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민주주의가 기독교 정신의 산물이라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럽이 온통 기독교로 물들었던 7세기에는 그 개념들이 정착되지 않았던 것일까요. 사실 기원전 4~1세기의 유럽에서 제일 핫했던 게 공화정이었는데 말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발상이 다시 공화정이 뜰 때 도움을 준 건 맞지만, 그 대표주자중 하나랄 수 있는 프랑스혁명은 철저히 종교 부정하고 들어갔는데염. 하긴 영국 청교도 혁명 맨날 얘기하지 =_= 뭐 종합하면 그 분들은 답이 없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가톨릭 교회가 탄압당한 이유가 뭘까요? 가톨릭에서 프랑스 혁명 당시 탄압당한 사례들을 설명하곤 하던데 그들이 혁명 자체와 의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네요.
제 1신분이 성직자였거든요. 당시 제2신분이었던 귀족은 첫째는 작위상속(정치), 둘째는 군인, 세째는 성직자를 시킬 정도로 1신분과 2신분의 연계가 긴밀하기도 했고요, 말하지면 지금 한국 개신교 생각하셔도 됩니다. 한국에서 만일 프랑스 혁명같은 혁명이 일어난다면, 큰 개신교 교회들이 무슨 일을 겪을지, 그리고 종교 관련 법이 어떻게 바뀔지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좀더 편하실 거예요.
당연히 교황과 프랑스 정부는 한때 아주 사이가 나빴고, 나폴레옹 또한 교황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사실 프랑스가 가톨릭일 때에도 프랑스 왕과 교황 관계는 그닥 긴밀하지 않았고요. 그것도 쓰자면 참 길어요...
예전에 프랑스 혁명은 철저히 종교를 부정하고 들어갔다고 하셨는데 어딘가에서는 프랑스 혁명이야말로 성경말씀 그대로라는 주장을 봤습니다. 사회계약론도 반은 성경해석본이라고 하던데, 프랑스혁명의 어떤 점이 종교를 부정했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이건 종교질문이 아니고 역사질문으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사질문으로서 답하겠습니다. 사실 이건 프랑스 혁명에 대해 한 번쯤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기도 해서 답이 조금 길어집니다.
계몽주의자들이 성경을 많이 인용하거나, 성경에서 모티프를 따거나 얻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전에 서구 인권사상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사실 기독교의 "신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다"는 전제가, 나름의 공화정에 대한 역사적 경험과 기록이 남아 있는 유럽에 끼친 영향이 없다고는 못해요. 다만 이는 종교와 각국의 역사적 경험이 맞물려 벌어진 일이니 기독교만의 공이라고 할 수 없는 겁니다.
루소나 각 계몽주의자들은 성경에 대해 생각했지만, 흔히(특히 요즘) 생각하는 의미의 기독교인들이라기보다 이신론자들이었습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도 이신론자였고, 그러므로 그들에게 성경은 종교의 경전으로서 텍스트적인 의미는 있었지만 그것이 "성경말씀 그대로"라고 하는건...음... 그야말로 식은땀이 줄줄 나는 얘기인 거죠. 전 이신론을 존중하지만, 이신론이 기독교인가에 대해서는 아마 다들 논의가 분분할 겁니다;
실제 당대 계몽주의자들의 빛의 책이었던 디드로의 '백과전서'는 당시 교회에게 대단한 반발을 샀고, 결국 금서로 지정되었습니다. 아울러 그나마 종교에 호의적이었던 루소는 좀 다르지만, 그런 루소조차도 신을 인간의 모든 선함과 이성을 고무시키는 존재로 보았고, 성경까지도 부정확한 기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쨌든, 이런 배경 하에서 프랑스 혁명은 다른 혁명들보다도 상당히 반종교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특히 가톨릭 계열 학자들의 역사 서술을 보면 드러납니... 이는 프랑스의 제1계급이 성직자 계급이었으며, 이들이 왕족 및 귀족과 사회적/혈연적으로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과도 연결될 겁니다. 극히 일부 성직자들이 자유주의 사상을 편들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계몽주의자들의 서적을 금서로 지정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고, 자유사상을 탄압했어요. 그래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교회들 또한 약탈을 면치 못합니다.
