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균형과 건전한 가르침
※ 부요함은 오직 드리는 것에만 관계가 있는가?
부요함을 가르치면서 너무나 많은 설교자들이 재정적인 넉넉함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오직 한 가지, 즉 드리는 것에 관계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대개는 그들 자신에게 드리는 것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저를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나도 주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나도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드리는 것만이 부요함에 이르는 유일한 열쇠는 아닙니다.
나의 아들 케네스 해긴 주니어는 오클라호마 브로큰 애로우에 있는 레마 성경 교회의 목사입니다. 그는 레마 성경 훈련소의 학생이 대부분인 많은 수의 젊은이들에게 부요함에 관해 설교를 합니다. 켄은 부요함을 정의하고 확실한 부요함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란 것을 보여주는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시킵니다. 성경공부의 내용 중에 켄은 성경적 부요함의 결정적인 요소로서 십일조와 드리는 것에 관해 가르칩니다.
그는 또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을 알고 행하는 것이 우리들의 부요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은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보다시피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통케 하는 것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길을 형통하게 만드는 것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켄이 부요함의 영적인 면만 다루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는 또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기술과 관심을 발견해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떤 사역으로 인도하시는지 하나님께 구하라고 격려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을 받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관하여 광범위한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그는 그들의 직장에서 진급하고 발전하기를 원하는 성인들에게 공부를 더하고 특별한 훈련을 받으라고 조언합니다.
켄은 또한 사람들이 그들의 직장에서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일을 잘 해내는 일꾼이 인정을 받고 보상을 받게 됩니다. 물론 우리 직장이나 경제 상황만을 신뢰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재정적인 부요함이 전적으로 한 사람의 직업과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많은 근원을 사용하시지만 대부분 최우선적인 복의 통로로서 우리의 직장을 사용하십니다. 대개 어떤 사람의 재정적인 부요함과 그 사람이 일터에서 지는 책임의 양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전문적이고 보다 기술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즉 많은 능력이 요구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재정적으로 더 큰 보수를 받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살전4:11, 13).
그는 또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3:23).
켄이 그의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갖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당신이 의심과 불신앙으로 가득 찬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의심과 불신앙에 물들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항상 비판적이고 불평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런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거짓말만하고 속이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당신의 도덕적 성품을 타협시키는 유혹을 받지 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 사람들이 난로에 나무나 석탄을 때던 시절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서 난로통을 다룰 수는 없습니다."
※ 전반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주제는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목사와 교사는 한 부분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전부를 가르칠 책임이 있다고 믿습니다. 켄이 부요함에 관해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드리는 것에 관해 말하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균형을 이 주제가 보충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균형을 잃으므로 어떤 진리만을 강조하고 행하면서 다른 것들은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깁니다.
우리는 성경이 부요함에 대해 치우치거나 균형 잃은 메시지를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부요케 되기를 원하시면 드리십시오!" 라고 계속 말하는 것 말고도 너무나 많은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전반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들은 그 주제에 관해서 단지 한쪽만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불공정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자신들로 하여금 돈을 내도록 하기 위해 드리는 것을 강조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납득할만한 대답을 해주어야 합니다. 말씀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으면서 단지 하나님을 "도와드리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계속 돈을 요구하여 모으려고 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또 하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역자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부요함이 사치스러운 부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거나 그렇게 믿도록 인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요함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왕궁 같은 집에 살며 화려한 차를 몰고 다니며 디자이너 이름이 붙어있는 값비싼 옷을 입고 살 것이라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부요함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각종 요금을 지불할 수 있고 그들의 가족을 위하여 삶의 기본적인 안락함을 제공하는 것이 위대한 복일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부요하게 산다는 것이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거나 곡식을 심을 수 있도록 밭을 갈 수 있는 황소 한 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 하나님은 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복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부요함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로는 우리가 사는 지역 사회와 나라와 온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요케 하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잃어버리게 되면 우리는 그 복을 놓치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수년 동안 레마 성경 훈련소는 수천 명의 일꾼을 추수하는 곳에 보냈습니다. 많은 졸업생들이 지역교회에서 목회자나 돕는 자로서 섬기고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선교 현장에 나가있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 중에 하나는 학생이었던 사람들로부터 주님을 위해 그들이 하고 있는 일들에 관한 보고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복음을 듣고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린 많은 개발 도상국가들의 사람들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기 시작하자 그들도 삶 가운데서 부요함과 재정적 증가를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감사하게 여기는 것들이 선진국 사람들에게는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자녀들을 위해 먹을만한 물이 있다든지 비가 새지 않는 지붕을 갖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극적인 발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 선교 지도자도 그러한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나라의 교통수단이라고는 걷는 것뿐이었다는 것을 간증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그가 그들에게 부요함의 원칙에 관해 가르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것을 믿을 것을 가르치기 시작한지 일년 정도 되었을 때 그 지역의 모든 사역자들이 자전거나 오토바이나 다른 동력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나누고 예수님을 설교하기 위해 다른 마을에 가기가 훨씬 쉬워지고 편리해 졌습니다. 지금도 그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보면 아직 부자가 아닙니다만 그들 스스로는 복을 받아 부요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요케 되는 것은 '미국식 복음'(American gospel)이 아닙니다. 이 진리는 아프리카, 인도, 중국 어디든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곳에서 역사할 것입니다.
