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날짜를 넘겨서 호텔(The Taj Residency)에 체크인했다. 아그라 포트 역에서 아그라 포트 쪽으로 이동했다. 아그라 포트까지는 1km라는 호텔은, 도보로 아그라 포트를 갈 수 있다는 점 외에는 아무런 매력이 없다.
방에 들어가서 세수를 했는데, 물에 어떤 성분이 섞인 것인지 몰라도 눈이 따가웠다. 아내는 양치질 할 때, 물맛이 짰다고 한다. 나는 미네럴 워터로 양치를 했다.
아내의 분석으로는, 이 동네가 워낙 추접은 동네라 비가 오면 쓰레기가 씻겨 내려가서 지하수를 오염시키는지, 그 물을 다시 퍼올려서 생기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이후 아내는 아그라에서는 아침에 미네럴 워터를 끓여서 라면을 하나 먹은 뒤 인도식당의 음식들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커리도, 밥도 ---.
이 여행상품이 저가이므로 호텔의 수준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고생 덕분에 절약해서, 고행 여행이 또하나의 ‘수입 올리기’라 생각하면서 위로한다.
2
아그라 포트까지 걸어서 간다. 네 번째로 오는 걸음인데, 그 성 입구에 동상 하나가 서있다. 장군상(像)이다. 누군지 알 수 없어서, 물어보았다.“쉬바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놀라운 일이다. 아그라 포트는 무굴제국의 샤자한이나 그 아들 제항기르와 관련이 있고, 그들은 모두 무굴제국의 황제들이 아닌가. 그 반면 바로 그들의 무굴제국의 남하를 저지하면서 투쟁했던 힌두의 지도자가 쉬바지인데 --- 비록 당시는 무굴의 6대 황제 아우랑제브의 시대이긴 했으나 ---, 여기 아그라의 아그라 포트 바로 정면에, 그 성을 향해서 말탄 장군 쉬바지를 세워놓고 있다. 뭔가 뜻한 바 있어서인가, 아니면 우연인가?
실제 아그라에는, 저 위의 힌두 성지 푸쉬카르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무슬림들이 많이 보인다. 현재 무슬림 인구가 많은 것 역시 400년 전에 있었던 무슬림의 영화와 무관한 것은 아닐 터이다.
아그라 포트는 세 번이나 가보았으나, ‘좋은 성’이었다는 기억 뿐, 사실 나쁜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행보에서 나는 공분(公憤)과 의분(義憤)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성에 들어가기 전에, 해자 위에 걸쳐놓은 다리를 지날 때의 일이었다. 해자의 섞은 물에서 올라오는 악취, 인분냄새까지 뒤섞인 악취 때문이었다. 순간, 내 눈은 해자의 물을 볼 수밖에 없었다. 온갖 오물들, 정체를 알 수 없는 갖가지 오물들이 둥둥 떠있고 ---. 그런 악취가 하루에도 수천 수만은 될, 온 세계에서 온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입장료를 받는데, 250뤼 + 50루피해서 합이 300루피다. 250루피는 인도고고조사국에 들어가고. 50루피는 아그라‘개발’청(Agra Development Authority)에 들어가는 수입이란다. 그 많은 돈이 다 어디에 쓰인다는 말인가? 당연히 해자 --- 아그라 포트 전체에서 남아있는 해자의 길이와 넓이는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 를 깨끗이 정화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 속에서 살아서, 인도인들은 후각을 잃어버린 것일까?
나 자신 후각이 결코 예민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그라 포트의 해자를 정화하라”는 1인시위라도 하고 싶었다.
아그라 포트를 다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입장료 받는 사람들에게 메모지에 쓴 글을 집어넣어주고 왔다.
“아그라 포트 해자를 깨끗이 해주세요. 악취는 아그라와 인도에 수치가 될 것입니다. 해자의 물을 깨끗이 해주세요.”
물론 무슨 효과가 있겠나? 슬쩍 보고서는 쓰레기통에 던지고 말겠지. 아그라든 어디든 동네나 역이 추접다고 해서, 내가 구청이나 시청에 대고서 “청소 좀 해라.” 그런 소리는 할 수가 없다. “더러우면 오지 마”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그라 포트의 해자 물이 더러워서 악취가 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불평할 권리가 있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나와 유관할 뿐만 아니라, 직접 300루피라는 입장료를 냈기 때문이다. 뿐만 이던가. 그것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그라 포트는 세계문화유산과 자연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한 협정의 세계유산으로 등
재되어 있다. 여기에 등재되었다는 것은 모든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보존할 만한, 문화
유산이나 자연유산의 예외적이고도 보편적인 가치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동의할 수 있다. 바로 그렇기에 아그라 포트의 물이 썪은 물인지 악취가 진동하는 지와 같은 문제는 인도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관심사이자 책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일선에서 확인해야 할 주체는 유네스코가 아닐까? 정말 알 수는 없다. 유네스코는 성의 역사적 가치나 건축적 건축만을 평가해서 좋은 것일까? 성의 일부인 해자의 물이 이 모양이 되어 있는데, 그래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일까 적어도 그 정화를 강력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인도고고조사국, 아그라개발청, 그리고 유네스코를 고발하고 싶다! “모든 인류”라고 하는 최종적 심판자들에게 ---.
