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애교가 섞인 목소리로 해왕이 말했다. 히히덕 거리는게 꼭 풋내기 같았다. 하지만 역시 신분은 속일 수 없는지 그의 눈동자에서는 어디서 우러러 나오는지 모를 기품이 서려 있었다.
현재 그가 보이는 모습은 강마전쟁이 끝났을 때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였다. 그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더이상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초상화를 봐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녀의 방은 이미 정리한지 오래이다. 가브일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스쳐지나간 추억으로만 생각할 뿐...더이상 그런 일에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추억에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추억을 회상하는동안 행복을 느낄 것이지만 결국은 그 순간일 뿐...결과는 같았다. 그가 그렇게 까지 마음을 접는데엔 그만큼 시간도 걸리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 역시 자신이 이렇게 했던 것에 대해 흐뭇하게 생각했다.
디프는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 채 자신 앞에 쌓여 있는 서류더미를 보았다. 해왕이 예전처럼 명랑함을 되찾은 것은 좋았다. 하지만 해왕의 변한 모습이 싫었다.
제자리에 돌아 온다고 완전히 똑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처는 없어져도 흉터는 없어지지않듯, 아무리 마음을 차분히 갖는다 해도 그로인해 변하는 것만큼은 막을수 없었다. 겉으론 티가 나지 않았지만 해왕은 변했다. 아주 많이...
부하가 죽었는데도 해왕은 더이상 자신의 부하를 만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또다시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아직도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해왕은 늘 언행이나 지나친 서류부담으로 자신이 분노하게 그것을 즐겼다. 디프는 그가 그러는 것이 변태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해왕을 이해해야 했다. 그것은 단순한 마이너스 감정을 흡수시키기 위해서 벌인 일이 아니였다. 자신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며 다르피를 떠올리려고 그러는 것이다. 해왕, 본인도 모르게...
"그럼, 난 이만."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해왕의 어깨에는 낚시 대가 걸쳐져 있었다. 해왕은 씨익 웃으며 디프가 뭐라 말 하기도 전에 텔레포트를 했다.
팟-
그의 몸이 그림처럼 사라졌다. 디프는 허탈하다는 듯이 해왕이 간 자리를 보았다. 그녀의 몸이 큰 경련을 일으켰다.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상기된지 오래이다.
"너무 합니다! 정말 너무합니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래봤자 아무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디프는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마족도 인간도 그것만큼은 다 똑같다. 때로는 절망에, 때로는 불행에 휩싸일때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게 된다. 그러다 그런 행동에 대한 효과를 의심하게 된다. 자신이 이렇게 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낮 추한 발악에 불과하다.
그녀의 기분은 말도 할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거대한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서류가 왜그리 저주스러워 보이는지...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저번처럼 서류속에 파뭍혀 약 일주일 밤을 셌을 때가 떠올랐다.
"크아아악! 크아아아아악!"
디프는 양 손으로 머리를 쥐어 짜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는 것이 꼭 돼지가 멱따는 소리 같았다. 그 모습은 평소 교양이 있는 그녀의 언행과 행동 그리고 이미지를 전혀 떠올릴수 없을 정도로 추해보였다. 그순간 그녀는 뼈져리게 경험해야 했다. 실행보다 상상이 더욱더 무섭다는 것을...
"저...저기 디프?"
언제 왔는지 모를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왠지 낯익은 목소리에 그녀는 목소리가 있는 쪽으로 돌아보았다. 검은 로브로 전신을 감춘 사내. 누런 붕대가 감긴 손으로 후드를 긁적이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을 덮고 있는 그 새까만 후드 사이로 그의 날카로운 붉은 눈동자가 느껴지는듯 했다.
"왜......왔어?"
디프는 애써 당혹감을 감춘 채 헤헤 웃었다. 그녀의 머릿카락은 완전히 헝크러진채 거지같은 몰골로 뻗어 있었는데 그것이 딱 그녀가 느끼는 심리 상태였다. 잘 익은 사과처럼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모락모락 김을 내며 증발할 것 같았다. 제길, 못볼꼴을 보여줬군...
마치 살인을 목격한 마냥 세이그람은 약간 질린 지으며(물론 로브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대가리 세 개 달린 도마뱀' 이란 말을 입에 삼킨 채 애써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이 보면 그들이 연인 사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체지 못할 정도로 막막한 분위기였다.
"잠깐! 무슨 말이야? 가브님이 귀한 하다니?"
디프는 경악과 당황이 섞인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가브는 분명히 죽었다. 피브리조가 증언했고 가브의 시신도 발견되었다. 분명 화장되기 전 까지 차갑게 굳어버린채 누워 있었는데...가짜라고 하기엔 그 시신은 너무나도 현실감이 느껴졌다. 분명 그녀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살아있다니!
