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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人으로 살리라
휘이이잉...
휘이이...
몰아치는 삭풍(朔風),
퍼붓는 눈발,
엄동설한(嚴冬雪寒)이다.
그야말로 살을 에일 듯한 추위..
천지간(天地間)을 온통 백색일색(白色一色)으로 물들여 버릴 듯 쏟아지는 폭설(暴雪) 속으로
한 소년(少年)의 모습이 서서히 형체를 드러냈다.
초라한 차림새이나 준수미려(俊秀美麗)한 용모를 지닌 십 오륙 세 남짓된 갈의소년(褐衣少年),
다름 아닌 오송학이었다.
그는 몹시 지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의 두 눈은 기이한 열기로 빛나고 있었다
. 필경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새로운 운명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리라.
"휴..."
그는 나직이 가뿐 숨을 내쉬며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헤아리려는 듯 정면을 예리하게 주시했다
. 쏟아지는 폭설 속에 묻힌 길은 끝이 없을 듯 뿌옇게 이어져 있었다.
"제기랄...이거 혹시 여우굴을 택한 게 아냐...? 가도 가도 끝이 없으니..."
문득 그는 뇌리 속에 냉무강의 모습을 떠올렸다.
"후훗...그놈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나직이 중얼거리던 그의 표정이 돌연 심각하게 굳어들었다.
"가만 있자..삼 년 후에도 그놈과 주먹질이나 해대며 겨룰 수는 없고..
.무엇을 익혀 그놈을 꺾는다...?"
"학문(學問)을 익혀 볼까, 아니면 천하제일(天下第一)의 갑부(甲富)가 되어..
아냐...그런 것들은 너무 고리타분하고.."
"제길..이거 쉬운 문제가 아닌데..?
에라 모르겠다. 지금 가다가 제일 먼저 만나는 운명에 내 인생을 걸어 버리자."
일단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다짐이라도 하듯 고개를 들어
눈발이 매섭게 쏟아지고 있는 허공을 향해 악을 쓰듯 소리쳤다.,
"나 오송학은 이제부터 제일 먼저 닥쳐오는 운명에 전생(全生)을 걸겠다!"
그것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결심이었다.
허나 이 순간 그의 표정은 단호하게 굳어 있었다.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듯...
헌데 바로 그때다.
쐐--액!
한줄기 거센 경풍이 오송학의 곁을 이를 데 없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오송학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붉은 색 바람...?'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경풍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그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틀림없는 붉은 색이었다.
유성(流星)처럼 쏘아져 가고 있는 경풍(勁風)의 실체는
믿을 수 없게도 타는 듯한 붉은 홍무(紅霧) 덩어리였던 것이다.
'세상에..! 강호에는 기사괴변(奇事怪變)이 속출한다 하지만 이건 정말 희한하군!'
그는 홍무 덩어리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꼼짝도 않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홍무 덩어리가 그의 시야에 잡힌 시간은
일수유(一須臾)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필시 예사 바람은 아닌 것 같던데..'
그가 내심의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으아악!"
한줄기 처절한 비명성이 거친 눈보라를 뚫고 울려퍼졌다.
그 비명성이 들려온 곳은 방금 홍무 덩어리가 사라진 바로 그 방향 쪽이었다.
오송학은 자신도 모르게 끌리듯 그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말이 달리는 것이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헤치고 뛰는 그의 모습은
차라리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헉헉...! 아이고, 이놈의 눈이...헉헉...!"
숨이 턱에까지 차올랐다.
허나 오송학은 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식경(食更) 쯤 달렸을까?
돌연 오송학은 다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시체,
오송학의 시선을 파고든 것은 한 구의 시체였다.
일신에 청의(靑衣)를 걸친 삼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사나이였다.
그는 반듯이 누운 자세로 죽어 있었는데
두 눈은 당장이라도 퉁겨날 듯 시뻘겋게 충혈된 채 잔뜩 불거져 있었고,
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이미 푸르뎅뎅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또한,
반쯤 벌려진 입과 코에선 검붉은 피가 뭉클뭉클 쏟아져 나와
그 즉시 볼상 사납게 얼어붙고 있었다.
'제기랄...끔찍하군!'
오송학은 소름이 오싹 돋음을 느꼈다.
'어찌한다? 그냥 두고 갈 수도 없고..'
