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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가야 하는데, 미안하다." 4월 13일 선천성 난치병을 앓고 있던 네 살 난 친손자의 입과 코를 막아 질식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안모(71ㆍ서울 갈현동)씨는 "아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는 말을 부인에게 자주 들었고, 손자가 치료를 받으며 힘들어 하던 것도 생각이 나 순간적으로 일을 저질렀다"고 눈물을 흘렸다.
손자는 태어날 때부터 희귀난치병을 앓아 오다 최근엔 치료 불가 판정을 받았으며, 명문대 출신으로 벤처 사업을 하고 있는 안씨의 둘째 아들은 이 때문에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2월에는 수원의 한 약사가 운동신경이 점차 마비되는 자신의 희귀난치병을 비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보통 '희귀'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그 대상은 희소성 때문에 가치가 뛰고 고이 보존된다. 그런데 희귀하다고 해서 슬픈 것이 있다. 바로 희귀난치병이다. 이 병을 앓는 환자들은 평생을 '희귀'와 싸우면서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현대 의학으로는 원인 규명이 어렵고 아직은 마땅한 치료약이 없기 때문이다.
환자 자신도 힘들지만 옆에서 그 고통을 함께 지켜봐야 하는 가족의 아픔 또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심지어 기약없는 치료비를 대느라 그들은 생계조차 위협받고 가정 해체의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의 고통은 그들에게만 머물 뿐 우리 사회는 잊고 있다.
그들의 슬픈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면 잠시 관심을 갖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 양 다시 그들만의 아픔으로 되돌아간다.
오늘도 절망과 힘겹게 싸우는 그들 환자와 가족만이 그 병을 감당하기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도 벅차다. 희귀한 것을 보존하기 위해 쏟아붇는 돈과 관심의 10분의 1이라도 희귀난치병 환자들에게 돌린다면 그들과 가족들은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그들과 '희망'이라는 불씨를 함께 나눌 때다. 그리고 그 불씨는 우리의 무관심을 일깨우고, 정부의 제도적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간한국은 의료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희귀난치 질환자와 가족들의 사연과 복지 정책의 개선점 등을 질환별로 집중 조명해보는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내 동생은 나처럼 장애인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초등학생 4학년인 현주(9)의 지난해 일기장에는 비뚤비뚤한 글씨로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현주와 네 살 위의 맏언니 영주(13) 자매는 희귀난치질환 척수성 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ㆍSMA)을 앓고 있다. 팔과 다리를 겨우 움직일 수는 있지만, 제 힘으로 걷거나 일어설 수조차 없다. 이 때문에 지체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애가 심해지는 게 특징. 중학생인 영주는 허리가 심하게 휘어진 척추 측만 합병증까지 앓아 고통이 더해졌다.
SMA는 척수의 전각 세포 변이로 인해 나타나는 신경근육 질환의 하나이다.
팔, 다리, 어깨죽지, 허벅지, 목 등 몸통에 가까운 근육이 먼저 영향을 받아 잘 움직일 수가 없고, 점차 호흡 곤란, 척추 측만, 관절 구축 등의 합병증도 나타난다. 대개 영유아기에 발병한다. 중증의 상당수는 2세 이전에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주와 현주도 채 돌이 되기 전에 질환이 나타났다.
“이 병을 앓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를 거예요. 동생만은 아프지 않고 크길 하느님에게 빌었는데…” 현주와 영주 자매는 또래답지 않게 제법 어른스럽다. 이제 막 두 돌을 맞는 막내동생 상은(생후 23개월)이를 볼 때마다 어린 가슴이 미어진다.
우리 나이로 세 살이 되었다지만 상은이는 아직도 아장아장 걷기는커녕 혼자 일어날 수도 없다. 올 초만 해도 기어 다니기는 했는데, 자꾸 다리에 힘이 없어지는지 이제는 앉혀 두면 움직일 엄두를 전혀 내지 못한다. 돌 무렵, 두 언니들과 마찬가지로 SMA로 판명받았다. 안타깝게도 세 자매 모두가 희귀병에 걸린 것이다. 그날 밤 엄마, 아빠, 두 자매는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상은이를 위해서 이 가족이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이 더 슬프다. 현재로선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다. 걷기, 수(水)치료, 근력 운동 등을 열심히 해서 증상을 완화시킬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의정부시 민락동의 장애인종합복지관 내 작은 수영장. 여느 날처럼 노란색 튜브를 타고 다니며 물놀이를 하던 상은이는 카메라를 보자 신이 난 모양이었다. 대뜸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며 앙증맞은 미소를 날린다. 막내 딸답게 재롱이 넘치는 상은이를 보며 모처럼 언니들도 따라 웃는다.