성직자와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수도회, 수도원도 다 해체해 버렸어요. 교황청의 반발은 죄다 무시당했고, 성직자들은 프랑스 공화정부에 대한 충성선언 없이는 성직자 지위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가장 과격한 자코뱅 파가 득세하면서 정점에 달하는데, 예를 들면 그레고리우스력까지 폐지해 버리고 혁명 역법을 통과시켜요. 기독교의 신 대신 상징적 존재인 "이성의 여신"을 뽑아서 제식을 지내기까지 했으니까요.
이러한 경향은 로베스피에르 몰락 이후 나폴레옹에게까지 어느정도 이어집니다. 나폴레옹은 대관식에서 교황을 불러다놓고는(...) 자기 손으로 직접 머리에 관을 써 버리죠. 기독교의 권위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입니다. 황후의 관도 자기가 대관해 줍니다(...) 이 그림을 보시면 직접 보실 수 있어요.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3/39/Jacques-Louis_David_006.jpg역사는 다양한 세력의 다양한 욕구와 동기, 상황, 역사성에 따라 굴러갑니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은 반종교적이었지만 청교도 혁명은 이름 그대로 청교도가 했죠. 미국 독립혁명은 세금전쟁이기도 했지만(...) 명백히 이신론자들이 주도했어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독교도들이 아니었지만, 참주정에 대항해 들고 일어나 공화정을 수립했죠. 말하자면 다양한 국가, 다양한 상황, 다양한 역사성과 시대가 있는 거죠. 그래서 들이파는 맛이 있는 거구요.
...쓰다보니 답이 너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ㅇ<-< 당황하셨겠네요.. 한번쯤 거론해 보고 싶던 얘기긴 했습니다 ㅠㅜ
바라던 것 이상으로 자세한 답변을 듣게 되니 오히려 공부도 되고 좋네요. 이신론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되어서 웹을 조금 뒤져보았는데, 대충 보기로도 기독교라고 보기는 상당히 애매하던데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가요? 저로서는 당시 종교층의 공격을 피하거나 포용하기 위해서 신을 갖다끼운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만...(또 종교질문처럼 되었는데 그냥 역사적으로 탄생배경 같은 걸 알려주시면 더 좋겠네요)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종교 관련 문제라 조심스러우니 일단 한 켠에 치워 두겠습니다 OTL 양해 부탁드리고요,
아마 보셨으리라 생각하지만 일단 이신론에 대한 위키를 링크해 두겠습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C%9D%B4%EC%8B%A0%EB%A1%A0사실 이신론은 뿌리는 분명 기독교에 두고 있지만, "이성종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데다 자연현상 자체를 신의 이성적이고 절대적인 창조물로 여기기 때문에 "신비한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신론도 좀 다양합니다만) 실제 이신론은 기독교인들에게 상당히 비판적으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이신론을 뿌리로 무신론이 점차 발전해 나가니까, 말씀하신 부분이 '딱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틀리다고도 할 수 없어요.
솔직히...당시 유럽에서 "무신론자" "반종교자" 라는 것은 엄청난 반발을 사는 모욕이었고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마녀 이단소리 듣기 딱 좋은 시대였으니, 계몽주의자들이 '몸조심'을 한 것도 절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들이 기독교적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기독교인으로 큰 것이 사실이고, 그러니 기독교 자체를 전면 부정하고 무신론을 주장하는 것까지는 못 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미 이신론 자체가 그 주장에 따르면 "예수의 신성"까지도 거드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기존 기독교 입장에선 이게 기독교로 납득되기 어렵죠.
쨌든 각설하고 이신론의 역사적 탄생배경이라면 역시 '이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정점에 달하는 시기였다는 점과, 과학의 시대 또한 서막을 열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철학이 신의 은총이나 기독교적 사상에서 벗어나면서 "순수한 이성"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 크죠. 아울러 고대 그리스나 로마 철학과 고전에 대한 관심도 크게 급증하였고, 당연히 공화정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습니다. 심지어 이들 계몽주의 학자 중 일부는 중국의 '과거제도'조차 신분보다 실력을 우선시하는 합리적인 제도로 굉장히 동경했어요. (...이쪽 입장에선 아니 그거 아니고...소리가 좀 나옵니다만)
아울러 자연 법칙들이 과학적으로 규명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자연의 법칙'과 '신성'을 이성적으로 결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은 이성적이다. 신은 이성적으로 자연법칙을 창조하였다. 이러한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없으니, 결국 궁극적 이성인 신이 완벽한 법칙을 창조한 이상 기적이 있을 이유가 없다' 까지 이어지기도 하고요. 당연히 예언이나 계시, 기적은 거부되고, 결국 '그러한 이성적 신이 정말로 기독교만의 신인가' 의 문제까지 가는 겁니다. 그래서 계몽주의자 중에서는 종교에 꽤 호의적이었던 루소조차도 성경을 신을 불완전하게 설명하는 책이라고 보았으니까요.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이 들었다간 당장 얼굴이 하얘질 주장이죠.
