입니다. 나의 기준 나의 관점을 절대화하지 않는 것 이것이 무화입니다. 이렇게 무화를 이해하고 실천하면 관계가 개선되고 갈등이 줄어들며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사무량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어차피 연민 평정의 네 가지 무한한 마음입니다. 무한을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이 네 가지 마음이 생겨납니다. 고정된 나가 없으니 자비가 생기고 모든 존재가 조건 속에 있음을 아니 연민이 생기면 남의 행복을 내 행복처럼 기뻐하고 모든 변화를 평정SIM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무화가 주는 선물입니다. 이것이 해탈의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을 감고 조용히 호흡을 느껴 보십시오. 들숨과 날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그 흐름 그 흐름이 바로 우리의 본래 모습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흘러가는 것에는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이 한 줄의 지혜가 여러분 마음 한가운데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지금 느껴지는 불안 슬픔 외로움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은 흘러가는 바람 같은 것입니다. 잠시 머물렀다. 반드시 지나갑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구속하지 말고 스스로를 비난하지 말며 스스로를 찾게 만들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변할 수 있는 존재이고 변할 수 있기에 자유로우며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기에 오늘보다 더 밝은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무한은 공허함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이에요. 고정된 나가 없기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든 변화할 수 있고 어떤 상처에서든 회복할 수 있으며 어떤 관계에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깨달으신 이 진리가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숲속의 바람은 여전히 잔잔하게 불어옵니다. 그 바람처럼 우리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됩니다.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억지로 증명하지 않아도 그저 흐름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완전합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을 느껴보십시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이 순간 심장이 뛰는 이 순간 피가 흐르는 이 순간 이 모든 것이 저절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의식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원하지 않아도 생명은 저절로 흘러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흐름입니다. 과정입니다. 우리는 이 흐름을 막으려 하지 말고 이 흐름과 함께 가면 됩니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우리도 삶의 강을 따라 흘러가면 됩니다. 때로는 금리를 만나고 때로는 바위에 부딪히지만 물은 결국 바다에 도달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떤 고통이 있어도 우리는 결국 평화에 도달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무화를 깨달으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 이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이것을 증명했습니다. 여러분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무화가 여러분의 삶이 될 것입니다. 감정이 일어날 때 관찰하고 생각이 일어날 때 관찰하고 집착이 일어날 때 알아차리고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달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빠 정말로 고정된 날은 없구나 나는 흐름이구나 나는 자유구나. 그 순간이 바로 해타입니다. 그 순간이 바로 열반입니다. 부처님께서 경험하신 그 자유를 여러분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십시오. 붓다의 향기가 여러분과 함께 걷겠습니다. 여러분의 손을 잡고 함께 가겠습니다. 여러분이 평화를 찾을 때까지 여러분이 자유를 얻을 때까지 저희는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니 붓다의 향기에서는 무화의 진리를 통해 고정된 나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길에 함께 걸어 보았습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나라고 집착하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흐름이며 이 사실을 받아들일 내 고통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고정된 나가 없기에 우리는 과거에 묶이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에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분다의 향기는 단순히 불교 지식을 전하는 채널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고통과 두려움과 불안과 상처를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며 부자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삶 속 실제 문제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전달하고자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오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내용은 불교 경전과 부처님 말씀에 근거하여 사실만의 장래를 알고 있으며 여러분을 결코 모롱하지 않습니다. 이 영상이 여러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하고 오늘 하루를 견딜 힘이 되어 드리며 당신의 미래를 다시 밝게 볼 수 있는 작은 등불이 된다면 저에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이 영상2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버튼을 눌러 주시고 구독과 알림 설정으로 더 많은 부처님의 지혜를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탱글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나눠주시면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힘든 분이 계시다면 이 영상을 공유해 주십시오. 여러분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오늘 영상을 보시고 여러분이 가장 내려놓고 싶은 나에 대한 집착은 무엇입니까? 나이에 대한 집착입니까? 외모에 대한 집착입니까? 성공에 대한 집착입니까? 아니면 타인의 인정에 대한 집착입니까? 댓글로 솔직하게 나눠 주시면 함께 지혜를 모아가겠습니다. 여러분의 용기 있는 고백이 다른 분들에게도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입니다. 네 여러분 곁에서 함께하겠습니다. 당신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다시 웃을 수 있도록 부처님의 지혜를 가장 정확하고 따뜻하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붓다의 향기는 대한민국 최고의 부처님 말씀 상담소만 해요. 여러분의 정신적 지주가 되겠습니다. 사회적 문제와 개인적 국민에 대한 해답을 부처님의 지혜로 찾아드리고 용기와 희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영상에서 또 뵙겠습니다.그렇죠. 배우지 못하면 심지어 긍정하지 못합니다. 부처는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부처는 저 높은 하늘 위 저기 과학부의 용어가 많았는데 너희는 잠시의 위기를 살피칩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마음을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한다. 여러분 평생 나라고 믿어온 그 존재가 사실은 환상이라면 어떨까요?