3
타지마할 남문 밖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옥상식당인데, 타즈마할이 잘 보인다. 언제봐도 이쁘고 아름답다. 아그라 포트에서 볼 때는, 잘 안 보였는데 ---. 안개인지, 운무인지, 스모그인지 --- 잔쯕 끼여 있어서였다.
사진을 몇 장 찍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타지마할에는 굳이 들어가지 않기로 한다. 이쁜 타지마할을 한 번 더 보는 것이, 내 개인적으로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뭔가 새롭게 나를 공부시킬 것은 없다. 새롭게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해서 기대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영화관을 가기로 했다. Pacific Cinema라는 영화관으로 갔다. 영화를 통해서 인도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 뭔가 배울 수 있기를,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영화관 입구에서 가방을 맡기란다. 카메라를 못 가져갔다. 다행히 내 카메라는 그들이 보지 못했다. 영화 중간의 휴식시간(intermission)에 화장실 다녀오다가 포스터를 찍었는데, 들켰다. “Raj Kuma"라는 영화와 “Singh Saab the Great"라는 영화다. 라즈 쿠마르는 인도의 유명한 영화배우인데, 우리가 처음 벵갈로르를 갔을 때 무장조직 타밀호랑이(Tamil Tiger)에 의해서 납치된 적이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벵갈로르를 예정보다 일찍 떠나버린 일이 인연이 있다. 그 배우를 영화로 찍은 것같다.
“Singh Saab the Great"는 우리가 보기로 한 영화다. 시크교도가 주인공인 영화인데, ‘싱’은 시크교도임을 나타내는 성이다. 3시간이나 되는 긴 영화로서 액션이 중심이고, 러브 스토리와 춤, 노래가 뒤섞인 ‘볼리우드 영화’다.
말을 못 알아듣지만, ‘선에 의한 악의 정벌’,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신의 아봐타인 영웅이 기다려진다는 구조다. 인도신화나 서사시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플롯이 그대로 적용된다.
예고편을 포함해서, 이 영화까지 ‘폭력’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아내도 그 점을 걱정한다.
“인도사람들이 점점 더 폭력에 무감각해져 가는 것같다.”
폭력이 악이라면, 선은 비폭력이 되는 것이 맞지 않은가? 선이 비폭력일 때 악의 폭력을 과연 무찌를 수 있는가
주인공이 억울하게(?) 감옥에 갔을 때, 교도관인 듯한 사람이 내미는 아내의 유서가 하필이면 『비베카난다』라는 제목의 책 속에 끼워져 있었다. 왜 비베카난다? 그는 인도국민들에게‘강한 남자’로 재생하라고 호소했던 힌두 민족주의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것일까? 또 중간 중간 보이는 사무실 장면에서는 간디의 사진이 걸려있다. 간디는 비폭력을 부르짖었던 인물이 아닌가.
영화 내내 폭력의 악순환. 보복과 보복이 이어졌다. 관객들은 천한 주인공 --- 아내가 피살되었으므로 복수가 정의라고 믿는 --- 의 보복에 환호한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악인이 쏜 총탄에, 오히려 그토록 사랑하던 그의 딸아이가 맞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의료진은 수술을 거부하고 ---. 선한 주인공은 의료진을 설득하고, 악인은 그 모습에 감동과 감사를 표한다. 그러니 해피엔딩이라 볼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마지막이 화쟁(?)이 비폭력이라고 해서, 이 영화의 주제가 비폭력이라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마하바라타』의 주제 역시 비폭력이라 할 수 있으리라. 간디는 그렇게 생각했다. 과연 그렇게 보아도 좋은 것일까? 관객들은 그 마지막 장면(주제, 혹은 결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3시간을 영화관에서 앉아있는 것일까? 그 긴긴 폭력의 반복은 다 씻겨나가고 비폭력의 메시지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Singh Saab the Great"의 주제나 『마하바라타』의 주제가 적어도 ‘폭력고취’라고 보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폭력 용인’으로 보는 것은 불가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이는 앞으로 내가 써야 할 논문 한 편의 주제이다.
마침 예고편을 보니까, 『마하바라타』의 에니메이션이 12월에 개봉한다는 소식이다. 그 장엄함이 한번 보고 싶게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 아그라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2013년 11월 26일, 인도 카주라호)
* 후기 :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으로 타지마할을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이 감소했다고 한다.(2015년 1월 4일.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