쨌든 대략 이러한 배경 하에 탄생 발전한 것으로서, 유럽 각지의 현실과 학자의 기풍에 따라 이신론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는데, 영국과 미국은 상대적으로 무신론까지는 안 가거나 '신은 이성을 초월하며 합리적이다' 같은 주장도 있었습니다만 개중 프랑스가 가장 반종교적이고 무신론적인 경향으로 흘렀습니다.
프랑스가 유독 반종교적으로 흘러갔던 이유는 뭘까요? 리슐리외나 마자랭 등등 성직자가 재상을 맡으면서 나라를 엄청나게 부유하게 만들어놓았는데...배분이 되지 않아서 국민들이 반감이 더 심했던 걸까요?
프랑스의 종교전통은 다른 나라와는 조금 색다릅니다. 이게 설명하자면 조금 긴데요, 일단 프랑스 왕들은 일찌기 교황과 적당한 대립을 유지하다 못해 '아비뇽 유수' 같은 사태를 만들기도 하는 등, 묘한 관계에 놓여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아비뇽 유수 직전, 교황과 사사건건 대립하던 프랑스 왕이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삼부회입니다. 제 1신분인 성직자, 제2신분인 귀족, 제3신분인 평민으로 만들어진 의회 비슷한 것인데, 당연히 영국의 의회보다도 훨씬 왕권종속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점차 삼부회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려 들자 국왕은 삼부회를 폐지시켜 버립니다. 그때쯤이면 이미 왕권 절대화 작업을 거의 마쳐놓은 상태였죠.
리슐리외와 마자랭이 집권한 것은 삼부회가 부활하기 직전 쯤 됩니다. 리슐리외는 일생동안 왕권 확립을 위해 애썼고, 마자랭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리슐리외는 프랑스 내부에서는 철두철미하게 위그노들과 싸웠지만 '국가를 위해' 개종에 대해서는 상당한 관용책을 보였고, 프랑스의 국가적 지위 향상을 위해 종교전쟁에서 프랑스가 신교편을 들게 만들기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리슐리외나 마자랭이 절대 당시 프랑스 성직자들 사이에서 제대로 존경받는 추기경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세간의 여론은 굉장히 나빴고, 교황청에서는 리슐리외를 눈엣가시로 여겼으며, 루이 13세는 거의 파문당할 뻔했습니다.
아울러 이 때에는 성직자보다는 '귀족'들이 왕권의 위험요소였습니다. 물론 상당히 많은 귀족들이 혈연을 성직자로 만들어 종교적 권위 또한 함께 누리려 하였습니다만, 일단 직접적 위협은 왕족과 귀족들에게서 왔죠. 그래서 리슐리외와 마자랭 모두 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부르주아들을 꽤 중용하고, 루이 14세도 한동안 이 노선을 이어갑니다. 부르주아들은 상공업에 능했고, 이들을 지원하며 강력한 중상주의를 펼친 까닭에 루이 14세끼가 전쟁으로 다 말아쳐드시기 전까지는 프랑스가 꽤 부유해지죠. 말씀하신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일 겁니다.
그러나 루이14세끼가 전쟁으로 재정을 말아쳐 드시면서(이 때 국왕에게 세금 더 걷어달라고 또 삼부회 소집해서 세금을 늘리는 바람에 삼부회가 부활합니다) 얘기가 달라지는데요, 루이 15세즈음부터 귀족들의 '복수전'이 시작되는 것이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근원이 되어버립니다.