그러나 그의 망설임은 짧았다.
'할 수 없군. 눈으로라도 장사를 지내줄 수밖에...'
그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천천히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이어 두 손으로 눈을 가득 퍼올려 시체 위에 뿌리려는 순간,
갑자기 그는 동작을 멈추고 시체의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시체의 가슴 부위-
그곳엔 피로 쓴 듯한 붉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서체(書體)가 반듯하지 않은 흘려 쓴 글씨였다.
아마도 청의인이 죽기 직전 다급하게 갈겨쓴 글씨인 듯...
오송학은 눈을 한 쪽으로 떨쳐 버리고
시체 앞으로 바싹 다가가 조심스레 그 내용을 읽어 나갔다.
<장례(葬禮)를 치뤄주는 대가(代價)로 내가 지닌 모든 것을 취하기 바라노라.
그리고, 오작(五爵)을 기억하라.>
"오작...? 이 사람은 오작이라는 자들에게 죽음을 당한 것인가..?"
오송학은 잠시 그 글을 바라보다 이내 시체의 품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시체에서 나온 것은 커다란 금낭(錦囊)뿐이었다.
오송학은 금낭의 끈을 풀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금낭 안엔 이십여 냥 정도의 은자(銀子)와 한 권의 책(冊)이 들어 있었다.
오송학은 금낭 안에 뜻밖에도 책이 들어 있자 기이한 생각이 들어 그 책을 꺼내 들었다.
겉장을 제외하고 단 두 장으로 된 얄팍한 책자였다.
오송학은 즉시 그 책을 펼쳐보았다.
첫 장엔 벌거벗은 남자의 몸이 그려져 있었는데..
전신 곳곳에 수많은 점(點)들이 빽빽이 찍혀 있었으며,
점 하나하나엔 처음 보는 명칭이 일일이 적혀 있었다.
'이것은 혹시 인체(人體)에 존재한다는 혈도(血道)라는 것이 아닐까..?'
오송학은 자신의 생각을 확인이라도 하듯
자신의 몸 중 그림 위에 찍혀 있는 점과 같은 부위의 곳을 지그시 눌러보았다.
"앗...!"
오송학은 흠칫 놀라 다급히 몸에서 손을 떼었다.
그가 누른 곳은 아랫배 부위의 기해혈(氣海穴)에 해당하는 곳이었는데,
그곳을 누르는 순간 아랫배로부터 찌르르한 기운이 전신으로 확 퍼졌던 것이다.
'맞다. 이것은 혈도를 나타낸 것이 분명하다!'
그는 그림 위의 점들을 한 차례 쭉 훑어보았다.
이어 그는 다음 장을 펼쳐보았다.
그곳은 글자의 숲이었다.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작은 글씨가 가득 쓰여 있었던 것이다.
오송학의 눈빛이 서서히 예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앞장에서 보았던 혈도 이름이 하나도 빠짐없이 나오고 있다.
옥당지기인지당(玉堂之氣引地堂)이라는 말은 옥당혈의 기(氣)를 지당혈로 이끌라는 뜻..'
문득 글의 내용을 살피던 그의 뇌리로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이것은 혹시 무림인(武林人)들이 내공(內功)을 닦기 위해 쓴다는
운기토납지술(運氣吐納之術)이 아닐까?'
그렇다.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지금 그가 취한 듯 읽고 있는 것은 일종의 내공심법구결(內功心法句訣)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완전히 글 속에 빠져들었다.
아직도 그칠 줄 모르고 눈이 퍼붓고 있는 가운데
사위는 서서히 어스름에 덮여가고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오송학은 두 손을 단전(丹田)에 밀착시킨 자세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마치 입정(入廷)한 듯한 자세..
그렇다면 설마하니 그는 이미 책자에 쓰여 있는 내공 구결을 완전히 깨우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가 책자를 훑어본 것은 단 한 번 뿐이거늘...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오송학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순간 그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 이것 봐라?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하지 않은가?"
참으로 신기했다.
"무공(武功)이라는 것이 이렇게 신비한 힘을 발휘할 줄이야.."
순간 그의 표정이 한줄기 결연의 빛을 띠며 단호하게 굳어들었다.
"이 시간 이후로 나는 무공에 뜻을 둔다.
이것은 내 스스로 선택한 운명..반드시 천하제일의 무공을 익히리라."
