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에 어떤 배움의 과정에 있을 때 겪은 것입니다. 한 백인 형제는 얼굴이 준수했고 말도 잘했습니다. 듣기로는 예전에 라디오 디제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타고난 달변가였습니다. 그가 한번 말을 시작하면 모두 귀를 쫑긋하고 들었습니다. 그의 말은 늘 내용이 흥미롭고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이야기 전개 방식도 듣는 이들이 관심을 놓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돕던 훈련 교사들은 그의 이런 ‘타고난 말 잘함’을 십자가에 넘기도록 그를 도왔습니다. 그 결과, 훈련 과정 후반에는 그는 말보다는 침묵의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의 이런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람의 말은 속에 있는 “믿음의 영”으로 하는 말과 그렇지 않은 말 둘로 나뉨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경에 “나는 믿었기에 말하였다네.”라고 기록된 것과 같이,
우리도 동일한 믿음의 영을 가졌으므로
우리 역시 믿고 말합니다(고후 4:13).
물론 불교 신자들도 자신들의 ‘신심’(信心)을 말하고, 무슬림도 그들의 ‘6대 믿음, 5대 의무’를 철저히 믿고 실천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위 본문에서 말한 ‘믿음의 영을 가지고 믿고 말하는 것’은 이들의 실행과 어떤 점이 차별화되는지를 아래와 같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믿음의 영”: <개역 성경>은 이것을 “믿음의 마음”으로 번역했지만 원문이 ‘퓨뉴마’(4151)이므로 ‘마음’(heart)이 아니라 ‘영’(spirit)이라고 해야 합니다. 참고로 <킹제임스 성경> 계열은 물론이고, <바른 성경>, <새 번역>, <공동번역> 등은 모두 이것을 ‘믿음의 영’으로 바르게 번역했습니다.
한편 이 ‘믿음의 영’이 어떤 영인지가 문제인데, 모든 영어 성경은 소문자 s (the same spirit of faith)를 써서 이 영이 성령이 아닌 사람의 영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엘리코트는 ‘“믿음의 영”은 성령이 아니라, 신성과의 교통 안에 있는 사람의 영이고, 믿음의 특징을 지닌 것’(the “spirit of faith” is not definitely the Holy Spirit, but the human spirit in fellowship with the Divine, and therefore characterized by faith)이라고 말합니다.
<회복역 성경> 관련 각주는 알포드, 빈센트 등 신약 학자들의 관련 견해를 소개한 후에, “믿음의 영은 성령과 사람의 영이 연합된 것이다. 우리는 … 이러한 영을 사용하여 우리가 주님에 대해 체험한 것들, 특별히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말해야 한다. 믿음은 … 성령과 연합된 우리의 영 안에 있다. 의심은 우리의 생각 안에 있다”라고 말합니다(각주 2 참조).
“믿고 말함”: 당연한 말이지만, 타 종교인들의 ‘신심’ 혹은 ‘믿음의 말’에는 예수님이 빠져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즉 그들은 구약 성경을 믿지만 “믿음의 창시자(Author)이시며 완성자(Perfecter)이신 예수님”(히 12:2)은 지금도 부인하고 거절합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심지어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 혹은 믿음의 말에서도 예수님의 인격이 만져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바울 사도는 거듭난 우리가 이 땅에서 체험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것을 말하는 문맥에서 위 본문을 언급합니다. 즉 위 본문 직전 구절은 “죽음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한다”라고 하고, 본문 다음 구절은 “이것은 예수님을 살리신 분께서 예수님과 함께 우리도 살리시고(will raise us also)”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장차 있게 될 우리의 죽은 육신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에 “항상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고”(11절), “날마다 죽는”(고전 15:31) 이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부활 생명을 체험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이렇게 우리가 날마다 죽고 다시 사는 과정을 통해 “겉사람은 썩어 가고 있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고(16절), 이 체험을 믿음의 영 안에서 말해내는 것입니다.
제가 위 본문을 묵상할 때 큰 도움이 되었던 또 다른 구절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반드시 “‘그분께서 –이시다’(that He is, 에고 에이미)라는 것 … 을 믿어야 합니다”라는 말씀입니다(히 11:6, 요 8:24, 28, 58, 출 3:14 참조). 이 말씀의 내재적인 의미는 그분만이 존재하시는 분(He exists)이시고, 우리를 포함하여 만물은 (그분의 눈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선포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그분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긍정적인 것들의 실재이시라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졌습니다. 그중 어떤 이는 자신의 이름 혹은 어록이 오래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빠진 존재, 그리스도가 없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얼마 전 비가 오는 밤 새벽에 집사람인 김자매가 화장실에 가려고 깨었는데 세면대 아래 배관이 터져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와 화장실과 제 방과 세탁장에 물이 가득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다음 날도 역시 비 오는 저녁인데 파킹장에 세워 두었던 차 타이어가 털썩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옛사람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번거로운 일들을 처리하면서 제 안에서는 ‘이 모든 과정에서 부활 생명이신 주님을 살게 하소서. 오, 당신이 나의 지혜와 길이 되어 주소서”라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오 주님, 스스로 아무 말이나 하는 습관을 멈추고,
깊은 속에 있는 믿음의 영으로 말하는 것을 더 배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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