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갑옷 명광개 빛을 반사하여 적의 씨야를 가리는 치명적인 무기인 명광개와 금휴개
이둘이 똑같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양식의 갑옷인지 미스테리이지만
삼국사기에서는 백제 무왕이 명광개를 당에 보내면서 고구려의 침략을 막아달라고
부탁한 기록과 삼국사기 고당전쟁 기록에서 당군이 요동성 전투때 백제가 보내준 황칠 한 금휴개 갑옷으로 무장하여
갑옷이 햇빛에 반사되어 효과를 거두었다는 기록과
주필산 전투에서 명광개 1만여개를 얻었다는 기록을 고려하면 백제의 금휴개 명광개가 중국 것보다 우수했음을 반증하는 근거들이지요
당군이 백제에서 수입한 명광개 금휴개로 무장할 정도라면 당나라도 자체적으로 생산한 자국 갑주보다
백제에서 수입된 갑주를 중시했음을 알수가 있지 않을까요
당태종이 백제를 제지해 달라는 선덕여왕의 청을 거절하고 친백제적인 행보를 보인 것도
이런 당의 주요 무기인 금휴개가 백제의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적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이지요
백제가 보내온 명광개를 보고 난 당고조 이연이 백제의 요구를 받아들여 주자사를
삼국에 보내 중재 요구를 한 정황을 보더라도 당은 백제의 금휴개 명광개를 탐이 났음을 알수가 있지요
첫댓글 백제 것이 우수했을 수 있어도.. 고구려와의 전쟁에 착용한 것은 백제도 우리 편이니 고구려 너는 이제 알아서 항복해라... 이런 의미가 크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태종은 딱히 친백제 행보를 보인 적 없습니다. 그냥 여자니까 대놓고 무시한 거지
비약이지요 고구려군도 명광개를 소유하고 있는 터라 당나라도 백제가 고구려에 명광개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명광개 재료 수입공급처가 백제라는 군수경제적 현실을 감안하여 당태종은 재위기간내내 여제동맹 성향을 보인 백제와 적대적인 외교행태를 보인 적도 없었고 김춘추와의 동맹을 체결을 용인했지만 그렇다고 친백제 외교 정책을 파기하지 않았지요 적대적인 외교 행태가 드러난건 당고종대에 와서 부터이지요
여자라고 무시한게 아니라 당태종으로서는 백제가 당의 삼국외교에서 우호적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신라의 요청을 거부한 것이고 여자라서 무시하였다면 진덕여왕대의 신라의 동맹요청도 거부했을 것이지요 그런데 당태종이 상반된 행동을 보인 걸 보면 여자선입견으로 무시하였다고 보기가 어렵지요
@공실불 여자라고 무시한 것 맞습니다. 우호적 비중이 있어도 적당히 사신 한 번 보낼 수 있지요. 그걸 안 한건 대놓고 여자라고 무시한 겁니다.
여자라고 무시했다면 진덕여왕대의 동맹 요청을 거절했을 것이지요 김춘추의 회담에서 당태종이 김춘추를 푸대접했을 것이지요
그 당시 당태종은 신라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신라가 필요하니 손을 잡은 겁니다. 게다가 사실상 군주가 김춘추 김유신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고요.
단지 여자니까 대놓고 무시...라고 하기엔 전후 정세를 살펴봐야죠... 수/당이 그렇다면 그 전후인 진평왕이나 후의 무열왕 때에는 '남자왕이니까 신라를 대놓고 무시하지 못했'습니까? 딱히 그런 변화를 보인 거 같진 않던데요; 선덕/진덕여왕 당시 신라를 아래로 대하는 태도에 하나의 핑계로 써먹었을 가능성이야 있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