"명왕님도 아직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더군...어쩌다 한번 소환되었는데 그때가 하필 세라와 작업 중이였다고. 어느 얼간이가 감히 날 소환했냐고 노발대발 하면서 죽일려고 보니까 가브님이였나봐. 아시다시피 명왕님은 인간의 윤회를 읽을수 있잖아."
"그...그말은 가브님이 인간으로 환생되셨다는 말?"
"정확히 말해서 인간의 육체에 봉인되셨던 거지...아직 각성을 하지 않았어. 그래도 마족에 대한 기억은 있던데...?"
그 순간 아름답기만 했던 그녀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져버렸다. 안그래도 하얀 얼굴이 새하얗게 상기된채 부르르 떨리고 있었고 이마에는 언제부터 나왔는지 모를 식은땀이 고여 있었다. 털썩-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그녀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마치 자신이 환자인 마냥 그녀는 신음소리를 내뱉었고 그것은 세이그람을 황당하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그 순간 그녀는 눈치체고 말았던 것이다. 얼마있지 않아 해왕궁에 몰아치게될 피보라를...
"왜그래?"
그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그녀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그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그녀는 웃다가 미쳐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웃긴 커녕 오히려 절망한듯 주저앉다니...혹시 그녀도 가브를 못마땅하게 여긴거 아냐?
"일어나."
그는 그녀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러나 그녀의 떨림이 계속되었다. 입에 자물쇠가 채워진 것처럼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햇빛에 반사되는 굵은 눈물 방울을 삼키며 그녀는 아련하다는듯이 그를 보았다. 그 순간 그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라는 것을...
* * *
푸른 물결이 흘렀다. 차가운 바람은 다루핀의 몸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현재 그는 울퉁불퉁하지만 섬세하게 깍여진 벼랑에 앉아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입가에 그려진 미소가 왠지 행복해 보였다. 어쩐지 오늘 기분이 좋던지...초반부터 물고기가 잘 잡혔다.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3마리나! 오늘만큼이나 물고기가 귀여워 보인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한손으론 낚시대를 잡고 한손으론 바로 옆에있는 모닥불에 갓 구워진 물고기를 꺼내 입으로 씹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다는 것이 정말 신기해 보인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이 맛! 금방이라도 입안이 샤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에 그는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얼마 있지 않아 망치고 말았다. 왜 하필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노래가 엘라리스 에리스가 자신에게 바친 장송곡인지...그 것을 느끼는 순간 그는 얼굴을 굳인채 입을 굳게 닫고는 침묵을 지켜나가야 했다. 그의 이(이빨)는 그가 씹고 있는 물고기가 불쌍하다 느껴질 정도로 날카롭게 부딛쳤다. 물고기를 다 씹고 난 후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 거렸다.
"제길. 좋은 기분 다 망쳤군..."
만약 다른 마족이 이 말을 듣는다면 머리에 한대 얻어맞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것이다. 그것은 순수하기만 했던 그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쉽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낚시 대가 흔들린다. 그 감각을 느껴지자 그는 낚시대를 거칠게 올렸다. 그 순간 바닷 물과 함께 물고기가 치솟았다. 물고기가 바닥에 닿자 그는 자신의 품속에 단검을 꺼내 물고기를 즉사 시킨다음(왜냐고 물어보니까 물고기가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아프댄다.) 꽂챙이에 꽂아 불에 달구웠다.
또다시 그가 낚시줄을 물 속으로 던지려는 순간이였다.
"그 취미...여전하군..."
40대 중년 쯤 되는 남자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렸다. 그는 흠칫 뒤를 돌아보고는 거칠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얼음같이 찬란하고 날카로운 단검이 자신앞에 우뚝 서 있는 남자를 가격했다.
"넌 누구지?"
경계의 눈빛으로 다루핀은 남자를 노려 보며 살기등등한 목소리를 내었다. 자신이 낚시에 집중하느냐고 몰랐는지, 아니면 남자가 기척을 내지 않았는지 다루핀은 그 남자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더 두려었던 것이다. 심복인 자신이 저런 애송이의 기척조차 느낄수 없다니...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드는게 꼭 남자가 자신에게 불행을 안겨 줄것 같은 느낌이였다. 여기서 그를 공격할 자는 아무도 없었지만 갑자기 밀려오는 적의에 그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이봐, 내가 아무리 변해도 그렇지! 어떻게 날 못알아봐!"