그렇다.
가장 먼저 닥쳐올 운명에 전생을 걸겠다고 스스로 결심했듯이
그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오송학은 눈(雪)으로 정성스레 시체를 덮기 시작했다.
이내 눈으로 된 무덤이 하나 생겨났다.
오송학은 그 무덤을 잠시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돌려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곧 폭설 속으로 사라졌다.
헌데 그때다.
돌연,
파--악!
오오..
믿을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체를 덮고 있던 눈이 폭죽 터지듯 산지사방으로 폭산되는 것이 아닌가?
거의 동시 그속에서 시체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다름 아닌 오송학이 사라져 간 방향이었다.
더욱 괴이한 일은 그의 모습이 좀 전의 끔찍한 몰골이 아닌
청수한 중년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문득,
그의 입가에 한줄기 의미모를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다. 너는 애당초 무인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그렇기에 대형(大兄)를 비롯한 우리는 지난 십오 년 동안
오로지 너를 위한 안배를 준비하며 살아온 것이다."
무슨 말인가?
그 말로 미루어 청의인이 죽음을 위장한 데는 필시 깊은 사연이 있는 듯한데...
청의인은 말을 마치자 오송학이 사라져간 반대 방향으로 섬전처럼 신형을 솟구쳐 올렸다.
아니, 솟구쳐 올렸다 싶은 순간 그의 모습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길을 재촉한 오송학이 사라진 방향은
악양성(岳陽城) 쪽이었다.
* * *
"야...! 불빛이 휘황찬란한 것을 보니 큰 성(城)인 것 같구나!"
오송학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불야성(不夜城),
그의 시선을 가득 파고든 것은 문자 그대로 불야성이었다.
일년 내내 밤이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대낮처럼 밝은 불빛..
오송학은 고개를 들어 성문(城文) 위의 거대한 편액을 올려다보았다.
<악양성(岳陽城).>
고색창연한 빛을 발하는 그 세자의 글자가 한 눈 가득 파고들었다.
그렇다.
이곳이 바로 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 약양성인 것이다.
오송학은 이내 성안으로 들어섰다.
눈(雪)이 그친 악양성의 풍물(風物)은 그야말로 화려의 극(極)이었다.
보기만 해도 눈이 아찔아찔한 금칠홍장(金漆紅粧)의 주루(酒樓),
객잔(客殘)을 비롯하여 대부호(大富豪)나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의 장원(莊院)이라 여겨지는
무수한 고루거각(高樓巨閣)들...
뿐인가.
윤이 나는 청석대로(靑石大路) 위론
번쩍거리는 금화복과 값진 패물로 몸을 치장한 미녀(美女)들이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걸어다녔으며,
방향선(芳香扇)으로 얼굴을 가린 미녀들을 기웃거리는 호한들 또한
하나같이 고급 화복에 얼굴엔 기름기가 번지르르했다.
오송학,
외진 밀림에서만 자란 그가 언제 이런 사치스런 풍물을 한 번만이라도 접한 적이 있었던가?
'말로만 듣던 중원이 이런 곳일 줄이야...'
그는 대로(大路)의 양편으로 펼쳐진 불야성의 장관에 아예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가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걷다가 걸음을 멈춘 곳은 어느 허름한 주루 앞이었다.
빈전루(貧錢樓).
이름 그대로 악양성 내에서 가장 값이 싼 주루였으나 작으나마 객잔도 겸하고 있었다.
주객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려왔다.
오송학은 문을 밀치고 들어가 잠시 안의 정경을 둘러보았다.
태어난 이래 처음 들어와 보는 주루안의 분위기는 몹시 생소했다.
이때,
한쪽에서 부지런히 손님들의 음식 시중을 들던
십 육칠 세 쯤 되어 보이는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오더니 허리를 깊숙이 숙여 보였다.
"어이구, 오늘도 이렇게 누추한 저희 빈전루를 어김없이 찾아주시어 더없는 영광이옵니다."
오송학은 느닷없는 환대에 그만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자신은 이곳이 처음이거늘 오늘도는 무엇이고,
어김없이 찾아주시어 영광이라는 말은 또 무엇인가?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오송학은 저으기 당황하여
점소이의 예에 답하기 위해 자신도 황망히 허리를 숙이려 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허헛..이놈아, 하루 이틀 보는 사이도 아니거늘 새삼 그 무슨 예냐?
