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시장,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박동운 (단국대 상경대 경제학 교수, dupark@dankook.ac.kr) 현대경제에서 성장의 엔진은 무엇일까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노동시장 유연성’이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현대경제에서 사용자는 자본, 경영, 토지 등과 같은 생산요소 사용은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지만 노동만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동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관행, 법과 제도, 노사관계 때문에 유연하게 조정하기 어려운 생산요소입니다.
저는 노동시장 유연성이 현대경제에서 성장의 엔진임을 OECD 회원국과 비회원국 노동시장을 비교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현대경제에서 성장의 엔진이라는 시각에서 한국경제를 바라보면 한국경제는 지금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됩니다. 물론 한국경제가 지금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된 것은 이미 김대중 정부에서 비롯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구조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시장을 경직시키고 말았으니까요. 설상가상으로 노무현 정부는 출범과 함께 한국을 ‘노동자 천국’으로 만들어 가고 있어서 한국 노동시장은 앞으로 더욱 더 경직되리라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어 미국, 일본, 독일 노동시장 유연성을 비교한 후 한국 노동시장의 당면과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노동시장 유연성의 국제비교
노동시장 유연성의 국제비교를 통해 한국 노동시장에 교훈을 줄 수 있다고 평가되는 나라로 미국, 일본, 독일 세 나라가 선정되었습니다. 선정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경제는 자유로운 경쟁 때문에 노동시장이 유연하여 성장하고, 일본경제는 잘못된 관행 때문에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추락하고, 독일경제는 지나친 노조파워 때문에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노동시장
미국은 노동시장이 시장원리에 따라 운용되는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미국은 임금이 다른 나라와는 달리 노조파워가 아닌 경쟁원리에 의해 결정되므로 상승률이 낮고 경기변동에 따라 신축적입니다. 미국은 OECD 국가들 가운데서 고용보호가 가장 약하기 때문에 해고가 쉽게 이루어집니다. 특히 미국만이 갖고 있는 일시해고제도는 실업보험제도가 뒷받침하고 있어서, 사용자는 경기상태에 따라 근로자를 아무 때나 해고할 수 있고, 근로자는 해고를 쉽게 받아들입니다. 미국은 노동이동률이 높기 때문에 채용이 쉽게 이루어져 장기실업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습니다. 미국은 노동시장 규제가 거의 없기 때문에 고용패턴이 다양합니다.
이러한 특징들을 종합하여 평가할 때 미국은 노동시장 유연성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유연한 노동시장의 결과는 경제지표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세계경제가 불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1992년 이후의 기간에 초점을 맞추기로 합니다. 1992~2001년 간 연평균 실질GDP 성장률을 보면, 미국 3.4%, 일본 1.0%, 독일 1.5%, 한국 5.3%인데 이전 기간과 비교할 때 성장률은 이들 국가들 가운데서 미국만이 증가추세입니다. 같은 기간동안 연평균 고용 증가율을 보면, 미국 1.3%, 일본 0.3%, 독일 0.1%, 한국 1.7%로 미국은 한국보다 낮지만 일본과 독일보다는 4배, 10배 이상 더 높습니다. 같은 기간동안 연평균 실업률을 보면, 미국 5.4%, 일본 3.6%, 독일 8.0%, 한국 3.2%인데 이전 기간과 비교할 때 실업률은 미국만이 감소추세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미국경제는 분명히 성장하는 경제입니다. 그 이유는 자유로운 경쟁으로 노동시장이 유연하기 때문이다.
