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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소치
1992.07.03. 김준호 선생
이 말씀을 여기 앉아서 누구한테 물어보는 것 없습니다. 그래 물밀듯이 가능성과 위로하심 하나님 아들 예수시더라도 은총에 의해서 십자가를 감당하신다. 은총이라는 그 뜻은 어떠한 의미에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럼 처녀가 잉태 했다는 말은 은총의 소치야. ‘은총을 받은 마리아여 기뻐하십시오.’그 천사의 축복인데 처녀가 은총을 입으면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전능성 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감당하는 것은 극기가 아니다. 참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소치라는데 대해서 우리들도 은총을 받으면 가능하겠다. 그 점입니다. 그래서 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몇 분은 기다리시니까 이 선생님께 대해서 말씀 하는 건 모르지만 오늘 결론은 그렇습니다. 이 선생님이 걸어가신 발자국이 있다면 그건 은총의 소치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완성하신 것이 은총의 소치라면 이 선생님의 발길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아주 이 선생님이 고맙게 생각하세요. 제 마음에 그렇게 설명을 해봐라. 이건 우리 식구가 아주 많이 했던 이 선생님이 가장 기뻐할 수 있는 고백을 이 선생님 대신 제가 하고 있거든요. 이 선생님 혼자 있으면 위대한 의일지 몰라도 예수님이 그분을 은총으로 그렇게 해 주셨다면 이 선생은 아무 한 것이 없지요. 심부름꾼이신데, 그 이 선생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은 흔적은 있어요. 그분이 말년에 쓴 일기를 보면 그건 아주 마음에 우시고 통곡하시고 잠깐 쓴 이야기입니다.
저는 죄의 못자리입니다. 그 말이거든. 그냥 글이 아닙니다. 피 맺힌 자기 고백이에요. 나는 죄인 입니다가 아니에요. 나는 죄의 못자리입니다. 식구가 백 명 이백 명을 데리고 갈 때 매일같이 굴복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진다든지 불법을 한다든지 누가 주모했던지 자기 잘못이야. 밤새도록 가슴을 치고 웁니다.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 없다고 그분이 일평생 울다가 죽었습니다. 누가 잘못했던지 꼭 자기 잘못으로 생각해요. 내가 죄의 못자리입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 누가 잘못했다면 그 사람 잘못이 아니에요. 내가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통회하신 것은 그 씨가 어디가 있냐? 그것도 은총인데요. 그럼 스승이 직접 말씀 안했지만 지금 사모님이 살아계십니다. 지금 팔순노인 이신데 그 어머니의 고백을 들어봐요. 그 이 선생님의 반쪽이 나와요 부부관계니까 무슨 사연이 나오느냐? 하면 미리 결론을 말씀 한다면 이래요. 가사 원효대사가 설총을 낳는 것은 보통 사람은 아무렇지 않아요. 그럼 소위 말하면 출가해서 평생 독신을 서원한 사람이기 때문에 설총을 낳은 것이 세계적인 화제이지요. 그러나 원효대사로서는 상처지요. 그분이 그 상처를 받고 십년동안 걸인 굴에 숨어가지고 은거하신 것도 사실입니다. 마음이 아프니까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그렇다면 이 선생님이 우리가 알기에는 종합해보면 결혼 전에는 평생을 독신서원을 해요. 자기가 평생 독신서원을 했다가 결혼을 하고보니 그건 얼떨결에 결혼 했지만 그 다음에는 눈물의 발자국이에요.
서울 가서도 목사들이 왜 이 선생님이 맨발을 벗었소? 그렇게 물어봐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행은 아니야. 처절한 자기의 참회의 발자국이야. 참회의 발자국, 그럼 인제 그 흔적을 더듬어 종합해 보는데요. 사모님께서 이 말해요. 이 선생님께서는 그 말 안 했어요. 사모님께서 그 말 하지요. 직접 저에게 한말도 있고 옆에 사람에게 한말도 있지만 이 선생님의 스승이 이 공님 이신데 빌 공자 스스로 자기는 아무것도 없다는 무소유라는 뜻이지요. 그분이 아들을 낳고 싶어서 산상 기도를 3년 3년 3년 아무리 십년을 공을 들여도 아들을 못 낳고 그때 절망할 때에 어느 목수가 성경을 줬다는 거예요. 당신은 이 성경을 보고 위로를 받아야지, 아들 못 낳는데 그렇게까지 할 거 뭣이요? 아들을 포기하고 성경을 보시오. 성경을 보기 시작할 때는 소학교도 못나왔다고 국문도 모르는 분이 스스로 터득해가지고 보기 시작했어. 이 식음을 전폐했어. 그래 성경을 전부 외워버린 겁니다.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그렇게 명철한 일꾼이야. 농부지만, 그래 그때 최 흥종 목사가 아마 이 남선에서는 유명한 목사지요. 아 성경 문답을 해보면 목사가 져버렸어. 그래서 목사가 항복을 하고 춘추로 와서 무릎을 꿇고 말씀을 듣고 가셨다고 그래요. 그때 조사가 백 연흠 목사인데 그때 전도사인데 백 연흠 목사가 무릎을 꿇고 배웠지요.