그러다가 허리 부러지겠다. 허허헛.."
귓전을 파고드는 한 줄기 창노성,
그 음성은 오송학의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제길... 난 또 내게 인사하는 줄 알았더니..'
오송학은 머쓱한 표정이 되어 뒤를 돌아보았다.
두툼한 털옷을 걸친 육십대의 청수한 노인 한 명이
만면에 자상한 미소를 띤 채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본래 점소이는 그 노인이 안으로 들어서자 만사를 제쳐두고 황급히 달려왔던 것이다.
이때,
소란스럽게 술을 마셔대던 모든 주객들의 시선은 일제히 노인을 향해 쏠려 있었다.
"그것 참..악양제일대부(岳陽第一大富)이자 강남제일대부(江南第一大富)이신
황보노태야(皇甫老太爺)께서 오늘도 예외없이 이 싸구려 음식점으로 향차를 하시었군."
"누가 아니래나. 자제(子弟)인 황보공자는
하룻밤에 수백만 냥씩 물쓰듯 쓰고 다니는게 예사인거늘
정작 황보노태야께선 가장 싸구려 음식만을 골라 드시니...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헌데 저 소년은 누구지? 굉장히 준수한 소년이로군..."
"그렇지만 이토록 추운 날씨에 저렇게 낡고 얇은 의복을 입고 있다니...
뉘집 자제인지는 모르나 부모들이 너무 무관심한 것 같군."
주객들은 문가의 오송학과 노인을 바라보며 제각기 한마디씩 나직이 수군거렸다.
헌데,
황보노태야라면 악양제일의 갑부라는 황보천웅(皇甫天雄)을 일컬음이 아닌가?
그렇다.
그는 악양제일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천하제일의 갑부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받고 있기까지한 대거부(大巨富)였다.
허나 그는 소문난 구두쇠였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는 오히려 남들보다 싼 음식과 남루한 옷으로 생활했다.
하지만 그의 하나 뿐인 아들 황보진평(皇甫震平)은
하룻밤 새에 은자 수백만 냥을 화류가(花柳街)에 날려버리는 천하의 한량(閑良)이었다.
그러나 황보노태야는 그런 아들을 결코 나무라거나 말리지 않았다.
언젠가 누군가가 왜 그런 아들을 그냥 내버려두느냐고 물었을 때,
황보노태야는 태연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놈은 잘난 아비를 두었지만 난 그렇지 못하거든...
절묘한 대답이라고나 할까?
여하간 황보노태야의 대하전장(大河錢莊)은 부(富)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각설하고,
점소이는 오송학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채
연신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황보노태야를 하나밖에 남지않은 빈 자리로 안내했다.
그 모습을 본 오송학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제길.. 오기는 내가 먼저 왔거늘...이럴 땐 어찌해야 하나..?'
그는 난생 처음 객점이라는 곳을 접하는지라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선뜻 생각이 나질 않았다.
허나 다음 순간,
"좋아.."
그는 나직이 그 한마디를 내뱉고는
황보노태야가 앉아 있는 탁자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때 황보노태야는 탁자 위에 철반산(鐵盤算)을 올려놓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자신의 앞에 다가선 오송학의 존재를 느꼈는지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오송학의 입이 열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경우를 아실 분 같아 말씀 드리오.
이곳에 들어온 순서로 보아 하나밖에 남지않은 이 자리는
마땅히 소생이 앉아야 마땅하다고 믿소."
나이답지 않게 격식을 갖춘 정중한 말이었다.
황보노태야의 두 눈이 일순 가늘게 좁혀졌다.
이어 그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한마디 불쑥 뱉아냈다.
"상품(上品)이로고...은자 백냥이 아깝지 않겠군."
말과 함께 그는 철반산에다 백(百)이라는 숫자를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훈훈한 춘풍(春風)이 감도는 듯한 자상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오송학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내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 이건가?'
그는 황보노태야의 말과 표정에 가벼운 오기가 치밀었다.
"분명 노인장보다 소생이 먼저 이곳에 들어 왔으니
이 자리는 의당 소생이 앉아야 옳다고 믿소만..."
은은한 노기마저 실린 음성...
그러나 말을 잇는 황보노태야의 대답은 여전히 엉뚱했다.