남자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상황을 보아 부끄러움이 아닌 분노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 수억년간을 함께한 친우를 못알아 보다니...그도그럴것이지 남자의 모습은 과거의 가브와 달랐다. 갑옷 대신 주황색 코트를 대신 한채 어깨에는 보기만 해도 위협이 갈 정도로 커다란 장검을 걸치고 있었다. 피부는 약간 진한 갈색이였고 턱에는 잘 관리 하지 않은듯 살짝 닿아도 따가워 보일 것같은 수염이 덕지덕지 나 있었다. 그런데도 남자를 알아 보는 것이 말이 되나? 그 사실을 지각하지 못했다면 남자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장검을 사방으로 휘둘렀을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익숙한 말투. 목소리는 달랐지만 분명 귀에 익어버인듯 했다. 다루핀은 곰곰히 생각에 잠겨들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남자의 기억은 없었다. 그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기억도 나지 않은데 자신을 오래된 친우처럼 대하다니...왠지 모르게 의심이 갔던 것이다.
"내 물음에 답하라! 너는 누군가?"
"빌어먹을, 가봤자 못 알아 볼 것이라는 헬마스터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하긴 나라도 믿지 못하겠다. 마룡왕 가브. 마족들은 나를 그렇게 부르지..."
"뭐? 마룡왕?"
커다란 눈동자가 자신을 마룡왕이라 밝힌 남자를 보았다. 아까 다루핀이 보였는 험학한 표정과는 전혀 다른 순진무구한 아이의 표정이였다.
"마룡왕?"
"응."
"마룡왕?"
"응."
똑같은 말이 반복되는 것이 짜증났지만 남자는 애써 화를 억누른채 팔짱을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폭주할 것 같았다. 그 순간 다루핀은 푸른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채 미친듯이 깔깔거렸다.
"깔깔깔깔깔!"
"꺄하하하하할! 하하하하하하하! 우히이익!"
남자는 멍한 눈빛으로 다루핀을 보았다.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분노 보다는 당황함이 앞섰다. 그동안 다루핀이 저런게 품위 없이 웃은 적이 없었다.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 해도 이건 너무 왜곡된 행동이 아닌가...그런데 왜?
"이왕이면 통할 거짓말을 해야지! 마룡왕은 죽었어! 말투나 이미지는 비슷하긴 하지만 어떻게 죽은 놈이 살아나? 그를 사.모.하.는 누군가가 혼돈과 계약하면 모를까나...하하하하하!"
"그런 재수옴붙은 말은 하지 마라!"
남자는 얼굴을 붉힌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것이 지금 나를 놀려? 성질같아서는 머리채를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인간의 몸에 봉인당한 지금 가브의 힘은 터무니 없이 약해졌다.) 한번 더 참아야 했다.
그런 남자의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갑자기 다루핀의 웃음이 멈췄다. 천박하기 그지 없었던 때와는 달리 다루핀은 심각한 얼굴로 그의 붉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맞나 보군. 가브가 아니라면 그말에 얼굴을 붉힐리가 없지..."
어느정도 믿는 눈치였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약간의 의혹이 붙어 있었다. 다루핀은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따라와. 피브리조에게 가면 모든것이 밝혀지겠지. 안그러신가 가브경?"
평범한 여자가 보고 듣는다면 코피를 흘리고 기절할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치는 말투였으나 마지막엔 거의 비꼬는 어조로 되어 그것을 흐지부지하게 만들었다. 가브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가브가 아는 한 해왕은 이렇게까지 의심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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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파왔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어색했다. 현실감이 없었다. 실제 그가 살아 있다는 것 조차 믿기지 않을 지경이였다. 그가 이미 마음을 접은 후에 나타나서인지도 모른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다루핀은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강마전쟁 전 가브가 했던 발언에 다루핀은 내심 불안해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이 가브는 강마전쟁 전 자신과의 우정을 깨었던 최악의 일이 마치 없다는듯이 굴었고 가브의 그런 행동에 다루핀은 안심했다.
비록 모습은 많이 변했다지만 가브의 그 호탕한 말투와 호전적인 성격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당했는데도 전쟁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반짝 거렸고 또한 흥분했다.
이미 알고 있는 건지, 그래서 다루핀의 마음을 이해 하는 건지 가브는 다르피에 대한 일을 입밖에 끄내지 않았다. 그리고 다루핀은 그런 그의 행동에 내심 고마음을 느꼈다. 그러나 다루핀은 그의 머릿카락에 묶여진 아리따운(?) 리본을 순간 굳어버렸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가브는 한심하다는듯이 다루핀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그런 가브를 보자 다루핀은 반색하며 양손을 내저어야했다.
"아, 아냐. 신경쓸 필요 없어."
머릿결이 좋지 않아 자주 헝크러지는지 이미지에 맞지 않게 붉은 머릿카락에 노란 리본을 메어 보기만 해도 황당할 나름이다. 이미 그의 근처에 있는 마족들은 킥킥 거리며 그것을 바라본지 오래이다.
문득 그런 가브를 보면서 다루핀은 한 여마족을 떠올릴수 있었다.
블루 사파이어같은 푸른 머릿카락. 실처럼 그녀의 머리에 감싼 미스릴로 된 써클렛. 날카로운 쌍가풀은 그녀에게 섬세한 이미지를 심어 주었고 또한 순결해 보이게 만들었다.
