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초산장 이야기 1349회 ) 가을 여행
2024년 10월 20일, 일요일, 흐림
10월 15일에는 이승환 씨 부부와
거제도로 여행을 갔다.
목적지는 거제도 산달분교 펜션이다.
여기는 원래 산봉우리 사이로 달이 잘 보인다는
산달분교였는데
폐교가 되자 마을 주민들이 펜션으로 만들고
1박 3식을 제공하면서 입소문을 타고 성업중이다.
4명일 때는 1인당 9만 원인데
주말은 몇 달 전부터 예약이 다 차서
월, 화요일을 예약해 놓았다.
사람 수가 많으면 1인당 6만 원까지 내려간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 기분이 좋았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었지만
가는 도중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거제도에 접어들면서부터 사방이 바다라
가슴이 뻥 뚫렸다.
산달분교는 거제도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작은 섬이었다.
도착한 뒤에 조금 있으니 점심 먹으러 오라고 해서
식당으로 갔다.
점심 밥상을 보니 유명 한식집 부럽지 않게 잘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나물 반찬이 많아서 맛있게 먹었다.
반찬들이 모두 짜지 않고 간을 잘해서 입맛에 맞았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바닷가 산책에 나섰다.
바닷가를 따라 쭉 걷다가 돌아올 때는
산허리를 타고 오는 지름길로 왔다.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유자밭을 보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바다도 보며 걸었는데
숙소에 돌아와서 보니 12000보 정도 걸었다.
이승환 씨와 바둑을 두고 놀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갔더니
임금님 밥상 부럽지 않은 상을 차려 놓아서 감탄을 했다.
점심도 괜찮았는데 훨씬 더 좋아서 여행 온 보람을 느꼈다.
특히 주부들은 요리와 설거지 걱정 안 하고
편히 쉬다가 갈 수 있기 때문에 여기를 선호하는 모양이다.
우리만 두 부부가 왔을 뿐,
여자 열 명과 여자 다섯 명이 온 팀이 있고
세 부부가 온 팀도 있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올 때부터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꽤 요란하게 내렸다.
텔레비전을 보며 쉬다가 잠을 잤고
다음날 일어나 아침을 먹고
산달분교 팬션을 나와 거제도 식물원으로 갔다.
여기는 경로대상은 무료였는데
열대 식물을 잘 가꾸어 놓아서 볼거리가 많았다.
뿌리가 공중에 늘어져 있는 식물도 인상 깊었다.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 식물들도 볼만 했다.
거기서 나와
고성 장산숲을 검색해서 찾아갔는데
여기는 너무 규모가 작아서 실망했다.
그날 점심은 고성 바닷가로 가서
왕새우구이와 해물 칼국수를 먹었다.
10월 19일에는 부산아동문학인협회에서 마련한
가을 문학 기행을 갔다.
목적지는 창원과 통영이다.
금요일 저녁에 천둥이 치면서 비가 요란스럽게 내려
다음날 행사에 지장이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늘이 개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아침 7시 40분에 교대 앞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창원으로 출발했는데 여러 가지 행사가 많은 탓인지
회원들이 다른 해보다 적게 와서 27명쯤 되었다.
먼저 창원에 있는 <고향의 봄 도서관>으로 가서
장진화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말을 어찌나 잘 하는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이름 앞에 볼꼴지기라고 써 놓아서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보여주고 안내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지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등단한 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 작가 시절에
이원수 선생님을 직접 만나 밥을 몇 번 같이 먹은 적이 있는데
소탈하고 서민적인 분이었다.
신인이라도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고
대가 행세를 전혀 하지 않아서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연초에 연하장을 선생님께 보내드렸더니
손수 붓글씨로 답장을 해주시기도 했다.
이원수 선생님이 어린 시절에 창원 소답동에서 살았기 때문에
동요 <고향의 봄>의 무대가 바로 거기라서
도서관 이름도 <고향의 봄 도서관>으로 지었다고.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은 창원 어느 대학의 교수가
이원수 선생님을 친일파로 몰아서 공격한 적이 있는데
그 바람에 창원시에서 도서관에 지원하던 예산도 많이 줄였고,
원래는 이원수 아동문학상이었는데 창원 아동문학상으로 이름을 바꾸었단다.
같이 간 공재동 선생님은
이원수 선생님이 쓴 시와 수필 4편을 보고
친일 행적이라고 공격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조각가 김종영 생가가 바로 부근에 있어서 둘러보았다.
옛날에도 잘 사는 집이었는지 마당을 잘 꾸며 놓았고
기와집도 규모가 컸다.
이원수 선생님은 어린 시절에 가난하게 살았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부잣집에 일하러 갔을 때 따라갔단다.
아들이 심심해 하자 아버지가 나무 토막으로
장난감을 만들어주었는데
부잣집 아이가 자기네 거라고 빼앗아서 울고 돌아온 적이 있단다.
비록 어릴 때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글을 잘 썼기 때문에
커서는 한국아동문학에 큰 획을 그은 작가가 되었다.
점심은 고성으로 이동하여 송화 꿩가든에서 먹었다.
여기도 내가 좋아하는 우렁된장 찌개와 나물 반찬이 나와
맛있게 먹었다.
밥값은 배익천 선생님이 내주어서 감사했다.
이어서 통영에 있는 전혁림 미술관과 윤이상 음악당을
둘러보았다.
윤이상 작곡가는 거의 독학으로 작곡가가 되어
많은 오페라 곡을 지었고
베르린대학 작곡과 교수까지 된 분이다.
묘비에는 處染常淨(처염상정)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처한 곳은 더럽게 물들어도 늘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간첩으로 몰려 조국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힘들게 살았지만
좋은 곡을 많이 쓴 생애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 우리가 모든 행사를 마치고 차에 탔을 때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박선미 회장과 강기화 사무국장을 비롯한 집행부 간사들이
수고를 많이 한 덕분에 즐거운 문학기행이 되었다.
차 안에서 지루하지 않도록 퀴즈와 유머를 준비하여
회원들을 즐겁게 해준 정영혜 씨에게도 감사드린다.
소월 시 진달래꽃을 여러 지방 사투리로 바꿔 불러서
많이 웃었다.
이번 행사에 암투병 중인 최미혜 씨가 참석해서 반가웠다.
항암주사 2차를 미루고 문우들의 밝은 기운을 받으러 왔단다.
언제나 명랑하게 살아오던 미혜 씨에게
왜 그런 병이 왔는지 모르겠다.
집행부의 아이디어로 미혜 씨 모르게
응원하는 글을 모두 한 장씩 써서 돌아올 때
사무국장이 전달했는데
미혜 씨는 뜻밖에도 나에게 편지를 썼다.
내 단점은 쏙 빼어 놓고
좋은 점만 칭찬해준 글이라 쑥스러웠지만 고마웠다.
부디 강한 정신력으로 병을 잘 이겨내서
밝은 모습을 오래 보여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