"허헛..애석한지고..말의 격식은 은자 백냥이로되 표정과 어투는 열냥의 가치도 안되니,
결국 은자 구십 냥의 가치라는 얘기인가?"
탁! 탁..!
황보노태야는 또 한차례 철반산을 퉁겨 조금 전 올려놓은 백(百)이라는 숫자에서
열(十)이라는 숫자를 뺀 구십(九十)이라는 숫자를 만들어 놓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설마하니 황보노태야는 돈에 미친 나머지 세상 모든 것 하나하나가
그저 돈으로만 보인단 말인가?
'제길.. 나를 놀리는 건지, 아니면 미친 노인인지 알 수가 없구나!'
오송학은 어처구니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때,
"하핫.. 젊은이, 어서 앉지 않고 무얼하고 있는가?
젊은이의 말마따나 이 자리는 분명 젊은이가 앉을 자리였네."
황보노태야는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대소를 터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돌변한 그의 태도에 오송학은 그만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황보노태야가 다시 웃음을 띈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뭘하고 있는가? 어서 앉지 않고.."
오송학은 입을 다문 채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그러자 황보노태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가? 마땅히 앉을만한 자리가 없어 그러니
잠시 합석(合席)을 시켜주지 않겠는가?"
그제야 황보노태야가 몸을 일으킨 뜻을 깨달은 오송학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실례하겠네."
황보노태야는 다시 자리에 앉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철반산을 퉁기기 시작했다.
실로 여유만만한 자세..
가히 대인(大人)의 풍도(風度)를 엿보이게 하는 모습이었다.
이때 한쪽에서 오송학의 출현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점소이가 탁자로 다가왔다.
"무얼 먹겠소?"
듣는 이가 무안할 정도로 퉁명스런 음성이었다.
그러나 오송학은 점소이의 태도를 신경쓰기에 앞서
무엇을 시켜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그는 간신히 묵천오색궁시절 소리금이 말해주었던
장춘면(長春麵)을 생각해냈다.
"장춘면 한 그릇.."
점소이는 한 마디 대꾸도 없이 냉랭히 몸을 돌려 주방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황보노태야가 불현듯 소개를 들고 오송학을 쳐다보았다.
"자네는 보기보다 부자인 모양이군."
오송학은 다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오?"
"장춘면같은 고급스런 음식으로 식사를 하니 말일세."
"장춘면이 고급스런 음식이오?"
"노부가 주식으로 삼는 소백면(小白麵)에 비하면 훨씬 고급이지."
"어느 정도 고급이란 말이오?"
"계산을 해 보자면..장춘면을 최하급 음식인 소백면보다 정확히 두 배가 비싸네."
황보노태야는 말을 하며 빠르게 찰반산을 퉁겨 나갔다.
"그러니까..장춘면으로 하루 세끼를 때우면
소백면으론 이틀을 먹을 수 있고...
장춘면으론 나흘...일년이면 이년, 이년이면 사년..
그것을 돈으로 따지면, 에.. 일년에 은자 오백냥 하고도.."
그는 혼잣말로 주절주절대며 엄청난 숫자를 뽑아내고 있었다.
오송학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본래 돈이라는 것을 안 지도 엊그제이지만..
별 생각없이 시켜 먹는 음식이 누적(累積)됨에 따라 생기는 차이가 이토록 클 줄이야...
"이것이 살아가는 방법인 게야...알겠는가?"
"왜 소생에게 그런 말씀을...?"
오송학이 황보노태야가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음을 느끼고 의아한 심정이었다.
황보노태야는 신비스런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다.
"자네는 그나마 은자 구십 냥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내 특별히 일러주는 것이네."
"은자 구십 냥이라 하시었소?"
"왜, 적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노부가 은자 오십 냥 이상의 가치를 매긴 사람은
겨우 열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네."
"사실 노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은자 백냥 이상의 가치를 지닌 사람을 보지 못한 형편이네.
솔직히 말해서 구십 냥의 가치를 매긴 것도 자네가 처음이네."
오송학은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천하엔 기인이사(奇人異士)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다고 들었거늘
어찌 은자 백냥의 가치를 지닌 사람이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은자 백냥의 가치를 지닌 인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단 말이오?"
오송학의 물음에 황보노태야는 고개를 한차례 가로 저었다.
"그렇진 않네. 분명히 존재하고 있네."