됐습니다. JENETOSR의 울음소리가 원하는 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단지 조건이 이렇게 흘러갈 뿐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모든 집착이 사라집니다. 집착이 사라지면 고통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해탈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열반이라고 하셨습니다. 열반은 죽음이 아닙니다. 열반은 살아 있으면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무화를 깨달은 사람은 살아 있으면서도 열반을 경험합니다. 그것을 생전 열반 현법 열반이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열반입니다. 여러분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정된 나라는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 여러분은 자유로워집니다. 그 자유가 바로 열반입니다. 그 자유가 바로 행복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무언가를 얻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집착을 내려놓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무화를 이해하는 순간 왜 내가 이렇게 힘들어했을까라는 깊은 울림이 찾아옵니다. 남의 말에 마음이 상했던 이유 늙어가는 몸에 두려움을 느끼던 이유 관계에서 상처받던 이유 모두 내가 중요하다는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그 집착이 스르륵 풀리는 순간 마음속의 따뜻한 여백이 생깁니다. 마치 안개가 거친 숲속에서 햇살이 잔잔히 내리는 것처럼 마음속 긴장이 풀리고.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이 고요함은 단순한 정서가 아니라 부처님이 말씀하신 해탈의 첫걸음입니다. 한 노인이 계셨습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왔는데 자식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빠서 연락도 뜸했습니다. 노인은 서운함과 외로움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키웠는데 내가 평생 희생했는데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내려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에서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무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은 당신의 소유가 아니며 당신도 누군가의 소유가 아닙니다. 모두 각자의 인연 따라 만났다가 흘러가는 인연일 뿐입니다. 노인은 가슴값 깨달았습니다. 내가 서운해 하던 것을 자식들이 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집착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식들에게는 자식들의 삶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삶이 있습니다. 그것의 아다들이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것이 무화가 주는 평화입니다. 또한 중년 여성이 계셨습니다.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늘 갈등 속에서 살았습니다. 남편은 말수가 적고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성은 이것을 무시와 냉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중 상담을 받게 되었고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도 남편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닐 뿐이죠. 당신의 기준으로 남편을 판단하지 마세요. 여성은 이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이 유일한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남녀노소 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말은 정진희 매일 출근 전에 아내의 차 타이어를 방문했고 주말이면 집안 수리를 이용한다 했습니다. 그것이 남편의 사랑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여성은 자신의 고정된 기준 고정된 나의 관점에서 벗어나자. 남편의 사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무화의 실천입니다. 나의 기준 나의 관점을 절대화하지 않는 것 이것이 무화입니다. 이렇게 무화를 이해하고 실천하면 관계가 개선되고 갈등이 줄어들며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사무량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자비 연민 기쁨 평정의 네 가지를 무한한 마음입니다. 무화를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이 네 가지 마음이 생겨납니다. 고정된 나가 없으니 자비가 생기고 모든 존재가 조건 속에 있음을 아니 연민이 생기며 남의 행복을 내 행복처럼 기뻐하고 모든 변화를 평정SIM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무화가 주는 선물입니다. 이것이 해탈의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을 감고 조용히 호흡을 느껴 보십시오. 들숨과 날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그 흐름 그 흐름이 바로 우리의 본래 모습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흘러가는 것에는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이 한 줄의 지혜가 여러분 마음 한가운데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지금 느끼지는 불안 슬픔 외로움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은 흘러가는 바람 같은 것입니다. 잠시 머물렀다가 반드시 지나갑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구속하지 말고 스스로를 비난하지 말며 스스로를 작게 만들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변할 수 있는 존재이고 변할 수 있게 자유로우며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기에 오늘보다 더 맑은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무한한 공허함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고정된 나가 없기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든 변화할 수 있고 어떤 상처에서든 회복할 수 있으며 어떤 관계에서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원장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깨달으신 이 진리가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숲속의 바람은 여전히 잔잔하게 불어옵니다. 그 바람처럼 우리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됩니다.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억지로 증명하지 않아도 그저 흐름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완전합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을 느껴 보십시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이 순간 심장이 뛰는 이 순간 피가 흐르는 이 순간 이 모든 것이 저절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의식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원하지 않아도 생명은 저절로 흘러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흐름입니다. 과정입니다. 우리는 이 흐름을 막으려 하지 말고 이 흐름과 함께 가면 됩니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우리도 삶의 강을 따라 흘러가면 됩니다. 때로는 금리를 만나고 때로는 바위에 부딪히지만 물은 결국 바다에 도달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떤 고통이 있어도 우리는 결국 평화에 도달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무화를 깨달으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 이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이것을 증명했습니다. 여러분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무화가 여러분의 삶이 될 것입니다. 감정이 일어날 때 관찰하고 생각이 일어날 때 관찰하고 집착이 일어날 때 알아차리고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달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 정말로 고정된 나는 없구나 나는 흐름이구나 나는 자유구나. 그 순간이 바로 페탈입니다. 그 순간이 바로 열반입니다. 부처님께서 경험하신 그 자유를 여러분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십시오. 붓다의 향기가 여러분과 함께 걷겠습니다. 여러분의 손을 잡고 함께 가겠습니다. 여러분이 평화를 찾을 때까지 여러분이 자유를 얻을 때까지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일 오후가 날씨 아침마다 그 너희들 너의 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