“손 위로 쫙쫙 펴고, 하나 둘~.” 수영 선생님의 구호에 따라 현주가 힘겹지만 활기차게 물살을 가른다. “물 속에서만은 그나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너무 좋아요.” 휠체어에서 내려와 한결 자유로워진 몸으로 현주는 4~5평 남짓한 자그마한 수영장을 힘껏 왔다갔다 한다.
그러나 맏딸 영주는 뭐가 못마땅한지 투정이다. “수영하기 싫다”는 영주는 사실 수영이 싫은 게 아니다. “수영 끝나고 씻는 시간이 싫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수영이 끝난 뒤 엄마 혼자서 세 딸을 씻기는 게 너무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수영을 하지 않겠단다. 그러자 엄마 정미옥(39ㆍ경기도 포천시 동교동)는 “수영을 해야 병이 더 나빠지지 않는다”며 줄곧 설득했다.
아닌 게 아니라 수영장을 한 번 다녀오면 엄마는 온 몸에 기운이 다 빠진다. 땀으로 샤워를 한 듯 몸이 흠뻑 젖어버린다. 팔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세 자매를 앉혀 놓고 이렇게 옷을 갈아 입히는 데만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세 아이들 잘 키워낼 거예요"
1년 전 상은이가 SMA 판정을 받던 그 날만큼은 엄마도 신에 대한 야속함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영주 때도, 현주 때도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는데…”하며 그 날을 회상하며 목이 메인다. 엄마의 인자한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진짜 다른 건 다 생각을 못하겠고, 오직 이 세 아이들만큼은 잘 키워내야겠다는 마음뿐입니다.”
사실 첫째 영주 때만 해도 엄마는 그 애가 앓는 병이 그렇게 심각한 병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내가 임신 중에 뭘 잘못 먹었을까, 뭘 잘못 했을까” 고민했다. 아기 때만 하더라도 잘 걷지만 못할 뿐 먹고 자고 하는 게 여느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많이 놀라기는 했지만, 운동을 시키면서 잘 키우려고 마음 먹었다”고 했다.
SMA라는 병명을 처음 들은 것은, 막 둘째 딸 현주를 출산한 직후였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치료법도 없는 희귀난치질환이라고 했다. 의외로 남편 김해갑(41)씨는 그런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너무 낙담하지 말라며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을 씻기고 밥 먹여 주는 등 묵묵히 살뜰하게 돌봐주었다. 그녀가 버틸 수 있게 한 건 바로 그 같은 가족의 힘이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보며 “다음엔 건강한 아이를 낳아야지”라며 셋째 아이 출산을 결심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따가웠다. “아이 둘이나 잘 키우지, 또 낳냐.” 임신기간 내내 옷깃으로 부른 배를 감추고 다녔다.
서른여덟 나이에 늦둥이를 낳는 것이라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뻤다. “첫째 둘째를 키우면서 저렇게 예쁜 애들이 걸어 다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마다 별을 보며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면 아빠한테도 큰 힘이 될 것이라 용기를 냈죠.”
건강한 셋째 아이에 대한 바람은 그래서 더욱 간절했다. 훗날 부부가 죽고 없어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형제를 꼭 만들어 주고 싶었다. 임신 중, 이번엔 과거의 아픈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SMA질환의 유전 여부를 알 수 있는 검사를 사전에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태아가 건강하다”는 최종 진단 결과를 받았다.
하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상은이 역시 돌이 다 되도록 걷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는 ‘설마 아니겠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어,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신은 우릴 버리지 않을 거야’ 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임신 전 검사서도 “건강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운명은 가혹했다. 엄마의 간절한 소망을 무참히 저버렸다.