"그 사람이 누구요?"
"허헛..은자 구십 냥 짜리 인물은 그것을 알 자격이 없는데.."
"아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돈만 낸다면 말이야."
"얼마를 내야 하오?"
"그러니까 은자 백냥에서 자네의 값인 구십냥을 빼면 은자 열냥인데..
이것은 몹시 중대한 문제인지라 최소한 오십냥을 웃돈으로 더 얹어줘야.."
"그렇다면 육십 냥을 내야 한다는 말이오?"
"허헛...노부의 말을 금방 알아듣는 것을 보니 자넨 제법 똑똑한 편이군."
오송학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지니고 있는 은자는 고자해야 청의인의 품속에서 얻은 이십 냥과
묵천오색궁을 떠나올 때 금치괴왕으로부터 받은 열냥 등 사십냥 뿐이었던 것이다.
황보노태야는 잠시 오송학의 표정을 살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보니 돈이 없는 모양이군.
내 특별히 인심을 써서 외상도 받아주겠네
. 노부가 보기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자네가 알게 되면
자네는 빠른 시일 안에 은자 백냥의 가치를 지닌 사람이 되고도 남을 걸세."
"이자는 매월(每月) 일푼이리(一分二里)로 치겠네.
갚는 기한은 자네가 죽기전까지이네.
사실 자네가 늦게 갚으면 늦게 갚을수록 노부는 좋지만.. 어찌하겠는가?"
그의 음성은 매우 은근한데다가 나직해서 주위의 어느 누구도 들을 수 없었다.
오송학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은자 육십 냥이라...다른 사람이라면 모르나 지금의 내겐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러나 내 그깟 은자 육십 냥을 못갚으랴!'
일단 결심을 굳힌 그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소!"
순간 황보노태야는 만면 가득 득의어린 미소를 떠올렸다.
"만사는 확실한 것이 좋지.
이것은 대하전장의 채무증(債務證)이네.
그곳에 자네의 이름과 오늘 날짜,
그리고 은자 육십 냥과 일푼이리의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을 명시하게."
'철저하군!'
오송학은 그의 치밀함에 내심 혀를 내두르며
그가 건네주는 붓을 받아 그가 말한대로 빠짐없이 적어나갔다.
이윽고 오송학이 채무증을 건네주자,
황보노태야는 채무증을 유심히 살펴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됐네. 이것으로써 우리의 거래를 성립된 것이네."
그는 얼굴 가득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올렸다.
"자네가 보기에 노부는 은자 몇냥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면..은자 백냥의 가치를 지닌 장본인은 바로 노인장 자신..?"
"왜, 노부가 노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믿고 안믿고는 자네의 자유이네.
헌데, 노부는 은자 백냥의 가치를 지닌 사람을 또 한 사람 알고 있네."
"자네는 아직 견문(見聞)이 그리 높지 않은 듯 하니 그 사람을 모르겠지만
천하에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네."
오송학은 이미 황보노태야의 얘기에 빠져 들었는지라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어 물었다.
"그것도 돈을 내야 가르쳐 주는 것이오?"
황보노태야는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단지 덤일 뿐이네."
"그렇다면 말해보시오."
"그는 바로 오작(五爵)의 수뇌(首腦)인 유작(儒爵)이네."
오송학은 일순 기이한 충격을 받았다.
그의 뇌리에는 순간 낮에 발견했던 의문의 시체에서 본 글귀가 떠오르고 있었다.
오작(五爵)을 기억하라.
그 글귀가 생생히 뇌리에 떠오른 것이었다.
황보노태야는 오송학의 놀란 표정을 잠시 바라보더니,
"그를 아는가?"
"아니 나는 그를 안다고 할수 없소."
애매모호한 대답이었지만 황보노태야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흠..노부는 자네가 놀라기에 그를 아는 줄 알았네.
사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은 많이 들었을지 몰라도
그의 진면목을 본 사람은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네."
"그렇다면 그는 귀신이라도 된단 말이오?"
"허헛..그는 우리와 같은 엄연한 사람이네.
다만 그의 자취는 바람처럼 표홀하고
생각은 철두철미하며, 손목은 이를데 없이 잔인독랄하네."
"또한 문(文)에 있어 그를 능가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무(武)에 있어서도 어쩌면 일군(一君)이라 불리우는 벽라천군(碧羅天君)을 능가할지도 모르네."