그러면 공부 할 때 이 선생님과 이 현필 선생님과 백 연흠 목사가 이 공님의 문하거든요. 공부를 같이 했다고, 백 연흠 목사가 동서가 되어버렸다고, 자기 처제를 줘 버린 거야. 이 선생을 그 옆치기를 했지요. 그러니까 경솔했지. 경솔해, 그런데 이 공님이 부탁한 겁니다. 내가 자식을 낳고 싶은 것은 진정이요. 자식을 못 낳고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예수님은 좋아하지 않냐? 내가 결혼을 해도 아내가 있어도 낳고 싶은 아들을 못 낳고 결국은 성경을 보고 내가 행복한 사람이 되었는데 너는 젊은 청년이니까 내 한을 풀어다오. 내가 아들을 못 낳고 예수를 만나고 한이 풀렸다. 그러니 구태여 이제 결혼해가지고 자식을 낳을 것이 무엇이냐? 내가 얻은 이 진리를 네가 대신 이어줘라. 그거지요. 상당히 기대를 하고 철썩 같이 이 공님이 믿어요. 나는 인간 60평생 아들하나를 낳자고 하다가 실패하고, 말고 결국 예수를 믿고 이렇게 평화를 얻었는데 너는 나 같이 결혼해 가지고 이렇게 하면 또 실패한다. 내가 결혼 해버렸으니까 너는 내 대신 결혼하지 말고 이 말씀을 그대로 전하라. 그러니 그렇게 철썩 같이 믿었던 이 선생은 왜 결혼을 했느냐? 하면 이 영산포 예배당을 다녔거든요. 기성교회에 벌써 뿌리가 있다고, 기성교회 결혼해도 능히 하나님 뜻을 이룰 수 있다. 자기 그 기성교리를 가지고 이 공님을 거역해 버려. 이 공님의 사상을 묵살해 버렸어요. 그게 사실인데 결혼 했습니다. 그러면 인제 사모님 말 들어보면 임신을 했어요. 아주 단꿈을 꾸었단 말이야. 결혼을 해서 어떻게 행복한지. 그 사연은 그것이 또 아니야. 복희씨 어머니 돌아가셨는데 친구 말 들어보면 결혼식 할 때 서약 있어요. 부부간 결혼식만 하지, 우리는 영원히 깨끗하게 산다. 철저히 둘이 약속했어요. 서로 이상적으로 남녀가 도와주지. 절대 이렇게 깊은 애정에 안 빠진다.
철석같이 둘이 약속하고 결혼식을 했는데 살아가는 동안에 부인이 마음이 약해져 24시간 허물었지요. 꼭 창세기와 같아요. 결국은 아담같이 부인 핑계를 안 해. 이 선생님은 자기가 책임지는 겁니다. 내가 잘못했다. 아담같이 하와 탓이요. 그걸 안했다고, 그럼 책임을 지고 보니까 무슨 하나님의 섭리를 봤냐하면 아이를 낳게 되는데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아이가 아니고 고름이 들었어. 배를 째보니 자궁외 임신이야. 그래 사람이 다 죽어. 지금 산 것이 기적이야. 죽었어요. 부인이 그 일본시대 옛날 농촌 이야기지요. 시아버지께서 절대 병원에 못 간다. 아무리 배가 아파도, 한약은 지어주고 이 아들이니까 아버지말씀 절대 순종하거든. 꼼짝 못하고 아내를 손 못 댔어요. 이 선생이 깊은 농촌인데, 결국은 죽어가니까 아버지 몰래 이 선생이 손 구루마에 실었다고 그래요. 자기를 그러면 거기서 광주 제중병원은 70여리에요. 그때는 돌짝 밭 이예요. 배가 뚱뚱 고름이 든 여자를 손 구루마를 끌고 가면 출렁거리니까 아프지 않아요? 이 빨리 못가는 겁니다. 그 끌고 갈 때 대성통곡을 해요. 왜 그럴까요? 보통 부부생활이 아니지 않아요? 평생을 독신서원을 하다시피 했고 스승의 철석같은 부탁 너는 그러지 말고 성경을 연구하라고 그랬는데 다 그것을 자기가 배신하거든요. 자기 죄악감 자기 잘못, 그래 자기 부인이 죽어가는 시체를 밀고 갈 때 그 처절한 통곡 그렇게 해서 수술을 해보니까 고름이 그득 들었고 부인은 다 죽어가고 그러니까 한 석 달, 한 달인가 앓고 밤마다 그 부인 침대 옆에 와서 울었어요.
지금 보면 왜 맨발 벗었냐 하면 그때부터 맨발 벗기 시작한 거예요. 부인이 다 죽어갈 때 죽을 때까지 자기의 잘못에 대한 통회지요. 발자국 마다 발자국 마다 눈물이에요. 너무나 큰 기대와 하나님의 특별한 주문, 자기가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베드로도 회개했지만 회개하는 순간이었지요. 스스로 저질러놓고 그런데 부인과는 담화가 안 되어요. 이러니까 나는 마음이 변했다. 그거 무슨 잘못이야, 보통일이 아니야. 부인은 아무렇지 않고 일생을 사는데 나는 남자 쪽은 그렇지 않다. 이건 내 잘못이다. 부인 잘못이 아니다. 내가 너를 몰랐고 인생을 몰랐다. 여자의 마음을 몰랐기 때문에 결국은 내 잘못 때문에 당신은 이렇게 희생이 되었습니다. 한 인격 한 여자의 생명을 자기 연고로 불행하게 빠쳤다는, 평생 그분이 통회하며 참회하며 지냈는데요. 그러니까 넋이 나갔다는, 정신이 나간 사람이 어디 간다고 신을 신을 마음이 없어요. 어차피 신, 신을 마음이 정신이 없어요. 정신이 나가버렸어요. 그러나 사람들 앞에 갈 때는 얼른 신을 신는다고, 인간 도리 때문에 아무리 맨발 벗고 길을 가도 자기 고통이 감소가 안 되어요. 자기 죄책이, 자기 서러움이, 자기 후회가, 그럼 그 흔적을 어디서 보냐하면 그거와 비슷한 영혼이 성 아우거스틴, 어거스틴인데 어거스틴이 임종할 때 시편 51편을 벽에 걸어놓고 숨이 질 때까지 쳐다봤어요. 누구 오면 읽어 달라. 다윗의 장면하고 똑같지요. 여자관계 다윗도 여자관계로 그 눈물을 흘렸거든. 시편 51편을 그럼 성 어거스틴도 여자관계지요.
