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당 입구쪽 콘크리트 바닥의 틈새에 뽕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습니다.
주변에 오동나무도 좁은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자라갑니다.
자라면 뽑거나 잘라 버리지만
단단한 시멘트 바닥속에 있으니 뿌리까지 뽑아내지는 못합니다.
하필이면 씨앗이 어디서 날아 왔는지
이런 시멘트 바닥 속으로 떨어져서 자라고 있는지 안타까워 보입니다.
주변은 전부 시멘트 뿐이고 열기도 뜨겁고 물기도 없는데
어떻게 자라는지 신기하지만 척박한 환경속에 태어난
슬픈 운명을 지닌 나무입니다.
그런데 잘라도 잘라도 다시 싹이 나고 자랍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뽕나무는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누에도 많이 먹이던 시절입니다.
뽕잎은 누에를 주지만 오디 열매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좋은 옥토받에 자라난 나무와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나무가
대접을 다르게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 라고 하지만
주변과의 관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도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면 금수저라고 부르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면 흙수저라고 부릅니다.
사람도 자기가 태어날 집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어느 날 태어나 보니 자신의 환경이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면 나무들의 운명은 사람이 옮겨주면 좋은 환경으로 갈 수 있지만
사람의 손이 옮기지 않으면 스스로 환경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도 자신의 환경을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끔 사람은 스스로 환경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디를 가든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고
환경이 나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환경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나무를 사람이 옮기듯이 사람은 하나님이 환경을 바꾸어 주십니다.
잠언 16장 7절에 보면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 주변환경을 친화적으로 만들어 주시고
좋은 환경으로 바꾸시고 사람들의 마음도 바꾸어 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환경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이 좋은 환경으로 바꾸어 주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