일본 노동시장
일본은 종신고용제도, 연공급 임금제도, 기업별 노조라는 노사관계의 3대 특징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 제도는 한 때 일본경제를 고도성장으로 이끌어 전세계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노동시장을 경직시켜 잘 나가던 일본경제를 추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일본기업은 노일전쟁 후 노동력이 부족하던 시기에 노동력 확보를 위해 종신고용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종신고용제도란 ‘한 번 직장이 평생 직장’인 제도입니다. 뒤이어 일본기업들은 종신고용제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연공급 임금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연공급 임금제도란 임금이 연령, 학력, 근속연수, 성 등에 따라 결정되는 제도입니다. 여기에다 일본기업들은 기업 간 노동력 이동을 막기 위해 기업별 노조를 도입했습니다. 이와 같은 제도로 인해 일본기업들은 현재 노동시장 유연성과 관련하여 크게 보아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일본기업들은 불황 때에도 정규직 해고를 실시하지 않으므로 비정규직 고용 증가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의 하나라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1960년대 고도성장기에 입사한 근로자들의 임금이 현재 최고호봉에 놓여 있고, 이들이 퇴직보너스까지 받게 되어 있으며, 1987~1991년 간의 거품경제시기에 무더기로 입사한 근로자들이 현재 30대에 이르러 일본기업들은 막중한 노동비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일본 노동시장은 경직되어 버렸고, 따라서 일본기업들은 경쟁력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일본은 한 때 실업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였습니다. 물론 아직도 낮은 편에 속합니다. 일본의 실업률은 1960~1974년 간 2% 이하였고, 1975~1994년 간 2~2.9%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실업률은 1992년부터 일본경제가 추락함에 따라 1995년에 3.1%를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03년 3월에는 무려 5.4%를 기록했습니다. 일본의 실업률은 1992~2002년 간 2.8% 포인트나 증가했는데 이는 OECD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빠른 증가입니다. 1970~2001년 간 일본의 연평균 실질GDP 성장률은 3.4%입니다. 그런데 1970~1991년 간 성장률은 4.5%로 높았으나 1992~2001년 간에는 1.0%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2002년 일본의 성장률은 0.2%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일본경제는 분명히 추락하는 경제입니다. 그 이유는 잘못된 관행으로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노동시장
독일은 막강한 노조파워, 노동자경영참여제도, 경쟁이 허용되지 않는 교육제도로 인해 노동시장이 경직될 대로 경직되어 경제가 망해 가고 있는 나라입니다. 독일에서 산별노조의 단체협약은 연방입법부의 결정보다도 사실상 더 강한 파워를 갖고 있습니다. 노동자경영참여제도로 독일기업은 사실상 의사결정권을 갖지 못해 경쟁력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은 지역을 떠나 학교를 선택할 수 없고, 유치원에서 박사학위까지 학비가 무료이고, 교사나 교수는 공무원 신분으로서 ‘철밥통’을 보장받는 등 교육제도가 경쟁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독일경제는 시대가 요구하는 인적자본을 축적할 수가 없습니다. 이 결과 독일은 ‘저성장`고실업, 저효율`고비용’의 경제로 망해가고 있습니다.
독일의 성장률은 1951~1960년 간 연평균 7.9%부터 시작하여 10년마다 4.5%, 2.7%, 2.6%, 1.4%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고, 2002년에는 일본과 같이 아마도 OECD 회원국 가운데서 가장 낮은 0.2%를 기록했습니다. 실업률은 1961~1970년 간 놀랍게도 0.97%를 기록했다가 1981~1990년 간 8.22%로 곤두박질친 후 2003년 1월에는 아마도 OECD 회원국 가운데서 세 번째로 높은 11.2%를 기록했습니다.
한 때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았던 독일경제, 라인강의 기적을 노래했던 독일경제가 오늘날 왜 이 꼴이 되고 말았을까요. 그 이유는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독일의 시장경제가 1970년에 중단되고, 뒤이어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가 도입된 후 독일이 ‘노동자 천국’이 되어 노동시장이 경직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의 경제연구소장을 지낸 게하르트 라이힐러 박사는 최근 한국에서 가진 한 특강에서 ‘망해 가는 독일경제를 배우지 말라’고 우리에게 강하게 경고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독일경제는 분명히 망해 가는 경제입니다. 그 이유는 막강한 노조파워로 노동시장이 경직될 대로 경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 한국 노동시장의 당면과제
미국, 일본, 독일 노동시장의 성과와 특징을 비교`분석한 후 저는 이들 국가의 노동시장이 한국에 주는 교훈을 바탕으로,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로 부각된 한국 노동시장의 당면과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했습니다. 이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이 독일처럼 ‘노동자 천국’이 되면 한국경제는 망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저는 ‘한국 노동시장,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의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노동시장 유연성은 현대경제에서 성장의 엔진입니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미국경제처럼 성장하다가 일본경제처럼 추락하여 독일경제처럼 망할 것입니다.”