이 땅의 가장 가난한 곳에서 진리가 아니라면 그것은 전혀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왜 미국과 다른 선진국들이 물질적인 자원으로 복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완전한 해답을 알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우리가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후진국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도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 자원을 맡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명을 세계적으로 완성하고 다른 선한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후원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12:48)
야고보 사도도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약4:17).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심으로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선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알고 있으므로 좋은 청지기가 되십시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끼치고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돕는 일 뿐 아니라 우리의 재정을 신뢰할 만하고 생산적인 사역에 투자할 책임이 있습니다. 농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씨앗을 좋은 땅에 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내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인들이 첫 번째 우선적으로 드릴 곳은 그의 지역교회라고 나는 믿습니다. 십일조는 교회의 사역자들과 교회 회중들의 전도사역을 후원하도록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두 번째로, 믿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영적 양식을 제공하고 '함께 하는 동역자'가 되기를 헌신한 다른 사역들을 후원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이런 후원은 십일조 이외에 추가로 헌금을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우리의 기본적인 드림은 계획적이고 조직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바울은 믿는 자들이 '마음에 뜻을 정하여' 드리도록 촉구했습니다. 이 말은 감정적인 호소나 죄의식이나 다른 어떤 충동을 따라 하지 말고 목적을 가지고 드리라는 뜻입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하는 대로' 드리는 것도 좋습니다만 그런 경우는 자신이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드리는 것 대신이 아니라 그 위에 더하여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그 사역과 프로그램을 순조롭게 진행하려면 믿을 수 있는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후원이 필요합니다. 교인들의 불규칙적이고 일정하지 않은 헌금은 교회가 계획하고 예산을 세우는데 어려움을 줍니다.
지역교회의 후원을 받지만 교회 밖에서 기능을 하는 사역의 경우에도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헌금에 의지해야 합니다. 가끔 드리거나 한 번 하는 헌금도 환영할만한 것이고 감사할 일이지만 케네스 해긴 미니스트리와 같은 조직체의 경우 신뢰할 수 있는 정기적인 수입의 흐름이 필요합니다. 매월 정기적인 헌금을 보내기로 헌신한 친구들로 구성된 '말씀 동역자 클럽'(Word Partner Club)의 목적도 이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산적이며 복음을 전파하는데 적극적인 사역 단체나 교회의 확장된 사역을 하는 단체를 찾아내어 후원을 해야 합니다. 이런 곳에 물질로 후원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해 볼 수 있습니다.
- 사역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듭나며 성령 충만을 받는가?
- 전도사역을 통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 안에 세워지고 강건케 되고 있는가?
- 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가?
- 사역자들이 나오고 교회가 세워지고 있는가?
- 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세상에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 메시지는 진리인가?
- 재정의 청지기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
- 사역(과 사역자들)이 재정적으로 책임성이 있는가?
어떤 사역이 건전하고 도울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주의해 보아야 할 경고
의 표시나 빨간 깃발도 있습니다. 나는 아래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조직을 후원하거나 관
계를 맺는 일에는 철저히 주의를 기울일 것을 제안합니다.
- "지금 드려야만 됩니다!"라고 말하면서 압력을 가하거나 충동적인 헌금을 조장한다. 당신
이 헌금하지 않으면 정죄감이나 죄책감이 들도록 만든다. 당신의 주머니로부터 '예언하므
로' 돈을 끌어내는 경우와 같이 과장하거나 감정에 들뜨게 하거나, 영적인 조종을 한다.
- "지금 헌금하는 사람은 누구나 100배로 돌려받을 것이다"라거나 "이번에 헌금하는 사람은
모든 부채가 탕감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터무니 없는 약속을 한다. 지역교회를 후원할 것
을 격려하지 않거나 후원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사역은 자기들 뿐이라는 생각을 비친다.
사역 자체보다 돈을 걷는데 더 많은 힘과 시간을 사용한다. 속임수와 기분에 따른 한탕주
의를 통해 돈을 내라고 호소한다.
재정과 부요함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 있어서 균형을 유지하도록 노력합시다. 실제적인 지혜와 상식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전부를 찾아보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당신은 항상 도로의 한 가운데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