루이14세 시기까지는 제법 머리를 숙이고 있던 귀족들이었지만, 루이 15세 시기가 되면서 얘기가 달라집니다. 귀족들이 다시 중용되면서, 드디어 정치계에 입성했던 부르주아들이 상당히 홀대당하게 됩니다. 그러잖아도 루이 14세끼가 낭트 칙령을 폐지하는 바람에 (상당수 위그노였던) 상공업자들이 십만 단위로 망명해서 경제적인 타격이 있었는데 남은 부르주아들에게 "줬다 뺏는" 이 현상에 격노한 부르주아지들은 '누구는 면세특권을 누리며 배두드리고, 누구는 뼈빠지게 일해서 니들 먹여살리냐?!" 며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슐리외나 마자랭이 사라진 이후의 성직자들은 혈연 등에 따라 철저히 왕과 귀족 편을 들었습니다. 인구비율은 0.3%밖에 안 되는 성직자들이 전 국토의 10% 정도를 소유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교회에 붙는 면세 특권에, 상당수 귀족과의 혈연으로 인해 귀족 편을 들었고, 심지어 교육도 독점하고 언론 및 출판의 검열권을 갖고 조금이라도 구미에 맞지 않으면 출간을 금지해 버리니 학자들 눈에도 좋아 보일 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배경이 겹쳐, 라슐리외나 마자랭이 등장했을 때와 프랑스 혁명기의 성직자들의 위상이나 위치,입장에 엄청난 격차가 느껴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리슐리외와 마자랭이 '교계 전체'가 아니었고, 성직자들은 사실상 혈연으로 깊이 연관되어 있는 귀족과 같은 특권을 누리며 문화적 권력을 휘두르던 상태였고, 리슐리외나 마자랭 당시 아껴뒀던 돈은 그 후의 왕들이 다 날려먹었고, 고로 혁명 정부가 거의 무신론적인 경향으로 흐르고 나폴레옹이 리쎄 등을 통해 국민교육체제를 확립한 것도 이러한 사태에 따라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요.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사울-다윗-솔로몬 왕국에서 탄생한 사회계약적 민주주의가 최초의 민주주의 개념이었다고 서술했다는데,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기독교정신의 산물이라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요? 종교질문이 아니고 역사철학으로 봐주시길....
음----------------------------------------매우 곤란한 기분이네요.
일단, 루소가 그런 말을 정말로 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일단 사울은 성경상 신이 낙점했지만 제비로 뽑힌 왕이었고, 사울이 왕이에서 밀려난 것은 민의 때문이 아니라 독단적으로 제사를 진행해 교권을 넘봤기 때문이었으며, 다윗은 (신이 택했지만) 장군이자 군벌이었지 민의로 뽑힌 사람이 아니며, 솔로몬은 '지혜'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루소가 좋아할 법은 할지 몰라도 전형적인 '보위를 물려받은 왕'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루소는 종교관에 있어 "신은 완전하고,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전제로 이론을 전개하였으며, 그러므로 오히려 "인간이 구성한 교파나 교리적 권력은 모두 불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의 존재와 완전성은 인정했지만, 인간들이 구성한 교단이나 각종 교리에 대해서는 불합리하다는 시각을 지닌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책들에 격노한 성직자들은 '에밀'과 '사회계약론' 둘다 금서로 지정해 버렸고, 루소는 결국 다급히 망명해야만 했어요.
사실 이는 구교 뿐 아니라 신교에도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었기에, 루소는 프랑스 뿐 아니라 고향인 제네바(구교도와 신교도가 모두 섞여있던 도시입니다) 에서도 추방당합니다; 만일 루소가 성경을 찬양하고 사회계약적 민주주의가 성경에 나와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기독교적인 저술을 썼다면 그랬을까요;
"참된 기독교인들은 노예이게끔 되어 있다."
루소의 말입니다. 그가 비록 '신'을 완전한 존재로 상정했다 해도, 기독교에 대해서는 분명히 저런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인 거죠.
기독교의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관념이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준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서구 민주주의를 기독교정신의 산물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모든 역사적 이벤트에는 나름의 원인과 상황이 있는 법이거든요.
첫댓글 관련된 글을 적어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만... 당장 시간이 어렵네요ㅎㅎ 이신론 얘기나 인권론이나 같이 나누어 볼 얘깃거리는 충분할 듯 싶습니다. 일단 기독교 교리가 시대에 따라서 변이해오고 있는데 어느 시대를 기점으로 평가하는 것인지가 제일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70년 전만해도 로마서 13장이 일본 교회에서는 천황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쓰였던 판입니다. 뭐 그렇다고 해도 확실히 20세기의 기독교는 그 이전의 기독교와 많은 부분 다르죠.
조금 덧붙이자면 누가 질문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질문자가 17세기 기독교전통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인지, 20세기 최근의 기독교전통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군요.
누구와 누구의 대화인지도 소개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ask.fm 질답을 저장해둔 것인데 답을 해주시던 계정이 닫혀서... 질문하는 이는 익명의 2인 이상 정도로 추정...
성경책하고 현실의 교단하고 동일한존재가 아니니 당연한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