그 보통 사람이 그렇지 않는다고 보통 우리는 그렇지 않은데, 특별한 하나님의 사명을 가진 영혼은 하나님 일을 하지 않고 곁눈질하고 실족한 것이 그렇게 통한 스러운 것이지요. 그러면 왜 그랬을까? 지어내 만들어 놓은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큰 명령이시지요. 그래서 오 장로님 살아계시지만 아주 말도 안하시는 분이지만 십년 만에 한번 고백했어요. 저는 독사노릇을 했습니다. 그렇게 잡아버렸어요. 일초도 못 되서 나는 독사의 왕이요. 그러셨거든. 그 말 한자리로서 자기는 항상 죄인이라고. 만일 오 장로가 독사의 장로라면 나는 독사의 왕이라. 죄에서 자기가 왕이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누구 한사람 옆 사람 잘못했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어. 그것도 하나님의 작전이고 하나님의 영적 축복인데요. 그런데 그와 비슷한 고백을 누가 했냐하면 성녀 소화 테레사가 했습니다. 그녀는 24세 결핵으로 죽었지만 이런 말 했어요. 막달라 마리아는 많이 사랑하시고 나는 모두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는 미칠 듯이 기쁩니다. 그렇게 말 안 했습니다. 그렇게 말씀 한 줄 알고 나도 한 30년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다시 전기를 보니까 그렇게 쓰여 있지 않아요? 막달라 마리아는 많이 사해주시고 나는 모두 사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미칠 듯이 기쁩니다. 그럼 막달라 마리아는 소문난 죄인 아닙니까? 그럼 사람의 율법 상 발견된 죄이고 자기 죄는 예수님만 발견한 죄인이라고 신이 홀로 아시는 죄가 있다고, 그래서 자기는 어머니 배속에 잉태할 때부터 임종할 때까지 모두 죄에요.
그 성녀가 깨달아요. 그런데 15세에 수녀가 되시고 24세에 죽었으니까 윤리 도덕상 죄는 없어요. 영적 자기 깨달음 이지요. 아침에 장로님 보셨어요. 로마서 7장 끝에 인가? 아무리 내가 깨끗해도 내 속에는 내 죄가 2대1로 똑같이 맞선다고. 소화 테레사 성녀는 그래 성녀입니다. 자기가 깨끗한 여자가 아니라고 완전히 자기는 죄인이니까 그러면 그 자비의 은총으로 예수님의 피로 씻어 줬다. 그 말씀 이지요. 그래 성녀지요. 그렇다면 또 프란치스코도 이렇게 고백한 점과 같아요. 아마 그 엄 목사님이 이 선생님전기를 쓸 때 옆에다 그랬어요. 한국에 성 프란치스코 맞아. 오늘밤에 제가 생각해 보니까 이 선생님같이 처절하게 불쌍한 남자도 없다. 참 이 선생이 불쌍하게 세상 살다 죽었는데요. 밥 한 끼를 맘대로 못 먹고 죽었어요. 깨달음이 잠 한숨을 맘 놓고 자지 못했어요. 그렇게 자기는 인생을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제자가 프란치스코 한 테 물어봤어요. 스승을 이렇게 대해주니 사랑하고 옆에만 오고 싶고 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 대답을 하지요.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이 나를 봤을 때 인류가운데 프란치스코는 제일 죄가 많은 것을 알고 가장 죄가 많은 사람이고, 또 가장 무식하지요. 가장 무식한 사람이고 또 얼굴이 얼마나 고양이 같지 않아요? 그 사람 사진은 꼭 고양이 같아. 얼굴이 어떻게 추한지. 그러니까 천하에 제일 나보기가 너무 불쌍해서 그런 특혜를 하신 것이다. 은총을 주신 것이다. 무조건 나를 사랑하셔서 대중이 나를 고맙게 본 것이지. 나 프란치스코를 누가 고맙게 보겠는가?
그렇게 하시던 말과 흡사해요. 지금 저는 다른 분은 모릅니다만 여기 이 목사님이 이 현필 선생을 관심을 하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답을 해드리는 겁니다. 이 목사님 들으라고, 그럼 이 선생님 일생에 인간적으로 아무것도 내어놓을 것이 없지 않아요? 인물이 좋습니까? 학벌이 좋습니까? 문벌이 좋습니까? 그 가족도 가봤어요. 아주 농촌 사람이에요. 무슨 혈통이 좋습니까? 아무것도 좋은 것 없어요. 자기의 스승의 말씀을 떼어먹고, 다시 말하면 가룟 유다같이 배반했지요? 무서운 죄를 지은 청년이거든요. 부인을 이렇게 들여놨지요. 자기 부인을 지금 살아 계에요. 그렇게 자기의, 자기가 자기를 내려다 볼 때 얼마나 고뇌를 했으면 그럴까요? 그때 예수님의 사랑을 용서를 받은 거지요. 그리스도 사랑 말 없은 사랑, 그걸 깨달은 거지요. 하나님의 사랑, 나를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 한번 이러십디다요. 내가 책을 사다보고 자랑하며 선생님 빛깔이 좋아요. 빛깔이 좋다고 말하니 선생님은 내게는 예수가 좋아. 나를 용서해 주신 분, 그러셔요. 참 예수 밖에는 그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선생님이 꾸지람 할까봐 제가 항상 불경을 몰래 봤어요. 저 몰래 보셨던가 봐요. 전부 부인들이 벽을 발라버렸어. 일본글이니까 그거 반야심경 해설인데 부인 방에 아무도 못가지 않아요? 그때 혼자 갔다 오시더니 그렇게 좋은 책을 버렸다고 없애 버렸다고 그래. 나 몰래 보던 책인데 선생이 봤으니까 아시더라고. 내가 속으로 아 본인도 보셨구나. 반야심경 해설이 이만큼 두꺼웠어요. 일본판인데 반야심경 정도는 봤어야 예수가 누군지 알겠지요? 반야심경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알아? 그래서 말씀입니다. 다 보셨지만 흔적이 없어요. 전혀 그 냄새가 없거든요.
