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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계 4대 성인 가운데에서도 유독 예수에 대해서만큼은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문자 그대로 성인(聖人)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 즉 신으로 보는 것이다. 과연 예수는 인류에 커다란 가르침을 준 위대한 성인인가, 아니면 기독교에서 말하듯이 신의 속성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인가?
이와 관련해서 《성경》에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로마서 1장 3~4절)라고 되어 있다. 즉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예수는 유대에서도 변두리에 있는 갈릴리의 조그만 마을 나사렛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1) 당시 로마에서는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로 즉위했고, 유대가 속한 팔레스타인의 분봉왕(어느 일정한 지역을 관할하는 왕)에는 헤롯(헤로데스)이 임명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성경》은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 (중략) ···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이집트로 피하라고 현몽하다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 (중략) ···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 (중략) ··· 헤롯이 죽은 후에 ··· (중략) ···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 (중략) ···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 (중략) ···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마태복음 2장)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출생지가 나사렛이 아닌 베들레헴(떡집이란 뜻으로 다윗의 고향)이 된 것은 아마 그를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이 있다. 결과적으로 예수는 나사렛 동네에서 자랐다.
예수가 태어날 때 동방박사들이 가져온 선물에도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는데, 가령 황금은 예수의 인성과 왕권을 상징하고, 유향은 성전에서 제사지낼 때 분향을 위해 바치는 향료이기 때문에 예수의 신성을 나타내며, 몰약은 시체에 바르거나 사형수에게 마취제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탄생과 관련해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 (중략) ···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 (중략) ···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태복음 1장 18~21절)라고 되어 있다.
이를 다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본래 요셉과 마리아는 한 동네에서 자란 총각 · 처녀로 둘은 결혼하기 전의 상태, 즉 약혼 상태에 있었다. 따라서 동침하기 전에 아이를 가졌다는 말이 되는데, 당시 처녀가 임신을 하면 돌로 쳐 죽이는 관습이 있었다. 이때 약혼남은 그저 고발만 하면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비로운 성격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고 조용하게 사건을 매듭지으려 했던 것 같다. 이 와중에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이 아이는 특별히 하나님의 영으로 잉태되었으니 아내를 의심하지 말라”라고 하는 말과 함께 그 아이의 이름까지 정해 준다. 결국 예수의 탄생에 요셉과 마리아는 그저 몸을 빌려 준 셈이 된다.
여기에서 왜 하나님의 아들이 굳이 사람의 육체로 이 땅에 올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이것은 예수 본성의 이중성과도 관련이 있다. 먼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인류는 원죄를 가졌고 이 죄의 대가로 인간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구약 시대의 제물처럼 반드시 피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란 영(靈)이 아닌 인간의 몸에서만 흘러나올 수 있기 때문에, 예수는 인간의 육신을 입고 태어난 것이다.
둘째로 예수가 인간으로 계속 머물지 않고 부활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신적 능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씨앗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되었던 것이다. 남자의 씨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데에는 ‘흠 없는 어린양’처럼 죄의 씨앗을 전혀 갖지 않는 제물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는 손수 벌어먹고 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생활이 매우 단순했으므로 부자의 특권이 별로 없었고, 가난하게 사는 것도 결코 부끄럽지가 않았다. 그의 가족은 많았던 것 같으나 친형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예수는 암기식으로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그러나 율법학자들이 가르치는 상급학교에는 다니지 않았다. 그는 《구약 성경》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는 큰 관심사였다. 이 땅에 내려오는 메시아, 차례로 멸망하는 나라들, 천지의 대변동 같은 예언은 예수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귀신을 믿었고, 기적은 그에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신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나온 결과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성경》에는 열두 살 되는 해 유월절(Passover)2)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요셉과 마리아가 그를 놓아둔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사흘 만에 다시 만났다는 대목이 나오고,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누가복음 2장 52절)라는 구절이 적혀 있을 뿐이다. 또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기 전까지 그는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목수 일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세례를 받은 이후에 예수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고 세 가지 시험을 받는다. 이를 무사히 통과한 예수는 갈릴리 지방에서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으며, 가나 지방의 한 혼인잔치 집에서 첫 번째 기적을 보였다. 잔치의 마지막 순간에 포도주가 다 떨어졌을 무렵, 그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게 한 다음, 그것을 맛이 뛰어난 포도주로 변하게 한 것이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인 오병이어(五餠二魚)3)의 기적도 있으며, 스스로 물위를 걷는가 하면, 제자 베드로에게 물 위를 걸어오게도 했다. 또한 중풍병자와 열병환자를 고치고,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열두 해 동안 혈루증(하혈 증세)을 앓던 여자를 고치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벙어리의 입을 열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스스로 걷게하는 등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
그의 사역은 이처럼 사람들을 치료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데 모아졌으며 이러한 일은 약 서른 살부터 3년 남짓 이어졌다. 당시 로마는 식민지 땅의 어느 청년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대중을 떼 지어 몰고 다니는 행위가 결코 통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게 되고, 이에 로마 총독으로 유대에 파견 나와 있던 폰티우스 필라투스(본디오 빌라도)가 예수의 죽음에 관여하게 된다.
