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립운동 지도자로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 피난처 기념관이 2006년 5월 27일 중국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에서 문을 열었다.
김구 선생은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上海) 홍커우(虹口)공원 의거 이후 중국인 민주인사 추푸청( <褚 輔成) 선생의 도움으로 자싱으로 피신, 2년을 머물렀다.
자싱시 인민정부는 김구 선생이 머문 자싱 남문 메이완제(梅灣街) 76번지 천통성(陳桐生, 추푸청 선생의 양자)씨의 주거지를 2000년 시급 문물보호지역으로 지정한데 이어 2005년 이곳을 전면 수리하고 성급 문물보호지역으로 선포한뒤 이날 개관했다.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천통성씨의 주거지는 청말에 건립된 2층짜리 목조건물로 건축면적은 270㎡, 남쪽으로 시난후(西南湖)에 접해있다.
김양 주상하이 총영사는 김구 선생 피난처는 고난의 세월 한중 양국 국민들이 공동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깊은 우애를 쌓은 증거라고 말했다.
또 자싱시 정부는 이날 자싱 남문 르후이차오(日暉橋) 17번지 한국임시정부 요원 숙소도 함께 개방했다. 당시 이곳에서는 이동녕, 박찬익, 엄항섭, 김일한 선생 등 애국지사와 그 가족들이 머물며 김구 선생을 도와 독립운동을 벌였다.
자싱시 정부는 김구 선생 피난처 기념관과 인접한곳에 추푸청 역사자료실을 건립했다. 한국 정부는 고 추푸청 선생의 독립유공을 인정해 1996년 독립유공훈장을 추서한 바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중국측에서 마젠(馬健) 자싱시 정협 부주석, 왕춘(王淳) 자싱 인민정부 부시장, 추푸청 선생의 가족 등이, 한국에서 김신 백범기념사업회 회장, 김양 주상하이 총영사, 국가보훈처 심현재 과장, 독립기념관 박동규 사무처장 등이 참석했다.
기념관 건물 1층에는 김구선생 흉상이 있고 흉상 위에는 ‘獨立精神’이 새겨져 있으며
자싱에서의 김구선생 흔적을 남겨놓았다.
그리고 김구선생 친필인 ‘良心建國’ 액자가 걸려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 ‘김구의 모친·김신의 침실’과 ‘엄항섭일가의 침실’ 등이 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비좁다.
친일파 후손들이 이곳에 올리 만무하지만, 만약 이곳에 온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될까?
자신들의 선친들이 친일 반민족 국가 행위들에 대해 부끄러워 하고 속죄의 마음과 자세가 될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고생했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굶주리고 헐벗고
생고생 날고생으로 근근히 연명하는 처지를 겪었으며 잘 배우지 못해
대를 이어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데,
자기 조국과 양심을 판 조상 덕에 잘 배운 친일파 후손들은 지금도 큰 소리치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으니, 도대체 우리 해방된 강건한 부국대열에 들어가는 대한의 후손들은
어찌 소홀히한 그 책임과 의무에 대해 부그러워 하지 않을 수 있겠느가?
이러고도 이를 모르는체 후안무치(厚顔無恥)하게 땅소송과 친일부재 찾기에 나서는 친일후손들의
파렴치함을 모른체 해서 되겠는가?
일제시대 일본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장교를 했던 사람이 쿠데타로 대통령이 되어
국정을 장악하고, 만주군특별대의 장교로 독립군과 지사들을 타압하고 위기로 몰아 독립의 생명줄을 끊었던
인사가 국군의 수뇌부가 되어 반공을 빌미로 양민학살로 전공을 세워 전쟁영웅이 되고,
친일로 구가하던 사람들이 버젓이 국회의원,고위 관료 군·경 등 요직을 차지하였으니,
독립운동가를 잡아 고문하던 악질 왜놈의 앞잡이들이 독립운동가로 둔갑하고,
친일파 후손들 또한 조상의 후광으로 대를 이어가며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니 ....
세계가 웃고 애처로이 여길만한 우리의 내면세계입니다.
아직도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하여, 친일족들의 기득권과 기세가 잔존하여 사회 각 분야의 영역에
뿌리내렸으며 이들이 궐기한 바로 오늘날의 친일수구꼴통들이 새로이 벌이는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의
각종 농간이 극에 다다르고 있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우물쭈물 끌려다니며 민주화와 양심의 간극에서 서서 그들의 앙발에도
소극적이고 형식적 처리로 얼버무려 가고 있습니다.
심으로 참으로 유감이고 민족의 장래와 정기에 걱정이 앞서지 않을수 없습니다.






褚輔成추푸청선생의 옛 집터에는 추푸청사료진열실이 있다.
1937년 일본비행기의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2006년 5월 嘉興자싱시에서 복원하여
추푸청선생의 동상, 생전의 사진 그리고 추푸청선생이
국가의 독립과 부강을 위해 민족민주정치제도의 건립을 위해 싸웠던
여러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다.
추푸청 사료진열실 바로 옆에는 근재(뿌리공예)가 있다.
근재(根材)는 뿌리 예술가인 장정(張正)선생의 뿌리조각 작품을 전시해 놓은 전시관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뿌리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褚輔成(추푸청)선생, 중국민주인사,상해복단대 총장 역임,대한임정과 김구선생의 당시 후견을 자임하였던 당대 상해를 포함한 화동지역 최고의 민주개혁인 민족주의 인사입니다.

뿌리공예의 진수

복자를 거꾸로...복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쏟아져 내려오라는 뜻입니다
첫댓글 친일 반민족 수구 꼴통들이 한반도를 쥐락피락 하고 있으니....오호통재로다....언제든 잊어서는 아니 될 역사의 숨결을 다시 살펴보십시다
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아직도 뉴라이트 등 친일파 넘들이 설쳐대고 있으니 죽어서라도 순국선열님들 뵈올 면목도 없네요.. 제 친구는 아들의 이름을 백범의 "범" 김구의 "구"를 따와서 범구라고 지었습니다..
내가 오늘 대한의 곤궁에 눈을 감는 한,저들은 자손대대 희희락락 비열함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저의 별명은 무정백한선무호 입니다...민족의 깊은 한을 담아두려 그리 지었답니다....
사진이 있어 혹시 어떤분이신가 궁금해서 사진을 봐도 님의 모습은 안보이네요..
많은 지식을 언제나 베풀어 주시길 바래봅니다.
산동지기님,뿌간당의 말씀이십니다....어떤 명인들의 글을 모시고 다니는 놀생일 뿐입니다. 어찌 제가 감히 사진의 역사속으로 끼어들 수 있겠습니까? 혹여 기회가 주어져도 사진기들이 저만 보면 졸도를 하는 통에....아직은 not a history but a rolling stone thru moss! 입니다요...
면면히 흐르는 우리 조상들의 기개를 보니 뿌듯하고 뒤늦게라도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는데 앞장선 상하이 총영사관과 자싱시에 감사합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현재가 아무리 암울한 현실이더라도 우리의 얼을 잊으면 안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