그러시면 이 선생님 일생은 가사 아우거스티누스께서 참회록을 붓으로 썼다면 나는 이 선생님 회개하신 날부터 맨발로 땅에 참회록을 썼다. 나는 이렇게 봐요. 그러니까 30리길을 이 눈이 한 일척, 일척이 온 밤길을 길도 없는 갈보리 산에서 오감리 길이 꼭 30리 길인데, 이번에 가서 지방 사람들 한 테 물어보니까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간 맨발로 인내심으로 하는 거 자기가 하나님한테 참 미안한 마음으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렇게 참회의 발자국을 간 길 밖에는 이해가 안 되어요. 그렇게 봤으면 봤지. 그때는 몸에 불이 납니다. 영혼이 그렇게 신생을 하고 거듭나고 새사람이 되는 때에는 어떠한 의미에서 기적이 있다고, 발이 땅에 안 닿는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추위를 모르고 추운 것도 몰라요. 어떻게 된 사람이 그러면 그 그럼 이 선생님의 말씀의 흔적이 또 있어요. 제가 집을 나오면서 어느 정도 눈치를 챘지요. 눙주 정 한나 어머니가 아직은 교회 종지기에요. 한나 어머니가 동광원에 큰 기둥입니다. 청춘과부신데 종지기로 계실 때 그 집에 가서 3일 성경공부를 했어요. 그게 제가 처음이에요. 그때 공부를 한 3일 하고 보니까 세상이 거꾸로 보여요. 몸이 공중에 둥둥 뜨고, 찬송을 부르면 목구멍에서 음성이 나와 가지고 전혀 못 불렀습니다. 막 음성이 나와 가지고 놀래서 입을 딱 다물고 한 3일 동안 말씀을 듣고 보니까 전부 세상을 거꾸로 살라고 하지요. 그래 세상을 거꾸로 산다고 하니까 얼마나 쉬워요? 경쟁이 끝나버리니까, 호탈하게 되요.
그래 제가 집을 떠난 거를 그때 눈치를 채시고 저를 오 장로님 집으로 데리고 가신 거예요. 오 장로님 그 깊은 산속에 계셨거든요. 거기가 한 20리 길인가? 30리 길인가? 그때 제가 따라가는데 능주서 거기까지 걸어가지요. 얼마나 걸어가는데 초봄에 추운데, 이놈 죽일 놈, 그래 저도 그냥 어찌 놀래버렸던지. 이놈, 죽일 놈. 아무 말도 없이 걸어가는데 이놈, 죽일 놈. 자기보고 하시는 말씀이야. 본인보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나는 그때 나보고 하시는 줄 알고 놀래서 이놈, 죽일 놈. 나보고 그러시는 줄 알고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본인보고 하는 거야. 자기가 죽일 놈, 항상 죽일 놈이야. 그렇게 인생을 사신 게 확실하고요. 천하만사 자기는 죽일 놈이고 몹쓸 사람이고 잘못한 사람이고. 나는 죄의 못자리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신 분입니다. 그분의 일기가 지금 남아있어요. 전부 암호에요. 한 3일 만에 일기 하나 나오면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 소리뿐이에요. 연발이에요. 연발,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 말 뿐이에요. 그러면 살아온 발자국을 세상 떠난 다음에 사모님한테 들으니까 제목이 나와요. 이렇게, 이렇게 사셨겠구나. 그러면 그렇게 할 때에 맨발을 벗은 게 이해가 되요. 또 안 먹어도 배가 불러요. 뭔지 몰라도 항상 마음이 평안하시고 또 아무리 누가 자기를 얕보고 그래도 흔적이 없어요. 넘어간다고,
우리가 해방 후에 버스가 나오기 전에 한 사오십 리, 꼭 트럭이 다녔지요. 도암면에서 광주로 나오려면 트럭에 타요. 막 시작할 때 우리끼리 한 넷이 타지요. 광주 가다보면 이 선생님 제일 뒤에 밀려있어요. 저 뒤에, 왜 사람이 쭉쭉 밀어버려. 쭉 밀리고 쭉 밀리고 제자들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항상 그렇게 밀려 사셨어. 또 서울 가실 때도 그때는 기차가 목포서 서울까지 보통열차뿐이지요. 특급 열차는 없고 광주에서 타면 텅텅 비었지만 서울 가서 보면 난간에 밀려있어요. 밖에, 그러니까 대전위에서 농부가 탔는데 그 난간에서 붙잡고 농촌 사람들 그러지 않아요? 우리 인사합시다. 나는 평택 사는 아무개요. 저는 전라도 사는 이름이 뭐라 했소? 우물쭈물하니까 아까 이름이 뭐라 했지요? 성이 뭐요? 헌가올시다. 이름이 뭐라 했지? 신짝이요. 헌 신짝, 예끼 여보시오, 그러니 자기는 헌신짝이라 그랬어요. 나는 헌신짝 자기를 그랬어요. 한 번도 얼굴 붉히지 않았어요. 자기는 헌신짝이요. 차타면 저리 밀려나가. 참 못난 사람이지요. 일생 밥 한술 따뜻하게 배불이 못 먹고 안 먹고 그 앞에는 20대 젊은 청춘과부 보면 선생님이 불쌍하니까 밥해드리고 빨래 해드리고 그랬지. 지도를 받는다. 아 불쌍한 선생님 내가 좀 도와드려야지. 여기도 20대 과부가 애기 막 업고 과부되어가지고 선생님 만났어요. 이 선생님 참 절대 복음적이지, 초면에 그랬대요. 애기업고 방에 딱 들어오니까 거지가 앉아있는데 선생이 뭐이라고 그러는 고 하니 쯔쯔쯔 혀만 차요. 혀만 차요. 세 번 쯔쯔쯔 그 혀 차는데 감격해가지고 홀로 살아요. 딸도 40이 넘었지만 홀로 살아요. 