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은 언제나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긴다.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 때 LPGA(미국 여자프로골프)에서 '맨발의 투혼'을 발휘했던 박세리와 MLB(미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그랬다.
본지 기자들이 선정한 '2013년 국민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준 인물' 1~3위 역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였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자마자 14승(8패)을 거둔 '괴물 투수' 류현진(26·LA 다저스)이 43.01%의 지지를 받아 1위에 올랐다. 류현진은 2년 가까운 공백을 깨고 2013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정상에 올랐던 김연아(8.60%), 2013시즌 LPGA 메이저대회 3승 등 6승을 거두며 '올해의 선수'에 뽑힌 박인비(4.30%)를 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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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기자들이 선정한 ‘2013년 국민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준 인물’ 1위에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뽑혔다. 그는 올해 14승8패를 거두며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보냈다. 사진은 류현진이 지난 10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치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에서 7회초 맷 애덤스를 삼진으로 잡고 기뻐하는 모습. /AP 뉴시스
[MONSTER(괴물)… 류현진의 별명으로 되돌아본 2013 시즌]
류현진(26). 2013년 국내 스포츠 팬들은 그가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 마운드에서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열광했고, 행복해 했다. 그가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 "잘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한국 프로야구라는 우물 속에서만 기세를 떨친 '개구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공존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보란 듯이 승수를 쑥쑥 채워가면서 2013시즌을 14승8패, 평균자책점 3.00으로 마감하며 단숨에 정상급 스타로 우뚝 섰다. 류현진의 2013시즌을 그의 별명인 '괴물'의 영어 단어 '몬스터(MONSTER)'철자 풀이를 통해 되돌아봤다.
[M] Money(돈) : 6173만7737달러33센트. 한화가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승인하며 포스팅시스템을 신청하자 LA 다저스는 이적료로 2573만7737달러33센트(당시 환율로 약 28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써넣으며 협상권을 거머쥐었다. 수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와 손을 잡은 류현진은 6년 3600만달러라는 거액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국내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그때까지 미국 무대에서 검증되지 않은 순수한 한국 프로야구 리그 경력을 감안할 때 떠올리기 쉽지 않은 액수였다. 하지만 그의 활약상은 평균 연봉 600만달러의 몸값을 훨씬 웃돌았다.
[O] Overweight(과체중) : 팀에 합류한 류현진을 처음 본 동료와 취재진은 류현진의 덩치에 먼저 놀랐다. 포수인 A J 엘리스는 "한국의 클레이튼 커쇼라고 들었는데, 과체중이어서 잘 던질까 하는 불안감을 느꼈다"고 했다. 걱정은 현실로 나타났다. 류현진은 지난 2월 스프링캠프 합동훈련 1.6㎞ 달리기 도중 동료 투수들의 페이스를 따라잡지 못했다. 뒤늦게 운동장을 가로질러 들어온 뒤 헉헉거리는 그를 보고 미국 취재진은 그의 체력에 의문을 달았다. 류현진은 의심 가득 찬 현지 언론에 "뛰는 체력과 던지는 체력은 다르다"고 말했고, 마운드에서 자신의 말을 입증했다.
[N] New Generation(신세대) : 류현진은 스프링캠프 휴식시간을 이용한 다저스 팀내 장기 자랑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부르면서 '말춤'을 췄다. 혼자 추는 데 그치지 않고 클레이튼 커쇼와 맷 켐프를 앞으로 끌고 나오면서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는 후안 유리베, 야시엘 푸이그 등과 경기 도중 더그아웃에서 쉴 새 없이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빠르게 미국 야구에 적응했다. 유리베는 "류현진은 밝은 성격 때문에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며 "이기든 지든 늘 긍정적인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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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위)시즌 개막 전 팀의 간판스타인 클레이튼 커쇼(가운데), 맷 켐프와 함께 말춤을 추는 류현진. (사진 가운데)류현진이 지난 8월 31일(한국 시각)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 슬라이딩으로 홈에 들어오고 있다. (사진 아래)류현진의 10승 기념 공. 류현진은 8월 3일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5와 3분의 1이닝 2실점으로 10승째를 올렸다. /LA 다저스 홈페이지, AP 뉴시스, 마틴 김 제공
[S] Shut Out(완봉승) : 류현진은 두 번째 등판이던 4월 8일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상대로 6과 3분의 1이닝 2실점으로 메이저리그 첫 승리를 기록했다. 첫 10경기에서 5승2패를 기록하면서도 완봉승이 없었던 류현진은 마침내 11경기째인 5월 29일 LA 에인절스전에서 안타 2개만 내주고 무사사구 완봉승(3대0)을 거뒀다. 한국인 메이저리거로는 박찬호·김선우에 이어 세 번째 기록이었다.
[T] Tenth Win(두 자릿수 승리) : 류현진은 8월 초에 시즌 목표였던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류현진은 시즌 6승째였던 완봉승 이후 치른 6월 다섯 경기에서 승리 없이 1패만 떠안는 부진을 보였다. 하지만 7월 네 차례 등판에서 타선의 지원 속에 3승을 챙겼고, 8월 첫 경기(3일 시카고 컵스)에서 시즌 10승 고지에 도달했다. 류현진은 9월 30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경기까지 총 30차례 선발 등판해 14승8패, 평균자책점 3.00의 성적을 올렸다.
[E] Ending(화려한 끝) : 시작뿐 아니라 끝도 화려했다. 류현진은 10월 15일 홈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3차전에서 7이닝 3피안타 무실점 호투로 포스트시즌 첫 선발승을 올렸다. 이에 앞서 자신의 첫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경기이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 3이닝 6피안타 4실점으로 일찍 강판당했던 악몽을 후련하게 떨쳐냈다. 류현진은 시즌 후 "100점을 다 주고 싶었는데 동부 갔을 때 시차 적응하는 데 아쉬운 게 많아서 1점을 뺐다"며 올 시즌 성적에 대해 자신의 등번호와 같은 99점을 줬다.
[R] Ryu Can Do It! : 미국 현지 언론과 팬들은 류현진이 맹활약하자 그의 영문 성(姓)을 응용해 'Ryu can do it' 'I love Ryu'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가 시즌 초인 4월 14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원정 경기에서 2루타 포함, 3타수 3안타 1득점으로 맹활약하자 미국 언론은 그를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홈런 타자 베이브 루스와 비교해 '베이브 류스(Babe Ryuth)'라고 부르기도 했다. 팬들을 대신해 류현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류현진, 고마워(Thank R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