엄마는 “아무런 해명이 없는 병원측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고, 세상 밖으로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려운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애가 돌이 됐는데, 왜 안 걸어?” 이웃들의 걱정어린 관심이 그녀의 가슴에 되레 비수처럼 꽂혔다.
한계에 다다른 경제적 어려움
경제적 어려움도 뒤따랐다. 의정부에서 남편과 함께 꾸려왔던 화장품 가게를 접었다. 몸을 자유롭게 가눌 수 없는 아이 셋을 돌봐야 하니 예전처럼 다시 가게를 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포천으로 이사한 뒤 보건소에서 간병비 명목으로 지원 받는 월 20만원이 소득의 전부다. 차량으로 등ㆍ하교하는 데 드는 차량 유지비와 난방비 등 한 달이면 200만원이 넘는 생활비가 든다. 가게를 운영하며 모아두었던 통장의 잔고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형편이 그러하지만 남편은 적극적으로 생계 전선에 나설 수도 없다. 아내와 함께 아이들 돌보랴, 집안 꾸려나가랴, 하루하루 시름이 늘어간다.
엄마는 “전에는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으니까 난치질환에 대해 복지 혜택은 크게 바라지도 않았지만 아이 셋이 모두 희귀병을 앓고 보니 가족이 짐을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고 남모를 고충을 털어邨年?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엄마와 아빠를 웃게 하는 것은 역시 아이들. 영주와 현주는 특히 공부를 곧잘 한다. 전교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수재인 현주는 “훌륭한 변호사가 돼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한다. 손 재주가 있는 영주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장래 희망이다.
엄마는 이런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몸이 불편해서 과외나 학원 한 번 보내기 어려운데, 함께 놀아주고 공부도 가르쳐 주는 중증 장애아 지원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바람을 내비쳤다.
현재 복지관에서 장애인 가정을 지원하는 도우미 서비스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저소득층 등 일부 극소수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상황.
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적 기준에 따라 장애 등급만 부여할 뿐, 이에 대한 실질적 제도적 지원이 뒤따르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영국 미국 등 선진국처럼 장애에 따른 의료적 지원은 물론 교육ㆍ가사 등 체계적 복지 서비스 지원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선진 복지 혜택이 어느 곳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지 이젠 느껴야 할 때다.
미국 재활부는 장애를 가진 사람의 개인별 프로그램 계획(IPP: Individual Program Plan)에 따라 각각 다른 서비스를 제공한다. 1년 단위로 수립되는 이 계획에는 장애인 상담ㆍ지도하는 것부터 의료서비스, 정신상태, 직업적 적성 검사를 통한 직업훈련 및 교육, 직장 실습 등 기회도 제공한다.
IPP는 장애를 가진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여 작성되며, 정부는 복지기관과의 계약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복지기관은 먼저 대상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후에 정부로부터 요금을 돌려받는 식이다.
각 복지기관과 자원을 연계해주는 역할은 사회복지사가 수행한다. 장애인 소비자들의 선택권 보장을 위한 소비자고발센터 등도 활성화돼 있다.
신경 근육 질환의 하나로, 부모로부터 SMA의 유전 인자를 하나씩 받아서 생기는 질환이다. 극히 드물지만 변이(Mutation)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불량성 유전인자가 하나인 사람은 평생토록 증후가 나타나지 않은 채 살아가지만, 부모가 모두 보인자인 경우 한 명의 자녀가 SMA환자가 될 확률은 25%로 나타난다.
대체로 인구 40명당 1명 꼴로 SMA 보인자이고 6,000명당 1명꼴로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유전으로 인한 유아(2살 미만)의 주요 사망 원인이다.
척수 신경이 감각은 받아들이지만, 근육에 운동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몸통에 가까운 근육부터 점차 국부적인 운동신경이 영향을 받게 돼 기지도, 걷지도, 서지도 못한다. 장애 정도에 따라 숨쉬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면역 기능 저하, 배설기능 약화, 근육의 떨림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감각은 정상이며, 언어구사 능력 등 지적 능력은 오히려 뛰어난 편이다.
진단법으로는 혈액 검사, 근육의 전기 검사, 세포 검사 등이 있다. 현재로선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직 연구단계에 있을 뿐이며, 단지 걷기, 수치료 등 근육 운동을 통해 증세 완화를 돕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