엄마도 홀로 사시고 무슨 성령이 쯔쯔쯔 그게 성령이야? 그 청춘과부 가슴 뚫어지게 대신 통곡하신다고. 그래 누구를 만나든지 사람은 서이 있어도 한 사람이야 둘이 있어도 한 사람이야. 이 선생님의 그 처참한 가난 속에 빨려 들어간다고 돈이 있어서 부끄러우면 선생님이 던져 버리고 돈을 갖고 있는 게 부끄러워. 재산이 있어도 부끄러워요. 그러니까 아마 한국에서 제일 친한 분이 백 춘성 장로인데 자기 총재산을 선생님한테 던져버렸어요. 내 마음대로 못하겠다고. 그건 자기 어머니의 자수성가한 총 재산인데. ‘어머니, 이 재산을 나를 주신다면 나는 감당 못해요.’내가 손 안대고 엄마가 청춘과부로서 이룬 재산인데 내가 어떻게 장자라고 이걸 받겠소? 이 선생 드려버리라고 맞다. 너의 마음이 내 마음이다. 그냥 엄마는 더 기뻐했어요. 부인더러 우리 이거 어떻게 엄마 재산을 상속 받겠소? 이 선생님 드립시다. 아이고, 좋은 생각이시오. 동생 제수 여동생 여동생남편 아들 딸 다 물어봤어요. 이 선생 준다는데 대해서 한 사람도 반대 안해. 그것이 기적이라는 거야. 이 선생이 잘 먹고 잘살고 부자면 주겠느냐고. 너무 (끊김)
동광원 재산은 전부 그분 재산입니다. 백 장로님 어머니 재산이야. 청춘과부로서 이룬 재산이 그것이 이렇게 모두 여기저기 있지요. 이 선생 일생에는 돈을 손에 안대봤어요. 돈을 누가 설령 간구하는 마음으로 한 만원 내놓은 다면 며칠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요. 오시는 손님마다 그걸 필요하시면 가지고 가시라고 열사람 찾아가지고 가. 그럼 옛날에 만 원짜리 없어. 천 원짜리 열 개 있지 않아요? 아주 양심이 굉장한 사람이 하나 가지고 가지요. 선생님 꼭 갖다 쓰라고 했으니까 하나 갖고 가지요. 손님이 수십 명 다녀가는데 어느 때 가보면 다 없어졌어요. 누가 가지고 가버렸어요. 어찌되었든지 물욕에 없이 사셨다. 그렇게 된 것은 그 욕심을 억제한 것도 아니고 고행한 것도 아니다. 그 핵은 그 뿌리는 역시 자기는 하나님과 약속을 어긴 놈이고 내 스승의 말씀을 떼어먹은 놈이고 나는 그거지요. 그래 무엇으로 해서 내 잘못을 보답하나? 예수님의 피, 예수님의 그 뜨거운 피, 죽음 나 때문에 대신 죽었다고 하는 뜨거운 대속의 사랑뿐이었지요. 그 일생이 그러니까 그분이 변사는 아니지요. 말도 아주 재미있게 하지를 않아요. 성경 조금 읽고 그 모습이 그 모습이 누가 보던지 눈물이 나요. 모습이 너무 못 먹어 놔서요. 빠삭 말라가지고 참 보기가 참 안타깝고 그런데 식구가 백 명이면 백사람이 다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자기, 나 때문에 선생님이 고생 하신다. 그렇게 봐버려. 대중 때문에 그런다. 그러지를 않아. 각자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대신 고생하신다. 그렇게 봐져요.
왜 한 사람 한사람 하고 영적 비밀이 없어. 백이면 백, 선생님 앞이면 평생에 자기가 걸어온 길을 다 이야기 했어요. 한 사람 한사람의 흉을, 그 서러움과 부끄러움과 죄는 선생님이 갖고 있어요. 동참하는 거예요. 개인 개인의 고뇌와 서러움과 아픔을 동참하고 계신 거예요. 그러니까 참 어떠한 의미에서 그야말로 공동체야. 몸은 백이라도 마음은 하나에요. 그럼 그 성령이 지배한 거지요. 그러니까 오늘 밤에 보고를, 이 선생님 말을 그렇게 합니다. 나는 한일이 없어. 그분이 다 하신다. 내게 은총을 주셔서 그분이 시키시는 거다. 그 힘을 내게 주시는 거다. 그런 뜻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그걸 깨달았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더라도 예수가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면 예수가 했다고 다 믿는데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죽음의 고통을 당하심으로서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셨다가 마침내 영광과 영예의 관을 받아 쓰셨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음의 고통을 당하신 것은 예수님의 뭣이다. 그러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소치이다. 하나님의 은총의 소치이다 그럼 히브리기자가 아주 담대하게 그때 예수님이 했다 그래야. 칭찬을 받을 텐데, 하나님의 은총의 소치라고 했으니 히브리 기자가 예수를 격찬했다고, 그러나 성령님께서 나는 이 발견이 이 동광원 가사 일전에 목사님들이 오셔서 그래요. 동광원 찾아봐도 어딘지 다 모른다고, 어디가 봐도 동광원이 없다고, 그 말이 맞다 고. 왜? 동광원은 실은 땅에 없다고 땅이 있다고 생각하면 동광원 식구부터 속고 있다고. 그런데 그 말을 비약해서 아주 삼배 오배 해석을 하신 거라고, 동쪽에 해가 뜰 때 가봐라 고. 거기 가보면 없지 않냐? 동쪽이 서쪽에 가있지. 이 동쪽 빛이라는 게 새벽에 새 빛인데 새 빛이라는 것은 항상 희망이지, 실제로는 없다.
