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4 살림교회 주일공동예배 (대림절 둘째 주일)
그루터기 앞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사11:1-10; 롬15:4-13; 마3:1-12
지난주부터 교회력이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력을 따라, 우리는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초림을 기념하고,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한 해가 끝났다고 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시작을 알립니다. 세상에서는 화려한 조명과 트리, 광고들로 사람들을 유혹하며 왁자지껄하게 성탄과 연말연시를 즐기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침묵과 고요 속에 우리 안에서 아기 예수가 탄생하길 기다리는 대림절을 보내자고 합니다. 이를 위해 예배를 드리고, 대림절 묵상과 향심기도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요란한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물러나 침묵과 고독 속에 머무는 것은 분명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현란한 이미지들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그것을 성취하고 소유하라고 하지만, 기독교 영성에서 인간의 욕망과 생각들은 환영입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는 쾌락이 아닌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달을 때 존재의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지고의 기쁨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주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은 화려한 쇼핑몰 한복판이 아닌 황폐하고 메마른 광야에서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쳤습니다.
세상살이에 길들어버린 사람이 성탄을 본래적 의미로 경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대중매체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다 보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밖에서는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밀린 집안일과 육아를 하다보면 모든 기운이 소진되다 못해 없는 기력까지 짜내어 무리하게 됩니다. 이런 분주함과 피로 속에서 생산성 없는 침묵과, 고독, 기다림은 못 견디게 지루하고 가치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지쳐서 무기력하게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누워있거나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합니다. 실제로는 아무 생각이 없다기보다 무의식 속에서 생각들이 쉬지 않고 돌아다녀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분주하게 돌아가는 일상생활 속에 찌들어 갈수록, 진정한 휴식과 쉼은 우리에게서 멀어져갑니다. 바로 이 침묵과 고요의 시간이 우리에게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과 무의식을 잠시 멈추어 숨 쉴 틈을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참된 쉼과 안식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깨어있기 위해, 진정한 쉼과 평안을 얻기 위해, 시간을 정해 규칙적으로 기도하고 대림절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자연으로 나가 산책하는 것도 정말 좋습니다.
요즘 들어 지는 해를 바라보며 걷는 것이 제겐 위로와 힘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욕망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고, 내가 계획하고 바라는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아 좌절할 때, 지는 해는 저에게 어둔 밤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합니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곧 어둠이 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될지라도 태양은 늘 그 자리에 있고 어둠의 시간이 지나면 빛이 다시 찾아오니 저에게 좌절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조용히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지는 해를 통해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할수록,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희망과 믿음을 갖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 구약 본문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절망스런 상황 속에서 희망을 전합니다. 11:1을 보시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 바로 앞에는 빽빽한 삼림의 나무를 도끼로 찍어버릴 것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싹은 우뚝 솟은 나무가 아닌 베어버린 나무의 남은 밑동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그루터기는 겉으로 보기에 죽은 나무입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죽음과 종말 앞에서 예언자는 제 3의 눈으로 새로운 시작과 부활의 희망을 바라보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이사야는 그루터기에서 나온 싹 위에 주님의 영이 내려오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지혜, 총명, 모략, 권능, 지식, 경외의 영으로 묘사된 성령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이 여섯 가지에 믿음을 더하여 성령칠은이라고 부릅니다. 이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는 우리 안에서 믿음, 희망, 사랑의 덕을 이루어가도록 돕는 성령님의 은총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년 송구영신 예배 때 성령의 은사와 열매를 말씀 구절과 함께 뽑습니다. 성령의 은사와 열매 카드를 뽑고 우리는 당시 상태에 따라 이런저런 반응을 합니다. 대게 용기, 지혜 같은 것을 뽑으면 고무되고, 절제, 인내, 친절을 뽑으면 실망합니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님을 경외하게 하는 영이 임한 사람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고 3절에서 말씀합니다. 경외는 다른 말로 하면 두려움(fear)입니다. 경외는 하나님이 무서워 벌벌 떠는 것이 아닙니다. 경외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현존 앞에서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찬탄으로 승복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현존 앞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으며 겸손히 마음을 열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사랑 가득한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고요히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대림절,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를 화려한 쇼핑몰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닌 이사야의 그루터기 앞으로, 세례 요한의 광야 한가운데로 데려가십니다. 예언자들은 이미 베어져서 생명이 끊어진 그루터기 앞에서 생명을 노래하고,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에서 회개, 즉 생각과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메타노이아’를 외칩니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음을 지나야 합니다. 희망하기 위해서는 좌절과 절망을 각오해야 합니다. 지고의 기쁨과 평화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깊은 슬픔과 두려움, 불안, 분노 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죽음과 절망, 슬픔과 두려움,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것들로 여겨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아두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가 마주하지 않고 외면한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에 그대로 쌓여 거대한 어둠의 골짜기를 만듭니다. 그루터기와 광야는 우리를 죽이고 생기를 잃게 하는 생각과 정서들을 만나 정화하는 자리입니다. 대림절은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의 골짜기로 들어가 거기에 쌓여있는 오물을 치워내고 정화된 그곳에서 태어나시는 아기 예수님을 고요히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이 혹독한 시간을 피하지 않고 어둠의 골짜기로 내려가 머문다면, 이리와 표범, 곰과 사자, 독사, 살무사 같이 여겨왔던 부정적인 감정과 정서들이 결코 우리를 해치거나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과 정서들이 우리를 해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은 환영이었음을 결국 깨닫게 됩니다. 어둠의 골짜기에서 우리가 지금껏 집착하고 붙잡고 있던 견고한 생각의 모래성은 조금씩 무너져 내립니다. 이것만 있다면 난 행복할 것이고, 저 감정만 없다면 난 몹시 쿨할 거라는 생각은 허상이고 환영임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은 피라냐가 득실거리는 시커먼 물속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입니다. 이리, 표범, 곰, 사자, 독사, 살무사가 우리를 해치는 괴물이 아니라, 허물 많고 불완전한 우리가 솔직하게 자기(self)를 만나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하는 신성한 질료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거룩합니다. 회심은 우리의 고집과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무릎 꿇는 모든 순간에 시나브로 이루어집니다. 기도 시간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신뢰하십시오.
우리의 신성을 되찾고, 당신과 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표면적 욕구 밑에 있는 우리의 가장 깊은 열망과 희망을 보게 되길 하나님께서는 바라십니다. 침묵에 잠기고 고요해지는 때에 우리 삶의 상당부분이 터무니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우리는 비로소 보게 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침묵과 고독 속에서 우리의 허상과 환영들은 무너지고,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해집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괴롭히던 모든 것들로부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이미 해방시키셨습니다. 자유 가운데 하나님을 발견하고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은총을 누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고독과 침묵 속에 우리 자신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깃털처럼 가볍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