유대의 지도자에 속하는 제사장 · 서기관 · 바리새파들에게도 예수라는 존재는 참으로 거추장스럽고 불편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유지되고 있던 그들의 기득권이 예수 때문에 여지없이 짓밟힐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평소부터 돈에 집착했던 예수의 제자 가롯 출신의 유다에게 접근하여 스승을 고발하게 만든다.
마침내 예수가 붙잡히자 그토록 충성을 다짐했던 수제자 베드로는 변절을 했고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 <마태복음>에 나와 있는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총독 필라투스가 예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자 예수는 “네 말이 옳다”라고 대답한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고, 병사들은 옷을 벗기고 홍포(紅布)를 입힌 후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게 했다.
침을 뱉고 때리면서 갈바리아(골고다 언덕)로 끌고 가다가 시몬을 만나 그에게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다. ‘해골’이라는 뜻의 갈바리아에 이르러 예수에게 쓸개즙을 탄 포도주를 마시게 했으나 조금 맛보고 거절했다. 이때에는 예수의 주변에 제자들이 아무도 없었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 제비를 뽑아 그의 옷을 나누었고 십자가 밑에서 그가 죽을 때까지 지켰다.
머리 위의 팻말에는 ‘유대의 왕 예수’라고 쓰여 있었고, 함께 못 박힌 강도 중 한 명과 구경 온 유대인들은 그를 조롱하고 욕했다. 육시(정오)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구시(오후 3시)4)쯤에 예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한 후 숨을 거두었다.
당시 죄인으로 잡혀온 사람에는 예수 외에 바라바(Barabbâs)라고 하는 반항 운동 단체의 추종자가 있었다. 유월절의 관례는 이 둘 중에 한 사람을 풀어 주도록 되어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바라바가 아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당시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은 그 십자가를 지고 시내를 돌아다니게 했는데, 그 이유는 첫째 이로써 경계를 삼고, 둘째 혹시 무죄일 경우 누군가가 재심을 요청하면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예수의 경우에는 아무도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다.
또한 십자가형은 너무나 잔인무도하여 평소 점잖은 자리에서는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그 이유는 첫째, 완전히 발가벗겨진 치욕적인 모습으로 손목과 발에 못이 박힌 채 공중에 높이 매달리며 더없는 고통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수에게 홍포를 입힌 것은 왕의 옷을 빗댄 것이고, 가시 면류관은 왕관을, 그리고 갈대는 왕이 드는 홀(笏)을 의미했다. 이것은 예수가 스스로 ‘유대의 왕’이라고 자처한 데 대한 조롱이었던 것이다.
둘째, 십자가형은 인간이 갖는 인내심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죄수는 스스로 약 80킬로그램의 십자가를 지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했으며, 이때 몸이 약한 예수는 여러 차례 쓰러졌기 때문에 길옆에서 구경하던 구레네 지방 출신의 시몬을 붙잡아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다.
