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아버님은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셨습니다. 가을에 몇 마지기 되지도 않는 논에서 벼를 수확하면 그중 일부를 주인에게 도지세로 내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이라도 벼 수확량을 늘려보려고, 동네 끝자락 오리나무 밑의 하천부지 일부를 온 식구가 달라붙어 돌을 골라내고 논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봄이 되면 소 외양간 바닥에 깔았던 볏짚을 쳐낸 두엄 더미를 날라다가 논바닥에 펼쳐 놓아 땅힘을 높였습니다. 농사꾼들은 대부분 모내기 준비를 위해 쟁기질로 논을 갈아엎기 전에 이런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좀 더 부지런한 이들은 이런 두엄뿐만 아니라, 근처 야산에 올라가서 떡갈나무잎을 꺾어다가 논에다 깔았습니다. 같은 품종이더라도 이렇게 정성을 쏟은 토양의 논에서 자란 벼가 더 튼실하고 수확량도 많았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곧 주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행하십시오.
그분 안에 이미 뿌리를 내렸고(골 2:6-7).
구약이나 신약 사복음서 내용의 대부분은 전후 맥락이 있는 스토리 중심이라 읽고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서신서들의 내용은 단어는 평이하나 영적 의미가 담겨 있기에 읽어도 금방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마치 영어권의 아이들이 떠듬떠듬 한국어 문장을 읽긴 해도 그 의미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어깨를 으쓱하며 “I don’t know”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벼가 논 바닥에 점차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것은 알겠는데, “여러분이” “그분(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렸고”라는 말들은 다소 생소합니다. 사람이 뿌리가 있다는 말도 생소하고, 그 뿌리를 산 인격체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내린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참고로 원어에서 ‘뿌리를 내리다’라는 동사인 ‘리조오’(4492)는 성경 전체에서 위 본문과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엡 3:17)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신약성경 회복역>의 관련 각주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식물과 같은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유기체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을 영양분으로 흡수하기 위하여 우리의 토양, 곧 우리의 땅이신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렸다. 이러한 풍성이 우리를 자라게 하고 건축시키는 요소와 실질이 된다”(7절, 각주 1).
토양이신 그리스도: 사복음서의 예수님 모습만 기억한다면, ‘예수님께서 토양’(soil)이시라는 표현 자체가 우리에게 낯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 본문처럼 부활 후의 예수님 관련 묘사들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그러한 고정관념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다마스쿠스에서 다소의 사울에게 나타나셨던 주님의 사례가 그 이유입니다. 즉, 그분은 부활 후에 한 새사람의 머리로서는 하늘 보좌 위에서 말씀하시지만, 동시에 이 땅에 있는 그 몸의 지체들 안에서 생명으로 내주하시는 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행 9:4, 골 3:4). 지금 우리 주님은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있으신 “하나님의 비밀”이십니다(엡 3:17, 골 2:2). 우리는 이런 비밀스러운 분 안으로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사실 위 본문의 이해를 결정적으로 돕는 말씀은 우리가 “빛 가운데에서 성도들에게 할당된 몫을 받을 자격”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골 1:12). 참고로 회복역 성경 해당 각주는 위 ‘할당된 몫’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좋은 땅 가나안을 그들의 유업으로 할당받은 것처럼(수 14:1), 성도들이 받은 유업의 한몫 …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이다”라고 말합니다(각주 2).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들어간 가나안 땅이 장차 죽으면 가는 어떤 곳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영접했을 때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신 부활하신 주님 자신으로 보아야 위 본문을 포함한 골로새서의 전체 문맥이 풀림을 알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터전 삼아 살았던 것처럼, 우리는 그 땅의 실재이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신앙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서 “그분 안에서 행하고”(2:6), “그분 안에 뿌리를 내리고” 날마다 그 땅의 풍성을 흡수하여 살 필요가 있습니다.
“뿌리를 내렸으니”: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 영으로 우리 영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한 영되셨을 때(요 3:6) 이미 우리는 그분 안으로 뿌리내린 것입니다. 이제 매 순간 우리의 생각을 이 연합된 영에 두어 거기서 흘러나온 풍성으로 적셔지게 할 때(롬 8:6), 우리는 그 좋은 땅의 모든 풍성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마치 벼가 두엄에서 나온 질소와 인산과 칼륨이 녹아든 논 바닥 흙에서 거름 성분들을 빨아올려 자라듯이, 우리는 그분의 하나님-사람 되심과 인생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요소가 녹아 있는 그 영의 풍성들(2:8-15 참조)을 빨아올려서 날마다 자라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과 그분의 고난의 고통을 알고 … 뛰어난 부활에 이르고자 합니다”(빌 3:10), “그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롬 8:13),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십시오”(눅 9:23) 등등의 말씀을 실행하는 비결은 다만 그분께 돌이켜 뿌리를 통해 주님의 모든 풍성을 흡수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마치 논에 심긴 벼가 바람이 불고 비가 오거나 추우나 더울 때도 다만 양분을 빨아들여 자라는 것에만 집중하듯이, 우리도 우리의 상황과 상태와 실패와 약함을 잊어버리고 다만 시간을 들여 주님 자신을 흡수하여 자라고, 그 몸으로 건축되는 이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골 2:19, 엡 4:16).
오 주님, 우리 모두가 당신의 모든 풍성을 흡수하여
자라고 건축되는 이 한 가지만 생각하고 추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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