한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듭시다
한국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프레이저연구원이 2002년에 발표한 ‘기업규제’ 관련 경제자유 순위에 따르면, 한국의 순위는 123개국 중 63위로 브라질(29위)과 멕시코(46위)보다 못하고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였던 중국(54위)보다 못하고 겨우 러시아(67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눈을 밖으로 돌려 지혜를 구하십시오. 시장원리를 도입하여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데 가장 성공한 영국의 대처 수상, 역시 시장원리를 도입하여 규제가 가장 심한 나라에서 규제가 가장 적은 나라로 탈바꿈한 뉴질랜드, 경쟁정책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노키아라는 세계 일등 기업 하나로 나라 전체가 일등이 된 핀란드, 규제를 완화하여 지금 전 세계로부터 투자가들을 용광로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아일랜드, 노무현 대통령은 이들 국가들로부터 교훈을 배우십시오. 노조문제는 ‘법과 원칙’으로 다루십시오. 지금은 한국기업을 세계 1등 기업으로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해야 정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입니다.”
노사정위원회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노사정위원회는 김대중 정부가 도입한 사회적 합의주의입니다. 사회적 합의주의란 기업은 고용안정과 복지국가의 비용을 수용하고 노조는 급격한 임금인상 자제와 산업평화를 유지하며 정부는 완전고용과 사회보장을 위한 적극적 활동을 수행한다는 내용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에서 노사정위원회는 첫째, 정치적 노정관계로 변질되었고 둘째, 법과 원칙을 무력화시켰고 셋째, 노동시장을 경직시켰고 넷째,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을 지연 또는 불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한국경제 발전을 위해 노사정위원회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비정규직 보호는 재고되어야 합니다
‘차별’이라는 시각에서 비정규직을 지나치게 보호하려고 하면 실업만 증가합니다. 비정규직이 발전한 이유는 고용보호, 실업해소를 목적으로 한 고용보호 완화, 경기불황 때 사용자의 선호, 다양한 생활패턴을 바라는 근로자의 선호 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OECD 국가들에서 비정규직의 3분의 2 정도는 2년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합니다. 따라서 정부는 비정규직 보호 대신 경기활성화나 비정규직을 위한 교육`훈련을 강화해야 합니다.
청년실업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는 청년실업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도 청년실업은 선진국에서처럼 ‘높고 지속적인 상태’로 고착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청년실업이 증가하는 이유는 성장이 둔화되고, IT 중심의 산업구조 변화로 고용창출력이 감소하고, 고용보호가 지나치게 심하고(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서 정규직의 경우 고용보호가 심하기로 2위임), 기업의 경력직 선호 때문입니다. 정부는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한국 노동시장은 ‘젊은 피’를 수혈해야만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주5일 근무제’는 ‘주40시간 근로제’로 바뀌어야 합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조는 법정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단축해줄 것을 요구하다가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내세워 갑자기 ‘주5일 근무제’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주40시간 근로제’ 대신 ‘주5일 근무제’ 도입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정부가 노조의 요구대로 ‘주5일 근로제’를 도입하여 모든 기업으로 하여금 이를 무차별적으로 실시하도록 강요한다면 법정휴일이 1주일에 토, 일요일 2일로 늘어나 기업의 ‘근로시간 유연성’은 낮아지고 맙니다. 이로 인해 기업의 인건비와 노사간의 갈등은 더욱 가중될 것입니다. ‘주5일 근무제’를 법적으로 실시하는 나라는 아직 없습니다.
평등주의 실현은 자유경제를 위협합니다: 대처 전 영국 수상의 ‘국가경영’ 철학
김대중 정부에서도 그랬듯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한국사회는 평등주의사상으로 짙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를 놓고 저는 세계 역사상 구조개혁을 가장 성공적으로 추진한 대처 전 영국 수상이 2002년에 펴낸 『국가경영(Statecraft)』이라는 저서의「11장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비판자들」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자유로운 기업활동이 보장되어야 하는 자유경제에서 평등주의를 실현하려는 정부는 자유경제와 자유를 위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