물론 십자가에 못이 박힌 후에는 얼마 가지 않아 피가 멈춘다. 하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다 보면 못이 박힌 자국에서 다시 피가 흘러나오고, 이 때문에 온몸에 있는 피를 다 쏟고 나서야 숨을 거두는 것이다. 이 과정이 길어지면 보통 이틀이나 사흘, 심지어는 일주일까지도 죽지 않은 채 버티게 되는 무서운 형벌이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몸이 극도로 약해져 있던 예수는 못 박힌 지 불과 여섯 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 땅에서는 지진이 일어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매몰되고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죄로 가로막혀 있던 벽이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 화해가 되었고, 이제 누구나 하나님 앞으로 직접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영적 의미를 갖는다. “다 이루었다”라고 하는 그의 말처럼, 그가 이 땅에 내려온 목적이 다 달성된 것이다.
그가 숨을 거두자 로마 병사들은 옆구리에 창을 찔러 죽음을 확인했고, 원래는 만에 하나 살아나더라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다리까지 뒤로 꺾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미 죽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해가 저물자 부자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했고, 그 시체를 바위 속에 판 자기의 새 무덤에 넣고 큰 돌을 굴려 무덤 앞에 막아 놓고 갔다.
이튿날은 안식일(토요일)이었으며 그 안식 후 첫날(일요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왔다. 그러나 무덤은 이미 비어 있었다.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천사로부터 전해 들은 그들은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급히 알렸고, 그들보다 앞서 갈릴리로 내려간 예수는 500여 명에게 자신의 몸을 보인 후 40일 동안 이 지상에 머물다가 제자들에게 ‘땅 끝 전도’로 요약되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하늘로 올라갔다.
예수의 십자가형
독일의 화가 그뤼네발트(1472~1528)의 작품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비참한 모습은 가장 보편적인 기독교적 이미지가 되었다. 십자가형은 예수가 견디지 않으면 안 될 고통을 나타내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화가들이 그려온 주제였다.
비겁하게 도망쳤던 제자들이 다시 회개를 했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열심히 기도를 했다. 그러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사도행전 2장 2~4절) 말하자면 성령이 이 땅에 내려왔고 예수 혼자서 감당해야 할 사역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한꺼번에 일어나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는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일이 너희에게 오히려 유익”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예수는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지금도 모든 인류를 위해 중보(仲保)5)기도하고 있으며, 보혜사(保惠師)6) 성령이 이 땅에 내려와 예수가 재림할 때까지 그의 사역을 대신한다는 것이 기독교 사상의 대략적인 요점이다.
예수의 생년이 서력의 출발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BC 5년부터 AD 4년까지 학설이 다양하다.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로서 주전(主前)을 의미하고, AD는 ‘Anno Domini’라는 라틴어로서 주후(主後)라는 뜻이다.
유월절 : 유대인의 3대 축제일 중 하나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다. 누룩 없는 떡을 먹는 무교절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두 절기는 함께 지칭된다. 이날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의미하는 중대한 경축일이요,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건국일로, 하나님 은혜의 표징이 되었다. 유월절이라는 명칭은 문에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다는 데서 유래된다.
오병이어 : 어린아이가 도시락에 담아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에 차고 넘칠 만큼 남았다고 하는, 예수의 기적이다.
예수는 현재 시간으로 금요일 오후 3시경에 운명했으며, 그날 오후 6시부터 안식일이 시작되었다. 안식일에는 활동이 금지되었으므로 세 시간 안에 예수의 시체를 장사지내야만 했다.
중보 : 서로 대립되어 있는 양자 사이에서 화해와 일치를 도모하는 일. 구약에서는 주로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보자 역할을 했다. 영원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 완전한 자격을 갖췄고, 또 사명을 감당해냈다.
보혜사 : ‘변호자’ ‘탄원자’ ‘중보자’라는 뜻으로, 성경에서 보혜사는 그리스도 또는 성령을 가리킨다. 예수가 승천한 후 성령을 보내 성도들과 함께 있게 하면서 기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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