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어는 : 굽어보면. 천심녹수(千尋錄水) : 천 길이나 깊은
맑은 물. 십장홍진(十丈紅塵) : 열 길이나 쌓인 티끌, 곧
속세. 언매나 : 얼마나
굽어보면 천 길이나 깊은 맑은 물이고, 돌아서 보니 겹겹이
솟은 푸른 산이다. 열 길이나 쌓인 티끌의 속세는 이 깊은
물과 산에 가리어진 듯 멀고 은서지(隱棲地)에 달이 밝으니
무슨 야망이 있겠는가. 자연에 몸을 파묻고 마음이 그 속에
편하니 다른 생각이야 또 있겠는가.
지은이는 벼슬도 여러 해 지내면서 부귀를 누렸으나, 노후
10여 년 동안은 향리에서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悠悠自適
)으로 세월을 보냈다. 이 시조도 물이 맑고 강이 흐르는 자
연 속에서 달이 밤을 비치는 시간의 한정(閑情)을 노래한
것이다.
세상을 멀리하고 속세의 잡된 일에 마음을 쓸 필요가 없는
자족의 상태에서 모자람이 없고 애환이 없는 듯 담담한 심
정은, 마치 고려자기의 그 빛을 연상할 만큼 담담하여 한
포기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감회에 사로잡힐 만하다.
이 시조의 특징은 다른 작가의 경우와는 달리 과거에의 미
련이 없다는 점이다. 두고 온 임이라든가 벗들에 대한 그리
움과는 상관없는 자연에의 신앙이 그 속에 생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고관대작을 지내다가 유배간 대부분의 경우와는 그 취향을
달리하고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사람에 지치고, 믿음에
속았던 과거에 대한 단절만이 자신에의 길이요, 마음을 기
르고, 시간을 이성과의 동화에서 삶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유일한 생리의 재창조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말없는 무수한 말을 무진장하리만큼 내장(內藏)하고
있는 자연은 무욕을 가르쳐 주는 교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시조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물가에 우뚝 솟은 바위에 올라 사방을 보니 늙은이의 눈이
오히려 밝게 보이는구나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변화가 있
지만 자연의 경치야 변함이 있겠는가 바위 앞에 있는 이름
모를 산과 언덕은 오랜만에 보지만 어제 본 듯 변함이 없구나
이현보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예안의 낙동강변에서 한가
로이 지내며, 바위 위에 초막을 지어 부모님이 노실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애일당'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바위 이름인
농암을 자기의 호로 삼았다 물살이 바위를 스치며 급한 여울
을 이루어 물이 불어나면 초막에 앉아 있어도 아래에서 부르
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사람들은 이 바위를 귀머거리 바위,
곧 농암이라고 불었다 한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지 10년이
되던 해에 87세의 생일을 맞으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공명이 끝이 있을까 수요도 천장이라
금서띠 굽은허리에 팔십봉춘 그 몇해요
연년에 오늘날이 역군은 이샷다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림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또 오래살고
일찍 죽음도 다 하늘이 정한 바이니, 공명의 보람인 금서띠
를 굽은 허리에 두르고 나이 여든에 새봄을 맞음이 그 몇
해나 되겠는가 해마다 오늘같이 생일을 즐겁게 맞음은 또한
임금의 은혜인 것이다
이현보는 호조참판을 지내다가 여든이 넘도록 산 것이 모두
임금의 은혜라고 감사하는 뜻을 표하고 있다 군주주의 시대
유교 이념에 따른 사상에서 나온 당연한 노래이다
그는 그 후 2년 뒤엔 89세에 세상을 떠났다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사상
강호시조의 작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서로 <농암문집>이 전해지고 있다