그러면 동광원의 이상은 성령의 역사이고. 성령이 하신 일이고 그건 비유이지요. 비유의 상징이고 어떠한 의미에서는 소위 말하면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동광원을 많이 복을, 은혜를 주셨다면 환경으로 빌린 것뿐이지, 하나님의 마음은 현재 동광원이, 동광원이 아니에요. 모든 사람 가슴에 빛을 주고 싶어 하는 그 암호지요. 상징의 비유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찾아왔을 때 분명히 오셨지만 유대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현재 우리 동광원이라는 땅, 동광원이라면 항상 유대사람을 지금 참 빛이 동광의 빛이 이건 아니에요. 참 빛이 여기에 오신다면 감당을 못해. 일체의 땅을 초월하고 권리 동광원이라는 권을 초월하고 이거 전부 초탈 하거든요. 그래 이걸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이거 버려라. 하면 못 버려요. 옛날 유대사람 만 실수한 거 아니거든. 제2의 실수는 3자들이 동광원 사람들이 참말로 동광원 사람들이 자기가 동광원 인줄 알고 속았다고. 그래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고 동광원은 전주를 가시면 거기 계시는데 고아원은 옛날에 선생님이 동광원 글자를 넣을 때 동쪽 빛이 내려 쪼이는 동광원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동쪽 빛이 내려 쪼이는 것이 역시 인류의 희망 아닌가요? 동기는 동쪽 빛이기 때문에 동광원이 생긴 거거든. 동지 밤이 깊어 버린다고 하루만 더 깊어버리면 낮은 없어. 밤이 길어지다가 딱 멈추고 다시 해가 길어지니까 그때 잠을 못자고 춤을 추고 그랬지 않아요?
동지 날 3일후에 예수가 와요. 빛이 와요. 모두 그런 생각이 같지요. 동광원을 글로하면 동광원을 현재 한국에 있는 동광원은 실상은 상징에 불과하고 비유에 불과하지 실제 이 목사가 찾는 동광원은 한국에 없다고 그렇게 봐야겠다. 그렇다면 실망하지 않는다고 동광원은 어디가도 동광원이야. 동쪽 빛이야. 그럼 이 땅에 이 선생님이 혼자 그 빛을 빌려서 잠깐 빌리신 것인데 예수님께서 주신 것이고 그래 달과 같아요. 달은 빛을 비추나 햇빛을 비춰서 반사하고 하나님의 은총이 이 선생님에게 비췄어요. 그게 반사된 거지요. 그 후광이 올랐다고 후광, 이 선생이 말년에 자기가 선언 했어요. 원장님을 오시라고해서 나는 동광원 사람이 아닙니다. 임종하며 그랬어요. 그 말도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나는 동광원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 피차가 그랬지요. 동광원이라고 하는 곳에 이 선생님이 잠깐 머물렀어. 그래서 그때는 이북에 못 갈 때지요. 중국도 못가고 소련도 못 가는데 소련이나 중국에서 저를 오라하시면 저는 그리 갈 사람입니다. 그러셨어요. 그때 나는 왜 여기에 있느냐?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셨어. 그때 모두 과부와 고아들이니까 그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 동광원을 그분은 초월해 계신분이다. 스승님이지요. 동광원은 원치 않는 집단이었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원은 갈보리산 서리내 오감산에 계시다가 육이오가 안 일어났으면 그리 들어가실 뻔 했어. 들어가시려다 동란이 일어나니까 잠깐 손을 대신다 했어. 잠깐, 그럼 일 년이면 끝날 줄 알고 손을 대셨는데 후임이 안 생겨 일반 사회에서 후임 할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십년 이십년 늦어져. 그래 인제 돌아가리라. 했지만 나는 못 돌아간다 하셨지요. 지금까지 살아계시면 지금 지리산 속에 계시겠지요. 항상 소원은 그랬어요. 임종 할 때도 임종이 다가서면 간호하고 있지 않아요? 수십 명이 그럼 잠깐 업어달라고 막 각혈하는데 순진한 청년이 업었지요. 나를 지리산 가는 버스 타는 데까지 업어다 주라고 그때 공동체가 탈출하는 거예요.