말을 잇는 황보노태야의 표정은 자못 엄숙하기조차 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오송학의 눈빛이 일순 기이하게 빛났다.
벽라천군-
그 명호는 무공과 천하정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는 오송학조차 익히 알고 있었다.
철이 채 들기도 전부터 금치괴왕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던 명호인 것이다.
"노인장의 다른 말씀은 다 수긍할 수 있어도
유작의 무공이 벽라천군의 무공을 능가한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소.
아무리 유작이라는 사람의 무공이 높다한들
어찌 인간의 하늘(天)이라 일컬어지는
벽라천군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무공을 능가한단 말이오?"
황보노태야는 오송학의 반박을 예상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물론 자네는 믿을 수 없겠지.
노부도 자네에게 믿으라 강요하지는 않겠네.
하지만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날리는 없는 법.
요즘 천하엔 다음과 같은 노래가 공공연히 떠들고 있네."
"노래라면..?"
"들어 보겠는가?"
황보노태야는 오송학이 대답하기도 전에
나직하게 시조를 읖조리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군(一君)은 우러를 수 없는 하늘(天)이요,
이제(二帝)는 천하의 대세(大勢)를 가름하고,
삼독(三毒)은 독기(毒氣) 어린 죽음을 몰고 다니네.
사혼(四魂)을 만나느니 지옥(地獄)의 염왕(閻王)을 만남이 나으나,
오작(五爵)은 일군, 이제를 희롱하니
오작을 만날 바에야 차라리 삼독(三毒), 사혼(四魂)을 만나라..
노래가락이 끝나자 오송학은 가볍게 검미를 찌푸렸다.
"나는 무식한 나머지 벽라천군 말고는 아무도 모르오."
"그렇다면 노부가 설명해주지. 물론 이것도 공짜일세."
황보노태야의 이어지는 설명은 아래와 같았다.
일군(一君)-
여기서 말하는 일군이라 함은
현 무림맹주(武林盟主)이자 감히 창남(蒼南)의 하늘과 더불어
인간의 하늘이라 불리우고 있는 벽라천군(碧羅天君) 금무천(金武天)의 이름이고...
이제(二帝)-
백의천제(白衣天帝) 화태세(華太世),
혈해마제(血海魔帝) 만붕소(萬崩召),
그들이 있기에 정사양세(正邪兩勢)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으며..
삼독(三毒)-
무영만리독(無影萬里毒) 공손위(公孫威),
철지혈독(鐵指血毒) 상관초(上官焦),
음살귀독(陰殺鬼毒) 독고휘(獨孤揮),
그리고..
사혼(四魂)-
광세경혼(狂世驚魂) 시계명(侍計冥),
무적패혼(無敵覇魂) 형무명(荊無明),
소소실혼(笑笑失魂) 거상시(巨常屍),
구지추혼(九指追魂) 반강(潘岡),
그들은 오로지 살인(殺人) 하나만을 유일한 낙(樂)으로 삼은
일대의 괴인(怪人)들이고...
오작(五爵)-
유작(儒爵) 주위천(朱偉天),
도작(屠爵) 막우(幕羽),
풍작(風爵) 천가위(天假 ),
환작(幻爵) 기무량(奇武亮),
요작(妖爵) 비영영(飛暎暎),
그들은 천하에서 따를 자가 없을 정도의 잔인한 손속과 독랄한 심성(心性)을 지닌
완전한 사파(邪派)의 인물들이었다.
"이상이 당금(當今)의 절대고수(絶對高手) 십오인(十五人)에 대한 인적상황(人的狀況)이네.
중요한 것은 노래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오작이 벽라천군과 최소한 대등하게 비견되고 있다는 사실이네.
하니, 오작의 수뇌인 유작이야 두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네."
유작-스쳐 지나는 흔적없는 바람인 양 한 겹 장막(帳幕)에 가려진 정체불명의 신비인(神秘人)!
과연 그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오송학은 문득 고개를 흔들며 나직한 탄식을 흘려냈다.
"그가 사파의 인물이 아니었다면 좋을뻔 했소."
황보노태야의 입가에 다시금 신비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정사(正邪)란 단지 인간 스스로가 편리에 의해 구분한 것에 지나지 않네.
