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며릴동안 집을 떠나있으면서 가장 마음에 걸린 게 돌보던 토끼 먹이 문제였습니다.
서울 사는 외손자 둘이 '반려 동물'로 여기던 토끼여서 더 마음이 쓰였거든요.
짝이 되는 동무를 뜻하는 '반려'란 소중한 의미를 갖는 말이지요.
'인생의 반려자', '평생의 반려자'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배우자를 지칭하는 반려자는 배우자 이외 어떤 가족구성원에게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연로한 부모를 평생 모시고 사는 자식도, 시부모와 평생을 의지하며 함께 사는 며느리도
반려자는 되지 못합니다. 반려란 말이 짝이라는 한정된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이지요.
평생을 함께 할 부부가 상대방을 일컫는 말이 반려자인데,
동물에게 반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지금도 참으로 받아들이기 거북합니다.
동물이 인간과 부부처럼 지낸다는 것도 아닐텐데...
개와 고양이가 아무리 사랑스럽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평생의 친구라 해도
배우자에게만 써야 하는 반려란 말을 붙이는 것은 납득하기 쉽지 않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외로운 사람과 동고동락하며 반려자의 역할을 대신해준다고 해서
반려견, 반려묘라는 말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이는 혼자 여생을 보내는 자들이 기르는 경우에만 비유로 사용할 수 있는 정도여야지요.
온 가족이 함께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반려라 하는 것은 비유조차 적절하지 않습니다.
개와 고양이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도록 길러진 까닭에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할만 하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보다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는 동물이라 여길 수 있고요.
그래서 그런 인간과 동물 사이를 규정하여 애완 동물이라고 했던 것이지요.
애완견,애완묘는 인간이 아끼고 사랑하는 개, 고양이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 단어입니다.
애완으로는 그 의미규정이 부족하여 완전히 사람처럼, 그것도 배우자처럼
'반려'라는 단어를 붙여야 하나요?
우리가 개 고양이와의 공존을 말하는 것은
개를 개로. 고양이를 고양이로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개나 고양이를 사람의 반열에 올려놓듯 사람의 사고 속에서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입니다.
혹여 그 동물에게 사람의 짝이 되라고 하면 많은 동물이 슬퍼할지도 모를 일이잖아요.
우리는 언어선택에 민감한 편입니다.
단어에 조금의 부정적인 의미만 있어 보여도 바로 이를 지적하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은 별 나쁜 의미도 아닌 것 같은데, 어감이 안 좋고 차별어라며
많은 단어를 새 단어로 교체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써오던 단어를 사용하다가 표현의 실수에 휘말리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언론에서도 속어는 물론 정상어의 지위를 얻지도 않은 신조어마저 너무나도 쉽게 사용합니다.
검증도 없고 인정도 받지 않은 신조어를 아무렇지 않게 써버리는 방송계도 정신차려야 합니다.
언론매체에 자꾸 노출되면 그 단어는 정상어로서 지위를 확보하게 되고
국민들 사이에도 쉽게 전파되어 언어 오남용이라는 부작용을 낳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왕이면 어감이 좋은 언어를 선택하여 사용해야 하겠지만,
너무 과장되거나 의미를 포장하는 듯한 언어사용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쓸 법한 영웅칭호를 아무데나 붙이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국민' 배우(가수·타자·여동생)처럼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에게 붙이는 비유적 표현도 경솔한 짓입니다.
'꽃미남·꿀벅지·종결자·끝판왕'처럼 '꽃~, 꿀~, ~자, ~왕, ~남/녀' 등의 조어 역시
자극적이거나 극단적이어서 경박한 느낌을 줍니다.
새로운 표현을 사용하는 데 제대로 된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는 조급함에 빠져 차분한 음미도 없이 멀쩡한 것에까지 손을 대며
개혁했다고 만족해 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공정사회를 부르짖으며 칼을 쉽게 빼들어도 안 되겠지만,
칼을 뺐다 하여 무라도 잘라야 한다는 식으로 무의미한 칼질을 해서는 안 될 일이잖아요.
비정상을 정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정상을 비정상으로 바꿔놓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습니까?
부조리나 비정상은 내용을 개선할 일이지 명칭을 바꾼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버려지는 개와 고양이 문제가 '반려견/반려묘'라고 해서 사라질 일입니까?
일상에서 늘 사용하던 단어들을 그저 순수하게 받아들여
그 단어들의 의미를 깎아내리거나 왜곡시키는 일은 멈췄으면 합니다.
언어에 대한 너무 과장되거나 지나친 포장도 자제하는 게 옳습니다.
아무리 언어가 변하는 것이라 해도 동물에게 짝이란 의미의 말까지 붙이는 것은 지나칩니다.
키우는 개, 돌보는 고양이, 애견/애묘, 애완견/애완묘이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