그런데 가을비가 막 쏟아졌다고 그때 이 선생님이 업혀 가지고 생각했어요. 나는 죄인이지만 이 청년이 무슨 죄가 있나? 이 폭우를 맞고 업어다 주라는 것은 너무도 무리한 일이다. 다시 올라갑시다. 올라가셨거든요. 그 후에 후회해. 그때 내가 모진마음을 먹고 조금만 참았더라면 버스를 타버렸을 건데. 그러면 나는 해방을 얻어가지고 지리산에 가서 평생 참선하다 하늘나라 갔을 텐데. 내 마음이 인정이 많아가지고 그 청년이 미안해서 그걸 못 참고 들어갑시다. 들어간 것이 꽉 잡혀버렸다. 딱 지키니까 24시간 형제자매들이, 아주 그렇게 했지요. 또 한 번은 임종이 가까운 때 도암면 그 동광원 총회 첫해입니다. 눈이 많이 왔어요. 식구가 모여들었지요. 그럼 저기서 여기까지 걸어오지 못해 완전히 몸이 풀려가지고 업고와가지고 앉아서 본인이 못합니다. 제 3자가 발을 괴어주지요. 그리고 말씀 하시지요. 그런데 그때 어제 밤에 이야기했던 오감산에 만났던 주인공 이지요. 훨씬 나이가 김 공이 많아요. ‘김 공, 나 업고 지리산에 갑시다.’그랬어요. 약속을 그리 했습니다. 그때도 임종이 가까워요. 코에 숨이 조금만 있어도 나는 여기 탈출해야겠다고 이 동광원이라는 울타리에서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합시다. 내일 저녁에 갑시다. 그래 김 공님하고 약속했어요. 그럼 계신 곳은 맨 바닥을 흙을 파고 짚으로 이엉을 이어가지고 거기 누워 계셨어요. 왜 방은 없는데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니까 총회하기 위해서, 김 공 참 황송해요. 그때 여기 와계신 김 승명 장로 김 준 선생 모두 밖에 계시다가 가정 가진 분이시지요. 이 동광원 회의가 끝났다는 말 듣고 왔으니까 우리들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랬다고 김 공님하고 어제 내가 약속한 거 김 준 선생 김 승명 장로 그때는 장로 아니었어요. 저 사람들이 나를 말씀해 달라는데 그 사람들을 두고 내가 갈수 없소. 내가 약속을 못 지키겠소. 그러셨어요.
그때도 기회를 놓쳤다고 가정 가진 형제들을 위하여 비장의 탈출이지요. 또 한 번은 밤나무골에 거기서 임종이 가까울 때 아주 숨을 그때는 정 원장님 오 장로님 저 세 사람 무조건하고 기차로 가자고, 서울도 능곡이 있고 계명산이 있지만 나를 그때는 셋째형이에요. 셋째 형님에게 걸인 굴로 데려다 걸인 굴로 모셨어요. 일본시대에 폭탄 맞지 않게 하기위해서 기차 굴이에요. 굴이 커요. 학교 하나는 될 거기 걸인굴이 있어요. 거기 형제가 있으니까 거기 가자고 그때도요. 그럼 광주서 그 말씀 했어요. 전부 있을 텐데 한 백여 명이, 내가 임종하는 걸 볼 텐데 식구들이 그 젊은 자매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선생이라고 임종할 때 쳐다보고 그 일생을 어떻게 감당할까? 나는 이 사람들 임종하는걸 보이지 않기 위해서 죽으러 가는 거야. 죽으러 그거에요.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는 건 타의지, 예수님이 자의는 아니지. 자원해서 한 거야. 그러니까 형제가 걸인 생활이니까 좇을 것은 송장 내어버린 칠성판, 칠성판 꺼멓게 썩어 가는데 거기 누워 있었어요. 이불이 있어? 요가 있어? 그냥 걸레 조각 한 장 깔고 한 장 덮고 얼굴이 하얘지고 영양이 없으니까 덜덜 떨고 그러면 그때는 이 선생님이 영웅이야. 성인 대접이거든요. 예수로 보고 있습니다. 모든 하나하나가 초인이야. 초인 자 일 년 이년 삼년을 같이 살아봐요. 밥 먹는걸 봐야 사람이라고 하지요. 그때 이 목사 옆에 있어도 밥 먹는 거 못 봤을 거예요. 계획적은 아니에요. 밥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그때 너무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이 면담 하시고 매일 들어주는 겁니다. 본인은 말씀 안 해요. 가만히 들어줘요. 그럼 정 원장님 계시지만 나 바빠요. 대강 말씀 하세요. 그래버리지 원장님 앞에 가면 말을 못하지요. 나 바빠요. 조금 말씀 하세요. 간단히 말씀 하세요. 그런데 이 선생님 만나면 하루 이틀이라도 평생 살아온 자기 서러움 다 들어주는 겁니다.
떼제의 성공의 비밀이 그거라고. 지금 원장이 70객인데 세계에서 그 서러운 청년들이 모인다고. 그 압제당한 청년 그러면 붙잡고 이야기해요. 들어준다고 서러운 이야기 다 들어줘. 그게 떼제의 재산이야. 본인이 스스로 말해요. 노래는 부르라 하고 자기는 듣기만해요. 그러니 세계의 폭포수같이 성공을 하네. 그게 효과에요. 말을 들어줘. 관세음보살 이야. 그분이 관세음보살이야. 20세기에 천하에 누가와도 다 들어줘요. 그런데 이 선생도 그런 분이었다고 본인이 뭐 특별한 말 안 해요. 모든 사람이 생각과 말할 때 이해해주시고 들어주시고 그리고 같이 서러워하시고 그러신 거지요. 그래 본인도 실패한 사람이야. 실패한 사람끼리 정이통해요. 과부와 과부가 통하지요. 그런데 프란치스코 전기를 제가 봤거든요. 우리 사부님께서 회개하신 날부터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했다. 기록했거든요. 초점은, 그래 우리 사부님 회개한 날로부터 이렇게 하셨다. 그 전기를 보고 전기를 쓰신 분 있지 않아요? 엄 목사님, 목사님 전기를 다시 써야겠다고 그랬어요. 그 뜻이에요. 그 말이 없어요. 이 선생님 전기에는 회개 했다는 말이 없어요. 맨발벗고 굶고 깨끗하고 아주 의인이야. 이건 틀렸어. 이건 전기가 아니야. 그러니까 새로 쓰는 전기는 이 목사가 써야 돼. 예수 교리에 의해서 이분이 회개하신 날부터 이렇게, 이렇게 맨발벗고 굶고 그건 굶는 것도 아니었다고 밥이 안 들어 가지고 밥이 안 들어갔어요. 신을 안신은 게 아니에요. 신을 신었는지 안 신었는지 모른 거야. 맨발 벗은 줄 몰라. 그렇게 사신 거예요.
