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땅은 오빠가 갖고 어머니 집은 내가 갖는 거야. 어머니 돌아가신 뒤라도 나중에 딴소리 하기 없기다.”
# 때는 2012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5년째이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3년 전이었습니다.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어머니와 4남매가 모두 모여 합의서를 썼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던 미영(가명)씨는 그렇게 어머니의 2층짜리 단독주택을 얻게 됐어요. 이듬해엔 각자 얻은 부동산에 등기도 마쳤고요. 이렇게 잘 정리된 줄 알았던 재산 나누기가 갑자기 남매 간 다툼으로 번지게 된 건 2015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오빠와 언니가 마음을 바꿔 “생각해 보니 ‘유류분’이란 게 있었네. 어머니 주택을 나눠 갖자”며 미영씨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
유류분(遺留分)은 돌아가신 분이 상속인을 위해 꼭 남겨둬야 할 재산입니다. 남길 유(遺)에 또 머무를 유(留)를 붙이니 ‘제발 이건 좀 내버려 둬라’ 느낌이에요.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자유는 있지만 그렇다고 무제한으로 그 자유를 용인하면 가정과 상속인의 억장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미영씨 명의로 해 놓은 집에 대해 오빠와 언니는 자기들도 1/8씩은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4남매여서 법정상속분이 1/4인데 그중 유류분은 그것의 1/2이거든요. 1·2심을 맡은 부산지법은 오빠와 언니의 주장이 맞다며 “미영씨는 오빠와 언니에게 집의 1/8씩을 등기해 줘라”고 판결했습니다. 억울한 미영씨는 서울에 있는 대법원까지 올라갔어요.
반전은 여기서 벌어집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해 “부산지법이 계산을 잘못했다”며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낸 겁니다. 이쯤 되면 두 가지 의문이 드실 겁니다.
셔터스톡
❓ 여기서 첫 번째 질문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재산을 어떻게 할지 모두 모여 합의했고 증거도 남겼는데, 나중에 딴 말을 해도 되는 거예요?
네, 됩니다. 유류분은 유언으로도 뺏을 수 없는 ‘최소보장분’이니까요. 혹시 여기서 ‘그래도 좀 못된 것같이 느껴지는데?’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미영씨 입장에선 “오빠는 아빠 땅 받는 대신 엄마 집은 포기했잖아. 합의서에도 ‘어머니 사망 후에도 일체의 권리는 미영에게 있고, 다른 남매들은 권리 주장을 포기한다’고 썼는걸?”이라며 억울해 할 수 있는 부분이죠.
하지만 상속 개시일(사망일) 이전에 상속이 예정된 재산을 받느니 마느니 하는 이런 유의 약정은 ‘무효’입니다. 상속 포기는 상속 개시일 이후에만 가능하거든요. 민법은 상속인을 보호하기 위해 상속 포기 기간이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미영씨가 말한 합의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쓴 거라 안타깝게도 효력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1·2·3심 모두 이견이 없었습니다.
“상속 개시 후에 자신의 상속권을 주장하는 건 정당한 권리 행사로, 권리남용에 해당하거나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의 행사라고 볼 수 없다.”(2심 판결문 중)
📖 관련 판례는?
상속의 포기는 상속이 개시된 후 일정한 기간 내에만 가능하고 (…) 상속 개시 전에 한 상속포기약정은 그와 같은 절차와 방식에 따르지 아니한 것으로 효력이 없다.(대법원 1998. 7. 24. 선고 98다9021 판결)
❓ 여기서 두 번째 질문
그래서 그 합의서는 무효고, 어머니 집은 공평히 나눠 가지라면서, 왜 또 1/8이 아닌 거죠?
어머니 집을 남매들이 1/8씩 가지라 한다면 큰오빠는 ‘아버지 땅 전부+어머니 집 1/8’을 갖게 됩니다. 언니와 작은오빠는 ‘어머니 집 1/8’씩만 갖는 거고요. 미영씨는 ‘어머니 건물 5/8’를 갖게 되겠네요. 이렇게 되면 불공평하게 누가 좀 많이 갖게 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대법원은 그 점에 주목했습니다.
대법원은 아버지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큰오빠가 어머니로부터 일부 증여를 받았다고 봤습니다. “상속 재산 분할 협의는 실질적으로 어머니를 포함해 나머지 공동상속인(미영씨와 남매들)이 큰아들에게 자신의 상속분을 무상으로 양도한 것과 같다.”
이게 뭔 말인가 예를 들어 볼게요. 선생님이 4명의 학생에게 피자 네 조각을 줬는데, 똑같이 나눠먹을 수 있음에도 협의를 통해 3명이 “너 다 먹어”라며 한 명에게 몰아줬습니다. 그럼 혼자 먹은 학생은 “선생님이 피자 네 조각을 주셨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친구들이 한 조각씩 양보해 줘서 네 조각을 먹었어”라고 말할 수도 있죠. 특히 세 조각의 피자는 다른 친구들로부터 한 조각씩 양도받은 것이니까요.
미영씨 큰오빠가 갖게 된 땅도 이와 비슷합니다. “아버지로부터 2200평을 상속받았어”라고만 해도 틀린 건 아니지만 살펴보면 “어머니와 동생들이 양보해 줘서 2200평을 혼자 다 가졌어”잖아요.
그렇다면 ‘아버지 사망 때 어머니가 가질 수 있었지만 장남에게 준 부분’=‘어머니가 장남에게 무상 양도’=‘어머니 사망 시 유류분 산정에 포함’.
미영씨 큰오빠는 예전에 어머니(의 양보)로부터 이미 받은 부분은 빼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만 주장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결론입니다.
🔎 당신의 법정
유산과 관련해 돌아가신 후에만 가능한 게 있고, 돌아가시기 전에도 가능한 게 있습니다. ‘상속 포기’를 약속하는 건 돌아가신 뒤에만 가능합니다. 반면에 돌아가시기 전에 미리 재산을 주는 건 가능한데, 자식 된 입장에선 돌아가시기 전에 받은 건 유산을 미리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란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형식이 증여나 유증이 아니고 이 사건처럼 상속재산분할협의인 경우에도 실질적으로 부모로부터 무상으로 재산을 얻은 경우라면 유류분 산정에 있어 특별수익으로 볼 수 있다는 걸 대법원은 이 판결을 통해 알려준 겁니다.
부모의 재산을 받지 않고 자녀에게 넘겨준 경우도 자녀에 대한 증여로 본 판례가 있었는데, 비슷한 취지라 볼 수 있겠죠.
📌400자 변론
부광득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이 되는 특별수익은 증여 혹은 유증으로 받았을 때만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상속분의 선급(먼저 받음)’이라고 판단될 수 있다면 특별수익으로 봅니다. 즉, 매매의 형식 혹은 상속재산분할협의의 형식을 취했더라도 부모로부터 실질적으로 무상으로 재산을 얻은 것이라면 유류분 산정에 있어 특별수익으로 판단되는 것입니다.
유류분 반환 청구를 대비하는 입장이라면 부모로부터 재산을 이전받을 때 최소한의 대가를 지급하거나 자신의 기여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등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유류분 반환 청구를 하는 입장이라면 재산이 이전된 형식에도 불구하고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