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마음을 열어준 한마디
5일 이른 아침 관내 장애인 종합복지관으로 목욕을 갔다. 11월 들어서며 부설 수영장 누수시설 수리공사가 시작되어 지하에 있는 샤워 목욕장은 수영장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몰려든 탓인지 여느 때보다 사람이 많았다.
욕장에 들어서 자라를 잡으려 할 때 먼저 들어와 목욕 중이던 지면이 있는 할아버지 한 분에게 목 인사를 드렸더니 빙긋이 웃으며 옆 빈자리를 가리키며 의자를 밀어 놓으며 앉으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30대 중증 장애인을 돌보시는 도우미이시다. 복지관에서 뵐 때마다 수동휠체어에 그 중증장애인을 태우고 오신다.
70대 중반의 건장한 할아버지는 신청해 놓은 통증과 재활프로그램 시간에 맞춰 장애인이 제대로 프로그램을 마치도록 휠체어를 끌고 다니며 아주 열심이시다. 장애인은 좌우 수족의 장애는 물론 말도 못하고 눈도 제대로 바라보지를 못하며 짜증이 날 때면 크게 기성을 발하며 오징어발놀림처럼 손과 팔 다리를 멋대로 놀려대며 몸을 놀려댄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에게 몸짓과 말투에 웃음을 실어 보내 달래고 달랜다. 휠체어에 태운 놓은 채 하는 그의 목욕은 하나로부터 열 가지 모두 할아버지가 시켜야한다. 목욕을 다 시킨 장애인은 할아버지가 옷을 다 입힌 후 도우미를 불러 복지관 내 건강카페에 실어다 놓게 한 후 자신도 목욕을 한다.
목욕을 다 시켜 내 보낸 할아버지가 옆 자리에 앉을 때 ‘수고하셨다’며 인사를 드렸더니 ‘뭐 매일 하는 일인 걸요’하면서 웃으며 ‘고맙다’고. 몸에 비누질을 한번 한 할아버지는 쳐다보며 ‘비누를 가져오지 않았으면 내 비누를 쓰라’고. 내 자리에 목욕용구가 보이지 않자 깜빡 하고 그냥 온 줄로 아시는 모양이다. 목욕을 거의 끝낸 나는 용구를 챙겨 용구 대 위에 놓고 온탕에 들어가려던 참.
온탕에서 40도 따뜻한 물로 몸을 풀고 나오며 몸을 닦고 있던 할아버지에게 ‘먼저 갑니다. 잘 하고 나 오셔요.’인사를 하고 탕을 나왔다. 몸에 물기를 닦으며 머리를 만질 때 목욕을 마친 할아버지가 나왔다. 머리를 다 만지고 ‘먼저 갑니다’고 인사했더니 ‘나도 곧 나가요’라며 인사한다. 신발을 신고 있을 때 ‘아니 옷장 열쇠가 없네’ 라는 할아버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애가 그냥 가지고 나간 모양’이란 말도 덧붙였다.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 애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면 열쇠를 가져 오겠다’고. 할아버지는‘복지관 입구 담당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예비열쇠를 대신 얻어와 달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은 담당 여직원은 어느 곳엔가 전화를 하더니 열쇠가 없단다며 예비열쇠는 주지 않았다. 사정을 할아버지에게 알렸더니 예비열쇠를 주지 않더냐? 며 ‘열쇠는 그 애의 오른 발 신발 안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역시 수동 휠체어를 탄 담당 여자 장애우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더니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아버님은 기다리는 일행과 먼저 가시라’며 ‘안녕히 가세요!’.
현대사회를 흔히 4 무-무목적, 무책임, 무관심, 무감각-의 시대라고도 한다. 이런 시대에 이 날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내 비누를 쓰라’고 한 할아버지의 따뜻한 관심의 한마디가 잠자던 내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을까 한다. (2013. 11. 9.)
첫댓글 어느곳에서든 솟아나는 맑은 샘물과 같은 사람을 맞날수 있기에 세상은 삭막하기만 하지 않은가 보다.
같은 70대 중반인 내가 부끄럽군, 그저 나만 편하게 살아가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데...가끔은 감동을 받을만한 설교,봉사 활동을 접하지만 돌아서면 자기 중심의 속된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내가 부끄럽다는 말일세....
비누 좀 쓰라고 베푼 인심에 감동한 것을보니 천규의 감수성이 높군. 크던 작던 자기기에게 베풀어 준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은 염치를 모르는 사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