그래 콧물이 흘러 종이를 안 갖고 다니는데 콧물이 24시간 흘러 몸이 약해서 항상 종이를 준비 안 해가지고 소매 자락으로 이렇게 말씀하다 코가 나오면 이렇게 하지요. 그 어떤 인간 이하지요. 언제 양말을 신어봤어요. 언제 바지저고리 입어봤어요. 좋은 옷이 편하지요? 안 입으셨지만 그분을 이렇게 이해 초점은 회개하신 날부터 그렇게 사셨다. 그렇게 이해하지 않아요? 아마 우리 식구도 처음 들을 거예요. 우리 이 선생님 뭐 잘 믿고 했지. 그분이 죄짓고 회개했다는 말 오늘 처음 하는 소리야. 참으로 알곡으로 사셨지요. 참으로 진실로 이 선생님을 말씀을 해드려야지. 그렇지 않고는 안 되겠다. 언제까지 대중을 속이고 교회를 속이고 모든 사람을 속일 것인가? 우리 선생님은 깨끗했다. 죄를 안 지었다. 깨끗했다. 이게 기만이라고 진실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은총의 소치였다면 오늘날 이 목사님이 관심하시고 이 선생님을 관심하시는 것은 은총의 소치였다고. 은총의 소치였다. 다른 해석이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이 되면서 제가 말씀 하나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0장, 제가 이 말씀 보겠습니다. 20장 11절부터 보겠습니다. 마르다와 예수의 이야기입니다. ‘한편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가 몸을 굽혀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또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왜 그러고 있느냐고 하고 물었다. 누군가가 제 주님을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뒤를 돌아다보았더니 예수께서 거기에 서 계셨다. 그러나 그분이 예수인줄은 미처 몰랐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이 동산지기인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분을 옮겨갔거든 어디에다가 모셨는지 알려 주세요. 내가 모셔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예수께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랍오니 하고 불렀다. 이 말은 선생님이여 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 가거라.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하나님이며 너희 하나님에게로 올라간다. 고 말하였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만나 뵌 일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러주신 말씀을 전하였다.’자기가 유산이 있을 때 큰 아들을 불러오고 내 곳간에 어느 것은 네 것이고 어느 것은 둘째의 것이다. 그 논은 누가 가지고 해야 그 최후의 상속을 하지요? 그럼 예수님도 땅위에서 일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는데 이제는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천하에 자기 상속시키고 주고 갈 사람이 있는데 열두 제자에게 관심을 안두셨어요. 예수님의 심중에 몸을 가지고 땅위에 제일 불쌍한 사람 몸을 가지고 제일 정신 고통을 당하고 제일 괴로웠던 이 막달라 여자는 마귀가 일곱 마리나 들었던 여자지요. 그렇게 표현 한다는 것은 마귀가 일곱 마리라는 것은 사람 몸을 가지고 가장 괴로움을 당했다는 뜻이에요. 몸을 갖은 사람으로서는 이 여자만큼 고통을 당한 사람이 없다. 제일 고통을 당한 여자지요. 가장 버림받은 여자, 가장 죄 많은 여인 그때 예수님 살아계실 당시 죄인 그러니까 천상의 상속은 가장 죄 많은 자한테 몫이 되었지요? 사랑은 가난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한테 가는 것이 사랑이지, 배부른 사람한테는 무슨 사랑이야? 그러니까 예수님의 천국 사업에서 후계자, 어떠한 의미에서 그 재산을 상속 받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역사를 보나 그때 상황을 보나 예수님의 후계자라고. 열두제자가 찾아왔지만 그때는 안 나타나신다고. 똑같은 무덤이에요. 그리고 사랑하는 요한과 베드로에게 나타났어요. 그 두 남자가 물러갔어요. 여자가 똑같은 자리에서 울고 있어요. 왜 울고 있냐? 그래 나다. 아이고, 예수님 나 만지지 말라. 부탁할 말이 있다.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의 아버지 내 아버지가 네 아버지다.’그럼 전부 아니에요? 우주와 천국과 천국의 모든 보배를 영원한 총 재산을 이야기 한 거지요.
또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 이 말을 열두제자에게 전해라. 이 말을 전해라. 내 할 일은 열두제자의 할 일은 예수가 누구라는 걸 증명하는 사람이야. 예수가 뭔 일 하고 갔다. 그 인류를 대표하는 거는 누구냐? 죄인을 대표하는 거는 막달라 마리아였다. 그렇게 됩니다. 오늘 저녁에 기념으로 따라 읽어 주십시오.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 아버지 곧 내 하나님이며 너희의 하나님이신 분께 올라간다.’‘이 말을 전하여라.’이 말을 전하는 게 기독교야. 이 말을 전하는 게 예수교야. 열두 사도는 증인이야. 내가 증인이요. 내가 증인이요. 내가 봤소.. 내가 들었소. 그 말이지요. 사랑의 유산이고 총 사랑의 유산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갔다.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아까 이 3절 4절 부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