애초부터 아름다움에 반할리는 없었지만...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녀는 죽었다. 하지만 그녀도 곧 살아날 것 같았다. 같이 죽어버린 가브도 이렇게 살아나지 않았던가...문득 다루핀은 시야가 뿌옇게 보이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희망인데 내가 왜 울어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다루핀은 자신의 참담한 현실을 느낄수 있었다.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 것도 정말 오래만이다. 애초부터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다. 그런다고 그녀가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아니 오히려 마음만 아플 뿐인데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는 자신을 속으로 비판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지웠다. 오직 가브에 대한 생각으로 꽉 채워 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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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자 하는 본능은 당연하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그만 것에서 부터 원인이 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배신하게 만든다.
-----------------디프의 일기장에서 발췌
행복해 질 줄 알았다.
마음에 평안을 되찾고, 죽었는지만 알았던 친우도 돌아왔는데...
하지만, 그 친우가 설마 우리 마족을 배신할 것을,
그리고 자신의 편에 가담하지 않는다면 날 희생시킬 것을...
어느 누가 꿈에도 상상할 수 있었는가...?
"고작 이런 놈이였나? 싸움이란 단어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고, 흥분하고, 호탕하게 웃던 네가...유일하게 날 이해해주던 네가...고작 그런 놈이였나? 너도 결국 살기위에 개미같이 몸부림치는, 그래서 수 억년동안 함께해온 우정과 충성을 내버리는 그런 족속에 불과 하던가...?"
"거절 하는 건가?"
"꺼져! 더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아. 그래, 그냥 내가 죽겠어...마족의 제단에 희생당하겠어...그걸로 됬나? 응?"
다루핀은 반쯤 맛이 간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분노 혹은 배신감에 흘린 눈물을 다루핀은 자신의 오른손으로 닦았다. 정신이 안정될레야 안정될수 없었다. 믿을수 없다.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지 과거엔 한번도 상상 해본적이 없었다. 파티가 무르익을 무렵. 그는 해왕과 함께 해왕을 궁으로 들어가 자신이 곧 배신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면서 자신에게 가담하라고 제안했다.
배신이란 단어를 너무나도 쉽게 내뱉는 그를 보며 다루핀은 머리에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마족을 배신해? 지금 미쳤어? 샤브라니구드와 마계에 대해 충성심이 깊은 다루핀으로선 꿈에도 상상할수 없었던 일이다. 그런 배신을 자신에게 제안하다니...아니 가브가 배신이라는 계획을 꾸미는 것 자체가 충격이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것은 그가 자신을 희생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평소 배신자와 친했던 것만으로도 의혹을 살텐데...배신 전날 밤 둘이서만 같이 있었다니...자신의 편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쓸모없으니 제거한다는 뜻이 아닌가?
운명이란 다 이런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모를 비극, 아무리 원망하고 저주해봤자 돌아올 것이 없는 것.
언제나 그랬다. 행복한 존재는 늘 행복해야 했지만, 불행한 존재는 늘 불행해야 했다. 기껏 마음의 평안함을 되찾았건만...운명은 그를 가만히 나두지 않았다. 그렇게 믿었던 친우에게 배신 당하는 순간. 그가 느꼈던 감정을 아는가? 안그래도 상처받은 마음에 또다시 상처를 얻어야 했던 그의 마음을 아는가?
그 존재는 더이상 과거의 마룡왕이 아니다. 한낮 살려고 몸부림치는 하찮은 인간 따위에 불과하다. 수억년간의 우정을 함께한 친우를 너무나도 쉽게 희생시키는 교활한 놈에 불과하다.
"가겠다. 뒷 일을 부탁하지."
가브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뚝뚝하게 말하고는 텔레포트를 했다.
팟-
가브가 가자 슬픔이 더해갔다. 모든 것은 한순간이였다. 다루핀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가브가 간 자리를 보았다. 그러나 이젠 눈물에 가려 그 자리 조차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온몸이 후들후들 걸렸다. 믿을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 라는 의문까지 들었다. 행복해 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였다. 오히려 가브의 등장은 자신에게 불행을 안겨주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아아아아아!"
울분이 밀려오면서 다루핀은 머리를 감싸 쥐며 분노를 내뱉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 푸른 기가 나더니 주위에 모든 것들을 폭팔 시켰다. 미칠 것 같았다. 정말 미칠것 같았다. 차라리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영원한 아침의 이슬처럼...
그렇게도 살고 싶었니? 그래서 네 모든 것들을 배신했니? 수억년간 함께해온 우정도 저버리고, 너의 모든 존재도 부정하고...결국 그런 거야? 결국 그런 존재였어?
첫댓글 *블랙냥*님 잘읽었어요- 열심히 건필하세요^^-
건피이이이이일-!!!!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