아무리 광명정대(光明正大)한 일도 악(惡)하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 반대로 악업(惡業)을 인간의 도리라 추종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네."
오송학의 안색이 기이하게 흔들렸다.
단순히 흘려버리기엔 매우 의미심장한 말로 느껴진 때문이었다.
이때,
황보노태야는 의도적인지 아닌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어떤가? 노부를 따라가서 천하제일의 상술(商術)을 익혀 보는 게...
그리하면 자네는 필시 천하제일의 갑부가 될 수 있을 것이네."
'천하제일의 갑부...!'
느닷없는 제의라 하나 실로 구미가 당기는 유혹이었다.
오송학은 일시 갈등을 느꼈다.
허나 다음 순간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노인장의 호의는 감사하나 소생은 이미 뜻을 굳힌 바가 있소."
"흠..노부가 보기에 자네는 무공에 뜻을 둔 듯 하군
. 허나 그것은 어쩌면 헛된 꿈일지도 모르네.
지금껏 그 허상(虛像)을 쫓다가 덧없이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무학(武學)의 길은 정녕 힘들고도 고된 역경(逆境)의 길이네."
"설사 지금 이 순간 목숨을 잃는다 해도 한 번 결심한 대장부 결심, 추호도 변함이 있을 수 없소."
"허..대단한 결심이로고. 정히 자네의 뜻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알아주시니 고맙소."
"기왕에 자네의 뜻이 그러하다면 내 한마디 충고를 해 주겠네."
황보노태야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지극히 낮은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다.
"오작..그들을 잊어서는 안되네."
오송학의 안색이 기이하게 변했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씀을..."
그러나 황보노태야는 대답대신 몸을 일으키더니
마침 자리가 빈 옆 탁자로 자리를 옮겨앉아 버렸다
. 이어 그는 때마침 점소이가 날라온 소백면을 엄숙한 표정으로 먹기 시작했다.
그가 싸구려 소백면을 먹는 모습은 너무나 진지해서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영약이라도 먹고 있는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오송학은 내심 이는 의구심을 억제하지 못했으나
황보노태야가 더 이상의 말을 회피하고 있음을 알고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윽고 점소이가 장춘면을 들고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어 점소이는 국물이 왈칵 튀어 오르도록 그릇을 거칠게 내려놓고는 휑하니 사라졌다.
오송학은 오작에 대한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는지라 개의치 않고 장춘면을 들기 시작했다.
그가 장춘면을 반쯤 들었을 때,
황보노태야가 식사를 마치고 몸을 일으켰다.
"젊은이, 노부의 장사가 헛되지 않게 해주기 바라네."
오송학은 담담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은자 육십 냥에 일푼이리의 이자.. 빠른 시일내에 대하전장을 찾겠소."
"허헛...고마운 말..자, 그럼 인연 있으면 다시 만나세."
황보노태야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상한 일이다.
저 노인과는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듯한 친숙한 느낌이 드니..."
오송학은 황보노태야가 문밖으로 사라질 때가지 그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가 막 시선을 거두려 할 때였다.
문이 빠끔이 열리며 이제 열살이나 되었을까 하는 소녀 한 명이
겁먹은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단발머리에 눈이 유난히 초롱초롱 빛나는 소녀였다.
헌데 그 소녀가 몸에 걸치고 있는 녹의(綠衣)는
간신히 조그만 몸뚱이를 가려 줄 뿐 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역할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그녀의 볼을 새파랗게 얼어 있었고, 전신은 쉴새없이 떨리고 있었다.
너무도 보기 안쓰러운 모습...
그녀를 보고 있자니 오송학은 불현 듯 묵천오색궁의 시란주가 생각났다.
'쯧.. 저 계집애는 차라리 그녀보다도 못한 신세인 것 같군!'
이때 주방쪽에서 나오던 점소이가 녹의소녀를 발견하고
벼락같이 소리지르며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이 빌어먹을 계집애! 다시는 오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첫댓글 감사해여
즐독합니다
이왕 올려주시는거 5편씩은 안되겟지요
즐감합니다.. ~~~
잘~~~감상~~감사합니다~
ㅎㅎㅎ
ㅈㄷㄱ~~~~~~~~~~~``````````````````
감사합니다
ㅈㄷㄳ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즐독
잘읽었습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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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하고 갑니다.
좋아좋아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
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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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하구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했습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